에볼라 보유숙주의 수수께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데이비드 콰먼 (지은이), 강병철 (옮긴이) | 꿈꿀자유 | 2017-10-01

p74-81 이탤릭체는 원문을 따름

어디에 숨었을까? 거의 40년간 에볼라의 보유숙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감염병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작은 수수께끼였다. 그 수수께끼와 답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은 에볼라 출혈열이라는 질병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아프리카에서 두 건의 유행이 서로 독립적으로, 그러나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한 건은 자이르 북부, 한 건은 수단 남서부였으니 공간적 거리는 약 500킬로미터에 이른다. 수단의 유행이 약간 먼저 시작되었지만, 자이르의 유행이 더 유명하다. 어느 정도는 유행 지역 옆을 흐르는 에볼라 강의 이름을 따서 바이러스 이름을 명명한 덕일 것이다.

자이르 유행의 진원지는 붐바(Bumba) 지구라는 지역 내 얌부쿠라는 마을에 위치한 작은 가톨릭 선교병원이었다. 9월 중순 병원에 근무하는 자이르인 의사가 극적인 경과를 보이는 신종 질병 환자 약 20명을 보고했다. 환자들은 흔히 보는 말라리아보다 훨씬 발열이 심한 데다, 피를 토하고 코로도 피를 홀리며, 피섞인 설사를 하는 등 심한 출혈 소견을 나타냈다. 자이르의 수도인 킨샤사 보건당국에 이 소식이 전보로 알려졌을 때는 이미 14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환자들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10월 초 얌부쿠 선교 병원은 폐쇄되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직원이 사망했던 것이다. 수주 후 자이르 보건부의 지휘 아래 과학자와 의사들로 구성된 국제질병대응팀이 이 수수께끼의 질병을 집중 연구하고 통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 지역에 파견되었다. 이 팀은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라고 붙렸는데 팀원들은 프랑스, 밸기에, 캐나다, 자이르.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전염병관리본부에서도 9명을 파견했다. 리더는 칼 존슨이었다. 1963년 볼리비아에서 마추포열을 연구하다가 자신도 질병에 걸려 죽을 뻔했던 미국 출신 의사이자 바이러스학자. 바로 그 사람이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13년이 지나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불같고 헌신적인 성격은 여전했다. 이재 그는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특수 병원체 부서장이었다.

존슨은 환경적인 차원을 주목함으로써 마추포열 위기를 해결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 않은 동안 바이러스는 어디 있을지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 보유숙주에 대한 질문은 금방 답이 나왔다. 가정과 곡물 창고에 마추포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은 볼리비아 토종 생쥐인 칼로미스 종(Calomys callosus)이었다. 대대적으로 쥐를 잡자 유행은 금방 잠잠해졌다. 절박하고도 당혹스런 1976년 10월과 11월, 자이르 북부에서 존슨은 정체불명의 또 다른 적을 눈앞에 두고 마추포열과 맞섰을 때와 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졌다. 사망자 수는 이미 수백 명을 헤아렸다. 도대체 이 끔찍한 녀석은 어디에서 왔을까?

병원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알았다. 미국 전염병관리본부를 비붓한 해외 연구소에서 황급히 임상적 검체들을 연구한 끝에 모종의 바이러스가 분리되었던 것이다. 자이르로 오기 전에 존슨은 미국 전염병관리본부에서 이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연구를 직접 이끌었다. 또한 이 바이러스가 9년 전에 발견된 또 다른 치명적 병원체인 마르부르크병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두 가지 바이러스 모두 고통에 몸부림치는 촌충 처럼 복잡하게 꼬인 실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에볼라는 마르부르크병과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벌레처럼 생긴 두 가지 바이러스, 즉 에볼라와 마르부르크병 바이러스는 필로바이러스 라는 새로운 과로 분류되었다.

존슨의 팀은 새로운 병원체인 에볼라 바이러스가 반드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동물의 몸속에서 바이러스는 숙주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계속 존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유숙주를 밝히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인간 사이의 전염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환자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유행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연구팀은 나중에 ‘생태학적 조사는 매우 제한적으로 수행되었다’라고 보고했으며 조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인간의 몸 말고는 어디서도 에볼라 바이러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결과야말로 더욱 흥미롭다. 초기 연구자들이 무엇을 조사했는지에 관한 기록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에볼라가 유행한 마을에서 818마리의 빈대를 잡아 조사했지만 바이러스의 증거는 전혀 없었다. 모기도 조사했다. 역시 허탕이었다. 열 마리의 돼지와 한 마리의 소에서 혈액을 채취했지만 모두 음성이었다. 69마리의 토종 쥐, 30마리의 흑쥐, 8마리의 다람쥐 등 123마리의 설치류를 검사했지만 바이러스 보균 상태인 동물은 없었다. 여섯 마리의 원숭이, 두 마리의 다이커 영양, 그리고 종이 불분명한 일곱 마리의 박쥐를 잡아 내장을 모두 조사하기도 했다. 하나 같이 깨끗했다.

국제위원회 멤버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지난 30년간 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급작스럽고 폭발적인 유행을 일으킨 신종 급성 바이러스 질병은 없었다.’ 보고된 치사율은 88퍼센트로 광견병을 제외하고는 기록된 어떤 질병보다도 높았다(광견병은 가장 치명적인 질병으로 중상이 나타나기 전에 치료받지 않은 환자는 사실상 100퍼센트 사망한다). 위원회는 자이르 정부에 여섯 가지 긴급 권고안을 전달했는데 그중에는 각 지역 및 전국 규모의 감시체계를 통한 보건조치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에볼라의 보유숙주를 파악하는 일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과학적인 문제로 모부투 정권에게 권고할 행동지침으로서는 다소 추상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얌부쿠에서 3년이 지나도록 칼 존슨과 몇몇 멤버들은 여전히 보유숙주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대대적인 조사를 하기로 했다. 에볼라의 보유숙주를 찾는다는 목적만으로 원정을 나서기에는 예산이 부족했으므로, 당시 세계보건기구에서 진행 중이던 자이르의 원숭이 두창 연구 프로그램에 편입하는 길을 택했다. 원숭이 두창은 에볼라만큼은 아니지만 심한 질병이고, 에볼라와 마찬가지로(아직 어떤 동물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유숙주를 통해 전파되는 병이었다. 따라서 검체를 한 번만 채취하여 두 가지 검사를 하는 방식의 합동연구가 자연스럽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연구팀은 다시 붐바 지구의 마을들과 인근 숲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포획하는 한편, 자이르 북부의 다른 지역도 탐색했다. 이번에는 자체적으로 동물을 사로잡거나 사냥하는 외에도 마을 사람들이 산 채로 동물을 잡아오면 보상금을 주는 방법으로 117종에 걸쳐 1,500마리가 넘는 동물을 검사했다. 원숭이, 쥐, 생쥐, 박쥐, 몽구스, 다람쥐, 천산갑, 뾰족뒤쥐, 호저, 다이커 영양, 다양한 조류, 거북, 온갖 뱀들이 검사 대상이 되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혈액을 채취하고, 간과 콩팥과 비장을 떼어 냈다. 모든 검체를 따로 따로 바이알에 담아 급속냉동시킨 후 미국 전염병관리본부로 보내 분석했다. 채취한 조직에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배양될까? 혈청에서 에볼라 항체가 검출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슨과 공동저자들은 〈감염병 저널Jaurnal of infectious Diseases〉에 실린 논문에서 솔직하게 허탕이라고 보고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제기랄. 또 빈손이라니! 탄식과 절망이 이어졌다.

에볼라 보유숙주를 찾는 일이 그토록 어렵고 종잡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질병이 인간 집단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에볼라는 유행이 지나가면 몇 년 동안 환자가 한 명도 없다. 보건당국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과학적 연구에는 걸림돌이다. 물론 바이러스 생태학자들은 아프리카 어느 숲에든 들어가 어떤 동물이든 잡아서 에볼라 검사를 할 수 있지만, 이런 방법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에볼라 출혈열로 사람이 죽어갈 때 그 지역을 조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에볼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보건당국의 주의를 끌 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1976년 얌부쿠 유행에 이어 1977년에서 1979년 사이 자이르와 수단에서 몇 건의 소규모 유행이 있었지만 그 뒤로 15년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80년대 초 산발적으로 환자들이 발생했지만 모두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진 것이었으며 긴급 대응이 필요할 정도로 두드러진 유행은 없었다. 질병은 환자들의 몸속에서 스스로 소진되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기타 전문적인 기관에서 특공대를 소집하기도 전에 저절로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소진이란 이렇게 치사율이 높고 중간 정도의 전염력을 지닌 감염병에서 특별히 중요한 개념 이다. 처음 몇 명이 사망하고 다시 몇 명이 감염되었을 때, 일부는 사망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회복된다면 병원체가 계속 퍼져나가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소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15년이 지나자 에볼라는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메이바우트 2(Mayibout 2)와 가봉의 다른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낸 후, 키크위트라는 지역에 이르러 한층 맹위를 떨쳤다.

키크위트는 자이르의 수도인 킨샤사에서 동쪽으로 약 50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다. 이곳은 얌부쿠나 메이바우트 2, 또는 보우에 외곽의 벌목 캠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그곳은 20만명이 몰려사는 도시였다. 병원도 몇 군데 있었다. 이전 유행 지역들과 달리 넓은 바깥 세상과 연결된 곳이었다. 하지만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비슷했다.

키크위트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숲 속이나 그 주변에서 일하는 42세 남성으로 숲의 생태계를 다소나마 교란시킨 것이 확실했다. 그는 몇 군데의 개간지에서 옥수수와 카사바를 재배하고, 나무를 잘라 숯을 굽기도 했는데 그 장소는 도시에서 남동쪽으론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어디서 나무를 얻었으며 어떻게 자신의 밭에 햇빛이 들도록 했을까? 당연히 나무를 잘랐을 것이다. 그는 1995년 1월 6일 발병하여 1주일 후 출혈열로 사망했다.

그가 세 명 이상의 가족을 직접 감염시키고(모두 사망했다), 사회적으로 접촉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면서 이후 몇 주간 열 명이 더 사망했다. 사망자 중 일부는 의심의 여지없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키크위트 종합병원과 주로 산모들이 입원하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곳 검사실 직원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 직원은 키크위트 종합병원에 입원했는데 장티푸스에 의한 장파열을 의심하여 그를 수술했던 의사와 간호사 몇 명, 병실에서 그를 돌보았던 이탈리아인 수녀 두 명이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다. 검사실 기사와 수녀들이 사망하자, 지역 보건당국에서는 이 병을 전염성 이질(‘혈성 설사’)로 생각했다. 오진을 한 탓에 결국 바이러스는 키크위트 지역의 다른 병원을 통해 환자와 의료진들에게 훨씬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모든 사람이 이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건성 소속 의사 한 명은 이질이 아니라 바이러스 출혈열처럼 보인다고 했으며, 그 추측은 5월 9일 미국 전염병관리본부에 접수된 혈액 검체를 통해 이내 확인되었다. 틀림없는 출혈열이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에볼라였다. 7월에 이르러 유행이 가라앉을 즈음 사망자는 200명이 넘었으며, 그중 60명이 의료인이었다. 다른 병으로 생각하고(궤양으로 인한 위장관 출혈 등) 환자를 수술한 경우가 특히 위험했다.

그 사이에 보유숙주를 찾기 위한 또 다른 국제협력팀이 결성되어 6월 초에 키크위트로 들어갔다. 이 팀은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직원들, 자이르대학 연구진, 메릴랜드 주의 미육군 감염병 연구소(United States Amy Medical Research Institute for Infectious Diseases, 원래 생물학적 무기 연구소였지만 당시에는 질병 연구 및 생물학적 공격에 대한 방어 업무를 담당했다)직원들, 그리고 덴마크 유해동물연구소에서 파견된 설치류 전문가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종간전파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장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바로 첫 번째 희생자인 42세의 불운한 남성이 살았던 숯가마와 밭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3개월간 수천 마리의 동물들을 덫이나 그물로 포획했다. 대부분 작은 포유동물과 조류였지만 파충류나 양서류도 있었다. 모든 덫은 도시 경계 바깥의 숲과 사바나에 설치했다. 키크위트 시내에서는 가톨릭 선교회에 그물을 설치하여 박쥐를 잡았다. 포획된 동물은 안락사시킨 후 혈액을 채취하고 비장(때에 따라 간이나 콩팥 둥 다른 장기도)을 적출하여 냉동보관 했다. 그 밖에 개나 소, 애완용 원숭이들도 혈액을 채취했다. 모두 3,066개의 혈액 검체와 2,730개의 비장이 채취되어 미국 전염병관리본부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는 혈액 검체에 방사선을 쬐어 모든 바이러스를 죽인 후 당시 가장 민감한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에볼라 항체를 검사했다. 비장 검체들은 BSL-4등급 연구시설로 보냈다. 이 시설은 칼 존슨의 초기 작업 이후 새로 고안된 것으로(그는 이런 시설을 설계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몇 겹의 밀폐장치와 음압발생기, 정교한 필터를 갖추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또한 우주복을 입었다. 이론적으로는 에볼라 바이러스 누출 위험이 없는 봉쇄지역인 셈이다. 자이르에서 채취해온 비장들 중에 바이러스가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검체는 감염된 것으로 가정하고 취급했다. 비장 검체들은 일부를 떼어 곱게 간 후 세포 배양물에 가해 바이러스가 자라는 지도 확인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세포 배양물은 전혀 바이러스의 흔적 없이 건강 하게 자라났다. 항체 검사에서도 양성 결과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다시 한 번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엄청난 피해콜 입힌 후, 병들고 죽은 희생자들만 남긴 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신출귀몰하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3개월간 노력한 결과를 완전한 실패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잘 계획된 연구는 음성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능성을 보다 좁혀주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회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절망감을 불러일으켰다. 너무 늦게 키크위트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어쨌든 숯 굽는 사람이 쓰러진 지 6개월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우기가 건기로 넘어가는 시기라 보유숙주가 이동하거나, 숨거나, 숫자가 줄어든 건 아닐까? 유행하지 않을 때는 바이러스 숫자가 크게 감소하여, 심지어 보유숙주의 몸속에서도 거의 검출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수만 남는 것은 아닐까? 연구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종 보고서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은 기나긴 동물종의 목록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으로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세 가지 중요한 가정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첫째, 그들은 초기 연구를 근거로 보유숙주가 포유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유행은 항상 울창한 숲과 관련이 있었다. 심지어 키크위트처럼 도시 지역의 유행도 숲 속에서 살았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보유숙주는 숲 속에 사는 동물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에볼라 유행은 시간적으로 분산되어 나타났다. 한 번 유행하면 몇 년씩 잠잠하기도 했다. 이런 시간적 패턴은 보유숙주로부터 인간이 감염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렇게 종간전파가 드물다는 사실로부터 다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즉, 보유숙주 자체가 드문 동물종이거나, 사람과의 접촉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키크위트 팀이 아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권위있게 서술한 그들의 논문은 1999년 〈감염병 저널〉 특집 증보판에 여러 편의 에볼라 관련 논문들과 함께 발표되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보유숙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초 신박하네. ㅎㅎㅎ 에볼라 숙주와 관련된 글이 bric[1]에도 있다. 중간에 언급된 두 편의 논문[2,3]은 책 뒤쪽의 참고문헌 목록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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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3
와이어드 EBOLA IS NOW CURABLE. HERE’S HOW THE NEW TREATMENTS WORK 08.12.1903: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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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1
월스트리트 저널 ‘Ebola Is Now a Disease We Can Treat.’ How a Cure Emerged From a War Zone. Oct. 30, 2019 10:47 am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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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오토픽] 에볼라의 수수께끼 (ibric.org)
[2] Heymann, D. L., J. S. Weisfeld, P. A. Webb, K. M. Johnson, T. Cairns, and H. Berquist. 1980. “Ebola Hemorrhagic Fever: Tandala, Zaire, 1977–1978.” The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142 (3).
[3] Bwaka, M. A., M. J. Bonnet, P. Calain, R. Colebunders, A. De Roo, Y.Guimard, K. R. Katwiki, et al. 1999. “Ebola Hemorrhagic Fever in Kikwit,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Clinical Observations in 103 Patients.” In Ebola: The Virus and the Disease, ed. C. J. Peters and J. W. LeDuc. Special issue of The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179 (S1).

심해에서 상어를 공격하는 거대 절지동물?

페북에서 어느 심해 영상[1]을 보게 됐다. 재생시간 4분 24초

상어를 연구하는 학자가 상어 두 마리를 야생으로 풀어주는 과정에서 상어를 공격하는 미지의 생물을 목격한 것 같다. 근데 그 생물이 마치 절지동물처럼 생겼다는게 문제다. 아니, 상어 머리를 물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입을 가진 거대한 절지동물이 있던가??

위키피디아의 Arthropod 항목을 대충보니 에디아카라기에도 절지동물로 분류되는 것들이 있는 듯 하다. 여태까지 에디아카라기에는 exoskeleton이 있는 동물이 없는 줄 알았다. ㅎㅎ 거대 절지동물로 삼엽충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삼엽충은 2.5억년 전에 P–Tr 대멸종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 그럼 저 생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중간에 Stephen Brusatte 선생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사람의 글[2,3]은 가끔 봤어도 얼굴은 처음 봤다. 훈남이구만. ㅋㅋㅋ

뭐 여하간, 지난 52헤르츠 고래 이야기[4]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육지보다도 넓은 바다 속에는 뭐가 살고 있는 건지 아직도 알 수가 없구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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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4
science alert Watch Ginormous ‘Pill Bugs’ Eat a Dead Alligator Deep Under The Sea, For Science 12 AP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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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facebook.com/ScienceChannel/videos/vb.14391502916/2114775605509426/
[2] 내 백과사전 티라노사우르스 크기의 변화 2010년 9월 23일
[3] 내 백과사전 영화 Jurassic World의 고증 논란 2015년 6월 14일
[4] 내 백과사전 52 헤르츠 고래 2016년 2월 29일

유니코드에 출몰하는 유령 : 유령한자

해커뉴스[1]에서 흥미로운 이야기[2]를 들었다. ㅋㅋ

1978년 일본의 경제산업성에서 일본어 문자코드인 JIS X 0208을 제정할 당시, 일부 출처도 알 수 없고 실제로 거의 쓰이지도 않는 한자 수십 개가 포함되었는데, 이를 ‘유령문자‘라고 부르고 있는 듯 하다. 나무위키[3]에도 항목이 있다.

이 한자들은 주요문서에 나와 있지 않는 한자이므로, 의미가 불명하고 읽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한자들이 그대로 유니코드에 등록되어 현재 유니코드 목록에도 남아있다는 점이다.

꽤 오랜 기간동안 이 한자들은 설명되지 않고 잊혀진 채로 남아있었는데, 1997년 대대적인 조사를 착수하여 상당수는 출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다만 최후로 남은 12개의 한자는 그 어느 문헌에서도 찾지 못한 한자라서 발음과 의미가 불명인 상황이라고 한다. 일본 위키피디아 유령문자 항목에 12개의 목록이 나열되어 있다.

재미있는 한자는 ‘妛’ 인데, 카탈로그를 제작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여 조사한 결과, 본래 존재하는 한자인 𡚴자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山자와 女자가 각각 인쇄된 종이로 잘라 붙여 복사할 때, 가로선이 삽입되어 탄생한 한자라고 한다. 덕분에 진짜 올바른 한자 ‘𡚴’자는 한참후에 유니코드에 등록될 수 있었다고 한다.

12한자 중 11자는 어떤 이유로 실수했는지 대략적인 추정이 되고 있으나, 최후의 마지막 한자인 ‘‘는 어떤 문헌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도 발음도 불명확한 가장 미스테리한 한자가 돼 버렸다고 한다. 나무위키에 별도의 항목[4]이 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설명대로, 좁은 의미로는 유령한자는 이 한자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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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 Spectre is Haunting Unicode (hacker news)
[2] A Spectre is Haunting Unicode (dampfkraft.com)
[3] 유령 문자 (나무위키)
[4] (나무위키)

자동차 전자 해킹을 이용한 살인 가능성

첩보 관련 블로그인 Intel Today[1]를 보니, 얼마전에 위키리크스에서 공개[2]한 Vault 7에서 CIA가 차량 해킹을 했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언론인 Michael Hastings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이 더욱 확산되는 것 같다.

Michael Hastings는 정부와 군의 비리를 취재하여 특종을 많이 잡았던 능력이 뛰어난 기자였는데, 위키리크스의 변호사 Jennifer Robinson에게 FBI에게 쫓기고 있다고 접촉을 시도한 뒤, 수 시간 후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CIA 국장인 David Petraeus성추문 스캔들을 취재하고 있었다[3]고 한다. 그는 사망 수 시간 전에 지인에게 ‘특종을 잡았어. 잠시 연락을 끊어야 겠어’(I’m onto a big story and need to go off the radar for a bit.)라고 말했던 모양[1]이다.

뭐 본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미국 정부가 자국 언론인을 살해한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는 않다고 보지만, 정황이 너무 CIA에게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사망 당시에도 음모론이 나돌았던 모양[3]인데, 이번 위키리크스의 문건으로 CIA에게 더욱 상황이 안 좋아진 것 같다. 음… 갑자기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4]이 생각나는 듯…-_-

 


해스팅스 관련 사건을 검색하면서, 본인은 자동차 해킹으로 정말 살인이 가능한지 꽤 궁금해졌는데, 이미 와이어드 기사[5]에 정답이 나와 있었다.

자동차 내부에 전자장비가 많이 들어가면서, 배선장치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점차 복잡해지면서 자동차 전자장비 전용의 특수한 통신 네트워크 표준이 제정되었는데 이것을 CAN이라고 한다. p2p 네트워크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하는데, 어느 사이트[6]에 친절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와이어드 기사[5]에는 보안 전문가인 Charlie MillerChris Valasek은 크라이슬러에서 제조한 자동차 Jeep Cherokee를 10마일 떨어진 서쪽에서 원격으로 악셀이나 브레이크를 조종하는 해킹 시범을 했다고 한다. 헐 이 정도 제어가 가능하면 살인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일보의 기사[7]에 꽤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근데 이런 해킹이 가능하려면 자동차가 외부와 통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요새 외부와 통신하는 차량이 그렇게 많은가??? 사실 자동차에 거의 관심이 없어서 본인은 잘 모른다. ㅋ 차를 봐도 남들은 차종이 뭔지 말할 수 있던데, 본인은 보고 인식할 수 있는 차종은 전혀 없다.

 


한편 보안뉴스[8]를 보니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보안의 허점을 발견하였을 때, 이를 공개하는 것이 이득인가에 대한 재고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통상적인 견해는 보안 허점은 혼자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낮고, 적이 이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가급적 빨리 공개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RAND Corporation의 연구[9]에 따르면 제로데이 취약은 비교적 긴 시간동안 발견되지 않아서, 정부의 첩보기관은 공개를 안 하는 편이 오히려 더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알려지지 않은 보안 허점이 생각보다 많고, 보안 허점이 줄 수 있는 치명타도 과거보다 더 커졌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좀 시사적인 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7.4.28
hack a day 블로그[10]를 보니 무선으로 제어 가능한 차가 많은 듯?

 


2018.3.27
전자신문 차량 통신 2000배 빨라진다 201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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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8
Hacker Finds He Can Remotely Kill Car Engines After Breaking into GPS Tracking (hacker news)

 


[1] WikiLeaks: ‘Vault 7’ dump reignites debate about deadly car crash of Michael Hastings (Intel Today)
[2] 내 백과사전 위키리크스가 CIA가 만든 멀웨어와 해킹툴을 폭로하다 2017년 3월 8일
[3] 뉴스1 해스팅스기자 ‘사고死’ 음모론 확산 2013-06-23 04:53
[4] 허핑턴포스트 국정원 해킹 직원의 자살, 4가지 의혹 2015년 07월 22일 21시 54분 KST
[5] 와이어드 Hackers Remotely Kill a Jeep on the Highway—With Me in It 07.21.15 6:00 AM
[6] CAN(Controller Area Network) 통신 개요 (www.ni.com)
[7] 한국일보 IT 제품이 된 자동차… 치명적 해킹 위험에 떨고있다 2015.08.09 13:57
[8] 보안뉴스 CIA 사건 후 재점화된 정부 보유 제로데이 취약점 문제 2017-03-13 11:02
[9] Lillian Ablon, Timothy Bogart (2017) Zero Days, Thousands of Nights, DOI:10.7249/RR1751
[10] STEALING CARS FOR 20 BUCKS (Hack a day)

52 헤르츠 고래

해커뉴스[1]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길래 써본다.

북태평양에서 52헤르츠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고래가 어딘가에 있는데, 그 고래의 정체가 알려져 있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 같다. 이런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고래의 종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일 음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52-hertz whal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2,3,4] 있다.

William Alfred Watkins라는 해양 포유류를 연구하는 학자가 이 고래의 추적을 20년 이상(!) 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2004년 논문[5]을 구글링해서 대충 봤다-_- 미해군의 해양 음향 감시 시스템(SOSUS)에서 매년 기록하는 듯 하다. 1989년 최초에 발견되었고 1992년 이래로 매년 추적을 하고 있는 듯.

개인적으로는 왜 고래의 것이라 단정하는지 이유가 궁금했는데, 뭐 해양 포유류 학자가 고래라고 하니까 맞겠지 뭐-_- 위키피디아를 보니 소리의 패턴이 고래의 것과 닮았다고 한다. 그러나 뉴스기사에 따르면 이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는 없다고 하니, 아무도 듣지 않는 망망 대해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고래가 된다.

일전에 이야기[6]한 UVB-76처럼 세상에는 미스테리한 음원들이 있는데, 이것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음원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고래라… 뭔가 문학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고래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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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0
52-hertz whale (hacker news)

 


[1] 52-hertz whale (hacker news)
[2] 나우뉴스 수십년을 홀로 ‘노래’…세계서 가장 외로운 고래 2013.07.19 00:00
[3] 아시아경제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52’… “다른 고래들과 소통하지 못해” 2015.03.10 07:45
[4]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를 찾아라 (vingle.net)
[5] Watkins, W. A., M. A. Daher, J. E. George, and D. Rodriguez. (2004) “Twelve years of tracking 52-Hz whale calls from a unique source in the North Pacific”. Deep Sea Research Part I: Oceanographic Research Papers 51:1889–1901. doi:10.1016/j.dsr.2004.08.006
[6] 내 백과사전 The Buzzer : UVB-76 2010년 8월 28일

요나구니 구조물과 비미니 길

요나구니 구조물은 일본 류큐 열도 남쪽에 위치한 해저 구조물이다. 거대한 돌덩어리인데, 직각이 많아서 마치 인간이 건조한 듯 한 느낌을 준다. 만약 이게 진짜로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대략 2000년 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유튜브에 대단히 많은 다이버들의 영상이 있다. 위 영상을 찍은 아마추어 다이버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영상을 찍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블로그를 관리하지 않아서 그런지 깨진 사진이 많지만, 보이는 사진이 몇 개 있어서 참고할만 하다. 이 블로거에 따르면 저 곳이 꽤나 오지라서 접근 자체도 수월하지는 않은 듯. 저걸 찍느라 경비로 2000~3000달러 정도 썼다고 한다.

이 밖에 여러 영상을 봤는데, 계단같아 보이는 것도 있고 수로같아 보이는 구조도 있다. 직각이 많은 구조물이긴 하지만 인간이 만들었다는 딱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듯 한데 주변 섬에서도 보이는 퇴적층 구조라서, 본인이 보기에는 자연적으로도 생성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계에서도 인공물이라고 보고 있지 않은 듯 하다. 본인 생각으로도 저 정도의 거석문화가 있었다면 필연적으로 주변에 이와 연계된 인간 활동의 흔적이 검출되어야 하고, 적어도 역사 기록의 일부에 틀림없이 등장하여야 하는데, 이를 교차 검증할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인공물이라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비슷한 사례로 비미니 길이 있다. 해저에 규칙적으로 깔린 돌길인데, 초기에는 아틀란티스 문명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주장되었다 한다.

아주 오래 전에 가빈 맨지스의 저서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저서를 꽤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정화의 대원정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꽤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하여 설득력이 있어보였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맨지스는 가짜 역사학 취급을 받는 듯-_-

여하간 그 맨지스의 저서에는 정화의 함대가 배를 끌기 위해 이 비미니 길을 사용했었다고 주장을 하는 부분이 있다. 애석하게도 현재 학계는 비미니 길도 자연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2017.8.16

탕가니카 웃음 전염 사건 Tanganyika laughter epidemic

리처드 와이즈먼 저/한창호 역, “괴짜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08

p216

웃음의 전염성은 대개 제한적이지만, 때로는 수천 명에게 번져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도 한다. 1962년 1월 탄자니아의 한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니던 3명의 10대 소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21) 그들의 유쾌한 기분은 전교생 159명 중 95명에게로 전염되었고 3월에 학교는 문을 닫아야만 했다. 몇 분간 지속되던 웃음발작이 몇 시간으로 길어지면서 학생들의 몸을 쇠약하게 했기 때문이다(사상자는 없었다). 학교는 5월에 개교했지만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또 다른 60명의 학생들이 ‘웃음전염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교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고향인 느샴바로 돌아간 많은 여학생들이 주민들에게도 웃음을 전염시켜 1만 명의 주민 가운데 200명 이상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웃음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1) A. M. Rankin & P. J. Philip, “An epidemic of laughing in the Bukoba District of Tanganyika”, Central African Journal of Medicine, vol. 9 (1963), pages 167-70

탕가니카는 탄자니아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책을 읽다가 위 내용이 신통방통해서 검색해보니 위키피디아에도 있다. 위키에서는 집단 히스테리(Mass hysteria)의 한 종류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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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
시사인 400명이 ‘감염’된 500년 전 춤바람 2019.08.29 17:17

한명의 개인 투자자가 플래시 크래시를 일으킬 수 있을까?

flash crash란 주가나 주가지수가 매우 짧은 시간에 급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개별 종목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시장 전체의 인덱스가 이러한 현상을 보일 때도 있다. 당연히 인간의 직접적인 의지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고, 근래 급증하는 초고속 매매[1]에 의존하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의해 일어난다. 마침 근래 읽고 있는 마크 뷰캐넌씨의 ‘내일의 경제'[2]에서도 flash crash에 대한 언급[3]이 있다.

2010년 5월 6일 미국 동부 시각으로 오후 2시 42분에 순간적으로 다우존스가 998.5포인트가 급락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시총으로 치면 수조 달러(!!)가 증발한 현상이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2010 Flash Crash 라고 부르는 모양. 이는 하루안에 변동한 다우존스 지수의 역대 변화량 중 두 번째로 큰 양이다.

얼마전에 cnn money에서 이 플래시 크래시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소식[4]을 처음 들었는데,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지[5]와 파이낸셜 타임즈[6]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저 기사[5] 제목은 일전에 소개한 마이클 루이스의 책인 ‘Flash boys‘[7]를 패러디 한 것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단수라서 단수로 바꾼 듯-_-

영국의 Navinder Singh Sarao라는 36세의 개인 선물 투자자가 이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미 국무부에서 영국 정부에게 범죄자 인도요청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사[6]에 따르면 영국의 국제 협약에 의해 영국 국민이 영국내 법을 어기지 않으면 인도하지는 않는 모양.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매우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일개 개인 단타 매매자가 단독으로 어떻게 순간적으로 다우지수를 9%나 떨어뜨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에 알고리듬 트레이딩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개별 알고리듬이 다 제각각의 기준으로 매수/매도를 결정하는데, 어떻게 한방향으로 매도 주문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일개인이 트리거 주문을 낼 수 있었을지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진짜 그 ‘살찐 손가락‘이 일으킨 일인가? 살 좀 빼야 할 일이다-_-

더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인 한 명이 이 정도로 시장에 파장을 줄 수 있다면, 악의적 의도를 가진 몇 명이나 큰 손이 움직일 경우 어떤 파장을 줄 수 있는지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민물 경제학자들이 자랑하는 효율적 시장가설과 그놈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이 이토록 외부 충격에 취약하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손모가지를 확 뿌러뜨릴까 보다. ㅋ

 


2016.10.8
BBC Flash crash sees the pound gyrate in Asian trading 7 October 2016

 


2016.10.15
BBC ‘Flash crash’ trader loses US extradition battle 6 hours ago

 


[1] 내 백과사전 초고속 매매 High-frequency trading 2013년 10월 18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내일의 경제-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2015년 5월 3일
[3] 내 백과사전 2010년 5월 6일 플래시 크래시 2015년 4월 28일
[4] cnn money UK trader arrested for causing 2010 stock market ‘Flash Crash’ April 22, 2015: 5:35 AM ET
[5] 이코노미스트 Flash boy Apr 25th 2015
[6] financial times Navinder Singh Sarao extradition: two big questions April 22, 2015 4:36 pm
[7] 내 백과사전 [서평] 플래시 보이스-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2014년 10월 7일

Benjaman Kyle

140px-Benjaman_jyle간만에 FUTILITY CLOSET 블로그[1]에 들어가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이를 소개한다. ㅋ

2004년 8월 31일 조지아 주의 리치몬드 힐에 소재한 버거킹 매장 뒤에서 의식을 잃고 알몸이 된 한 남자가 발견되었다. 이 남자는 자신이 누구이고 왜 그곳에 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를 부르기 위해 버거킹과 이니셜이 같은 Benjaman Kyl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9년이 지난 현재도 그는 그 이전의 일을 거의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이 이름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그 이전의 삶 거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다양한 방송매체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아무도 이 사람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는 소재를 알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행방불명 처리되어 있는 미국 전체에서 유일한 사람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신원파악이 시도된 모양인데, FBI는 DNA와 지문 분석을 통해 이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실패하였다.

이 사람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2016.2.29
이 사람의 페이스북에 의하면 작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은 모양.

 


[1] Benjaman Kyle in FUTILITY CLO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