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적 인지 연구의 문제점

프란스 드 발 저/이충호 역,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세종서적, 2017

동물을 단순히 자극-반응 기계로 간주하던 암흑시대에서 벗어난 우리는 동물의 정신적 삶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핀이 쟁취하려고 애썼던 큰 진전이다. 하지만 동물인지가 갈수록 인기를 끄는 주제가 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동물인지는 우리 인간이 가진 인지의 빈약한 대체물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에 자주 접한다. 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동물인지는 정말로 심오하고 놀라운 것일 리가 없다. 많은 학자들은 오랜 경력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할 수 있지만 동물은 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을 열거함으로써 인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한다.57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추측은 만족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처럼 지구에 존재하는 전체 인지 스펙트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시간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연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종이 누구니?”밖에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동물인가?

고대 그리스인의 터무니없는 척도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장소에 인간을 계속 두려고 한 것은 의미론과 정의와 재정의, 그리고 골대를 옮기는 행위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동물에 대한 낮은 기대를 실험으로 번역할 때마다 거울은 우리가 좋아하는 대답을 들려준다. 편향된 비교도 의심을 품어야할 한 가지 근거이지만, 또 한 가지 근거는 증거의 부재를 크게 선전하는 것이다. 내 서랍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몰라서 빛을 보지 못한 부정적 발견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것들은 내 동물들에게 특정 능력이 없음을 시사할 수 있지만, 대개는 특히 자발적 행동이 다른 것을 시사할 경우, 나는 동물들을 최선의 방법으로 테스트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을 만들거나 문제를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제시해 동물들이 그것을 풀 마음조차 생기지 않게 했을지도 모른다. 손의 해부학적 구조를 고려하기 전에 과학자들이 긴팔원숭이의 지능을 낮게 평가한 사실이나 너무 작은 거울에 대한 반응을 바탕으로 코끼리의 거울 자기 인식 능력을 너무 일찍 부정한 사실을 떠올려보라. 부정적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기 때문에 피험자를 의심하기 전에 실험 방법을 의심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책들과 기사들은 진화인지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우리를 나머지 동물들과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의 본질을 찾는 것을 주요 주제로 열린 학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우리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일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이 질문이 관앵무나 흰돌고래를 나머지 동물들과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할 이유가 있는가? 다윈이 임의로 하던 사색 중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개코원숭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존 로크보다 형이상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58라고 말했다. 모든 종은 그 인지가 우리의 인지를 빚어낸 것과 동일한 힘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자 내놓을 만한 심오한 통찰이 있다. 자기 분야의 핵심 문제가 인간의 신체에서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라고 선언한 의학 교과서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우리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일까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이 질문이 약간 흥미로운 것이긴 하지만, 의학 분야에는 심장이나 간, 세포, 신경 시냅스, 호르몬, 유전자 등의 기능과 관련해 훨씬 기본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정말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쥐의 간이나 인간의 간이 아니라 간 자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기관과 과정은 우리 종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수백만 년 이상 진화해오는 동안 종마다 고유한 변경이 일부 일어났다. 진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인지는 달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인지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인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하며, 이 요소들이 어떻게 그 종의 감각계와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온갖 종류의 인지들을 망라하는 단일 이론을 원한다. 이 계획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인간의 독특성을 내세우는 주장들을 일시 중지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주장들의 초라한 실적을 감안하면, 수십 년 동안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릴 때가 되었다. 그러면 더 포괄적인 틀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언젠가 인간의 마음에서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아닌지) 더 잘 보여주는 그림을 허용하는 새 개념들로 무장하고서 우리 종의 특수한 사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57 Jeremy Kagan 2004. The uniquely human in human nature. Daedalus 133:77~88., David Premack, 2007. Human and animal cognition: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104:13861~67
58 Charles Darwin, Notebook M,1838, http://darwin-online.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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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보상으로 주는 동물 실험과 행동주의의 문제점

프란스 드 발 저/이충호 역,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세종서적, 2017

우리는 다른 종들도 정신적 삶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마음이 열려 있을까? 우리는 이를 조사할 만큼 충분히 창조적일까? 우리는 주의와 동기와 인지의 역할을 따로 분리해낼 수 있을까? 이 세 가지는 동물이 하는 모든 일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나쁜 수행 결과는 이 셋 중 어느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위에 나왔던 장난기 많은 두 유인원의 경우, 나는 이들의 나쁜 수행 결과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지루함을 선택했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정말로 알려면 인간의 독창성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존중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만약 강압 상태의 동물을 시험한다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어린이가 어디로 빠져나와야 하는지를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린이를 수영장에 밀어 넣고서 기억력을 테스트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매일 수백 군데의 연구소에서 사용되는 표준 기억력 테스트인 모리스 수중 미로 테스트에서, 쥐는 벽이 높은 수조에서 미친 듯이 헤엄을 치다가 물속에 잠긴 단을 발견하면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다. 계속 이어지는 시행들에서 쥐는 물에서 빨리 나오려면 단의 위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컬럼비아 장애물 방법Columbia obstruction method도 있는데, 여기서 동물들은 다양한 박탈 기간을 거친 뒤에 전기가 흐르는 격자 장애물을 지나가야 한다. 먹이나 짝(혹은 어미 쥐의 경우에는 새끼)을 향해 다가가고 싶은 충동이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의 두려움을 능가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 실험을 한다. 많은 연구실에서는 음식물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동물의 체중을 정상 체중의 85퍼센트 상태로 유지한다. 음식물을 박탈당한 닭이 미로 과제의 세밀한 차이를 알아채는 데 그다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 실험 결과가 나온 ‘너무 배가 고프면 배우는 데 지장이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이 기억나기는 하지만, 배고픔이 동물의 인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데이터는 비참할 정도로 적다.5

공복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가정은 흥미롭다.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보자. 우리는 도시의 배치를 익히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 피아노 연주법을 배우거나 맡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여기서 음식이 어떤 역할을 할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음식 박탈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물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미국의 유명한 영장류학자 해리 할로는 배고픔 감소 모형hunger reduction model을 처음부터 비판했다. 할로는 지능이 높은 동물은 주로 호기심과 자유로운 탐구를 통해 배우는데, 음식물에 편협하게 집착하게 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죽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키너 상자를 조롱했는데, 이 상자가 복잡한 행동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음식물 보상의 효과를 보여주는 데 탁월한 도구라고 여겼다. 할로는 이를 비꼬면서 주옥같은 명언을 덧붙였다.

“나는 심리학 연구 대상으로서 쥐의 가치를 절대로 폄하하지 않는다. 실험자들의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없는 쥐의 문제는 거의 없다.”6

나는 세워진지 약 100년이나 된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초기 시절에 침팬지를 대상으로 음식물 박탈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가 애틀랜타로 옮겨가 생물의학과 행동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주요 연구소가 되기 전에 아직 플로리다 주 오렌지파크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 때 1955년에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는 쥐를 대상으로 한 절차를 모델로 삼아 조작적 조건 형성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이 절차에는 급격한 체중 감소와 침팬지의 이름을 숫자로 바꾸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인원을 쥐처럼 다룬 방법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막대한 긴장을 초래하는 바람에 2년 동안만 계속되다가 중단되었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유인원에게 강요된 금식을 매우 마음 아프게 여겼고, 이 방법만이 유인원에게 ‘삶의 목적’을 줄 수 있다고 즐거운 듯이 주장한 완고한 행동주의자들과 늘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인지(그들은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강화 계획과 일시 중단의 처벌 효과를 연구했다. 연구원들이 밤중에 몰래 유인원에게 먹이를 줌으로써 그들의 계획을 방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행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떠났는데, 훗날 스키너가 표현한 것처럼 “마음이 여린 동료들이 침팬지를 만족스러운 수준의 박탈 상태로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을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마찰이 단지 방법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관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굶김으로써 시무룩하고 성질 나쁜 유인원을 만드는 과정이 불필요했다는 사실은 한 행동주의자가 다른 유인책을 사용한 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141번 침팬지라고 부른 침팬지는 올바른 선택을 할 때마다 실험자의 팔을 쓰다듬을 기회를 보상으로 제공하자,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학습했다.8

행동주의와 동물행동학의 차이는 늘 ‘인간의 통제’ 대 ‘자연적 행동’의 차이였다. 행동주의자들은 동물을 실험자가 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약한 환경에 둠으로써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만약 동물이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잘못된 행동’으로 분류했다. 예를 들면, 너구리는 동전을 상자 속으로 떨어뜨리도록 훈련시키는게 거의 불가능한데, 너구리는 동전들을 꼭 붙들고 미친 듯이 서로 비벼대는 것(이 종에게는 완전히 정상적인 먹이 채집 행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9 하지만 스키너는 이런 선천적 성향을 보는 눈이 없었고, 통제와 지배의 언어를 선호했다. 그는 행동 공학과 조작을 이야기했는데, 단지 동물과 관련해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말년에 그는 인간을 행복하고 생산적이고 ‘최대로 효율적인’ 시민으로 개조하려고 시도했다.10 조작적 조건 형성이 확실하고 소중한 개념이며 강력한 행동 변화 인자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행동주의의 큰 실수는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언한 데 있었다.

 


5 Buckley, L. A., et al. 2011. Too hungry to learn? Hungry broiler breeders fail to learn a y-maze food quantity discrimination task. Animal Welfare 20: 469~81.
6 Harlow, H. F. 1953. Mice, monkeys, men, and motives. Psychological Review 60:23~32. p31
7 Donald Dewsbury 2006. Monkey Farm: A History of the Yerkes Laboratories of Primate Biology, Orange Park, Florida, 1930~1965. Lewisburg, PA: Bucknell University Press. p226
8 Falk, J. L. 1958. The grooming behavior of the chimpanzee as a reinforcer. Journal of the Experimental Analysis of Behavior 1:83~85.
9 Breland, K., and M. Breland. 1961. The misbehavior of organisms. American Psychologist 16:681~84.
10 B. F. Sknner 1969. Contingencies of Reinforcement. New York: Appleton-Century-Crofts. p40

행동주의는 4~50년대 심리학계에서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주도적 개념이었는데, 이에 관한 학계의 분위기는 크리스틴 케닐리의 저서[1]에서도 조금 소개되어 있다. 본 블로그에서 행동주의를 언어학으로 반박한 촘스키의 내용을 인용한 적[2]이 있다. 스키너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조던 엘런버그의 책[3]에도 짧게 소개되어 있다.

 


2017.10.17
아틀랜틱 Skinner Marketing: We’re the Rats, and Facebook Likes Are the Reward JUN 10, 2013

 


[1] 내 백과사전 [서평] 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2013년 4월 28일
[2] 내 백과사전 촘스키가 일으킨 혁명 2013년 4월 20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2016년 8월 13일

재미있는 색 착시

일전에 스기하라의 원기둥 착시 이야기[1]도 했지만, 착시라는게 다 알면서도 속는 거라서 신기방기하다. ㅋㅋ

주변의 색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눈은 색보정을 하게 되는데, 색 관련 착시로 MIT의 심리학자 Edward H. Adelson이 만든 체커 그림자 착시가 가장 유명하다. 아래 그림에서 두 지점 A와 B의 색은 정확히 동일하다.

아이추판다씨가 이에 대해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간략히 설명한 글[2]이 생각나는데, 읽어보면 꽤 유익하다.

뭐 똑같은 현상은 아니지만, 드레스 색깔논란이 과거에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무려 ‘The dress‘라는 놀라운 이름의 항목으로 등록돼 있다. 헐-_-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의 ‘드레스 색깔 논란’항목[3]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ねとらぼ의 기사[4]를 읽다보니 누가 체커 그림자 착시를 활용한 이미지를 소개하는데, 쓸데없이 꽤 잘 만든 것 같아서 걍 포스팅해봄 ㅋㅋㅋ

위 사각형안의 두 옷의 줄무늬 색이 #928CBA과 #8D7F64으로 정확히 같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시라. ㅋㅋ 아 내 눈이 안 믿겨 ㅋㅋㅋ

참고로 이미지 안의 캐릭터는 야자와 니코[5]임-_-

 


[1] 내 백과사전 스기하라의 원기둥 착시 2016년 10월 10일
[2] 합리적 착시(?) by 아이추판다
[3] 드레스 색깔 논란 in 나무위키
[4] ねとらぼ 青と黒を移動させると白と金……? 見える色が変わるドレスの錯視が再現されたイラストにびっくり 2017年05月11日 20時28分
[5] 야자와 니코 in 나무위키

개에게 마술 보여주기

페북에서 Frans de Waal 선생이 공유한 동영상[1]을 봤는데, 지하철에서 혼자 킬킬 대며 열라 웃었다. ㅋㅋㅋㅋ

일전에 동물이 생각하는 법[2]과 자연적 적응이 아닌 실험실에서 개가 추론하는 이야기[3]를 했는데, 어쨌건 간에 물리적으로 던지는 행위 뒤에 공이 날아가는 역학적 현상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개가 정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적 형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개가 어떤 형태로든 추론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1] https://www.facebook.com/franspublic/posts/10155231220699700
[2] 내 백과사전 동물이 생각하는 법 2015년 12월 23일
[3] 내 백과사전 개의 추론 능력 2013년 4월 21일

여러 동물의 거울 자각 테스트

아틀랜틱 기사[1]에 여러 동물에 관한 거울 자각 테스트의 효용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다. 흥미로우니 기사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일전에 동물의 마음에 관한 이코노미스트지의 에세이[2]를 소개했듯이, 동물이 어떤 종류의 인지적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그 마음이 거울을 보고 자기라는 것을 자각하는지, 아니면 ‘저쪽에 있는 녀석이 왜 나를 따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지, 궁금증이 생기게 되는데, 아틀랜틱 기사[1]에 이와 관련된 여러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거울을 보고 자신을 자각하는 테스트는 Gordon G. Gallup이라는 심리학자가 1970년에 침팬지를 대상으로 개발[3]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스스로 볼 수 없는 얼굴의 위치에 표식을 해 놓고 거울로 발견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주로 쓰이는 듯.

종별로 항상 일정하게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은 아니고 침팬치와 같은 영장류도 테스트에 실패할 때가 있는 듯 하다. 개, 판다, 바다사자와 같은 동물은 실패하고, 가오리(manta rays)와 같은 생물은 행동을 해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새도 통과를 못하지만, 새 중에서 뇌가 비교적 큰 편이라는 유럽 까치(european magpie)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깃털에 달린 노란 점을 떼려고 하는 행동을 한다[4]고 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주로 영아에게 시행되는데, 서구권 아기들은 나이가 18개월에서 24개월 정도 되면 대부분 거울 테스트를 통과한다고 한다. 그러나 케냐와 같이 거울이 흔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82명 중에 2명만이 통과했다[5]고 하니, 이 거울 테스트도 신경/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인식능력을 확인한다기 보다는 문화의 영향이라고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6세가 된 케냐 어린이는 거울을 응시할 뿐, 이마에 붙은 표식을 떼지 않았다고 하는데, 본인 생각으로는 거울로 자신임을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이마에 뭔가 붙어 있는 것을 떼려는 행동을 안 하는 것 자체도 어떤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일전에 마셜 맥루한의 저서에서 영화감상도 문명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6]를 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틀랜틱 기사[1]에는 이런 문화적 해석에 기반한 추론도 나온다. 고릴라가 거울 테스트에 실패하지만, 고릴라 사회에서는 직접 눈을 보는 행위는 공격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개도 거울 테스트에 실패하지만 개는 시각정보 보다 후각정보에 더 많이 반응한다. 아시아 코끼리의 2/3도 실패하지만 코끼리는 먼지와 진흙과 같은 물질을 몸에 붙이지, 일부러 떼지는 않는다. Clark’s nutcracker라는 새는 거울 테스트를 실시하면 잠재적 먹이 도둑으로 판단하여 음식을 보관하는 것을 자제하지만, 흐린 거울을 이용하면 오히려 자기라고 더 잘 인식을 하는 모양[7]이다.

결국 거울 테스트가 무엇을 알려주는지에 대한 해석은 신중할 필요가 있고, 일방적인 이분법적 해석은 삼가야 한다는 이야기 같다. 세상 무엇이든 간단한 건 없는 것 같다.

 


2017.3.17
BBC ‘Narcissistic’ bird wins internet fans in Australia 2 hours ago

 


2017.9.2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What Do Dogs See in Mirrors? August 31, 2017

 


[1] 아틀랜틱 What Mirrors Tell Us About Animal Minds 10:16 AM ET
[2] 내 백과사전 동물이 생각하는 법 2015년 12월 23일
[3] Gallup, GG Jr. (1970). “Chimpanzees: Self recognition”. Science. 167 (3914): 86–87. doi:10.1126/science.167.3914.86
[4] Prior, H., Schwarz, A., & Güntürkün, O. (2008). “Mirror-Induced Behavior in the Magpie (Pica pica): Evidence of Self-Recognition”. PLoS Biology, 6(8), e202. http://doi.org/10.1371/journal.pbio.0060202
[5] Tanya Broesch, et al. (2010) “Cultural Variations in Children’s Mirror Self-Recognition”,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Vol 42, Issue 6, pp. 1018 – 1029, doi:10.1177/0022022110381114
[6] http://zariski.egloos.com/2262564
[7] Dawson Clary, Debbie M. Kelly (2016) “Graded Mirror Self-Recognition by Clark’s Nutcrackers”, Scientific Reports 6, Article number: 36459 doi:10.1038/srep36459

신경과학자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지[1]를 읽다보니 화제의 그 논문[2] 이야기가 나와 있다. 역시 이코노미스트지는 훌륭한 과학(?)잡지 인 듯-_-

Mad Scientist님 께서 페이스북에서도 다루었고[3], 과학 만화로 이름을 날리시는 김명호 화백도 다루었고[4], 오늘의 유머에 어느 분이 잘 설명[5]을 하셔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른다면 [3,4,5]에 설명이 엄청 잘 돼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일전에 수잰 코킨의 저서[6]에서 HM의 사례를 자세히 다루는 내용도 있지만, 사람의 뇌의 작동에 대해 거의 정보가 없던 시절에 해마의 명백한 역할을 알려주는 현상을 성공적으로 발견한 이래로 두뇌의 일부가 파손된 사람을 연구하는 방식의 방법론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라마찬드란 선생의 저서[7]에서도 비슷한 관점에서 수를 세는 모듈[8]에 대한 이야기 등등 도 나온다. 그러나 사실 수잰 코킨의 책[6]이나 라마찬드란의 저서[7] 등에서 소개하는 일련의 인지/심리 실험의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연구사례들이 (비록 매우 흥미롭고 놀랍기는 하나)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생명활동의 분자적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연구 방향이 궁극적인 도달지점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인은 이 분야에 전혀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수잰 코킨도 그녀의 저서[6]에서 단기 기억은 신경의 전파로, 장기 기억은 단백질의 형태로 각각 다르게 저장되는 매커니즘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혹시 기존 분자생물학과의 접점은 거기까지가 거의 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라면 죄송-_-

물론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당연히 뇌와 전혀 다르므로 이와 같은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반론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의 견해로는, 내부를 마음대로 뜯어 볼 수 없는 블랙박스를 연구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기존의 모든 데이터와 연구방법이 동등한 무게를 가지지 않으며, 더 심사숙고해야 하는 부분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부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오바마 씨가 BRAIN Initiative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옛날에 들었고, 유럽연합에서도 Human Brain Project를 추진하는 모양이던데, 본인은 문외한이라 두 거대 프로젝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구의 방법론과 방향성에 대해 고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7.1.26
연합뉴스 뇌 연구법에 근본적 결함?…뇌과학·인공지능 학계에 파문 2017/01/13 04:00

 


[1] 이코노미스트 Testing the methods of neuroscience on computer chips suggests they are wanting Jan 21st 2017
[2] Jonas E, Kording KP (2017) “Could a Neuroscientist Understand a Microprocessor?” PLOS Computational Biology 13(1): e1005268. doi:10.1371/journal.pcbi.1005268
[3] https://www.facebook.com/madscietistwordpress/posts/634524346694987
[4] 만화가의 과학뉴스- 뇌신경학자는 동킹콩을 이해할 수 있을까 by self_fish
[5] 현대 신경과학은 과연 동키콩을 이해할 수 있는가 in 오늘의유머
[6] 내 백과사전 [서평]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2015년 10월 19일
[7] 내 백과사전 [서평]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2011년 8월 18일
[8] 내 백과사전 두뇌 속의 수를 세는 모듈 2011년 7월 19일

동물이 생각하는 법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지 크리스마스 특별판에 동물도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에세이[1]가 있어 포스트해 본다. 내용이 상당히 길긴 하지만 읽을 가치가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과거 스키너로 대표되는 행동주의적 관점에서는, 동물은 컴퓨터와 같이 일종의 입출력이 정해진 머신으로 이해를 할 수 있고, 정해진 입력(고통, 종소리 등)에 대한 정해진 출력(비명, 침흘림 등)이 발생하는 장치라고 본다면, 동물의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물 행동에 대한 관찰이 역사적으로 누적되면서 이와는 다른 견해가 나오게 된다. 동물 행동 관찰은 여러모로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실험실에서는 변수의 통제가 쉽지만 자연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의 행동을 유도함으로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고, 야생 관찰에서는 일화적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간접적 증거가 누적되고 있는데, 이코노미스트지의 이 에세이[1]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전에 크리스틴 케닐리의 저서[2]에서 소개된 개의 추론에 관한 사례[3]도 나온다. 이 사례는 비록 비언어적과정을 통한 듯 하지만, 언어 없이 추론이라는 정신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인상에 남는다. 또 본 블로그에서 소개한 원숭이도 불평등을 거부한다는 사례[4]도 소개하고 있다.

에세이[1]에 등장하는 사례 중 본인이 처음 듣는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해본다.

1. Billie라는 야생 돌고래는 치료를 위해 남호주 아쿠아리움에서 보호를 받았는데, 이 때 서커스 훈련을 받은 다른 돌고래들과 같이 지냈다고 한다. Billie는 어떤 훈련도 받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야생에 풀어줄 때는 tailwalking을 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tailwalking을 검색[5]하면 어떤 행동인지 볼 수 있는데, 돌고래가 물 밖으로 튀어나가면서 아주 잠깐 꼬리를 발처럼해서 뒤로 걷는 듯한 행동을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Billie가 합류한 야생 돌고래 떼의 무리 중 다섯 마리가 이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행동은 자연에서 돌고래의 생존과 아무 상관이 없는 행동이므로 단지 재미로 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외에 다른 설명을 하기 어렵다.

2. 197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소재한 Port Elizabeth Oceanarium의 수중 탱크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Dolly라는 돌고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담배를 피고있는 모습을 본 Dolly가 자기 어머니 돌고래에게 달려가 젖을 빤 다음에 입으로 우유를 뿜으며 담배연기 뿜는 것을 흉내내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헐!

3. 수컷 흑고래는 수십 킬로미터에 다다르는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는 여덟 개 정도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각 파트는 2개에서 20개 정도의 휘파람이나 신음소리,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포함한다. Ellen Garland와 Michael Noad는 남태평양 흑고래의 노래의 유행이 수천킬로미터에 걸쳐 동쪽으로 이동진전함을 발견했다[6]고 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환경적 또는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연구자는 흑고래 문화의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4. Alex라는 앵무새는 6까지 셀 수 있고, 간단한 어휘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banana와 cherry라는 친숙한 단어를 아는 상태에서 사과를 보여줬더니 스스로 bannery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7]

5. 남 브라질에 소재한 Laguna에서는 수 세대에 걸쳐 돌고래와 어부들의 협력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에세이[1]의 맨 마지막에 실제로 조업을 하는 어부들의 영상이 있으니 함 보시라. 어부들은 해안에 몇 시간 동안 낭창하게 서 있으면, 돌고래가 멀리 있는 물고기 떼를 어부쪽으로 몰아준 뒤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영상[1]을 보니 단 한 번의 그물질로도 상당한 고기가 잡히는 듯. 이 작업은 인간이든 돌고래든 양쪽 종의 세대를 걸쳐서 기술이 전수되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인 모양인데, 종간 협력이 무척 인상적이다.

예전에 본 동영상 중에 오리가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동영상[8]이랑 개가 새랑 장난치면서 노는 장면[9]이 생각나는데, 생존본능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장면을 보고 동물에게 감정이 없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동물이 어떤 형태로 생각을 전개하는지는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뭐 같은 사람 마음도 헤아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동물이야!

 


[1] 이코노미스트 Animals think, therefore…
[2] 내 백과사전 [서평] 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2013년 4월 28일
[3] 내 백과사전 개의 추론 능력 2013년 4월 21일
[4] 내 백과사전 원숭이도 불평등을 거부한다 2012년 8월 24일
[5]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tailwalking
[6] Garland EC, Gedamke J, Rekdahl ML, Noad MJ, Garrigue C, Gales N (2013) Humpback Whale Song on the Southern Ocean Feeding Grounds: Implications for Cultural Transmission. PLoS ONE 8(11): e79422. doi:10.1371/journal.pone.0079422
[7] Wise, Steven M. (2002). Drawing the Line. Cambridge, MA: Perseus Books. p. 107. ISBN 0-7382-0340-8.
[8] https://www.youtube.com/watch?v=xPxDw7ajfGE
[9] https://www.youtube.com/watch?v=QNSjbcqfW3I

[서평]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10점
수잰 코킨 지음, 이민아 옮김/알마

신경과학에서 H.M.의 사례는 너무 유명해서 나같은 신경과학의 문외한조차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이다. 1953년, 그는 심각한 간질 발작의 치료를 위해 당시에는 실험적 수술이었던 해마절제술을 받았고, 그로 인해 장기 기억능력을 잃게 된다.

사람의 기억은 신경회로의 전달형태로 수 초에서 수 분간 지속되는 단기 기억과, 이를 단백질로 변환하는 장기 기억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는 이 후자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기억이 수 분간밖에 지속되지 않으므로 책의 제목에서와 같은 ‘어제가 없는 남자’가 되는 것이다. 해마는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일 뿐만 아니라 장기기억의 정보를 꺼내는 데도 관여를 하는데, 일화기억(개인이 경험한 과거의 사건)과 의미기억이(개인과 무관한 사실) 다른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해마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관여한다는 사실(p349)도 처음 알았다. 기억이라는 정보가 저장되는 과정을 더 연구해 밝혀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를 통해 지난 50년간 기억 저장 매커니즘과 기억 연구와 관련해서 신경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그를 수 십년간 지켜보고 때로는 익명성으로 보호해주던 연구자 Suzanne Corkin씨가 2008년 H.M.이 사망할 때까지의 환자의 일생과 그로 인해 진보한 뇌과학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전반적으로 기억과 인지 매커니즘의 연구 방법이나 기존 이론 등을 소개하는 내용과, H.M.의 생활이나 인생사에 대한 내용이 섞여있다. 분량상으로는 반반정도일까. 이전에 읽었던 신경심리에 관한 책 중에서 올리버 색스의 저서[1]가 생각이 나는데, 환자를 학술적 대상으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의 정신적 교감을 바탕으로 수필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술적 저서보다는 대중서에 더 가깝다. 본 블로그에서 장소법 기억술에 대한 책의 내용을 인용[2]한 부분이 있으니 독서여부에 참고바란다.

일전에 페렐만의 사례[3]에서도 들은 바 있지만, 어떤 사람이 갑자기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면 무례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방면으로 사생활 침해를 받는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익명성을 끝까지 보호해준 수잰씨의 연구 윤리가 인상적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H.M.이 사망한 후 그의 뇌를 보존하는 과정과 향후 신경과학에서 연구해야 할 방향, 그리고 H.M.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지식에 대해 설명하는 글로 마무리 된다. 책의 분량은 꽤 많지만, 40년 넘게 지속된 연구의 기록으로서 시간을 내어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2016.8.6
한국일보 ‘기억’을 잃은 남자를 사랑한 과학자 2016.08.06 04:51

 


2016.8.13
와이어드 Why Patient HM’s Mysteries Are Still Locked in His Brain 08.12.16 9:00 AM

 


[1] 내 백과사전 [서평]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12년 5월 18일
[2] 내 백과사전 장소법 Method of loci 기억술 2015년 9월 1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세상이 가둔 천재 페렐만 2012년 9월 14일

장소법 Method of loci 기억술

수잰 코킨 저/이민아 역,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알마, 2014

p199-203

정교한 암송이 기억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역사 속에는 심상을 만들고 그 심상을 나중에 필요한 시점에 꺼내 쓸 수 있도록 배치하여 정보를 기억하는 복잡한 기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넘친다.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학자인 마테오 리치는 1596년 중국에서 활동하면서《기억술에 관한 논문Treatise on Mnemonic Arts》이라는 짧은 책을 쓰는데, 리치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공부해야 하는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준 암기법을 기술한 논문이다. 리치의 기법은 심상에 ‘기억의 궁전’을 구축하는 중세 유럽의 기억술을 토대로 삼았다. 기억의 궁전은 중앙에 피로연장이 있고 그 주위로 많은 방이 둘러싼 구조의 웅장한 건축물인데, 방마다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생생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곳곳에 배치한다. 정서적 내용이 담긴 이미지가 무감정한 이미지보다 기억에 더 깊이 남는 까닭에, 이 방법은 기억해야 할 정보와 방 안에 배치 된 이미지를 강렬하게 혹은 감정적으로 결합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명한 연합이 형성된다. 리치의 기억술을 현대적인 용어로 장소법method of loci이라고 부른다. 친숙한 길을 눈에 그리면서 그 길을 따라 표지물을 배치하고 그 각각의 지점에 기억해야 할 항목들을 갖다 놓는 방법이다.10

기억의 궁전을 세워보자. 우선 친숙한 장소를 하나 고른다. 사무용 건물이나 집 근처의 상점 혹은 자기 집도 좋다. 예를 들어 결혼 피로연 때 신부에게 할 축사를 암기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거기에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 시합 이야기, 중학교 때 체육시간, 고등학교 때 프랑스로 수학여행 간 이야기, 대학시절에 개를 키우게 된 일, 그리고 신랑과 만난 사연 등 구체적인 추억담이 들어갈 것이다. 기억의 궁전으로는 동네 슈퍼마켓을 선택해보자. 인사말에 들어갈 일화의 단서를 식품코너에 차례대로 끼워넣는다. 눈에 확 띄는 힌트를 슈퍼마켓 문에 붙인 뒤 과일코너, 채소코너, 정육코너, 냉동식품코너 순으로 힌트를 붙인다. 입구에는 유리문 대신 거대한 축구공이 놓여 있는이미지를 상상한다. 거기에는 일곱 살 시절의 신부와 신부의 소꿉친구가 축구복 차림으로 두 손을 꼭 잡고 축구공 위에 앉아 있다. 과일코너가 나오면 신부가 속한 체조팀이 수박 위에서 물구나무 선 이미지를 떠올리고, 채소코너에서는 아스파라거스 순 끄트머리를 차지한 에펠탑을 떠올린다. 정육코너에서는 진열장 안에 실물 크기의 시베리안허스키가 다섯 근짜리 스테이크용 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이미지를, 냉동식품코너에서는 냉동칸 안에 신랑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거대한 냉동 양파튀김 자루를 들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러한 이미지를 구성하여 뇌리에 각인한 다음에는, 심상을 통해 슈퍼마켓을 한 바퀴 돌면서 마음의 눈으로 기억 이미지들을 훑는다. 이제 축사를 시작하면 이 ‘기억의 슈퍼마켓’에 저장해놓은 추억과 일화를 특정 순서에 따라 인출해 쓰면 된다. 이 기억술은 연령에 상관없이 기억력 강화에 효과적이다.

기억력 대회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이 이 장소법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대학교는 매년 파이의 날(3월 14일)에 원주율 외우기 대회를 개최한다. 2009년에 여러 대학 연구자들이 모인 연구팀이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어마어마한 자리수까지 암기하는 능력을 지원하는 뇌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서 fMRI 분석 실험을 시도했다. 이 실험 참가자는 MRI 스캐너 안에 누워서 어떤 행동 과제를 수행한다. 특정 뇌 영역이 활성화되면 그 영역의 산소 소비량이 증가한다. 뇌는 이렇게 산소 사용량이 증가한 지점을 포착하면 혈류를 높여 산소를 공급하라는 명령을 보낸다. 혈액에 산소 공급이 증가하면 혈액에 함유된 분자의 자성도 변한다. 따라서 지구 자력의 수천 배에 달하며 가까이 가져갔다가는 신용카드를 망가뜨릴 강력한 자석을 이용하여 자기장에 변화가 일어난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이 방법으로 특정 기능에 어떤 뇌회로가 이용되는지를 찾아내 뇌 활동 지도를 구성할 수 있다.

이 2009년 연구진은 fMRI로 한 22세의 공학도가 원주율의 첫 540자리를 암기하는 동안 이뤄지는 뇌 활동을 기록했다. 학생은 장소법을 이용하여 원주율을 암기했는데, 암기 과정에서 촬영한 fMRI은 인출처리 기능이 전전두엽피질 내 특정 영역의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영역은 작업기억과 집중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즉 이 학생이 원주율을 능숙하게 암기하여 술술외는 데는 인지제어 체계가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시사한다.11

어떻게 사람들이 애초에 그렇게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그 공학도에게 무작위 나열 숫자 100개를 암기하도록 하고 그 과정을 fMRI로 촬영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그 학생은 장소법을 약간 변용한 자기만의 기억술로 6분 스캔 3회 만에 100개 숫자 전체를 정확한 순서대로 다 외웠다. fMRI 이미지는 부호화 초기에 시각 처리, 감정 관련 학습, 운동계획(motor planning, 뇌가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익숙하지 않은 일련의 행동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능력 – 옮긴이), 업무계획task schedule 그리고 작업기억에 특화된 피질 영역이 원주율 인출 때보다 더 많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과제 수행에는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여러 영역이 선택적으로 활성화되었다. 그 학생은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활용해야 했는데, 거기에는 뇌 뒤쪽의 시각 처리 기능과 뇌 앞쪽의 인지제어 기능이 포함된다.

그 학생은 자신의 장소법을 소개했는데, 기억의 궁전을 주로 색깔, 감정, 유머, 속된 표현, 성적 표현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감정적이고 끔찍한 장면일수록 기억하기 쉽더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그 학생이 시종 고도로 감정적인 이미지를 시용하는 것이 남다른 뇌 구조(변연계의 일부인 대상회)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학생은 숫자군 암기에는 탁월했지만, 지능이나 기억력이 비상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매우 효과적인 인지제어 회로가 발달하면서 정보 보유력이 높아진 것이었다. 한 심리학자의 말마따나 “비범한 암기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억력은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계발할 수 있다. 이름, 숫자, 단어, 그림 등을 암기할 때는, 그 항목을 처음 접하는 시점에 뇌의 활동이 최적의 상태일 경우 훨씬 기억하기 쉽다.12

 


10. J. D. Spence, The Memory Palace of Matteo Ricci (London ; Quercus, 1978).
11. A. Raz et al., “A Slice of Pi: An Exploratory Neuroimaging Study of Digit Encoding and Retrieval in a Superior Memorist,” Neurocase 15 (2009): 361~72.
12. Raz, “A Slice of Pi”; K. A. Ericsson, “Exceptional Memorizers: Made, Not Born,” Trends in Cognitive Science 7 (2003) : 2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