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벽화에서 나타나는 고대인의 자폐증?

popular archaeology 기사[1]를 보니 흥미로운 논문[2]이 소개되어 있다. 고고학과 미술과 정신의학에 모두 관심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흥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구만. ㅋㅋㅋㅋ

3만년 전후의 기간에 유럽 동굴벽화에는 갑작스러운 사실주의의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사진을 자주보는 현대인에게는 사실주의 화풍에 별다른 감흥이 없을 듯 하지만, 고대인에게는 꽤나 임팩트가 있는 그림일 것이라 생각한다. 일전에 Raphaella Spence의 작품[3]이나 Pedro Campos의 작품[4]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 현대인이 이런 작품을 보며 드는 느낌이 고대인이 사실주의 작품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ㅋㅋㅋ

여하간 3만년 전후의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 이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모양인데, 이것을 고대인의 자폐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는 모양이다. 일전에 올리버 색스 선생의 저서를 인용한 적[5]이 있었는데, 말미에 잠시 나디아 이야기가 나온다. 나디아는 서번트 신드롬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사례인데, 나디아가 5살에 그렸다는 그림과, 일반적으로 5세 어린이가 그린 그림과의 비교가 논문[2;p271]에 들어 있다.

서번트 신드롬은 분류에 따라서 고기능 자폐,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도 부르는데, 각각의 차이는 나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학술적인 논쟁이 좀 있는 듯… 여하간 이런 종류의 자폐아는 일전에 어느 자폐아가 쓴 시[6]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정분야에서 조숙하고, 디테일을 무척 신경쓰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여하간 논문[2]의 저자는 동굴벽화의 이런 화풍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자폐로 보는 듯 한데, 술먹고 읽어서 그런지 논거의 핵심이 잘 이해는 안 되네-_- 여하간 나디아의 사례를 꺼내는 건 좀 에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디아는 자주 언급되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구만.

추가로, 고대 증거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증거의 손실 때문에 실제로 갑작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고생물학의 유명한 경구를 여기서 들자면,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 실제로는 서서히 일어난 변화가 갑작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ㅎㅎ

몰랐는데, 검색해보니 나디아는 지난 2015년에 4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7]고 한다. 자폐증의 몰이해의 시기에 태어나 고생한 걸 생각하면 마음이 좀 짠하다.

 


[1] popular archaeology How our ancestors with autistic traits led a revolution in Ice Age art Tue, May 15, 2018
[2] Penny Spikins, Callum Scott, Barry Wright, “How Do We Explain ‛Autistic Traits’ in European Upper Palaeolithic Art?”, Open Archaeology, Volume 4, Issue 1, Published Online: 2018-05-12 DOI: https://doi.org/10.1515/opar-2018-0016
[3] 내 백과사전 Raphaella Spence의 작품 2014년 3월 5일
[4] 내 백과사전 Pedro Campos의 작품 2012년 5월 21일
[5] 내 백과사전 숫자가 보이는 사람 2012년 5월 17일
[6] 내 백과사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10살 어린이의 시 2016년 4월 17일
[7] the guardian Nadia Chomyn obituary Wed 9 Dec 2015 12.57 GMT

[서평] 그녀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장 루이 쿠르조(저자) | 김옥진(역자) | 스크린셀러 | 2011-06-27 | 원제 Je ne pouvais pas l’abandonner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1]의 범인인 베로니크씨의 남편인 쿠르조가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정신질환의 한 종류인 ‘임신거부증‘에 대해 알리고자 쓴 책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일견 불합리해 보였던 행동들(사건 직후 프랑스로 출국했다든지, 출산을 하고도 임신 사실을 몰랐다든지)에 대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능하다.

임신거부증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임신 사실을 거부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임신 20주차까지 임신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미한 경우 부터, 출산 후에야 비로소 임신 사실을 깨닫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 출산을 하고도 임신임을 인지하지 못하여 영아유기를 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데, 베로니크 씨의 경우도 아마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에 읽은 BBC 기사 중에서 칠레 여자 역도 선수가 임신 사실도 모르고 베이징 올림픽 훈련 도중에 출산을 했다는 기사[2]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런 건가 싶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정신질환인가, 아니면 그냥 사람의 성향을 과도하게 따지는 건가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의문의 여지는 있다. 다만 이것이 정도를 넘어 영아유기로 이어질 경우 문제가 된다.

상식적으로 아기를 보고도 출산임을 인지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 싶긴한데,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정신질환은 라마찬드란 선생의 저서[3]나 올리버 색스 선생의 저서[4]에 여러 사례가 나온다. 이걸 보면 생각이 바뀔 지도? ㅋ

임신거부증이 있는 여성들이 시간 개념에 약하다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이 부분은 별도 포스트[5]를 했다.

여하간 최초에 부인이 범인으로 지목당했을 때, 남편인 쿠르조씨가 국과수의 DNA 감식 결과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는데, 최초에 그는 자신의 부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완벽히 전혀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그의 이런 반응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긴 한다. 그러나 일전에 읽은 정희선 선생의 저서[6]를 읽어보니, 이 사건 당시에 이러한 국과수에 대한 능력의심에 대단히 섭섭했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ㅎㅎ

그 밖에 저자의 동네 사람들이 스토킹하는 기자를 쫓아내 준다든지 하는 이웃사람들의 소소한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 같으면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웃사람들에게 배척당할 듯 한데, 약간의 문화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를 활용하여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베로니크 부인이 형무소에서 외출하여 취직 면접을 보고 다시 형무소로 복귀한 경험담도 나온다. 물론 모범수라서 가능했겠지만, 프랑스 재활 시스템을 보니 국내 재활 시스템에 대해서도 꽤 궁금해진다.

저자는 자신의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저자의 구구절절한 감정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저자는 다른 여자와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어,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라 생각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되어 있는데, 본인은 중고로 매입하였다. 절판이라 좀 아쉽구만. 절판 걱정이 없는 ebook이 빨랑 확산돼야 한다. 진짜로. ㅋ

 


[1]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나무위키)
[2] bbc Chile weightlifter has unexpected baby during training 23:52 GMT, Tuesday, 15 December 2009
[3] 내 백과사전 [서평]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2011년 8월 18일
[4] 내 백과사전 [서평]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12년 5월 18일
[5] 내 백과사전 임신거부증 Denial of pregnancy 2018년 5월 3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는 사람들 – 정희선 전 국과수 원장이 말하는 한국의 과학수사 현장 2018년 4월 1일

임신거부증 Denial of pregnancy

장 루이 쿠르조 저/김옥진 역, “그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스크린셀러, 2011

p184-187

스트라스부르 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이스라엘 니장 교수는 프랑스의 임신거부증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베로니크 측 변호사들이 소환한 전문가였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발표를 준비했고, 열정에 찬 따뜻한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배심원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니장 교수의 발표에 인용된 사례를 살펴보았다 “저는 3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이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임신거부증은 심각한 병이지만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의료계에서조차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조차 임신거부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제가 이 병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클리닉에 원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방사선실에서 불러서 가 봤더니 젊은 여자가 아기를 낳고 있더군요. 의대 6년차로 4개월 전부터 외과에서 근무하던 인턴이었는데 종양이 생긴 줄 알았던 제 동료 의사가 수술을 하려던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출산을 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임신거부증에 대해 몰랐습니다. 이 젊은 여인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관계를 가졌는데, 그녀의 교육 수준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니장 교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는 중증과 경증 임신거부증 환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한 연구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0명 중 1명꼴로 임신거부증을 경험한다고 하니 이것도 하나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저는 연평균 30여 건의 임신거부증 사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에는 인체의 발열과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원인이 존재합니다. 적어도 150가지 이상의 원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인간에게 있어 임신은 정신적, 신체적 현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임신 과정에서 정신적 현상이 빠졌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임신거부증에 걸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일부 임상 사례에서 관찰된 바에 의하면 이 여성들은 어느 날 문득 임신에 대해 생각했다가는 다음날이면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심리상담사의 도움으로 출산 전에 임신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산부인과에도 임신거부증을 인정하지 않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임신 은폐’와 ‘임신거부증’ 을 혼동하는 것이지요. 두 가지 증상은 엄연히 다른데도 말입니다. 임신거부증에 걸린 여성은 임신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거나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이에 대해 말하는 순간부터 존재감을 주는 것이니까요. 엄마가 사랑 혹은 혐오의 말을 해줄 때 비로소 아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태아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면 임신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지난주에는 의료계에 종사하는 한 여학생의 아버지가 딸이 일하는 모습을 보다가 발목이 부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몰랐지만 아버지는 딸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결국 임신 8개월로 밝혀졌습니다

임신거부증에 걸린 여성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내게 임신했다고 말해주고 나서 몇 시간 만에 제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자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배가 갑자기 불러왔어요.’ 일반적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궁은 복부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늘어 납니다 그러나 임신을 인정하지 않는 여성들의 경우 자궁은 앞이 아니라 복부 내장 기관의 사이에 길게 자리 잡게 됩니다. ‘거부증’에 걸린 여성들 중에는 성생활이나 임신에 있어서 공백, 은폐, 조절과 예상이 불가능한 상태, 즉 일종의 지각 마비와 시야암점증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생활이나 임신, 출산을 하기위한 극히 정상적인 조건은 갖추고 있으나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었습니다. 저는 이런 여성들의 외모가 여성스럽지 않다는 점에 매우 놀랐습니다. 이 여성들은 자신의 성생활이나 그 즐거움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기도 합니다.

또한 시간 개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알베르빌에서 일어났던 영아살해 사건의 피고인은 제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사님, 제발 저한테 날짜를 물어보지 마세요. 저는 날짜를 기억 못해요. 시간 개념이 없어서 약속을 잡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지도 못해요. 그런 부분에서 정확하지가 못하다고요.’

저는 여기에 관심을 갖는 의료인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임신거부증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베로니크 쿠르조 씨의 경우 이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임신거부증을 앓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병은 발생 빈도도 높고 위험하지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의료계, 법조계, 시민 사회 모두 임신 거부증의 결과와 심각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기를 부엌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한 것과 관련해서는 임신거부증 환자 가운데 그런 경우를 여럿 보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대체 이유가 뭘까요? 10년 후에도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옆에 보관하려고 얼렸어요’ 혹은 ‘나중에 벌을 받으려고 얼렸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쿠르조 부인의 경우에도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왜 그런 식으로 했는지 대답할 수 있으려면 많은 시간과 꾸준한 상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후략)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1]에 대해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재판에서 이스라엘 니장 교수의 증언이라고 함. 중간에 언급한 오스트리아의 연구는 찾지 못했지만 비슷한 결과가 있는 연구[2]는 찾을 수 있다. 이 연구[2]는 임신 20주차가 될 때까지도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를 임신거부증으로 분류할 때, 독일 내에서 475건 중 1건의 빈도로 임신거부증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시간 개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책의 뒤쪽에 피고인 베로니크씨와 그녀의 가족들도 시간개념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전에 계산장애를 가진 사람이 손가락 인식장애를 겪는다는 이야기[3]도 한 적 있는데, 서로 달라 보이는 두뇌의 기능들이 어떤 식으로 가깝게 연관되어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1]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나무위키)
[2] Jens Wessel, Jan Endrikat & Ulrich Buscher. “Frequency of denial of pregnancy: results and epidemiological significance of a 1-year prospective study in Berlin.” Acta Obstetricia et Gynecologica Scandinavica. Volume 81, 2002 – Issue 11. Pages 1021-1027 DOI: 10.1080/j.1600-0412.2002.811105.x
[3] 내 백과사전 두뇌 속의 수를 세는 모듈 2011년 7월 19일

프리프린트 공유 사이트

수학, 물리학, 천문학, 컴퓨터 공학 분야의 출판전 논문을 공유하는 arXiv[1]는 유명한데, 오늘 페북의 고생물학 그룹을 보니 고생물학분야에서도 출판전 논문을 공유하는 PaleoXiv라는 사이트[2]가 생긴 듯 하다. 오호! 아직 총 논문이 74편 밖에 안 되니 신생 사이트인 듯. ㅋㅋ

얼마전에 신경정신 과학의 출판전 논문을 공유하는 PsyArXiv라는 사이트[3]를 본 적이 있었는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사회과학의 출판전 논문을 공유하는 SocArxiv[4]도 있네??? 헐… 첨 알았음. 근데 사회과학쪽은 프리프린트 오픈억세스로 SSRN[5]이 있어서 어떨지 모르겠다. ㅋ 생물학 쪽의 bioRxiv[6]는 꽤 오래 전에 본 기억이 있다. 이쪽은 숫자가 꽤 많이 증가한 듯 하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viXra라는 사이트도 있는 듯 하다. 메인페이지[7] 하단의 자신들의 소개에 따르면, 코넬 대학교의 운영방침에 반하여 arXiv에 싣지 못하는 논문에 대한 대안으로 만든 사이트라고 한다. 뭔 일이 있었던 건가-_-? viXra는 arXiv를 거꾸로 한 것인데, 마치 DivX에 반발하여 만든 Xvid를 연상케 한다. ㅎㅎ

생각이 나서 오랫만에 snarXiv[8] 사이트에 가 봤는데, 아직도 운영되는 듯? ㅋㅋㅋ

 


[1] https://arxiv.org/
[2] https://paleorxiv.org/
[3] https://psyarxiv.com/
[4] https://osf.io/preprints/socarxiv
[5] https://www.ssrn.com/
[6] https://www.biorxiv.org/
[7] http://vixra.org/
[8] 내 백과사전 snarXiv 2010년 6월 9일

[서평]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10점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세종서적

일전에 이코노미스트지의 동물의 생각에 관한 에세이 이야기[1]를 했는데, 이 에세이가 해커뉴스[2]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댓글 중에 누가 프란스 드 발 선생의 이 저서를 추천하는 이가 있길래, 혹시나 번역된 게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바로 나왔다. ㅎㅎㅎ

영장류학자인 Frans de Waal 선생의 이름은 일전에 원숭이 불평등 실험 이야기[3]를 할 때 처음 들었는데, 국내에 그의 번역서가 꽤 많다. 그가 소개하는 연구 내용이 대중적으로 상당히 흥미를 자아내서 그런 것 같다.

행동주의는 동물의 사고나 인지의 개념을 철저히 부정하고, 동물을 보상/처벌에 따른 입출력 머신으로 취급하는 학술적 경향인데, 심지어 인간의 행동과 학습조차 이런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시도된 적이 있다. 이를 언어학적 논리로 격파한 사람이 촘스키인데, 이에 관해서는 과거의 포스팅[4]을 참고하기 바란다.

동물연구에서 행동주의가 대단히 지배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에 과거 de Waal 선생이 꽤나 고생하신 것 같은데, 책 안에서도 그가 학술적 경력 단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를 출판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물의 인지, 나아가 심리까지를 인정한 여러 초기 학자들은 상당히 강력한 비난과 반발을 받아 왔던 것 같다.

정신적 능력에 있어, 인간 이외의 동물과 인간사이에는 넘사벽-_-의 불연속적 간극이 있다고 가정하는 개념을 현재에도 대단히 많이 볼 수 있는데, 본인도 일전에 페이스북의 언어학 그룹에서 동물은 언어를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활동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그러한 불연속성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과거 동물의 지능을 낮다고 평가했던 실험들의 문제점과 새롭게 행한 실험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번역서의 부제이자 원제인 Are We Smart Enough to Know How Smart Animals Are? 가 정확히 책의 주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 / 인간만이 언어를 구사한다 / 인간만이 시간과 미래를 인지하여 대비하는 행동을 한다 / 인간만이 메타인지(예를 들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를 할 수 있다’ 등등등의 주장에 대해 차례로 반박을 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일전에 마술트릭을 개에게 보여주는 영상을 포스팅[5] 했는데, 이런 영상만 봐도 동물에게 인지적 판단이 없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지금이야 동물의 행동을 촬영한 영상을 매우 쉽게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학자들조차 그러한 영상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구나 그런 독특한 장면들은 일화적 증거로서 과학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학계에서 행동주의와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론이 만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과도한 의인화나 감정이입은 학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동물의 행동분석에 주의를 해야하는 것은 분명히 맞다. 일전에 읽은 ‘과학수사견과 체취선별'[6]에서도 개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 있어 조심하는 내용이 있다. 거울 자각 테스트[7]도 그런 과정에서 봐야 할 것 같다.

본 블로그에 책의 몇몇 부분을 인용[8,9,10]해 두었으므로 독서 여부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은 ebook으로 읽었으므로 인용할 때 종이페이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1] 내 백과사전 동물이 생각하는 법 2015년 12월 23일
[2]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15105180
[3] 내 백과사전 원숭이도 불평등을 거부한다 2012년 8월 24일
[4] 내 백과사전 촘스키가 일으킨 혁명 2013년 4월 20일
[5] 내 백과사전 개에게 마술 보여주기 2017년 4월 9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과학수사견과 체취선별 – 개와 핸들러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 2017년 11월 5일
[7] 내 백과사전 여러 동물의 거울 자각 테스트 2017년 2월 14일
[8] 내 백과사전 음식을 보상으로 주는 동물 실험과 행동주의의 문제점 2017년 10월 12일
[9] 내 백과사전 인간 중심적 인지 연구의 문제점 2017년 10월 21일
[10] 내 백과사전 돌고래의 이름 2017년 11월 11일

돌고래의 이름

프란스 드 발 저/이충호 역,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세종서적, 2017

꺾은 괄호안은 이해를 돕기위한 본인의 삽입임. 강조는 원문을 따름.

이러한 신원 확인을 통해 앤[Ann Weaver]은 일부 수컷들이 동맹을 이루어 항상 함께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일치된 동작으로 헤엄을 치며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서로 가까이 붙어 다니지 않을 때도 아주 드물게 있는데, 이때는 어떤 기회를 감지한 경쟁자와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암컷과 5~6세 이전의 새끼들도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닌다. 그 외에는 돌고래 사회는 분열-융합[fission-fusion] 사회인데, 돌고래들이 일시적인 조합을 이루어 모이며, 이 조합은 시간에 따라 그리고 날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물 밖으로 나오는 신체의 작은 일부를 봄으로써 누가 근처에 있는지 아는 것은 돌고래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과 비교하면 다소 번거로운 기술이다.

돌고래들은 서로가 내는 소리를 안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닌데, 우리 역시 많은 동물들이 그러듯이 서로의 목소리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발성 기관(입, 혀, 성대, 폐활량)의 형태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소리의 높이와 크기와 음색으로 각자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 모퉁이 저편에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직접 보지 않아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돌고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돌고래는 각자 고유한 억양을 지닌 고주파음인 ‘서명 휘파람signature whistle‘ 소리를 낸다. 이 고주파음은 전화벨 소리의 멜로디가 변하듯이 변한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멜로디이다. 어린 돌고래는 첫 해에 자신만의 휘파람 소리가 발달한다. 암컷은 동일한 멜로디를 평생동안 유지하는 반면, 수컷은 가까운 친구들의 멜로디에 맞추어 이를 조절하는데, 그래서 동일한 수컷 동맹에 속한 수컷들이 내는 소리는 서로 비슷하게 들린다.48 돌고래는 특히 고립되었을 때 서명 휘파람 소리를 내지만(포획되어 외롭게 살아가는 돌고래는 항상 서명 휘파람 소리를 낸다), 바다에서 큰 무리로 모이기 전에도 낸다. 그런 순간에는 정체성을 자주 그리고 널리 방송하는데, 어두컴컴한 물속에서 분열-융합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종에게는 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휘파람 소리가 개인 식별에 사용된다는 사실은 이 소리를 수중 스피커를 통해 다시 들려줌으로써 입증되었다. 돌고래는 남보다는 가까운 친족의 소리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이것이 단지 목소리 인식이 아니라 소리의 특정 멜로디를 바탕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은 컴퓨터로 그 멜로디를 흉내 내 만든 소리(멜로디만 보존하고 목소리를 없앤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입증되었다. 이 합성 소리는 원래의 소리와 동일한 반응을 이끌어냈다.49

돌고래는 친구들을 놀랍도록 잘 기억한다. 미국의 동물행동주의 심리학자 제이슨 브럭은 사육되는 돌고래가 번식 목적을 위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자주 옮겨진다는 사실을 활용했다. 그는 오래전에 떠난 수족관 동료의 서명 휘파람 소리를 다시 들려주었다. 돌고래들은 익숙한 소리에 반응해 활기를 띠고 스피커로 다가와 응답하는 휘파람 소리를 냈다. 브럭은 돌고래가 과거에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건 짧았건, 또 서로 본 지 얼마나 오래되었건, 이전의 수족관 동료를 아무 어려움 없이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서 서로 떨어진 시간이 가장 길었던 사례는 베일리라는 암컷이 20년 전에 다른 곳에서 함께 살았던 암컷 돌고래 앨리의 휘파람 소리를 알아본 것이었다.50

갈수록 점점 전문가들은 서명 휘파람 소리를 이름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소리는 단순히 각자가 직접 만들어내는 식별자가 아니라, 때로는 남이 흉내 내기도 한다. 돌고래의 경우, 특정 동료를 그 동료의 서명 휘파람 소리로 부르는 것은 그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로아[Roah; Konrad Lorenz가 길렀던 까마귀]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해 로렌츠를 불렀지만, 돌고래는 가끔 다른 돌고래의 특징적인 소리를 모방해 상대의 주의를 끈다. 돌고래가 이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은 관찰만으로는 입증하기가 분명히 힘들다. 따라서 이 문제는 또다시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스테파니 킹과 빈센트 재닉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근처의 스코틀랜드 앞바다에서 큰돌고래들을 대상으로 놓아기르는 돌고래들의 서명 휘파람 소리를 녹음했다. 그러고 나서 그 소리를 수중 스피커를 통해 여전히 그 부근에서 헤엄치고 있던, 그 소리를 낸 돌고래들에게 들려주었다. 돌고래들은 자신들의 특징적인 휘파람 소리에 같은 소리로 응답했고, 때로는 여러 차례 응답했는데, 마치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음을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51

동물들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은 큰 아이러니처럼 보이는데, 한때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금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마니시와 그 지지자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조롱을 받았으며, 구달이 자신의 침팬지들에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와 플로 같은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에도 그랬다.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면 실험 대상을 인간화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실험 대상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야 하고, 오직 인간만이 이름을 가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이 문제에서는 일부 동물이 우리보다 앞섰는지도 모른다.

 


48 King, Stephanie, et al. 2013. Vocal copying of individually distinctive signature whistles in bottlenose dolphin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80:20130053.
49 Sayigh, Laela, et al. 1999. Individual recognition in wild bottlenose dolphins: A field test using playback experiments. Animal Behaviour 57:41~50.; Janik, Vincent et al. 2006. Signature whistle contour shape conveys identity information to bottlenose dolphi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103:8293~97.
50 Bruck, Jason. 2013. Decades-long social memory in bottlenose dolphin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80: 20131726.
51 King, Stephani, and Vincent, Janik. 2013. Bottlenose dolphins can use learned vocal labels to address each othe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110: 13216〜21.

인간 중심적 인지 연구의 문제점

프란스 드 발 저/이충호 역,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세종서적, 2017

동물을 단순히 자극-반응 기계로 간주하던 암흑시대에서 벗어난 우리는 동물의 정신적 삶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핀이 쟁취하려고 애썼던 큰 진전이다. 하지만 동물인지가 갈수록 인기를 끄는 주제가 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동물인지는 우리 인간이 가진 인지의 빈약한 대체물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에 자주 접한다. 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동물인지는 정말로 심오하고 놀라운 것일 리가 없다. 많은 학자들은 오랜 경력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할 수 있지만 동물은 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을 열거함으로써 인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한다.57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추측은 만족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처럼 지구에 존재하는 전체 인지 스펙트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시간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연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종이 누구니?”밖에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동물인가?

고대 그리스인의 터무니없는 척도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장소에 인간을 계속 두려고 한 것은 의미론과 정의와 재정의, 그리고 골대를 옮기는 행위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동물에 대한 낮은 기대를 실험으로 번역할 때마다 거울은 우리가 좋아하는 대답을 들려준다. 편향된 비교도 의심을 품어야할 한 가지 근거이지만, 또 한 가지 근거는 증거의 부재를 크게 선전하는 것이다. 내 서랍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몰라서 빛을 보지 못한 부정적 발견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것들은 내 동물들에게 특정 능력이 없음을 시사할 수 있지만, 대개는 특히 자발적 행동이 다른 것을 시사할 경우, 나는 동물들을 최선의 방법으로 테스트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을 만들거나 문제를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제시해 동물들이 그것을 풀 마음조차 생기지 않게 했을지도 모른다. 손의 해부학적 구조를 고려하기 전에 과학자들이 긴팔원숭이의 지능을 낮게 평가한 사실이나 너무 작은 거울에 대한 반응을 바탕으로 코끼리의 거울 자기 인식 능력을 너무 일찍 부정한 사실을 떠올려보라. 부정적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기 때문에 피험자를 의심하기 전에 실험 방법을 의심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책들과 기사들은 진화인지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우리를 나머지 동물들과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의 본질을 찾는 것을 주요 주제로 열린 학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우리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일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이 질문이 관앵무나 흰돌고래를 나머지 동물들과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할 이유가 있는가? 다윈이 임의로 하던 사색 중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개코원숭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존 로크보다 형이상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58라고 말했다. 모든 종은 그 인지가 우리의 인지를 빚어낸 것과 동일한 힘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자 내놓을 만한 심오한 통찰이 있다. 자기 분야의 핵심 문제가 인간의 신체에서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라고 선언한 의학 교과서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우리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일까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이 질문이 약간 흥미로운 것이긴 하지만, 의학 분야에는 심장이나 간, 세포, 신경 시냅스, 호르몬, 유전자 등의 기능과 관련해 훨씬 기본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정말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쥐의 간이나 인간의 간이 아니라 간 자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기관과 과정은 우리 종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수백만 년 이상 진화해오는 동안 종마다 고유한 변경이 일부 일어났다. 진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인지는 달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인지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인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하며, 이 요소들이 어떻게 그 종의 감각계와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온갖 종류의 인지들을 망라하는 단일 이론을 원한다. 이 계획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인간의 독특성을 내세우는 주장들을 일시 중지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주장들의 초라한 실적을 감안하면, 수십 년 동안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릴 때가 되었다. 그러면 더 포괄적인 틀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언젠가 인간의 마음에서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아닌지) 더 잘 보여주는 그림을 허용하는 새 개념들로 무장하고서 우리 종의 특수한 사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57 Jeremy Kagan 2004. The uniquely human in human nature. Daedalus 133:77~88., David Premack, 2007. Human and animal cognition: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104:13861~67
58 Charles Darwin, Notebook M,1838, http://darwin-online.org.uk

음식을 보상으로 주는 동물 실험과 행동주의의 문제점

프란스 드 발 저/이충호 역,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세종서적, 2017

우리는 다른 종들도 정신적 삶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마음이 열려 있을까? 우리는 이를 조사할 만큼 충분히 창조적일까? 우리는 주의와 동기와 인지의 역할을 따로 분리해낼 수 있을까? 이 세 가지는 동물이 하는 모든 일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나쁜 수행 결과는 이 셋 중 어느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위에 나왔던 장난기 많은 두 유인원의 경우, 나는 이들의 나쁜 수행 결과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지루함을 선택했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정말로 알려면 인간의 독창성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존중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만약 강압 상태의 동물을 시험한다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어린이가 어디로 빠져나와야 하는지를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린이를 수영장에 밀어 넣고서 기억력을 테스트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매일 수백 군데의 연구소에서 사용되는 표준 기억력 테스트인 모리스 수중 미로 테스트에서, 쥐는 벽이 높은 수조에서 미친 듯이 헤엄을 치다가 물속에 잠긴 단을 발견하면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다. 계속 이어지는 시행들에서 쥐는 물에서 빨리 나오려면 단의 위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컬럼비아 장애물 방법Columbia obstruction method도 있는데, 여기서 동물들은 다양한 박탈 기간을 거친 뒤에 전기가 흐르는 격자 장애물을 지나가야 한다. 먹이나 짝(혹은 어미 쥐의 경우에는 새끼)을 향해 다가가고 싶은 충동이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의 두려움을 능가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 실험을 한다. 많은 연구실에서는 음식물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동물의 체중을 정상 체중의 85퍼센트 상태로 유지한다. 음식물을 박탈당한 닭이 미로 과제의 세밀한 차이를 알아채는 데 그다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 실험 결과가 나온 ‘너무 배가 고프면 배우는 데 지장이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이 기억나기는 하지만, 배고픔이 동물의 인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데이터는 비참할 정도로 적다.5

공복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가정은 흥미롭다.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보자. 우리는 도시의 배치를 익히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 피아노 연주법을 배우거나 맡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여기서 음식이 어떤 역할을 할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음식 박탈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물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미국의 유명한 영장류학자 해리 할로는 배고픔 감소 모형hunger reduction model을 처음부터 비판했다. 할로는 지능이 높은 동물은 주로 호기심과 자유로운 탐구를 통해 배우는데, 음식물에 편협하게 집착하게 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죽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키너 상자를 조롱했는데, 이 상자가 복잡한 행동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음식물 보상의 효과를 보여주는 데 탁월한 도구라고 여겼다. 할로는 이를 비꼬면서 주옥같은 명언을 덧붙였다.

“나는 심리학 연구 대상으로서 쥐의 가치를 절대로 폄하하지 않는다. 실험자들의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없는 쥐의 문제는 거의 없다.”6

나는 세워진지 약 100년이나 된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초기 시절에 침팬지를 대상으로 음식물 박탈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가 애틀랜타로 옮겨가 생물의학과 행동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주요 연구소가 되기 전에 아직 플로리다 주 오렌지파크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 때 1955년에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는 쥐를 대상으로 한 절차를 모델로 삼아 조작적 조건 형성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이 절차에는 급격한 체중 감소와 침팬지의 이름을 숫자로 바꾸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인원을 쥐처럼 다룬 방법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막대한 긴장을 초래하는 바람에 2년 동안만 계속되다가 중단되었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유인원에게 강요된 금식을 매우 마음 아프게 여겼고, 이 방법만이 유인원에게 ‘삶의 목적’을 줄 수 있다고 즐거운 듯이 주장한 완고한 행동주의자들과 늘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인지(그들은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강화 계획과 일시 중단의 처벌 효과를 연구했다. 연구원들이 밤중에 몰래 유인원에게 먹이를 줌으로써 그들의 계획을 방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행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떠났는데, 훗날 스키너가 표현한 것처럼 “마음이 여린 동료들이 침팬지를 만족스러운 수준의 박탈 상태로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을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마찰이 단지 방법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관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굶김으로써 시무룩하고 성질 나쁜 유인원을 만드는 과정이 불필요했다는 사실은 한 행동주의자가 다른 유인책을 사용한 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141번 침팬지라고 부른 침팬지는 올바른 선택을 할 때마다 실험자의 팔을 쓰다듬을 기회를 보상으로 제공하자,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학습했다.8

행동주의와 동물행동학의 차이는 늘 ‘인간의 통제’ 대 ‘자연적 행동’의 차이였다. 행동주의자들은 동물을 실험자가 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약한 환경에 둠으로써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만약 동물이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잘못된 행동’으로 분류했다. 예를 들면, 너구리는 동전을 상자 속으로 떨어뜨리도록 훈련시키는게 거의 불가능한데, 너구리는 동전들을 꼭 붙들고 미친 듯이 서로 비벼대는 것(이 종에게는 완전히 정상적인 먹이 채집 행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9 하지만 스키너는 이런 선천적 성향을 보는 눈이 없었고, 통제와 지배의 언어를 선호했다. 그는 행동 공학과 조작을 이야기했는데, 단지 동물과 관련해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말년에 그는 인간을 행복하고 생산적이고 ‘최대로 효율적인’ 시민으로 개조하려고 시도했다.10 조작적 조건 형성이 확실하고 소중한 개념이며 강력한 행동 변화 인자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행동주의의 큰 실수는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언한 데 있었다.

 


5 Buckley, L. A., et al. 2011. Too hungry to learn? Hungry broiler breeders fail to learn a y-maze food quantity discrimination task. Animal Welfare 20: 469~81.
6 Harlow, H. F. 1953. Mice, monkeys, men, and motives. Psychological Review 60:23~32. p31
7 Donald Dewsbury 2006. Monkey Farm: A History of the Yerkes Laboratories of Primate Biology, Orange Park, Florida, 1930~1965. Lewisburg, PA: Bucknell University Press. p226
8 Falk, J. L. 1958. The grooming behavior of the chimpanzee as a reinforcer. Journal of the Experimental Analysis of Behavior 1:83~85.
9 Breland, K., and M. Breland. 1961. The misbehavior of organisms. American Psychologist 16:681~84.
10 B. F. Sknner 1969. Contingencies of Reinforcement. New York: Appleton-Century-Crofts. p40

행동주의는 4~50년대 심리학계에서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주도적 개념이었는데, 이에 관한 학계의 분위기는 크리스틴 케닐리의 저서[1]에서도 조금 소개되어 있다. 본 블로그에서 행동주의를 언어학으로 반박한 촘스키의 내용을 인용한 적[2]이 있다. 스키너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조던 엘런버그의 책[3]에도 짧게 소개되어 있다.

 


2017.10.17
아틀랜틱 Skinner Marketing: We’re the Rats, and Facebook Likes Are the Reward JUN 10, 2013

 


[1] 내 백과사전 [서평] 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2013년 4월 28일
[2] 내 백과사전 촘스키가 일으킨 혁명 2013년 4월 20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2016년 8월 13일

재미있는 색 착시

일전에 스기하라의 원기둥 착시 이야기[1]도 했지만, 착시라는게 다 알면서도 속는 거라서 신기방기하다. ㅋㅋ

주변의 색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눈은 색보정을 하게 되는데, 색 관련 착시로 MIT의 심리학자 Edward H. Adelson이 만든 체커 그림자 착시가 가장 유명하다. 아래 그림에서 두 지점 A와 B의 색은 정확히 동일하다.

아이추판다씨가 이에 대해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간략히 설명한 글[2]이 생각나는데, 읽어보면 꽤 유익하다.

뭐 똑같은 현상은 아니지만, 드레스 색깔논란이 과거에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무려 ‘The dress‘라는 놀라운 이름의 항목으로 등록돼 있다. 헐-_-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의 ‘드레스 색깔 논란’항목[3]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ねとらぼ의 기사[4]를 읽다보니 누가 체커 그림자 착시를 활용한 이미지를 소개하는데, 쓸데없이 꽤 잘 만든 것 같아서 걍 포스팅해봄 ㅋㅋㅋ

위 사각형안의 두 옷의 줄무늬 색이 #928CBA과 #8D7F64으로 정확히 같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시라. ㅋㅋ 아 내 눈이 안 믿겨 ㅋㅋㅋ

참고로 이미지 안의 캐릭터는 야자와 니코[5]임-_-

 


[1] 내 백과사전 스기하라의 원기둥 착시 2016년 10월 10일
[2] 합리적 착시(?) (아이추판다)
[3] 드레스 색깔 논란 (나무위키)
[4] ねとらぼ 青と黒を移動させると白と金……? 見える色が変わるドレスの錯視が再現されたイラストにびっくり 2017年05月11日 20時28分
[5] 야자와 니코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