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별 1000명당 항생제 사용량(2005,2016)


이코노미스트 에스프레소[1]를 보니 OECD가 항생제 사용실태에 대한 보고서[2]를 발행했다고 하길래 함 찾아봤다. 사이트[2]에 ‘UNDER EMBARGO’라고 쓰여져 있던데, 아직 내용은 못 보는 듯? 원본 문서를 보고싶은데, 며칠 기다려야 할 듯 하다. 근데 위 차트는 OECD 홈페이지에 공개된 페이지[3]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이 2005년에 비해 크게 늘어서 순위가 많이 올라간 것 같다.

항생제 사용은 가급적 안 하되, 일단 항생제를 처방하면 확실하게 복용하여 세균을 말살하여 내성이 진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진짠지는 모르겠음-_-

나도 엉덩이의 종기 때문에 어영부영하게 항생제 먹다가 귀찮아서 안 먹었더니만, 이놈이 진화를 한 건지 인제 항생제 말을 안 듣는 것 같다-_- 망했다. 젠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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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코노미스트 에스프레소 First do no harm: antibiotic resistance Nov 7th 2018
[2] OECD (2018), Stemming the Superbug Tide: Just A Few Dollars More, OECD Health Policy Studies,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9789264307599-en
[3] Antimicrobial Resistance (oecd.org)

[서평] 핫존 :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

핫존 :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
리처드 프레스턴 (지은이), 김하락 (옮긴이) | 청어람미디어 | 2015-03-20 | 원제 The Hot Zone: The Terrifying True Story of the Origins of the Ebola Virus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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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바이러스는 발발한 지역별로 조금씩 달라서, 발발한 지역이름을 따서 아종을 구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여섯 종류가 알려져 있다: 자이르 에볼라, 수단 에볼라, 분디부교 에볼라, 레스턴 에볼라, 타이 숲 에볼라, 마지막으로 Bombali ebolavirus.

지난 2013-2016년 서아프리카에서 발발하여 초대규모 인명피해[1]가 났던 바이러스는 위키피디아를 보니 자이르 에볼라인 듯 하다. 마지막 Bombali ebolavirus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올해 7월 27일에 보고된 바이러스로, 상당히 최근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웬만한 책에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5종류가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에볼라 6종류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 본토에서 발견되어, 대규모 원숭이 살처분 작전이 개시되었던 레스턴 에볼라의 발발과 진행과정 및 소개작전 과정을 서술하는 논픽션이다.

저자인 Richard Preston은 과거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2]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상당히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애석하게도 David Quammen 선생의 저서[3]에 따르면[4]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의 증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과장이 심한 듯 하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직접 에볼라 환자를 대면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텐데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흥행적 측면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위키피디아에 이 책 항목이 있는데, Quammen 선생 이외에도 몇몇 비판적 견해가 언급되어 있다.

확실히 책에는 사람의 내면적 묘사가 많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구사하고 있는데, 논픽션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을 쓰고, 정보의 출처표기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없는 논픽션은 언제나 경계를 하며 읽어야 할 듯 하다.

전반적으로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읽기에는 재미있다. 다만 추천은 하기 힘든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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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현황(2014) 2014년 10월 12일
[2]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리처드 프레스턴 (지은이), 박병철 (옮긴이) | 영림카디널 | 2004-03-15
[3]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데이비드 콰먼 (지은이), 강병철 (옮긴이) | 꿈꿀자유 | 2017-10-01
[4] 내 백과사전 리처드 프레스톤의 저서 ‘핫 존’의 문제점 2018년 10월 26일

리처드 프레스톤의 저서 ‘핫 존’의 문제점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데이비드 콰먼 (지은이), 강병철 (옮긴이) | 꿈꿀자유 | 2017-10-01

p99-102 이탤릭체는 원문을 따름

나처럼 〈핫존: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이란 책이 출간되었을 때 푹 빠져 읽은 사람이라면, 또는 그 책이 에볼라에 관한 대중의 인상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에 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이라면 매우 끔찍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리처드 프레스턴은 사건을 성실하게 조사한 후 생생한 묘사를 통해 노련하게 풀어내는 작가다. 책에서 그는 실로 무서운 질병을 거의 초자연적일 정도로 섬뜩하게 그려냈다. 수단의 한 병원에서 바이러스가 ‘침상에서 침상으로 뛰어다니며 사정없이 환자들을 죽이고’,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환자들이 엄청난 출혈을 일으키고, 장기들이 흐물흐물 녹아 내려 ‘사람들이 침대 속에서 녹아 없어졌다’고 표현한 구절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침대에서 녹아 없어졌다고? 특히 에볼라-자이르는 ‘사실상 신체의 모든 부분을 바이러스가 집어삼켜 소화된 점액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했던 프레스턴의 묘사에 몸서리를 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쿠! 어쩌면 에볼라에 감염된 시체는 죽은 후에 ‘갑자기 변형되고’ 내부 장기들은 ‘감전되어 녹아내린 것처럼’ 썩어 흐물흐물해진다는 대목에서 너무 끔찍해서 책을 덮어 버린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독자들은 녹아내린다는 말이 실제로 녹는다는 뜻이 아니라 기능 이상을 의미하는 일종의 은유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하긴 은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마르부르크병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프레스턴은 아프리카에 살던 프랑스 사람이 ‘비행기 여행 중 마르부르크병 바이러스로 인해 사실상 녹아내렸다’고 썼다. 승무원, 빨리 와봐요! 빛을 가린 수단의 한 오두막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죽어간 희생자를 묘사하며 ‘출혈로 온몸의 피가 모두 빠져나갔다’고 표현한 구절도 있다. 어쨌든 이 말은 그냥 ‘출혈’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종이봉지 속에 죽을 잔뜩 퍼넣었을 때 봉지가 터지듯 인간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다. 적어도 프레스턴의 묘사를 읽다보면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라는 영화처럼 사람이 녹아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에볼라 희생자들은 안구 속에 혈액이 가득차 눈이 멀고, ‘핏방울이 눈꺼풀 위로 송글송글 솟아난다. 그야말로 피눈물이다. 눈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지도 않고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고 썼다. 피칠갑이 된 죽음의 마스크는 의학논문이 에드거 앨런 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동료 작가를 비난하기는 싫지만 이런 묘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충고하는 것이 나의 의무일 것이다. 적어도 에볼라 희생자들의 전형적인 경과는 아니다. 출간된 기록이나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들이 진술한 내용을 보면 실제로 환자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면에서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임은 틀림없지만 프레스턴이 묘사한 충격적인 증상 중 몇 가지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특수 병원체부 차장인 피에르 롤린Pierre Rollin은 전 세계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에볼라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애틀랜타로 오기 전에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지난 15년간 키크위트굴루의 유행을 포함하여 수많은 에볼라와 마르부르크병 유행 때 대응팀에서 활약했다. 인터뷰 중에 내가 이 병들이 극심한 출혈을 일으킨다는 대중의 인식에 대해 묻자 그는 쾌활한 태도로 말을 잘랐다. “그거 순 헛소리 예요.” 프레스턴의 책에 씌어진 내용을 언급하자 그는 그런 소리에 지쳤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그 구절을 암송했다. “사람들이 줄줄 녹아 흘러내렸다…이런 거죠? 프레스턴 씨야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겠죠. 나중에 픽션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되니까.” 롤린은 덧붙였다. “하지만 실화라면 진짜 있었던 이야기만 써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러지 않았더군요. 사방에 피가 튀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면 훨씬 짜릿하긴 하겠죠.” 롤린은 출혈로 죽는 환자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람이 터지거나 녹아내리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 이상이 전혀 출혈이 없기 때문에 ‘에볼라 출혈열’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흡장애나 주요 장기의 기능 부전(녹아내리는 것은 아니고) 등 다른 원인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에볼라 유행 대응팀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핫존: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에서도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칼 존슨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특유의 솔직한 태도로 몇 가지를 특별히 지적했다. 그는 플라이 낚시를 하러 몬태나 주를 자주 찾는데 한 번은 내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전부터 친했고 그는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내게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식 인터뷰를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핫존: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도 화제에 올랐다. 그는 점점 진지해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건 순전 뻥이에요. 피눈물 흘리는 사람은 본 적도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프레스턴이 헛갈린 거죠.” 칼은 우선 리처드 프레스턴을 전혀 싫어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후, 공정하게 얘기하자면 그 젊은 저널리스트가 아무 근거없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1976년 자이르(얌부쿠가 아니라) 유행 중에 있었던 일과 헛갈린 거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제대로 알고 써야지. 죽은 사람이 무슨 자루처럼 형체없이 녹아내린 건 아니었다오.” 또한 존슨은 출혈이 그토록 심하다는 건 과장이라는 피에르 롤린의 말에 동의했다. 진짜 출혈이 심한 병이 뭔지 알아요? 크림-콩고 출혈열을 한번 보셔야 해. 물론 에볼라는 무시무시하고 치명적이지만 정확히 그런 식으로 무시무시하고 치명적인 것은 아니죠.

문헌에 따르면 에볼라의 주 증상은 복통, 발열, 두통, 인후통, 메슥거림과 구토, 식욕감소, 관절통, 근육통, 무력증, 빈호흡, 결막충혈, 설사 등이다. 결막충혈은 눈이 빨개진다는 뜻이지만 피눈물을 흘리는 것과는 다르다. 치명적인 환자는 모든 증상들을 한꺼번에 나타내는 수도 많다. 경우에 따라 흉통, 토혈, 잇몸 출혈, 혈변, 코피, 주사 부위 출혈, 무뇨증, 발진, 딸꾹질, 이명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키크위트 유행 중, 환자의 59퍼센트는 전혀 출혈이 없었고, 출혈 여부는 향후 생존과도 별 관련이 없었다. 반면 호흡이 빨라지거나, 소변이 나오지 않거나, 딸꾹질이 시작되는 것은 조만간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불길한 징후다. 출혈이 있다고 해도 임신한 여성에서 태아가 자연 유산된 예를 제외하고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문제가 된 경우는 전혀 없었다. 대부분 혼수와 쇼크로 사망했다. 간단히 말해서 에볼라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 병이지 갑작스럽게 터지거나 녹아내려 죽는 병은 아닌 것이다.

아…. 프레스턴씨 ‘First Light‘[1]읽고 감동받아서 엄청 좋아했던 저술가인데, 좀 실망이 크다. 프레스턴씨의 저서는 국내에 역서[2]가 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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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리처드 프레스턴 (지은이), 박병철 (옮긴이) | 영림카디널 | 2004-03-15
[2] 핫존 :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 리처드 프레스턴 (지은이), 김하락 (옮긴이) | 청어람미디어 | 2015-03-20 | 원제 The Hot Zone: The Terrifying True Story of the Origins of the Ebola Virus (1994년)

에볼라 보유숙주의 수수께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데이비드 콰먼 (지은이), 강병철 (옮긴이) | 꿈꿀자유 | 2017-10-01

p74-81 이탤릭체는 원문을 따름

어디에 숨었을까? 거의 40년간 에볼라의 보유숙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감염병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작은 수수께끼였다. 그 수수께끼와 답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은 에볼라 출혈열이라는 질병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아프리카에서 두 건의 유행이 서로 독립적으로, 그러나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한 건은 자이르 북부, 한 건은 수단 남서부였으니 공간적 거리는 약 500킬로미터에 이른다. 수단의 유행이 약간 먼저 시작되었지만, 자이르의 유행이 더 유명하다. 어느 정도는 유행 지역 옆을 흐르는 에볼라 강의 이름을 따서 바이러스 이름을 명명한 덕일 것이다.

자이르 유행의 진원지는 붐바(Bumba) 지구라는 지역 내 얌부쿠라는 마을에 위치한 작은 가톨릭 선교병원이었다. 9월 중순 병원에 근무하는 자이르인 의사가 극적인 경과를 보이는 신종 질병 환자 약 20명을 보고했다. 환자들은 흔히 보는 말라리아보다 훨씬 발열이 심한 데다, 피를 토하고 코로도 피를 홀리며, 피섞인 설사를 하는 등 심한 출혈 소견을 나타냈다. 자이르의 수도인 킨샤사 보건당국에 이 소식이 전보로 알려졌을 때는 이미 14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환자들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10월 초 얌부쿠 선교 병원은 폐쇄되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직원이 사망했던 것이다. 수주 후 자이르 보건부의 지휘 아래 과학자와 의사들로 구성된 국제질병대응팀이 이 수수께끼의 질병을 집중 연구하고 통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 지역에 파견되었다. 이 팀은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라고 붙렸는데 팀원들은 프랑스, 밸기에, 캐나다, 자이르.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전염병관리본부에서도 9명을 파견했다. 리더는 칼 존슨이었다. 1963년 볼리비아에서 마추포열을 연구하다가 자신도 질병에 걸려 죽을 뻔했던 미국 출신 의사이자 바이러스학자. 바로 그 사람이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13년이 지나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불같고 헌신적인 성격은 여전했다. 이재 그는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특수 병원체 부서장이었다.

존슨은 환경적인 차원을 주목함으로써 마추포열 위기를 해결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 않은 동안 바이러스는 어디 있을지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 보유숙주에 대한 질문은 금방 답이 나왔다. 가정과 곡물 창고에 마추포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은 볼리비아 토종 생쥐인 칼로미스 종(Calomys callosus)이었다. 대대적으로 쥐를 잡자 유행은 금방 잠잠해졌다. 절박하고도 당혹스런 1976년 10월과 11월, 자이르 북부에서 존슨은 정체불명의 또 다른 적을 눈앞에 두고 마추포열과 맞섰을 때와 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졌다. 사망자 수는 이미 수백 명을 헤아렸다. 도대체 이 끔찍한 녀석은 어디에서 왔을까?

병원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알았다. 미국 전염병관리본부를 비붓한 해외 연구소에서 황급히 임상적 검체들을 연구한 끝에 모종의 바이러스가 분리되었던 것이다. 자이르로 오기 전에 존슨은 미국 전염병관리본부에서 이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연구를 직접 이끌었다. 또한 이 바이러스가 9년 전에 발견된 또 다른 치명적 병원체인 마르부르크병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두 가지 바이러스 모두 고통에 몸부림치는 촌충 처럼 복잡하게 꼬인 실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에볼라는 마르부르크병과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벌레처럼 생긴 두 가지 바이러스, 즉 에볼라와 마르부르크병 바이러스는 필로바이러스 라는 새로운 과로 분류되었다.

존슨의 팀은 새로운 병원체인 에볼라 바이러스가 반드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동물의 몸속에서 바이러스는 숙주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계속 존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유숙주를 밝히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인간 사이의 전염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환자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유행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연구팀은 나중에 ‘생태학적 조사는 매우 제한적으로 수행되었다’라고 보고했으며 조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인간의 몸 말고는 어디서도 에볼라 바이러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결과야말로 더욱 흥미롭다. 초기 연구자들이 무엇을 조사했는지에 관한 기록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에볼라가 유행한 마을에서 818마리의 빈대를 잡아 조사했지만 바이러스의 증거는 전혀 없었다. 모기도 조사했다. 역시 허탕이었다. 열 마리의 돼지와 한 마리의 소에서 혈액을 채취했지만 모두 음성이었다. 69마리의 토종 쥐, 30마리의 흑쥐, 8마리의 다람쥐 등 123마리의 설치류를 검사했지만 바이러스 보균 상태인 동물은 없었다. 여섯 마리의 원숭이, 두 마리의 다이커 영양, 그리고 종이 불분명한 일곱 마리의 박쥐를 잡아 내장을 모두 조사하기도 했다. 하나 같이 깨끗했다.

국제위원회 멤버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지난 30년간 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급작스럽고 폭발적인 유행을 일으킨 신종 급성 바이러스 질병은 없었다.’ 보고된 치사율은 88퍼센트로 광견병을 제외하고는 기록된 어떤 질병보다도 높았다(광견병은 가장 치명적인 질병으로 중상이 나타나기 전에 치료받지 않은 환자는 사실상 100퍼센트 사망한다). 위원회는 자이르 정부에 여섯 가지 긴급 권고안을 전달했는데 그중에는 각 지역 및 전국 규모의 감시체계를 통한 보건조치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에볼라의 보유숙주를 파악하는 일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과학적인 문제로 모부투 정권에게 권고할 행동지침으로서는 다소 추상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얌부쿠에서 3년이 지나도록 칼 존슨과 몇몇 멤버들은 여전히 보유숙주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대대적인 조사를 하기로 했다. 에볼라의 보유숙주를 찾는다는 목적만으로 원정을 나서기에는 예산이 부족했으므로, 당시 세계보건기구에서 진행 중이던 자이르의 원숭이 두창 연구 프로그램에 편입하는 길을 택했다. 원숭이 두창은 에볼라만큼은 아니지만 심한 질병이고, 에볼라와 마찬가지로(아직 어떤 동물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유숙주를 통해 전파되는 병이었다. 따라서 검체를 한 번만 채취하여 두 가지 검사를 하는 방식의 합동연구가 자연스럽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연구팀은 다시 붐바 지구의 마을들과 인근 숲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포획하는 한편, 자이르 북부의 다른 지역도 탐색했다. 이번에는 자체적으로 동물을 사로잡거나 사냥하는 외에도 마을 사람들이 산 채로 동물을 잡아오면 보상금을 주는 방법으로 117종에 걸쳐 1,500마리가 넘는 동물을 검사했다. 원숭이, 쥐, 생쥐, 박쥐, 몽구스, 다람쥐, 천산갑, 뾰족뒤쥐, 호저, 다이커 영양, 다양한 조류, 거북, 온갖 뱀들이 검사 대상이 되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혈액을 채취하고, 간과 콩팥과 비장을 떼어 냈다. 모든 검체를 따로 따로 바이알에 담아 급속냉동시킨 후 미국 전염병관리본부로 보내 분석했다. 채취한 조직에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배양될까? 혈청에서 에볼라 항체가 검출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슨과 공동저자들은 〈감염병 저널Jaurnal of infectious Diseases〉에 실린 논문에서 솔직하게 허탕이라고 보고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제기랄. 또 빈손이라니! 탄식과 절망이 이어졌다.

에볼라 보유숙주를 찾는 일이 그토록 어렵고 종잡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질병이 인간 집단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에볼라는 유행이 지나가면 몇 년 동안 환자가 한 명도 없다. 보건당국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과학적 연구에는 걸림돌이다. 물론 바이러스 생태학자들은 아프리카 어느 숲에든 들어가 어떤 동물이든 잡아서 에볼라 검사를 할 수 있지만, 이런 방법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에볼라 출혈열로 사람이 죽어갈 때 그 지역을 조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에볼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보건당국의 주의를 끌 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1976년 얌부쿠 유행에 이어 1977년에서 1979년 사이 자이르와 수단에서 몇 건의 소규모 유행이 있었지만 그 뒤로 15년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80년대 초 산발적으로 환자들이 발생했지만 모두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진 것이었으며 긴급 대응이 필요할 정도로 두드러진 유행은 없었다. 질병은 환자들의 몸속에서 스스로 소진되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기타 전문적인 기관에서 특공대를 소집하기도 전에 저절로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소진이란 이렇게 치사율이 높고 중간 정도의 전염력을 지닌 감염병에서 특별히 중요한 개념 이다. 처음 몇 명이 사망하고 다시 몇 명이 감염되었을 때, 일부는 사망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회복된다면 병원체가 계속 퍼져나가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소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15년이 지나자 에볼라는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메이바우트 2(Mayibout 2)와 가봉의 다른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낸 후, 키크위트라는 지역에 이르러 한층 맹위를 떨쳤다.

키크위트는 자이르의 수도인 킨샤사에서 동쪽으로 약 50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다. 이곳은 얌부쿠나 메이바우트 2, 또는 보우에 외곽의 벌목 캠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그곳은 20만명이 몰려사는 도시였다. 병원도 몇 군데 있었다. 이전 유행 지역들과 달리 넓은 바깥 세상과 연결된 곳이었다. 하지만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비슷했다.

키크위트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숲 속이나 그 주변에서 일하는 42세 남성으로 숲의 생태계를 다소나마 교란시킨 것이 확실했다. 그는 몇 군데의 개간지에서 옥수수와 카사바를 재배하고, 나무를 잘라 숯을 굽기도 했는데 그 장소는 도시에서 남동쪽으론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어디서 나무를 얻었으며 어떻게 자신의 밭에 햇빛이 들도록 했을까? 당연히 나무를 잘랐을 것이다. 그는 1995년 1월 6일 발병하여 1주일 후 출혈열로 사망했다.

그가 세 명 이상의 가족을 직접 감염시키고(모두 사망했다), 사회적으로 접촉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면서 이후 몇 주간 열 명이 더 사망했다. 사망자 중 일부는 의심의 여지없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키크위트 종합병원과 주로 산모들이 입원하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곳 검사실 직원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 직원은 키크위트 종합병원에 입원했는데 장티푸스에 의한 장파열을 의심하여 그를 수술했던 의사와 간호사 몇 명, 병실에서 그를 돌보았던 이탈리아인 수녀 두 명이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다. 검사실 기사와 수녀들이 사망하자, 지역 보건당국에서는 이 병을 전염성 이질(‘혈성 설사’)로 생각했다. 오진을 한 탓에 결국 바이러스는 키크위트 지역의 다른 병원을 통해 환자와 의료진들에게 훨씬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모든 사람이 이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건성 소속 의사 한 명은 이질이 아니라 바이러스 출혈열처럼 보인다고 했으며, 그 추측은 5월 9일 미국 전염병관리본부에 접수된 혈액 검체를 통해 이내 확인되었다. 틀림없는 출혈열이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에볼라였다. 7월에 이르러 유행이 가라앉을 즈음 사망자는 200명이 넘었으며, 그중 60명이 의료인이었다. 다른 병으로 생각하고(궤양으로 인한 위장관 출혈 등) 환자를 수술한 경우가 특히 위험했다.

그 사이에 보유숙주를 찾기 위한 또 다른 국제협력팀이 결성되어 6월 초에 키크위트로 들어갔다. 이 팀은 미국 전염병관리본부 직원들, 자이르대학 연구진, 메릴랜드 주의 미육군 감염병 연구소(United States Amy Medical Research Institute for Infectious Diseases, 원래 생물학적 무기 연구소였지만 당시에는 질병 연구 및 생물학적 공격에 대한 방어 업무를 담당했다)직원들, 그리고 덴마크 유해동물연구소에서 파견된 설치류 전문가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종간전파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장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바로 첫 번째 희생자인 42세의 불운한 남성이 살았던 숯가마와 밭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3개월간 수천 마리의 동물들을 덫이나 그물로 포획했다. 대부분 작은 포유동물과 조류였지만 파충류나 양서류도 있었다. 모든 덫은 도시 경계 바깥의 숲과 사바나에 설치했다. 키크위트 시내에서는 가톨릭 선교회에 그물을 설치하여 박쥐를 잡았다. 포획된 동물은 안락사시킨 후 혈액을 채취하고 비장(때에 따라 간이나 콩팥 둥 다른 장기도)을 적출하여 냉동보관 했다. 그 밖에 개나 소, 애완용 원숭이들도 혈액을 채취했다. 모두 3,066개의 혈액 검체와 2,730개의 비장이 채취되어 미국 전염병관리본부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는 혈액 검체에 방사선을 쬐어 모든 바이러스를 죽인 후 당시 가장 민감한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에볼라 항체를 검사했다. 비장 검체들은 BSL-4등급 연구시설로 보냈다. 이 시설은 칼 존슨의 초기 작업 이후 새로 고안된 것으로(그는 이런 시설을 설계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몇 겹의 밀폐장치와 음압발생기, 정교한 필터를 갖추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또한 우주복을 입었다. 이론적으로는 에볼라 바이러스 누출 위험이 없는 봉쇄지역인 셈이다. 자이르에서 채취해온 비장들 중에 바이러스가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검체는 감염된 것으로 가정하고 취급했다. 비장 검체들은 일부를 떼어 곱게 간 후 세포 배양물에 가해 바이러스가 자라는 지도 확인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세포 배양물은 전혀 바이러스의 흔적 없이 건강 하게 자라났다. 항체 검사에서도 양성 결과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다시 한 번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엄청난 피해콜 입힌 후, 병들고 죽은 희생자들만 남긴 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신출귀몰하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3개월간 노력한 결과를 완전한 실패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잘 계획된 연구는 음성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능성을 보다 좁혀주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회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절망감을 불러일으켰다. 너무 늦게 키크위트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어쨌든 숯 굽는 사람이 쓰러진 지 6개월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우기가 건기로 넘어가는 시기라 보유숙주가 이동하거나, 숨거나, 숫자가 줄어든 건 아닐까? 유행하지 않을 때는 바이러스 숫자가 크게 감소하여, 심지어 보유숙주의 몸속에서도 거의 검출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수만 남는 것은 아닐까? 연구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종 보고서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은 기나긴 동물종의 목록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으로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세 가지 중요한 가정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첫째, 그들은 초기 연구를 근거로 보유숙주가 포유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유행은 항상 울창한 숲과 관련이 있었다. 심지어 키크위트처럼 도시 지역의 유행도 숲 속에서 살았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보유숙주는 숲 속에 사는 동물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에볼라 유행은 시간적으로 분산되어 나타났다. 한 번 유행하면 몇 년씩 잠잠하기도 했다. 이런 시간적 패턴은 보유숙주로부터 인간이 감염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렇게 종간전파가 드물다는 사실로부터 다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즉, 보유숙주 자체가 드문 동물종이거나, 사람과의 접촉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키크위트 팀이 아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권위있게 서술한 그들의 논문은 1999년 〈감염병 저널〉 특집 증보판에 여러 편의 에볼라 관련 논문들과 함께 발표되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보유숙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초 신박하네. ㅎㅎㅎ 에볼라 숙주와 관련된 글이 bric[1]에도 있다. 중간에 언급된 두 편의 논문[2,3]은 책 뒤쪽의 참고문헌 목록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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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오토픽] 에볼라의 수수께끼 (ibric.org)
[2] Heymann, D. L., J. S. Weisfeld, P. A. Webb, K. M. Johnson, T. Cairns, and H. Berquist. 1980. “Ebola Hemorrhagic Fever: Tandala, Zaire, 1977–1978.” The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142 (3).
[3] Bwaka, M. A., M. J. Bonnet, P. Calain, R. Colebunders, A. De Roo, Y.Guimard, K. R. Katwiki, et al. 1999. “Ebola Hemorrhagic Fever in Kikwit,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Clinical Observations in 103 Patients.” In Ebola: The Virus and the Disease, ed. C. J. Peters and J. W. LeDuc. Special issue of The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179 (S1).

[서평]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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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및 역사가로 활동하는 마이크 데이비스 선생의 책이다. 과거에 그의 저서인 ‘자동차 폭탄의 역사'[1]를 인상적으로 읽어서 산 책인데, 사놓고 하도 오랫동안 안 읽고 있다가 인제사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온라인 서점에서 절판상태가 돼 있다-_-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미국에서 조류독감의 위험성에 대한 과소평가 및 저개발 국가에서 얼마나 쉽게 조류독감이 확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 이거 스릴러가 따로 없구만-_- 무서운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공포 영화나 소설보지말고 이거 읽으면 딱이다-_- 그렇게 맛있던 치킨의 맛이 뚝 떨어진다-_-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되게 이성적인 것 같아도, 확산속도가 빠르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여 공포와 패닉이 확산되면, 인권이나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두는 사회 구조는 쉽게 파괴되고, 비극이 일어나기 쉽게된다. 따라서 평상시의 방역체계 확립이 중요한데, 이 책은 미국내 방역체계가 탄저균 테러와 같은 발생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에 훨씬 큰 예산이 할당되어 있고, 조류독감과 같은 발생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무시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사태[2]의 사례를 보니 국내는 주변국들에 비해 방역 시스템이 잘 된 편이 아닌가 싶긴 하다. 2015년 국내 메르스 사태때 좀 허술한 방역체계를 경험한 탓인지 2018년 메르스 환자가 입국했을 때는 비교적 잘 대응한 면[3]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쓰인 시점이 2005년이라 지금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데, 그가 경고하는 조류독감의 대규모 전파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저자가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조금 든다. 어쨌든 발생하기기 쉽든 어렵든 간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이 책에서 경고할만한 수준이 될 것 같다.

이미 절판되긴 했지만, 독서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참고할만한 몇몇 부분[2,4,5]을 인용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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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자동차 폭탄의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2012년 5월 4일
[2] 내 백과사전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확산 2018년 10월 17일
[3] 국민일보 2018 메르스 대응은 ‘80점’…가야할 길 멀다 2018-10-15 13:17
[4] 내 백과사전 2003년 SARS 발발 2018년 10월 15일
[5] 내 백과사전 1997년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의 아종 발견 2018년 10월 14일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확산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119-125

2003년 가을 내내, 소문과 부인과 음모 속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의 귀환이 은폐되었다. 실제로 전염병은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나중에 H5N1이 8월에 탐지되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중국 관리들은 “중국 전역의 농장들이 몇 년째 조류독감에 노출되어 있다”는 홍콩 『스탠더드』지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11 그들은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광시성의 오리들 사이에서 대규모 유행병이 발병했다는 소문을 일축했고, 타이베이의 동물 검역관들이 12월에 푸젠 성에서 밀수된 야생 오리에서 H5N1을 발견했다는 경고를 타이완 측의 정치 공세라고 매도했다. 푸젠성은 2003년 초 2명을 살해한 바이러스의 진원지일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12

2004년 1월 영국의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비보도를 전제로 주요 독감 연구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발병 사태가 1997년 홍콩 사태 이후 중국 남부의 가금류 생산자들이 비밀리에 잘못된 백신 접종(“통제되지 않은 바이러스 진화 실험”)을 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작은 소란이 빚어졌다. 중국의 사육농들이 닭의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활성화 바이러스를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H5N1 초변종의 진화를 촉진한 것이었다. 유전자형 Z(genotype Z)라는 이 초변종은 곧 집오리들 사이에서 무증상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녀석은 이 안정된 숙주를 바탕으로 직접 접촉과 가금류 밀수, 그리고 어쩌면 야생 조류의 이동을 통해 다른 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공식적인 은폐 행위와 미심쩍은 사육 방식이 한데 얽히면서 녀석이 유행병으로 바뀔 수 있었다.”13

그러나 중국 당국만 전염병 사태를 은폐한 게 아니었다. 2003년 11월 초 타이 전역의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농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닭들이 몸뚱이를 떨기 시작했다. 마치 숨이 막혀 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에서는 걸쭉한 침이 흘러나왔다. 약초를 먹여봤지만 소용없었다. 이윽고 닭들의 안색이 검은 초록색으로, 다시 검정색으로 변하더니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14 방콕 출랄롱코른 대학교의 한 수의학자가 죽은 닭에서 H5N1을 발견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타이 축산부는 그의 경고를 묵살했다. (한 반대파 국회의원은 나중에 “정치적 간섭 때문에 학자와 전문가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고 증언했다.) 걱정이 된 농부가 한 관리에게 죽은 닭들의 시체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는 닭들이 “아무런 의학적 이유 없이” 죽었다는 말만 들었다.15

이렇게 닭들이 한창 죽어나가던 시점에 이상하게도 닭고기 가공 공장들은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추문이 터지고 난 후 방콕 외곽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조합원들은 『방콕 포스트』에 이렇게 증언했다. 그들의 어조는 분노로 상기되어 있었다. “11월 이전에 우리는 하루 평균 9만 마리의 닭을 처리했다. 그런데 11월부터 1월 23일까지는 하루 평균 13만 마리를 도살해야 했다. 닭을 처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 닭들이 병들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장기들이 부어 있었다. 우리는 병의 정체를 몰랐지만, 경영진이 조사를 받기 전에 서둘러 닭들을 처리하고자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10월부터 〔닭을〕 먹지 않았다.”16

아시아 전역에 둘러쳐진 공식적인 침묵의 장벽이 12월에 걷혔다. 서울 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집단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의 농업 당국자들은 H5N1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과 타이의 관료들과는 달리 즉시 국제수역사무국에 이 사태를 보고했다. 일주일 후 대량 살처분 계획이 발표되었다. 5개 지방의 닭과 오리에서 새로 감염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닭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애틀랜타에 있는 질병통제센터의 인플루엔자 전문가 한 명이 하노이의 한 바이러스학자에게서 걱정스러운 이메일을 받았다. 1918년 대유행병의 희생자들 다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바이러스성 폐렴과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환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하노이의 의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자국의 농업 관료들이 적어도 10월부터 가금류 사이에 H5N1이 간헐적으로 유행했음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17 몇 명이 더 죽고 난 다음인 2004년 1월 5일에야 비로소 베트남의 공중보건 관리들은 다급하게 세계보건기구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닐라의 세계보건기구 지역사무소도 곧 베트남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며칠 후 홍콩의 과학자들이 유전자형 Z 프랑켄슈타인이 하노이에서 사망한 어린이 3명의 조직 표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이 두 지방에서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일본도 야마구치현의 닭에서 H5N1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서부의 발병 사실은 처음에 가금류 회사 임원들-그 가운데 한 명은 나중에 자살했다-에 의해 은폐되었다가 한 직원이 익명으로 정보를 유출한 덕분에 겨우 알려졌다.)18

세계보건기구와 그 수의학 부서, 국제수역사무국, 유엔 식량농업 기구는 관료들과 농업 기업 대변인들이 여러 달 동안 대륙 차원에서 진행 중이던 조류독감 유행을 은폐해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 자크 디우프는 나무랄 데 없이 억제된 관료적 어법으로 이렇게 말했다. “관할 국가기관과 국제수역사무국 및 기타 국제기구에 이 전염병이 제때 보고되지 않아 문제의 규모가 커졌다.”)19 세계 언론이 점점 더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들은 중국과 타이의 관리들이 계속해서 쏟아내는 안전 확인 발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중국은 비밀 엄수와 기만정책이라는 예전 장쩌민 분파의 오웰주의 문화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또 다른 수수께끼의 호흡기 감염증이 2004년 1월 광둥을 휩쓸자, 관리들은 이 사스의 망령을 간단히 박테리아성 폐렴 클라미디아로 치부해버리고 세계 보건기구의 현장 조사마저 불허했다. (회의적인 한 중국인 과학자는 『네이처』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사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임상적으로 보아 그 질병은 바이러스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조류 인플루엔자도 배제할 수 없다.”)20

한편, 타이에서도 병든 닭들이 도축되어 해외 시장으로 선적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거짓말이 날조되고 있었다. 농무부 차관 네윈 칫촙은 태연하게 ‘조류콜레라’가 몇 건 발생했다고 밝혔으며, 탁신총리와 각료들은 국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는 음식 축제에 등장해 타이 식 닭요리를 맛있게 시식했다.”21 차룬 폭판드 그룹의 고위 임원 사라신 비라폴은 언론에 공장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타이에 조류독감은 전혀 없다면서 기자들을 안심시켰다. 방콕 언론이 나중에 보도한 것처럼, 정부는 차룬 폭판드 그룹 및 그밖의 대규모 가금류 생산업자들과 공모해 계약 사육농들을 매수하여 전염병을 은폐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기만 정책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대규모 수출업체들은 그 몇 달의 유예 기간 동안 병든 재고분을 가공 판매하는 동시에 공장을 소독하고 사육장을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소규모 생산자들은 방치된 채 전염병으로 인한 인간적 • 경제적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22

결국 1월 말에 농장의 아이 2명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심하게 앓기 시작했고, 그제야 무소속 국회의원 니룸 피따꽛차라가 이끄는 야당 세력이 탁신 총리를 압박해 H5N1이 가금류 생산 지역을 유린하고 있음을 실토하게 할 수 있었다. 각료들은 즉각 지위가 낮은 지방 관리들에게 거짓말의 책임을 전가했다. 탁신의 대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은폐처럼 보이는 것은 절차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실수’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부 기관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는 상부에 보고되어야 할 각종 정보와 관련해 많은 혼란이 있었음을 확인했다”23

그러자 소규모 생산자들은 크게 항의했다. “정부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대기업들을 구해주었다. 결국 고통받는 것은 우리 소농들이다.”24 방콕의 한 신문은 수코타이 지방의 대규모 생산자와 소규모 생산자의 엇갈린 운명을 대조한 기사를 실었다. 차룬 폭판드 그룹과 기타 재벌들에 ‘통합된’ 영리적 사육농들은 12월에 전염병 발생 소식을 통고받고 담당 관리들로부터 항바이러스 백신을 제공받아 닭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소규모 사육농들은 질병과 관련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으며, 결국 그들이 키우던 닭의 대부분이 죽고 한 농부의 10대 아들까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사망한 아이의 어머니인 라웽 분롯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기만 했어도 아들이 병든 닭에게 가까이 가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내 자식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25

타이의 가금류를 수입하던 나라들도 고의적인 기만 행위에 격노했다. 타이에는 조류독감이 없다는 탁신 총리의 말을 직접 듣고 브뤼셀에 막 돌아왔던 유럽연합 보건위원 데이비드 번이 가장 펄펄 뛰었다. 번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언론에 말했다.26 유럽연합, 일본, 한국은 즉각 타이산 가금류의 수입을 정지했다. 부시 행정부는 탁신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개입을 지지해준 대가로 은폐 공작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11) Bruce Einhom, “China: New Plague, Same Coverup?” Business Week Online (10 February 2004)
12) “Bird Flu Found in Smuggled Duck,” Taipei Times, 1 January 2004.
13) Debora MacKenzie, “Bird Flu Outbreak Started a Year Ago” New Scientist, 28 January 2004.
14) Robin McKie et al., “Warning as Bird Flu Crossover Danger Escalates,” Observer, 12 December 2004.
15) “Thailand and Cambodia Admit Bird Flu,” New Scientist, 23 January 2004에 인용된 상원 위원 Nirun Phitakwatchara 의 말.
16) Bangkok Post (30 January, 5-6 February, and 25 March). Isabelle Delforge, “Thailand: The World’s Kitchen,” Le Monde diplomatique (English edition), July 2004에서 인용.
17) 유엔 식량농업기구 하노이 주재 대표 안톤 리체너는 2004년 2월 베트남의 가금류가 “여러 달 동안” 조류독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언론에 밝혔다. Keith Bradsher, “Bird Flu Is Back,” New York Times, 30 August 2004.
18) Justin McCurry, “Bird Flu Suicides in Japan,” Guardian, 9 March 2004.
19) Bangkok Post, 7 February 2004에서 인용.
20) David Cyranoski, “Vaccine Sought as Bird Flu Infects Humans,” Nature 422 (6 March 2003).
21) Richard Ehrlich, “Thailand Denies Bird Flu Cover-Up” (26 January 2004), http://www.scoop.co.nz .
22) “Cover-up Began Last Year,” Nation (Bangkok), 23 January 2004; and Manager (2 February 2004), cited in Chanida Chanyapate and Isabelle Delforge, “The Politics of Bird Flu in Thailand” (19 April 2004), http://www.focusweb.org .
23) “Thai PM Admits Mistakes Over Bird Flu” Guardian Unlimited, 28 January 2004.
24) “Thailand’s Poultry Industry Facing Huge Losses from Bird Flu Crisis” (25 January 2004), http://www.eubusiness.com 에 인용된 Sirima Manapomsamrat의 말.
25) “Sukhothai Death: Victims of the Information Gap,” Nation (Bangkok), 2 February 2004.
26) Delforge, “Thailand: The World’s Kitchen” 에 실린 인터뷰.

진짜로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의 원인이 바이러스 진화 실험이라면 초 끔찍하구만. 이거 무슨 영화도 아니고-_-

2003년 SARS 발발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85-89

2003년 조류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새로운 H5N1이 홍콩에서 분리되기 직전, 세계보건기구 베이징 사무소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광둥에서 ‘이상한 전염병’으로 불과 일주일 만에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주로 의료 종사자들과 식료품 취급자들이 감염되었다. 성도 광저우에서는 겁에 질린 주민들이 전통적으로 호흡기 질병의 민간 치료제로 쓰여온 식초는 물론이고 수술용 마스크와 항생제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며칠 후 중국의 공중보건 관리들은 ‘비전형적인 폐렴’으로 5명이 사망했음을 마지못해 시인했다. 전해 11월 포산에서 발병 사태가 시작되어 약 300명이 감염되었으나 이제 진압되었다는 것이었다. 중국 당국은 그들이 세계보건기구에 전염병 발생 사실을 은폐했음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세계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희생자들에게서 모두 인플루엔자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방과 중앙 행정 당국은 병원균과 관련해 상충되는 설명을 내놓았다. 광둥은 폐렴 미코플라스마 박테리아를 범인으로 지목한 반면 베이징은 클라미디아가 병원균이라고 주장했다. “광둥성 위생청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그밖의 모든 정보는 당 선전국이 배포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발표의 신뢰성은 더욱 흔들렸다.2 이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퍼져나갔다. 당국이 다시 한 번 협박에 나섰다. “질병 관련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나 의사는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3

경험 많온 인플루엔자 연구자들은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설명을 크게 불신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다시 홍콩의 새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미지의 폐렴이 오랫동안 우려해왔던 대유행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해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했다. 게다가 광둥의 보고에 이어 2건, 어쩌면 3건의 H5N1 인간 감염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정황증거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이 질병이 세계로 향하는 중국 남부 지역의 관문 인 홍콩에서 발생한다면 그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타고 퍼질지도 모른다는 추론도 이어졌다.

조사관들이 나중에 여정을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2월 셋째 주에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 폐렴 희생자들을 돌보던 광저우의 한 의사가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2월 21일 홍콩에 도착했다. 이미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메트로폴 호텔 9층의 한 방에 투숙했다. 여기서 그는 불확실한 메커니즘을 통해 같은 층에 머물던 다른 투숙객 16명에게 바이러스롤 전염시켰다. 전염병학 용어로 말하자면 그 의사는 ‘초강력 전파자’ 였다. 항공사 승무원 등 감염된 호텔 투숙객들이 계속해서 각기 다른 다음 목적지로 여행하면서 광둥의 발병 사태는 곧 맹아적 형태의 전 세계적 대유행병으로 변했다. 질병통제센터가 나중에 메트로폴 호텔에서 시작된 발병 사태의 흐름을 정리했다. 홍콩 195건, 싱가포르 71건, 베트남 58건, 캐나다 29건, 아일랜드와 미국이 각각 1건씩이었다. 세계보건기구의 전 세계 발병 경계 및 대응팀의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 세계적 발병 사태는 이렇게 홍콩의 호텔 한 층에서, 단 하루 만에, 단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4

세계보건기구에 포착된 첫번째 메트로폴 감염자는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였다. 그는 하노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고, 그 병이 조류독감일 가능성에 질겁한 지역 병원의 전문의는 세계보건기구 베트남 대표부의 카를로 우르바니 박사에게 환자를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탈리아인 의사는 2월 28일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사무소에 그 수수께끼의 질병이 드디어 여행을 시작했다고 급히 보고했다. 곧이어 다른 몇몇 나라에서도 발병 사태가 보고되었다. 3월 1일 홍콩에서는 환자 몇 명이 이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여성 승무원 1명(첫번째 메트로폴 희생자로 기록되었다)이 급성 호흡곤란 증세로 싱가포르의 병원에 입원했다. 메트로폴에 머물렀던 중년의 캐나다인 1명이 며칠 후 토론토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가족 5명도 곧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광둥에서 퍼진 소문처럼, 홍콩과 하노이에서 메트로폴 환자들과 접촉한 병원 관계자들이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하노이의 프랑스병원은 폐쇄를 명령받았다. 이어서 그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가 사망했다. 토론토로 돌아간 중년 여성의 아들도 죽었다. 3월 중순경에는 하노이와 홍콩에서 수십 명의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중환자실에 격리되었다. 온타리오 주의 관리들도 스카보로 그레이스 병원을 당분간 폐쇄시켜야만 했다. 우르바니 박사도 병에 걸렸다. 그는 하노이에서 타이의 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거기서 3월 29일 죽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중국과 캐나다와 베트남의 병원 인력들은 겁에 질려 수수께끼의 치명적인 질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치료를 거부했다.

그것이 과연 조류독감이었을까? 3월 15일까지도 병원균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증상을 바탕으로 이 질병을 급히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사스)이라고 명명했다. 같은 날 뉴욕에서 열린 의료 학술회의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던 싱가포르의 젊은 내과의 1명이 임신한 아내 및 장모와 함께 경유지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문제의 스튜어디스를 치료했던 의사였다. 그녀가 거의 100명을 감염시킨 또 다른 초강력 전파자였다. 세계보건기구는 마침내 항공운송업계에 긴급히 경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감염된 다른 승객들이 계속해서 사스를 베이징과 타이완으로 전파하는 것을 막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상황이었다. 3월 말 홍콩과 토론토 당국은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 관리들은 휴교를 명령했고, 주민 1,080명 이상을 격리했다. 토론토에서는 또 다른 병원 한 곳이 폐쇄되었고, 사스 환자와 접촉한 병원 관계자 등 수천 명이 집에서 나오지 말도록 요청받았다.

홍콩에서는 이 전염병으로 주룽의 아모이 가든 아파트에서 악몽과도 같은 사태가 빚어졌다. 아파트 E동은 33층으로, 층마다 8개 가구가 살고 있었다. 주민 한 명의 동생이 3월 중순 처음으로 이 건물에 문제의 바이러스를 옮겨왔다. 그가 사스에 감염된 프린스 오브 웨일스 병원에서 최근에 투석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심한 설사로 고생하다가 형의 집 화장실을 사용했다. 불과 며칠 만에 E동과 옆 건물들에 살고 있던 주민 321명이 사스에 감염되었다. 전염 경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승강기의 공기를 통해 전염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건 당국은 사스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배관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퍼졌다고 결론지었다. 주민들이 “오염된 하수의 작은 물방울을 통해 바이러스와 접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모이 가든 사태가 문제적이었던 까닭은, 고층의 주택, 병원, 슬럼처럼 도시 인구가 고도로 밀집한 환경에서는 환기나 하수 체계의 결함내지 더 심한 경우 그런 시스템 자체의 부재로 인해 바이러스의 전파 정도가 엄청나게 증폭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5

 


2) WHO, “SARS: Chronology of a Serial Killer,” Update 95; and Tabitha Powledge, “Genetic Analysis of Bird Flu,” Scientist, 27 February 2003.
3) Huang in Knobler, Learning from SARS, p. 118.
4) J. Mackenzie et al., “The WHO Response to SARS and Preparations for the Future,” in Knobler, Learning from SARS, p. 43; and Karen Monaghan, “SARS: Down But Still a Threat,” in Knobler, Learning from SARS, p. 249 (CDC chart).
5) I. Yu and J. Sung, “The Epidemiology of the Outbreak of SARS in Hong Kong—What We Do Know and What We Don’t,” Epidemiol. Infect. 132 (2004): pp. 784: Hong Kong Department of Health, “Outbreak of SARS at Amoy Gardens, Kowloon Bay, Hong Kong: Main Findings of the Investigation,” 17 April 2003.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를 최초로 확인하고 병사한 Carlo Urbani 선생의 영웅적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1997년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의 아종 발견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60-66

조류 우표가 발행되기 한 달 전인 1997년 3월, 웬룽과 마이포 습지 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심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ighly Pathogenic Avian Influenza(HPAI) 증상을 보였다. 피트 데이비스가 설명한 것처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매우 위험하다. 이 바이러스는 혈류를 타고 확산되면서 모든 조직과 기관을 감염시킨다. 뇌, 위, 폐, 눈 모든 곳에서 과다 출혈이 발생한다. 그러다가 볏에서 발톱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녹아내린다.”3 이 질병이 근처의 가금류 농장 두 곳으로 퍼졌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흔히 그렇듯, 거의 모든 가금류가 죽었다. 홍콩 대학교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1959년에 최초로 분리된 아형인 H5N1인 것으로 확인했다. 동물 바이러스학자들이 녀석을 본 것은 단 두 번, 닭 2,000만 마리를 살처분해야 했던 1983년의 펜실베이니아 사태와, 보다 최근인 1991년 영국 칠면조들의 대몰살사태뿐이었다.

소위 ‘가금류 역병’이라고 하는 이 섬뜩한 병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1878년이지만, 1955년까지는 그 병원균의 정체가 인플루엔자 A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의 주요 철새 이동 경로에 걸쳐 있던 가금류 농장에서 병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그것이 오리와 기타 물새류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른 모든 인플루엔자처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도 수수께끼 같은 녀석이다. 녀석은 상이한 국가, 대륙, 반구의 닭과 칠면조 집단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타오른다. 최근까지 녀석은 비교적 드물게만 발생했다. 1959년부터 홍콩에서 갑작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 1997년 사이에 모두 15번의 국지적인 발병이 있었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H5나 H7을 지닌 인플루엔자 아형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들 헤마글루티닌에 특별히 중요한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헤마글루티닌의 분할면에 존재하는 이 아미노산이 바이러스가 더 광범위한 조직과, 어쩌면 더 다양한 종을 공략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병독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4 그러나 조류의 이런 슈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심지어 병든 닭을 돌보고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대학살 후 청소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도 위험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홍콩의 연구자들은 이렇게 강조했다.

“수많은 조류 바이러스의 아형을 실험실에서 직접 인간에게 전이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종의 장벽은 뛰어넘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5

농업 당국이 4월까지 남아 있던 병든 닭을 전부 살처분하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폭넓은 조사와 검사를 수행했지만 신제의 닭 농장과 홍콩의 생가금류 시장에서 더 이상의 H5N1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의학자들은 안도했다. 그런데 세 살 난 남자아이 하나가 5월 중순 주룽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에 입원했다. 이전까지 매우 건강했던 아이는 갑자기 인후염과 고열,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일급의 간호를 받았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 되었고, 결국 5월 21일에 사망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일련의 증상이 아이의 몸을 가차 없이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러스성 폐렴,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 라이 증후군(뇌압이 올라가고 간에 장애가 생겨 혼수상태에 빠지는 병—옮긴이)에 신음하던 아이는 나중에는 신부전과 간부전 상태에 빠졌다. 지역 보건 당국이 사망한 아이의 목에서 나온 분비물을 검사했다. 미지의 특이한 인플루엔자 아형이 발견 되었다.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하고 있는 네 기관 가운데 두 곳(애틀랜타 질병통제센터런던 국립의학연구소)과 로테르담의 국립 인플루엔자 센터로 6월에 냉동 표본이 전달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홍콩 보건 당국의 경계 태세에 환호를 보낼 만하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홍콩은 바이러스 변종들의 종간 전염이 가장 빈번하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 남부 지역 인플루엔자 감시의 파수병이다. 만약 그 아이가 인근 광둥이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가난한 나라에서 사망했다면 병원균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그렇게 열심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6 로테르담 연구팀이 가장 먼저 이 치명적 변종의 정체를 밝혀냈다. 데이비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 연구팀은 7월 내내 홍콩 바이러스를 인간 및 돼지 인플루엔자의 데이터와 대조하는 작업에 매달렸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바이러스는 그 어떤 항혈청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황한 연구팀은 8월 초 유명한 인플루엔자 권위자 로버트 웹스터의 멤피스 연구소에서 공수해온 H5N1 시약으로 녀석을 검사해보았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완전히 일치했던 것이다.7

네덜란드의 실험 결과는 곧이어 애틀랜타와 런던에서도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H5N1이 실제로 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홍콩에서 그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홍콩의 공중보건 과학자들이 실수로 오염된 표본을 보내왔을 것이라는 설명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나 대강 넘겨짚을 일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물론이고 질병통제센터와 세계보건기구가 홍콩 연구소의 상황을 재점검하기 위해 웹스터를 포함한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곧 홍콩의 과학자들이 절차를 정확히 지켰음을 확인했다. 오염 같은 것은 없었다. H5N1이 살인자였고, 웹스터가 나중에 확인한 것처럼 녀석은 3월에 닭들을 죽인 변종과 거의 동일했다. 이 조류 바이러스가 해마글루티닌의 미세한 돌연변이—불과 아미노산 3 개의 차이—에 힘입어 인간 세포의 자물쇠를 따고 아이를 감염시켰음이 명백해졌다.8

이것은 패러다임을 바꾸어놓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이 H5N1은 교과서들이 예언한 재배열형이 아니라 유전자 변이로 약간의 도움을 얻어 인간의 몸에 홰를 튼 조류 바이러스였던 것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H5N1은 불가능해 보였던 종 도약에 성공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녀석이 인간의 폐에서 다른 인간 독감 유전자와 재배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돼지가 바이러스의 필수 불가결한 중간 매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매우 치명적인 대유행병이 임박한 것인지도 몰랐다. 홍콩에 모인 세계적인 독감 전문가들은 정확한 감염 경위를 밝혀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아이가 신제에 위치한 농장이나 동네의 가금류 시장에서 병든 닭과 접촉했을 것이라는 손쉬운 가설은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가정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직접 접촉 경로는 아이가 다니던 보육원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 새끼들이었다. 어린 닭과 오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연구자들이 보육원의 먼지를 수거해 세심하게 조사한 결과 바이러스의 흔적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대규모 혈액 검사도 수행되었다. 친구와 보모 등을 포함해 사망한 아이와 접촉했던 사람들 가운데 소수가 H5N1 항체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그러나 아이의 직계 가족은 아니었다). 가금류 산업 종사자 5명도 이 바이러스와 접촉했었음을 알려주는 면역학적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발병한 사람은 없었다. 그 이상의 실마리는 없었고, 사태는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의 발병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아이의 사망은 단순한 사고였을지도 몰랐다. 국제 공조 속에 모였던 전문가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바이러스학자들은 실험실에서 H5N1/97이 보여준 사나운 모습에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녀석은 보통의 독감 변종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복제됐다. 그것도 보통의 독감 변종들은 살 수 없는 세포들 속에서 말이다. 달걀 속에서 배양하면 달걀이 죽어버린다.〔홍콩의 과학자] 림은 이 바이러스가 에일리언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지아 주 애선스의 수의학 연구자들이 최근에 분리된 인간 변종을 한 가금류 집단에 감염시켰더니 무리 전체가 하루 만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의 살인자를 본 적이 없는 과학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곧바로 보호복을 착용하고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했다. 이와 함께 홍콩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의 안전 규정에 관한 논쟁이 불붙었다. 적어도 미국의 인플루엔자 진단 실험실들은 이렇게 강력한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 갖추어야 할 정교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생물학적 안전성에 관한 연방 규정은 마치 과학 스릴러의 공포스런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인플루엔자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연방 규정은 2004년에 과학자들이 역유전공학reverse genetic engineering을 활용해 1918년의 괴물을 실험실에서 재창조해낼 가능성도 예견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연구소들은 생물학적 안전성 수준 3플러스나 4를 만족시키는 소수의 실험실에서만 H5N1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몇몇 과학자들은 규제 조치를 무시했다(그들은 나중에 안전 규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러한 규제의 배경에는 H1N1 바이러스가 1977년에 갑작스럽게 부활했던 사실에 대한 기억이 잠재해 있었다. 1977년 사태는 러시아, 또는 어쩌면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변종이 의도치 않게 유출되면서 야기된 것이 거의 틀림없었다. 그러나 H5N1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것이었다.9

 


3) Davies, Devil’s Flu, p. 2.
4) D. Alexander, “A Review of Avian Influenza in Different Bird Species,” Veterinary Micro biology 74 (2000) : pp. 3-13.
5) K. Shortridge, J. Peiris, and Y. Guan, “The Next Influenza Pandemic: Lessons from Hong Kong,” Journal of Applied Microbiology 94, Symposium Supplement (2003): p. 71S.
6) Rene Snacken et al., “The Next Influenza Pandemic: Lessons from Hong Kong, 1997,”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5, no. 2 (March-April 1999): p. 198.
7) Davies, Devil’s Flu, pp. 8-12. 광범위한 인터뷰와 홍콩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데이비스의 생생한 보고가 지나 콜라타의 오류투성이 이야기 Flu (New York: Farrar, Straus, Ginoax, 1999)보다 유용하다. 질병통제센터의 기록에 과도하게 의존한 이 『뉴욕 타임스』의 과학 기자는 아이가 죽은 날짜를 잘못 기록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그 아형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8) Robert Webster and Alan Hay, “The H5N1 Influenza Outbreak in Hong Kong: A Test of Pandemic Preparedness,” in Nicholson, Webster, and Hay, Textbook, p. 561.
9) Davies, Devil’s Flu, p. 19; Jocelyn Kaiser, “1918 Flu Experiments Spark Concerns About Biosafety,” Science 306 (22 October 2004): p. 591; and Agriculture Research Service, USDA, “Containing the Hong Kong Poultry Flu Outbreak” (December 1998), see http://www.ars.usda.gov .

오메가 3 지방산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나? 안되나?

나는 Omega-3 fatty acid이랑 n–3 fatty acids랑 Eicosapentaenoic acid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겠다. 대충 문맥을 보니 아마??? 비슷한 것을 가리키는 듯 하다.

작년에 무작위 배정된 12,536명의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인슐린의 심혈관 안전성 관계를 연구하는 실험[1]에서 오메가 3 지방산이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2]를 봤는데, 이거 보고 아~~ 오메가 3는 초 먹을 필요가 없는 거구만 ㅋㅋㅋ 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에는 Amarin 사에서 수행한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3]에서 오메가 3가 심혈관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실험이 발표되면서, Amarin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4]고… 이런 젠장-_-

아놔 그래서, 오메가 3 지방산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나 안되나?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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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ORIGIN Trial Investigators, “n–3 Fatty Acids and Cardiovascular Outcomes in Patients with Dysglycemia”,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2; 367:309-318, DOI: 10.1056/NEJMoa1203859
[2] 메디컬옵저버 AHA, “오메가3 심혈관질환 일차예방 효과 없다” 2017.03.15 06:19:26
[3] A Study of AMR101 to Evaluate Its Ability to Reduce Cardiovascular Events in High Risk Patients With Hypertriglyceridemia and on Statin. The Primary Objective is to Evaluate the Effect of 4 g/Day AMR101 for Preventing the Occurrence of a First Major Cardiovascular Event. (REDUCE-IT) ClinicalTrials.gov Identifier: NCT01492361
[4] 블룸버그 Amarin’s 475% Surge Leaves Its Holders Flush and Sellers Crushed 2018년 9월 25일 오전 3:40 GMT+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