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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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및 역사가로 활동하는 마이크 데이비스 선생의 책이다. 과거에 그의 저서인 ‘자동차 폭탄의 역사'[1]를 인상적으로 읽어서 산 책인데, 사놓고 하도 오랫동안 안 읽고 있다가 인제사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온라인 서점에서 절판상태가 돼 있다-_-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미국에서 조류독감의 위험성에 대한 과소평가 및 저개발 국가에서 얼마나 쉽게 조류독감이 확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 이거 스릴러가 따로 없구만-_- 무서운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공포 영화나 소설보지말고 이거 읽으면 딱이다-_- 그렇게 맛있던 치킨의 맛이 뚝 떨어진다-_-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되게 이성적인 것 같아도, 확산속도가 빠르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여 공포와 패닉이 확산되면, 인권이나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두는 사회 구조는 쉽게 파괴되고, 비극이 일어나기 쉽게된다. 따라서 평상시의 방역체계 확립이 중요한데, 이 책은 미국내 방역체계가 탄저균 테러와 같은 발생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에 훨씬 큰 예산이 할당되어 있고, 조류독감과 같은 발생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무시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사태[2]의 사례를 보니 국내는 주변국들에 비해 방역 시스템이 잘 된 편이 아닌가 싶긴 하다. 2015년 국내 메르스 사태때 좀 허술한 방역체계를 경험한 탓인지 2018년 메르스 환자가 입국했을 때는 비교적 잘 대응한 면[3]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쓰인 시점이 2005년이라 지금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데, 그가 경고하는 조류독감의 대규모 전파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저자가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조금 든다. 어쨌든 발생하기기 쉽든 어렵든 간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이 책에서 경고할만한 수준이 될 것 같다.

이미 절판되긴 했지만, 독서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참고할만한 몇몇 부분[2,4,5]을 인용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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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자동차 폭탄의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2012년 5월 4일
[2] 내 백과사전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확산 2018년 10월 17일
[3] 국민일보 2018 메르스 대응은 ‘80점’…가야할 길 멀다 2018-10-15 13:17
[4] 내 백과사전 2003년 SARS 발발 2018년 10월 15일
[5] 내 백과사전 1997년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의 아종 발견 2018년 10월 14일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 확산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119-125

2003년 가을 내내, 소문과 부인과 음모 속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의 귀환이 은폐되었다. 실제로 전염병은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나중에 H5N1이 8월에 탐지되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중국 관리들은 “중국 전역의 농장들이 몇 년째 조류독감에 노출되어 있다”는 홍콩 『스탠더드』지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11 그들은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광시성의 오리들 사이에서 대규모 유행병이 발병했다는 소문을 일축했고, 타이베이의 동물 검역관들이 12월에 푸젠 성에서 밀수된 야생 오리에서 H5N1을 발견했다는 경고를 타이완 측의 정치 공세라고 매도했다. 푸젠성은 2003년 초 2명을 살해한 바이러스의 진원지일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12

2004년 1월 영국의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비보도를 전제로 주요 독감 연구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발병 사태가 1997년 홍콩 사태 이후 중국 남부의 가금류 생산자들이 비밀리에 잘못된 백신 접종(“통제되지 않은 바이러스 진화 실험”)을 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작은 소란이 빚어졌다. 중국의 사육농들이 닭의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활성화 바이러스를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H5N1 초변종의 진화를 촉진한 것이었다. 유전자형 Z(genotype Z)라는 이 초변종은 곧 집오리들 사이에서 무증상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녀석은 이 안정된 숙주를 바탕으로 직접 접촉과 가금류 밀수, 그리고 어쩌면 야생 조류의 이동을 통해 다른 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공식적인 은폐 행위와 미심쩍은 사육 방식이 한데 얽히면서 녀석이 유행병으로 바뀔 수 있었다.”13

그러나 중국 당국만 전염병 사태를 은폐한 게 아니었다. 2003년 11월 초 타이 전역의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농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닭들이 몸뚱이를 떨기 시작했다. 마치 숨이 막혀 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에서는 걸쭉한 침이 흘러나왔다. 약초를 먹여봤지만 소용없었다. 이윽고 닭들의 안색이 검은 초록색으로, 다시 검정색으로 변하더니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14 방콕 출랄롱코른 대학교의 한 수의학자가 죽은 닭에서 H5N1을 발견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타이 축산부는 그의 경고를 묵살했다. (한 반대파 국회의원은 나중에 “정치적 간섭 때문에 학자와 전문가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고 증언했다.) 걱정이 된 농부가 한 관리에게 죽은 닭들의 시체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는 닭들이 “아무런 의학적 이유 없이” 죽었다는 말만 들었다.15

이렇게 닭들이 한창 죽어나가던 시점에 이상하게도 닭고기 가공 공장들은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추문이 터지고 난 후 방콕 외곽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조합원들은 『방콕 포스트』에 이렇게 증언했다. 그들의 어조는 분노로 상기되어 있었다. “11월 이전에 우리는 하루 평균 9만 마리의 닭을 처리했다. 그런데 11월부터 1월 23일까지는 하루 평균 13만 마리를 도살해야 했다. 닭을 처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 닭들이 병들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장기들이 부어 있었다. 우리는 병의 정체를 몰랐지만, 경영진이 조사를 받기 전에 서둘러 닭들을 처리하고자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10월부터 〔닭을〕 먹지 않았다.”16

아시아 전역에 둘러쳐진 공식적인 침묵의 장벽이 12월에 걷혔다. 서울 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집단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의 농업 당국자들은 H5N1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과 타이의 관료들과는 달리 즉시 국제수역사무국에 이 사태를 보고했다. 일주일 후 대량 살처분 계획이 발표되었다. 5개 지방의 닭과 오리에서 새로 감염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닭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애틀랜타에 있는 질병통제센터의 인플루엔자 전문가 한 명이 하노이의 한 바이러스학자에게서 걱정스러운 이메일을 받았다. 1918년 대유행병의 희생자들 다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바이러스성 폐렴과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환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하노이의 의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자국의 농업 관료들이 적어도 10월부터 가금류 사이에 H5N1이 간헐적으로 유행했음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17 몇 명이 더 죽고 난 다음인 2004년 1월 5일에야 비로소 베트남의 공중보건 관리들은 다급하게 세계보건기구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닐라의 세계보건기구 지역사무소도 곧 베트남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며칠 후 홍콩의 과학자들이 유전자형 Z 프랑켄슈타인이 하노이에서 사망한 어린이 3명의 조직 표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이 두 지방에서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일본도 야마구치현의 닭에서 H5N1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서부의 발병 사실은 처음에 가금류 회사 임원들-그 가운데 한 명은 나중에 자살했다-에 의해 은폐되었다가 한 직원이 익명으로 정보를 유출한 덕분에 겨우 알려졌다.)18

세계보건기구와 그 수의학 부서, 국제수역사무국, 유엔 식량농업 기구는 관료들과 농업 기업 대변인들이 여러 달 동안 대륙 차원에서 진행 중이던 조류독감 유행을 은폐해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 자크 디우프는 나무랄 데 없이 억제된 관료적 어법으로 이렇게 말했다. “관할 국가기관과 국제수역사무국 및 기타 국제기구에 이 전염병이 제때 보고되지 않아 문제의 규모가 커졌다.”)19 세계 언론이 점점 더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들은 중국과 타이의 관리들이 계속해서 쏟아내는 안전 확인 발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중국은 비밀 엄수와 기만정책이라는 예전 장쩌민 분파의 오웰주의 문화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또 다른 수수께끼의 호흡기 감염증이 2004년 1월 광둥을 휩쓸자, 관리들은 이 사스의 망령을 간단히 박테리아성 폐렴 클라미디아로 치부해버리고 세계 보건기구의 현장 조사마저 불허했다. (회의적인 한 중국인 과학자는 『네이처』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사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임상적으로 보아 그 질병은 바이러스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조류 인플루엔자도 배제할 수 없다.”)20

한편, 타이에서도 병든 닭들이 도축되어 해외 시장으로 선적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거짓말이 날조되고 있었다. 농무부 차관 네윈 칫촙은 태연하게 ‘조류콜레라’가 몇 건 발생했다고 밝혔으며, 탁신총리와 각료들은 국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는 음식 축제에 등장해 타이 식 닭요리를 맛있게 시식했다.”21 차룬 폭판드 그룹의 고위 임원 사라신 비라폴은 언론에 공장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타이에 조류독감은 전혀 없다면서 기자들을 안심시켰다. 방콕 언론이 나중에 보도한 것처럼, 정부는 차룬 폭판드 그룹 및 그밖의 대규모 가금류 생산업자들과 공모해 계약 사육농들을 매수하여 전염병을 은폐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기만 정책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대규모 수출업체들은 그 몇 달의 유예 기간 동안 병든 재고분을 가공 판매하는 동시에 공장을 소독하고 사육장을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소규모 생산자들은 방치된 채 전염병으로 인한 인간적 • 경제적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22

결국 1월 말에 농장의 아이 2명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심하게 앓기 시작했고, 그제야 무소속 국회의원 니룸 피따꽛차라가 이끄는 야당 세력이 탁신 총리를 압박해 H5N1이 가금류 생산 지역을 유린하고 있음을 실토하게 할 수 있었다. 각료들은 즉각 지위가 낮은 지방 관리들에게 거짓말의 책임을 전가했다. 탁신의 대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은폐처럼 보이는 것은 절차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실수’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부 기관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는 상부에 보고되어야 할 각종 정보와 관련해 많은 혼란이 있었음을 확인했다”23

그러자 소규모 생산자들은 크게 항의했다. “정부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대기업들을 구해주었다. 결국 고통받는 것은 우리 소농들이다.”24 방콕의 한 신문은 수코타이 지방의 대규모 생산자와 소규모 생산자의 엇갈린 운명을 대조한 기사를 실었다. 차룬 폭판드 그룹과 기타 재벌들에 ‘통합된’ 영리적 사육농들은 12월에 전염병 발생 소식을 통고받고 담당 관리들로부터 항바이러스 백신을 제공받아 닭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소규모 사육농들은 질병과 관련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으며, 결국 그들이 키우던 닭의 대부분이 죽고 한 농부의 10대 아들까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사망한 아이의 어머니인 라웽 분롯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기만 했어도 아들이 병든 닭에게 가까이 가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내 자식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25

타이의 가금류를 수입하던 나라들도 고의적인 기만 행위에 격노했다. 타이에는 조류독감이 없다는 탁신 총리의 말을 직접 듣고 브뤼셀에 막 돌아왔던 유럽연합 보건위원 데이비드 번이 가장 펄펄 뛰었다. 번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언론에 말했다.26 유럽연합, 일본, 한국은 즉각 타이산 가금류의 수입을 정지했다. 부시 행정부는 탁신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개입을 지지해준 대가로 은폐 공작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11) Bruce Einhom, “China: New Plague, Same Coverup?” Business Week Online (10 February 2004)
12) “Bird Flu Found in Smuggled Duck,” Taipei Times, 1 January 2004.
13) Debora MacKenzie, “Bird Flu Outbreak Started a Year Ago” New Scientist, 28 January 2004.
14) Robin McKie et al., “Warning as Bird Flu Crossover Danger Escalates,” Observer, 12 December 2004.
15) “Thailand and Cambodia Admit Bird Flu,” New Scientist, 23 January 2004에 인용된 상원 위원 Nirun Phitakwatchara 의 말.
16) Bangkok Post (30 January, 5-6 February, and 25 March). Isabelle Delforge, “Thailand: The World’s Kitchen,” Le Monde diplomatique (English edition), July 2004에서 인용.
17) 유엔 식량농업기구 하노이 주재 대표 안톤 리체너는 2004년 2월 베트남의 가금류가 “여러 달 동안” 조류독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언론에 밝혔다. Keith Bradsher, “Bird Flu Is Back,” New York Times, 30 August 2004.
18) Justin McCurry, “Bird Flu Suicides in Japan,” Guardian, 9 March 2004.
19) Bangkok Post, 7 February 2004에서 인용.
20) David Cyranoski, “Vaccine Sought as Bird Flu Infects Humans,” Nature 422 (6 March 2003).
21) Richard Ehrlich, “Thailand Denies Bird Flu Cover-Up” (26 January 2004), http://www.scoop.co.nz .
22) “Cover-up Began Last Year,” Nation (Bangkok), 23 January 2004; and Manager (2 February 2004), cited in Chanida Chanyapate and Isabelle Delforge, “The Politics of Bird Flu in Thailand” (19 April 2004), http://www.focusweb.org .
23) “Thai PM Admits Mistakes Over Bird Flu” Guardian Unlimited, 28 January 2004.
24) “Thailand’s Poultry Industry Facing Huge Losses from Bird Flu Crisis” (25 January 2004), http://www.eubusiness.com 에 인용된 Sirima Manapomsamrat의 말.
25) “Sukhothai Death: Victims of the Information Gap,” Nation (Bangkok), 2 February 2004.
26) Delforge, “Thailand: The World’s Kitchen” 에 실린 인터뷰.

진짜로 2004년 아시아 조류독감의 원인이 바이러스 진화 실험이라면 초 끔찍하구만. 이거 무슨 영화도 아니고-_-

2003년 SARS 발발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85-89

2003년 조류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새로운 H5N1이 홍콩에서 분리되기 직전, 세계보건기구 베이징 사무소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광둥에서 ‘이상한 전염병’으로 불과 일주일 만에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주로 의료 종사자들과 식료품 취급자들이 감염되었다. 성도 광저우에서는 겁에 질린 주민들이 전통적으로 호흡기 질병의 민간 치료제로 쓰여온 식초는 물론이고 수술용 마스크와 항생제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며칠 후 중국의 공중보건 관리들은 ‘비전형적인 폐렴’으로 5명이 사망했음을 마지못해 시인했다. 전해 11월 포산에서 발병 사태가 시작되어 약 300명이 감염되었으나 이제 진압되었다는 것이었다. 중국 당국은 그들이 세계보건기구에 전염병 발생 사실을 은폐했음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세계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희생자들에게서 모두 인플루엔자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방과 중앙 행정 당국은 병원균과 관련해 상충되는 설명을 내놓았다. 광둥은 폐렴 미코플라스마 박테리아를 범인으로 지목한 반면 베이징은 클라미디아가 병원균이라고 주장했다. “광둥성 위생청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그밖의 모든 정보는 당 선전국이 배포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발표의 신뢰성은 더욱 흔들렸다.2 이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퍼져나갔다. 당국이 다시 한 번 협박에 나섰다. “질병 관련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나 의사는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3

경험 많온 인플루엔자 연구자들은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설명을 크게 불신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다시 홍콩의 새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미지의 폐렴이 오랫동안 우려해왔던 대유행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해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했다. 게다가 광둥의 보고에 이어 2건, 어쩌면 3건의 H5N1 인간 감염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정황증거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이 질병이 세계로 향하는 중국 남부 지역의 관문 인 홍콩에서 발생한다면 그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타고 퍼질지도 모른다는 추론도 이어졌다.

조사관들이 나중에 여정을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2월 셋째 주에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 폐렴 희생자들을 돌보던 광저우의 한 의사가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2월 21일 홍콩에 도착했다. 이미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메트로폴 호텔 9층의 한 방에 투숙했다. 여기서 그는 불확실한 메커니즘을 통해 같은 층에 머물던 다른 투숙객 16명에게 바이러스롤 전염시켰다. 전염병학 용어로 말하자면 그 의사는 ‘초강력 전파자’ 였다. 항공사 승무원 등 감염된 호텔 투숙객들이 계속해서 각기 다른 다음 목적지로 여행하면서 광둥의 발병 사태는 곧 맹아적 형태의 전 세계적 대유행병으로 변했다. 질병통제센터가 나중에 메트로폴 호텔에서 시작된 발병 사태의 흐름을 정리했다. 홍콩 195건, 싱가포르 71건, 베트남 58건, 캐나다 29건, 아일랜드와 미국이 각각 1건씩이었다. 세계보건기구의 전 세계 발병 경계 및 대응팀의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 세계적 발병 사태는 이렇게 홍콩의 호텔 한 층에서, 단 하루 만에, 단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4

세계보건기구에 포착된 첫번째 메트로폴 감염자는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였다. 그는 하노이에서 중병을 앓게 되었고, 그 병이 조류독감일 가능성에 질겁한 지역 병원의 전문의는 세계보건기구 베트남 대표부의 카를로 우르바니 박사에게 환자를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탈리아인 의사는 2월 28일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사무소에 그 수수께끼의 질병이 드디어 여행을 시작했다고 급히 보고했다. 곧이어 다른 몇몇 나라에서도 발병 사태가 보고되었다. 3월 1일 홍콩에서는 환자 몇 명이 이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여성 승무원 1명(첫번째 메트로폴 희생자로 기록되었다)이 급성 호흡곤란 증세로 싱가포르의 병원에 입원했다. 메트로폴에 머물렀던 중년의 캐나다인 1명이 며칠 후 토론토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가족 5명도 곧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광둥에서 퍼진 소문처럼, 홍콩과 하노이에서 메트로폴 환자들과 접촉한 병원 관계자들이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하노이의 프랑스병원은 폐쇄를 명령받았다. 이어서 그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가 사망했다. 토론토로 돌아간 중년 여성의 아들도 죽었다. 3월 중순경에는 하노이와 홍콩에서 수십 명의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중환자실에 격리되었다. 온타리오 주의 관리들도 스카보로 그레이스 병원을 당분간 폐쇄시켜야만 했다. 우르바니 박사도 병에 걸렸다. 그는 하노이에서 타이의 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거기서 3월 29일 죽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중국과 캐나다와 베트남의 병원 인력들은 겁에 질려 수수께끼의 치명적인 질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치료를 거부했다.

그것이 과연 조류독감이었을까? 3월 15일까지도 병원균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증상을 바탕으로 이 질병을 급히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사스)이라고 명명했다. 같은 날 뉴욕에서 열린 의료 학술회의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던 싱가포르의 젊은 내과의 1명이 임신한 아내 및 장모와 함께 경유지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문제의 스튜어디스를 치료했던 의사였다. 그녀가 거의 100명을 감염시킨 또 다른 초강력 전파자였다. 세계보건기구는 마침내 항공운송업계에 긴급히 경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감염된 다른 승객들이 계속해서 사스를 베이징과 타이완으로 전파하는 것을 막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상황이었다. 3월 말 홍콩과 토론토 당국은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 관리들은 휴교를 명령했고, 주민 1,080명 이상을 격리했다. 토론토에서는 또 다른 병원 한 곳이 폐쇄되었고, 사스 환자와 접촉한 병원 관계자 등 수천 명이 집에서 나오지 말도록 요청받았다.

홍콩에서는 이 전염병으로 주룽의 아모이 가든 아파트에서 악몽과도 같은 사태가 빚어졌다. 아파트 E동은 33층으로, 층마다 8개 가구가 살고 있었다. 주민 한 명의 동생이 3월 중순 처음으로 이 건물에 문제의 바이러스를 옮겨왔다. 그가 사스에 감염된 프린스 오브 웨일스 병원에서 최근에 투석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심한 설사로 고생하다가 형의 집 화장실을 사용했다. 불과 며칠 만에 E동과 옆 건물들에 살고 있던 주민 321명이 사스에 감염되었다. 전염 경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승강기의 공기를 통해 전염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건 당국은 사스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배관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퍼졌다고 결론지었다. 주민들이 “오염된 하수의 작은 물방울을 통해 바이러스와 접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모이 가든 사태가 문제적이었던 까닭은, 고층의 주택, 병원, 슬럼처럼 도시 인구가 고도로 밀집한 환경에서는 환기나 하수 체계의 결함내지 더 심한 경우 그런 시스템 자체의 부재로 인해 바이러스의 전파 정도가 엄청나게 증폭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5

 


2) WHO, “SARS: Chronology of a Serial Killer,” Update 95; and Tabitha Powledge, “Genetic Analysis of Bird Flu,” Scientist, 27 February 2003.
3) Huang in Knobler, Learning from SARS, p. 118.
4) J. Mackenzie et al., “The WHO Response to SARS and Preparations for the Future,” in Knobler, Learning from SARS, p. 43; and Karen Monaghan, “SARS: Down But Still a Threat,” in Knobler, Learning from SARS, p. 249 (CDC chart).
5) I. Yu and J. Sung, “The Epidemiology of the Outbreak of SARS in Hong Kong—What We Do Know and What We Don’t,” Epidemiol. Infect. 132 (2004): pp. 784: Hong Kong Department of Health, “Outbreak of SARS at Amoy Gardens, Kowloon Bay, Hong Kong: Main Findings of the Investigation,” 17 April 2003.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를 최초로 확인하고 병사한 Carlo Urbani 선생의 영웅적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1997년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의 아종 발견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은이), 정병선 (옮긴이) | 돌베개 | 2008-01-07 | 원제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2005년)

p60-66

조류 우표가 발행되기 한 달 전인 1997년 3월, 웬룽과 마이포 습지 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심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ighly Pathogenic Avian Influenza(HPAI) 증상을 보였다. 피트 데이비스가 설명한 것처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매우 위험하다. 이 바이러스는 혈류를 타고 확산되면서 모든 조직과 기관을 감염시킨다. 뇌, 위, 폐, 눈 모든 곳에서 과다 출혈이 발생한다. 그러다가 볏에서 발톱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녹아내린다.”3 이 질병이 근처의 가금류 농장 두 곳으로 퍼졌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흔히 그렇듯, 거의 모든 가금류가 죽었다. 홍콩 대학교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1959년에 최초로 분리된 아형인 H5N1인 것으로 확인했다. 동물 바이러스학자들이 녀석을 본 것은 단 두 번, 닭 2,000만 마리를 살처분해야 했던 1983년의 펜실베이니아 사태와, 보다 최근인 1991년 영국 칠면조들의 대몰살사태뿐이었다.

소위 ‘가금류 역병’이라고 하는 이 섬뜩한 병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1878년이지만, 1955년까지는 그 병원균의 정체가 인플루엔자 A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의 주요 철새 이동 경로에 걸쳐 있던 가금류 농장에서 병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그것이 오리와 기타 물새류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른 모든 인플루엔자처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도 수수께끼 같은 녀석이다. 녀석은 상이한 국가, 대륙, 반구의 닭과 칠면조 집단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타오른다. 최근까지 녀석은 비교적 드물게만 발생했다. 1959년부터 홍콩에서 갑작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 1997년 사이에 모두 15번의 국지적인 발병이 있었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H5나 H7을 지닌 인플루엔자 아형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들 헤마글루티닌에 특별히 중요한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헤마글루티닌의 분할면에 존재하는 이 아미노산이 바이러스가 더 광범위한 조직과, 어쩌면 더 다양한 종을 공략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병독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4 그러나 조류의 이런 슈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심지어 병든 닭을 돌보고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대학살 후 청소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도 위험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홍콩의 연구자들은 이렇게 강조했다.

“수많은 조류 바이러스의 아형을 실험실에서 직접 인간에게 전이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종의 장벽은 뛰어넘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5

농업 당국이 4월까지 남아 있던 병든 닭을 전부 살처분하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폭넓은 조사와 검사를 수행했지만 신제의 닭 농장과 홍콩의 생가금류 시장에서 더 이상의 H5N1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의학자들은 안도했다. 그런데 세 살 난 남자아이 하나가 5월 중순 주룽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에 입원했다. 이전까지 매우 건강했던 아이는 갑자기 인후염과 고열,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일급의 간호를 받았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 되었고, 결국 5월 21일에 사망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일련의 증상이 아이의 몸을 가차 없이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러스성 폐렴,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 라이 증후군(뇌압이 올라가고 간에 장애가 생겨 혼수상태에 빠지는 병—옮긴이)에 신음하던 아이는 나중에는 신부전과 간부전 상태에 빠졌다. 지역 보건 당국이 사망한 아이의 목에서 나온 분비물을 검사했다. 미지의 특이한 인플루엔자 아형이 발견 되었다.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하고 있는 네 기관 가운데 두 곳(애틀랜타 질병통제센터런던 국립의학연구소)과 로테르담의 국립 인플루엔자 센터로 6월에 냉동 표본이 전달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홍콩 보건 당국의 경계 태세에 환호를 보낼 만하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홍콩은 바이러스 변종들의 종간 전염이 가장 빈번하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 남부 지역 인플루엔자 감시의 파수병이다. 만약 그 아이가 인근 광둥이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가난한 나라에서 사망했다면 병원균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그렇게 열심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6 로테르담 연구팀이 가장 먼저 이 치명적 변종의 정체를 밝혀냈다. 데이비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 연구팀은 7월 내내 홍콩 바이러스를 인간 및 돼지 인플루엔자의 데이터와 대조하는 작업에 매달렸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바이러스는 그 어떤 항혈청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황한 연구팀은 8월 초 유명한 인플루엔자 권위자 로버트 웹스터의 멤피스 연구소에서 공수해온 H5N1 시약으로 녀석을 검사해보았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완전히 일치했던 것이다.7

네덜란드의 실험 결과는 곧이어 애틀랜타와 런던에서도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H5N1이 실제로 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홍콩에서 그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홍콩의 공중보건 과학자들이 실수로 오염된 표본을 보내왔을 것이라는 설명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나 대강 넘겨짚을 일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물론이고 질병통제센터와 세계보건기구가 홍콩 연구소의 상황을 재점검하기 위해 웹스터를 포함한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곧 홍콩의 과학자들이 절차를 정확히 지켰음을 확인했다. 오염 같은 것은 없었다. H5N1이 살인자였고, 웹스터가 나중에 확인한 것처럼 녀석은 3월에 닭들을 죽인 변종과 거의 동일했다. 이 조류 바이러스가 해마글루티닌의 미세한 돌연변이—불과 아미노산 3 개의 차이—에 힘입어 인간 세포의 자물쇠를 따고 아이를 감염시켰음이 명백해졌다.8

이것은 패러다임을 바꾸어놓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이 H5N1은 교과서들이 예언한 재배열형이 아니라 유전자 변이로 약간의 도움을 얻어 인간의 몸에 홰를 튼 조류 바이러스였던 것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H5N1은 불가능해 보였던 종 도약에 성공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녀석이 인간의 폐에서 다른 인간 독감 유전자와 재배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돼지가 바이러스의 필수 불가결한 중간 매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매우 치명적인 대유행병이 임박한 것인지도 몰랐다. 홍콩에 모인 세계적인 독감 전문가들은 정확한 감염 경위를 밝혀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아이가 신제에 위치한 농장이나 동네의 가금류 시장에서 병든 닭과 접촉했을 것이라는 손쉬운 가설은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가정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직접 접촉 경로는 아이가 다니던 보육원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 새끼들이었다. 어린 닭과 오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연구자들이 보육원의 먼지를 수거해 세심하게 조사한 결과 바이러스의 흔적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대규모 혈액 검사도 수행되었다. 친구와 보모 등을 포함해 사망한 아이와 접촉했던 사람들 가운데 소수가 H5N1 항체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그러나 아이의 직계 가족은 아니었다). 가금류 산업 종사자 5명도 이 바이러스와 접촉했었음을 알려주는 면역학적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발병한 사람은 없었다. 그 이상의 실마리는 없었고, 사태는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의 발병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아이의 사망은 단순한 사고였을지도 몰랐다. 국제 공조 속에 모였던 전문가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바이러스학자들은 실험실에서 H5N1/97이 보여준 사나운 모습에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녀석은 보통의 독감 변종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복제됐다. 그것도 보통의 독감 변종들은 살 수 없는 세포들 속에서 말이다. 달걀 속에서 배양하면 달걀이 죽어버린다.〔홍콩의 과학자] 림은 이 바이러스가 에일리언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지아 주 애선스의 수의학 연구자들이 최근에 분리된 인간 변종을 한 가금류 집단에 감염시켰더니 무리 전체가 하루 만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의 살인자를 본 적이 없는 과학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곧바로 보호복을 착용하고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했다. 이와 함께 홍콩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의 안전 규정에 관한 논쟁이 불붙었다. 적어도 미국의 인플루엔자 진단 실험실들은 이렇게 강력한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 갖추어야 할 정교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생물학적 안전성에 관한 연방 규정은 마치 과학 스릴러의 공포스런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인플루엔자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연방 규정은 2004년에 과학자들이 역유전공학reverse genetic engineering을 활용해 1918년의 괴물을 실험실에서 재창조해낼 가능성도 예견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연구소들은 생물학적 안전성 수준 3플러스나 4를 만족시키는 소수의 실험실에서만 H5N1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몇몇 과학자들은 규제 조치를 무시했다(그들은 나중에 안전 규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러한 규제의 배경에는 H1N1 바이러스가 1977년에 갑작스럽게 부활했던 사실에 대한 기억이 잠재해 있었다. 1977년 사태는 러시아, 또는 어쩌면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변종이 의도치 않게 유출되면서 야기된 것이 거의 틀림없었다. 그러나 H5N1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것이었다.9

 


3) Davies, Devil’s Flu, p. 2.
4) D. Alexander, “A Review of Avian Influenza in Different Bird Species,” Veterinary Micro biology 74 (2000) : pp. 3-13.
5) K. Shortridge, J. Peiris, and Y. Guan, “The Next Influenza Pandemic: Lessons from Hong Kong,” Journal of Applied Microbiology 94, Symposium Supplement (2003): p. 71S.
6) Rene Snacken et al., “The Next Influenza Pandemic: Lessons from Hong Kong, 1997,”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5, no. 2 (March-April 1999): p. 198.
7) Davies, Devil’s Flu, pp. 8-12. 광범위한 인터뷰와 홍콩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데이비스의 생생한 보고가 지나 콜라타의 오류투성이 이야기 Flu (New York: Farrar, Straus, Ginoax, 1999)보다 유용하다. 질병통제센터의 기록에 과도하게 의존한 이 『뉴욕 타임스』의 과학 기자는 아이가 죽은 날짜를 잘못 기록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그 아형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8) Robert Webster and Alan Hay, “The H5N1 Influenza Outbreak in Hong Kong: A Test of Pandemic Preparedness,” in Nicholson, Webster, and Hay, Textbook, p. 561.
9) Davies, Devil’s Flu, p. 19; Jocelyn Kaiser, “1918 Flu Experiments Spark Concerns About Biosafety,” Science 306 (22 October 2004): p. 591; and Agriculture Research Service, USDA, “Containing the Hong Kong Poultry Flu Outbreak” (December 1998), see http://www.ars.usda.gov .

위에서 주석에 언급한 Flu는 국내에 역서[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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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독감 2019년 1월 26일

오메가 3 지방산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나? 안되나?

나는 Omega-3 fatty acid이랑 n–3 fatty acids랑 Eicosapentaenoic acid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겠다. 대충 문맥을 보니 아마??? 비슷한 것을 가리키는 듯 하다.

작년에 무작위 배정된 12,536명의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인슐린의 심혈관 안전성 관계를 연구하는 실험[1]에서 오메가 3 지방산이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2]를 봤는데, 이거 보고 아~~ 오메가 3는 초 먹을 필요가 없는 거구만 ㅋㅋㅋ 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에는 Amarin 사에서 수행한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3]에서 오메가 3가 심혈관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실험이 발표되면서, Amarin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4]고… 이런 젠장-_-

아놔 그래서, 오메가 3 지방산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나 안되나?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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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31
medical xpress Omega-3 fatty acids tied to fewer childhood asthma symptoms MARCH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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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ORIGIN Trial Investigators, “n–3 Fatty Acids and Cardiovascular Outcomes in Patients with Dysglycemia”,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2; 367:309-318, DOI: 10.1056/NEJMoa1203859
[2] 메디컬옵저버 AHA, “오메가3 심혈관질환 일차예방 효과 없다” 2017.03.15 06:19:26
[3] A Study of AMR101 to Evaluate Its Ability to Reduce Cardiovascular Events in High Risk Patients With Hypertriglyceridemia and on Statin. The Primary Objective is to Evaluate the Effect of 4 g/Day AMR101 for Preventing the Occurrence of a First Major Cardiovascular Event. (REDUCE-IT) ClinicalTrials.gov Identifier: NCT01492361
[4] 블룸버그 Amarin’s 475% Surge Leaves Its Holders Flush and Sellers Crushed 2018년 9월 25일 오전 3:40 GMT+9

2018 이그 노벨상

BBC 기사[1]에 2018 이그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2]되었다길래 함 검색을 해 봤다. ㅋ

의학부문 수상(Medicine Prize)은 롤러 코스터가 신장결석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3] 같다. 신장결석 환자는 정말 죽을만큼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헉 정말 신장결석 환자를 롤러코스터에 태운건가?? 싶어서 논문[3]을 보니 그런건 아니고 신장을 시뮬레이션한 기구를 롤러코스터에 태운 것 같다. 롤러코스터 앞에도 태워보고, 뒤에도 태워보고 여러가지 해 본 것 같다. 아무래도 실용적 적용은 힘들 듯. ㅎ

의학 교육부문 수상(Medical Education Prize)으로 자가 대장내시경에 대한 이야기[4]인데, 소화기 전문의가 자신의 대장을 직접 내시경으로 검진하고 싶을 때 도움이 될만한 팁을 설명한 글 같다. 근데 정작 원문[4]을 확인해보니 자신의 경험담을 짧게 한 페이지 정도 서술해 놓은게 다였다. 헐… 그래도 좀 도움이 되도록 자세하게 썼으면 좋았을 텐데… 원문[4]에는 캐리커쳐만 있는데, BBC가 수상자 본인의 사진을 어디서 구한 건지, 기사[1]에 이 사진이 있다.

근데 에세이[4] 자체는 2006년 글인데, 꽤 오래전 연구라도 걍 재밌으면 주는 듯-_-

남극 탐험 도중 자기 자신을 직접 맹장수술했던 의사 Leonid Rogozov[5]가 갑자기 생각난다. ㅋ 자기 자신을 수술한 사례가 위키피디아에 몇 건 소개되어 있다.

나머지 수상작은 홈페이지[2]에서 각자 확인하시길 바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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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5
ねとらぼ 「座ったままでの大腸内視鏡検査」を自分のお尻で実験・研究 イグ・ノーベル賞、12年連続日本人が受賞 2018年09月14日 11時25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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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BC Ig Nobel win for kidney stone removing roller-coaster 14 September 2018
[2] Winners of the Ig® Nobel Prize (improbable.com)
[3] “Validation of a Functional Pyelocalyceal Renal Model for the Evaluation of Renal Calculi Passage While Riding a Roller Coaster,” Marc A. Mitchell, David D. Wartinger, The Journal of the 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 vol. 116, October 2016, pp. 647-652. doi:10.7556/jaoa.2016.128
[4] “Colonoscopy in the Sitting Position: Lessons Learned From Self-Colonoscopy by Using a Small-Caliber, Variable-Stiffness Colonoscope,” Akira Horiuchi and Yoshiko Nakayama, Gastrointestinal Endoscopy, vol. 63, No. 1, 2006, pp. 119-20. DOI: https://doi.org/10.1016/j.gie.2005.10.014
[5] 중앙일보 스스로 자신의 맹장 수술한 전설적 의사 2009/12/27 19:05

하드론을 이용한 암 치료법

프랑스 국립과학 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소식지인 CNRS 뉴스의 기사[1]에 하드론 치료법에 대한 기사가 있어 포스팅해봄.

입자 가속기로 가속된 입자가 물질을 통과할 때, 특정 깊이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방출한 후, 급격히 운동 에너지를 잃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Bragg peak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 원리를 이용하면 인체에 가속된 입자를 쏘아서 특정 부위의 세포만 정밀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암은 단일 질병이 아니라 워낙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고, 각 케이스마다 처리법이 천차만별인 듯 하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The Hallmarks of Cancer와 같이 암을 정형화하고,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도 없지는 않으나, 아직까지 크게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2] 하다.

다양한 암들 중에서 화학요법이 잘 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수술로도 절제하기 매우 까다로운 부위에 있을 경우, 대단히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모양인데, 이 경우 이런 하드론을 이용한 치료법을 시도하는 듯 하다. X선 등을 이용한 방사선 요법은 투과율이 높아서 다른 세포의 파괴도 많이 일어나는 모양인데, Bragg peak 때문에 다른 장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는 Particle therapy라는 용어로 등록되어 있고, 국내에서는 ‘양성자 치료’, ‘중입자 치료’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다. 간단한 원리로 몇몇 홈페이지[3,4]를 참고하면 좋다. 국내에서도 세브란스 병원이 무려 3000억(!)을 투자하고 있다[5]고 하니, 어쩌면 국내에서도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

양성자를 가속시켜 쏘는 방법과 탄소핵을 가속하여 쏘는 방법이 있는 듯 하다. 탄소는 양성자보다 무거워서 높은 타격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 양성자를 쏘면 ‘양성자 치료’이고, 탄소원자를 쏘면 ‘중입자 치료’라 부르는 듯 하다. 그런데 CNRS 기사[1]를 보니 높은 원자량은 세포와 충돌하여 낮은 원자량의 원소로 분해되는데, 이 경우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아직까지 신기술이라 그런지 거의 연구된 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환자라면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닐 듯 하다. 특정 암의 경우 3년 생존율이 74%에 달한다는 주장[6]도 있다. 이 치료를 받을 정도면 화학요법이나 여러 치료법을 이미 시도하여 실패한 환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물론 다른 치료법들과 벙행했을 것이므로 단독치료법의 유효성이라 생각하기 어렵지만, 여하간 나름 뛰어난 치료법이라 생각한다.

뭐 입자가속기가 싼 물건은 아니다보니, 의학자들이 이런 종류의 연구를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은 듯 한데, 기사[1]에서는 척박한 프랑스 연구환경에 대한 개탄(?)도 조금 나온다. 프랑스에서 전문적으로 이런 하드론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해 CYCLHAD라는 기관이 새로 개설된 모양이다.

입자가속기를 사용해야 하므로 치료비가 어마무지막지한 모양인데, 아마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가 될 듯-_- CAR-T도 치료비가 어마어마 하다[7]고 하던데, 그것보다 더 많이 나오려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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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국제신문 ‘중입자 가속기’ 매듭 풀었다 2018-10-11 19: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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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2
연합뉴스[8]에 언급된 논문은 Kim, Tae H.; et al.[9]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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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5
메디칼타임즈 양성자 치료증례 5만건이나 쌓여있는데 활성화는 요원 2019-05-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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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NRS news Hadron Therapy Ready for Takeoff 07.05.2018
[2] 내 백과사전 Robert A. Weinberg의 기고글 :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나? 2015년 3월 25일
[3] 양성자치료 원리 (국립 암센터)
[4] 중입자 치료란? (한국 원자력 의학원)
[5] 조선일보 세브란스, ‘중입자 치료기’ 국내 최초 도입…암 환자 일본 원정 치료 사라질 듯 2018.03.29 17:47
[6] 후생신보 간암 양성자 치료, 3년 생존률 74% 달해 2018/06/29 [16:39]
[7] 내 백과사전 CAR-T의 FDA 허가 2017년 7월 15일
[8] 연합뉴스 “간암에 양성자치료 효과적…1기 치료자 생존율 69%” 2019-03-11 10:02
[9] Kim, Tae H.; et al. 2019. “Does Risk-Adapted Proton Beam Therapy Have a Role as a Complementary or Alternative Therapeutic Option for Hepatocellular Carcinoma?” Cancers 11, no. 2: 230. https://doi.org/10.3390/cancers11020230

뉘른베르크 강령 Nuremberg Code

루크 디트리치 저/김한영 역, “환자 H. M.“, 동녘사이언스, 2018

p158-161

다하우와 여타 강제수용소에서 나치가 행한 연구는 인류 역사에서 비 인간적인 인간실험 중 가장 잔인하고 장기적인 사례지만, 최초는 아니었다. 망가진 것은 항상 온전한 것을 비춰주었고, 역사를 통틀어 그 망가짐은 의도적일 때가 많았다. 기원전 300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헤로필로스에라시스트라토스는 인간 해부술을 개척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일부는 죽지 않았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 두 의사의 연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켈수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통증 외에도 다양한 질병이 여러 체내기관에 발생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기관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들을 치료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죽은 자들의 몸을 열고 그 들의 내장과 장기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으로는 지금까지 해라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가 그런 일을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했다 한다. 그들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왕들이 공급해준 범죄자들)의 몸을 열고, 자연이 감춰놓은 기관들을 들추면서 각 기관의 위치, 색, 형태, 크기, 배치, 단단함, 부드러움, 매끄러움, 관계, 작용, 기능 약화, 한 기관이 다른 기관 속에 끼워져 있거나 안겨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했다.28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는 일련의 생체 실험을 인간에게 하라고 직접 명령을 내렸다 한다. 자궁 속에서 남아가 여아보다 더 천천히 발달하는지를 두고 당시에 토론이 벌어졌다. 이 문제를 확인해보고자 클레오파트라는 몸종 여러 명에게 강제로 임신을 시킨 후 다양한 임신 단계에서 살아 있는 여자를 해부했다고 전한다.29

생체실험은 드물고 극단적인 경우지만, 의학의 역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위태로운 실험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1796년에 낙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천연두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그들이 ‘우두’라는 비교적 경미한 병에 걸린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론을 테스트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의 여덟 살 된 아들 필립스(블로그 주인 주 : 이름이 Phipps이므로 핍스의 오기 같음)의 팔에 작은 절개들을 나란히 낸 다음, 동네 낙농장에서 일하는 여자의 우두에서 채취한 고름을 피부 안에 주입했다. 다음 한 주 동안 필립스는 우두의 증상인 미열과 체내외 통증을 보였고, 얼마 뒤 완전히 회복했다. 6주 뒤에 제너는 필립스의 팔을 다시 절개해서는 당시만 해도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이라 알려져 있는 천연두 균을 투입했다. 필립스가 아무 증상도 보이지 않자 제너는 잇달아 도합 스무 번이나 균을 투입했다.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마침내 제너는 자신이 천연두 백신을 발견했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발견은 천연두를 박멸했을뿐더러 근대 면역학을 태동시키고 그 후 수많은 다른 질병의 백신 개발을 이끌어냄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제는 에드워드 제너가 역사상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인간의 목숨을 구했다고 주장해도 설득력이 있다. 이 점에 비추어 여덟 살 된 소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은 용납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의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실험들은 적이 염려스럽고 판단을 내리기가 애매하다.

1845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의사인 매리언 심스는 흑인소녀 열네 명을 대상으로 4년에 걸친 수술실험 계획에 착수했다. 열네 명은 모두 노예였고, 대부분은 그가 구입해서 그의 사유지에서 살아 있는 실험 재료로 키운 아이들이었다. 수술 목적은 방광과 질이 어떤 이유로 연결 되어 있어 치명적인 출산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당시에 흔했던 방광 질루의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심스는 어떤 노예들에겐 서른 번 이나 수술을 했다. 마취는 갓 태어난 기술이라 그의 농장에선 전혀 사용 되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와 감염으로 인한 죽음을 본 뒤에 심스는 효과적인 수술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백인 여자들을 수술하기 시작했다. 심스는 나중에 미국의사협회 회장이 되었고, 지금은 현대 부인과 의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도 뉴욕 센트럴파크를 방문 한 사람들은 뉴욕의학아카데미에서 길을 건너면 오른쪽에 실물보다 더 큰 심스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1932년에 미국 공중보건청은 터스키지 매독실험에 착수했다. 앨라배마 주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의 영향을 모니터하는 실험으로, 대상자들에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매독은 방치하면 목숨이 위험하고, 치료하면 쉽게 낫는다. 연구자들이 페니실린을 몇 번만 처방했다면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병이 진행되는 처방했다면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병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인류의 역사 중 대부분에서 인간 실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엄격히 공리주의적이었다. 과학적 이익이 충분하면 거의 어떤 희생도 정당화되었다. 1895년의 논문 〈생명과 앎의 상대적 가치〉에서 시카고대학의 저명한 화학자인 에드윈 슬로손은 이 태도를 요약해, “한 인간의 생명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의 목표는 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멸했고, “그와 정반대로 과학의 목표는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인간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라 주장했다.30

하지만 뉘른베르크의 의사 재판이 끔찍한 실험들을 폭로하자 그런 사고방식이 ‘도덕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또한 근심스럽게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뉘른베르크 재판은 다른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과학 연구의 도덕성을 엄한 눈으로 보게 했다. 실제로 나치 과학자들의 주요 변론은, 자신들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이 항상 해왔던 일이며, 그들의 실험이 유난히 잔인했을지는 몰라도 전 세계에는 이런저런 인간 실험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1947년 8월 20일에 법정은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스물세 명 모두에게 교수형이 언도된 것은 누가 봐도 당연했다. 하지만 나치의 실험은 다른 곳에서 행하는 의학 연구와 종류만 달랐을 뿐 성격까지 다르진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법정은 차후에 모든 인간 실험에 적용해야 하는 기본 원칙을 새롭게 규정해 판결문에 포함시켰다. 〈뉘른베르크 강령〉으로 알려지게 된 그 원칙은 그 자체로 법률적 효력은 없었지만 대단히 영향력 있는 틀이 되어, 의학실험 행위에 대한 새로운 법률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28 Demedicina, by Celsus, translated by W. G. Spence (Boston:Loeb Classical Libary, 1935)
29 “Cleopatra the Physician,” by Joseph Geiger, Zutot:Perspectives on Jewish Culture (2001)
30 “The Relative Value of Life and Learning,” by E. E. Slosson, The Independent, 1895

뉘른베르크 강령이 뭔지 처음 알았음. ㅎㅎ 국가 생명윤리정책원 홈페이지[1]에 강령의 전문 번역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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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뉘른베르크 강령(Nuremberg Code) (nibp.kr)

대변 이식의 존재론적 질문 : 똥이란 무엇인가?

Science News의 기사[1]에 제목이 웃겨서-_- 포스팅해봄. ㅋ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전하여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는 시술법이 있는 모양인데, Fecal microbiota transplant라고 부르는 것 같다. 국내에서도 작년부터 세브란스 병원에서 시술되는 듯[2]하다.

나름 신종 치료술이고 인기가 꽤 있는 모양인데, 똥 은행-_-이라 할 수 있는 OpenBiome이라는 회사에서는 2012년 이래로 3만 종류 이상의 똥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1]

당연히 FDA 측에서는 향후 일어날 지 모를 의료 사고를 막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시술에 규제 방법을 고심하게 되는데, 시술되는 똥을 의약품으로 봐야 하는지, 인체 장기의 일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분변 이식 시술법은 약제의 복용과 장기의 이식 사이에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게 문제다. 기사[1] 중간에 시술의 연속성에 대한 도표가 하나 있는데, 개인의 분변을 개인에게 직접 이전하는 시술부터, 농축된 미생물 캡슐을 삼키는 시술이나, 다수의 사람에게 추출한 배양된 박테리아 칵테일을 삼키는 시술까지 다양하다.

2013년에 FDA에서는 이 시술법을 의약품으로 규정했던 모양인데, von Rosenvinge라는 사람이 이를 두고 (아마 비꼬려는 의도인 듯) ‘이것은 우리 모두 평균적으로 하루 1회 의약품을 배설하는 제약공장이라는 것 의미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ㅋㅋㅋ

뭐 여하간 모든 신기술은 사회적 도입에 따르는 성장통을 겪는 법이라, 자연스러운 논란 같아 보이긴 한데, 이러한 분변 이식 시술법 때문에 ‘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하게 되다니 좀 재미있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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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2
[바이오토픽] 대변이식을 이용하여 코알라를 멸종위기에서 구해 (m.ibri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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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0
헬로디디 한국인의 ‘똥’ 미생물···자식처럼 돌보는 ‘괴짜 박사’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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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매일신문 대변이식, 똥이 약이다! 2018-12-25 10: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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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4
BBC ‘Super poo donors’ wanted 6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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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6
조선일보 환자와 제약사 간의 ‘장내 세균’ 치료제 전쟁 2019.03.15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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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3
한겨레 똥이 약이라고?…대변이식으로 망가진 장 고친다 2019-03-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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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1
동아사이언스 대변이식술 첫 공식 사망자 나와…美FDA “임상시험 중단” 촉구 2019년 06월 19일 16:57

 


[1] science news To regulate fecal transplants, FDA has to first answer a serious question: What is poop? 10:00AM, MAY 18, 2018
[2] 한국일보 “똥도 이식”… 건강한 사람 대변 이식해 장염 치료 2017.06.26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