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미터 14좌 등반 사망률(2012)

20130601_woc702
이코노미스트지에 14좌의 등반사망률[1]이 올라와 있다.

얼마전에 알 자지라에서 80대 노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2]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미우라 유이치로라는 사람인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에베레스트에 세 번이나 오른 전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자체로는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에베레스트는 8000미터 고봉 14좌 중에서 등반가 대비 사망률이 비교적 낮은 축에 속하는 산이다. 2012년 3월까지의 기록으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산은 아이러니하게도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의 안나푸르나인데, 정상에 도전한 243명 중 61명이 사망하여 거의 4명중 한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안나푸르나는 14좌 중에서 인류에게 가장 먼저 정상을 허용한 산이지만 박영석 대장이 운명한 곳[3]이기도 하다.

 


2013.6.1
에베레스트 정상등정 60주년을 기념하여 알 자지라의 프로그램인 101 East에서 에베레스트 다큐멘터리를 방영[4]한 모양이다. 에베레스트에 사람 초 많네. 완전 시장 바닥이다. 켁. 영상 막판에 미우라 옹도 등장한다.

 


2016.8.8
Bodies left on Everest (img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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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27
science alert Mount Everest Is Now So Busy Climbers Are Dying in Traffic Jams 27 MAY 2019

 


[1] 이코노미스트 Stairway to heaven May 29th 2013, 14:52
[2] 알 자지라 Japanese octogenarian breaks Everest record 24 MAY 2013
[3] 내 백과사전 박영석과 안나푸르나 2011년 11월 5일
[4] 알 자지라 Everest 60th Anniversary 30 May 2013 15:10

[서평] 에베레스트의 진실

에베레스트의 진실
마이클 코더스 (지은이), 김훈 (옮긴이) | 민음인 | 2010-02-26 | 원제 High Crimes: The Fate of Everest in an Age of G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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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14좌 완등자로 더 유명한 라인홀트 메스너의 산악 문학[1]을 읽다보면 에베레스트 등반은 극한을 이겨내는 인간의 고고한 취미로 비치겠지만, 인간사가 뭐든 그렇듯이 돈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일전에 크라카우어저서[2]를 소개한 바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으로 인해 오히려 상업 등반대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경험이 별로 없는 초심자를 산에 올려 놓는 것이 돈이 되는 것이다.

저자인 Michael Kodas는 자신이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합류하면서 있었던 팀 내부 갈등과, 닐스 안테사나가 경력을 속인 사기꾼 가이드에게 버림받고 동사하는 과정, 두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사건을 전개하면서 중간중간에 자신이 조사했던 에베레스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범죄행위들을 짬짬이 소개하고 있다. 엉터리 산소통을 속여 팔아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이들, 환경 등반대라고 속이면서 환경정화에는 거의 노력하지 않는 사기꾼들, 준비없이 와서 다른 이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이들, 남의 정상등정 사진을 훔쳐 자신이 등정했다고 사기치는 인간들…

이런 상황에서 좀도둑 같은 것은 별반 큰 범죄에 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 높은 곳에서의 도둑질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일전에 포스팅한 에베레스트에서의 범죄[3]도 참조바란다. 후반부(p426)에는 죽어가는 David Sharp를 보면서 지나친 많은 산악인에 대한 사건의 경과와 논쟁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친구 수학선생이었다고 하는데, 빈궁한 사전 준비로 인해 재앙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왠지 내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면 딱 이 사람 꼴이 될 것 같아 씁쓸하다-_- 안타깝게도 그런 죽음의 지대에서 쓰러지게 되면 자신의 정상등정의 꿈을 희생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정하기는 해도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책의 맨 마지막(p480)에는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국경 수비대가 티벳인을 학살하는 랑파 라 학살사건을 직접 목격한 많은 등반가들이 중국에서 등산 입장을 제한할까 두려워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들에게 산행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의미할까.

책 중간에 2004년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 사고[4]에 관한 묘사가 잠시 나온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역시 인간사 별거 없는 거 다들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해오고 있던 것이긴 하지만, 새삼 에베레스트 등정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2015.9.30
가디언 Mount Everest to be declared off-limits to inexperienced climbers, says Nepal Monday 28 September 2015 14.07 BST
아웃사이드 매거진 What the Everest Climbing Restrictions Really Mean Sep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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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
이코노미스트 How to dispose of human waste on Mount Everest Oct 25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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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4

 


[1] 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드 메스너 (지은이), 김영도 (옮긴이) | 필로소픽 | 2013-10-25
[2] 내 백과사전 [서평] 희박한 공기 속으로 2012년 10월 14일
[3] 내 백과사전 에베레스트에서의 범죄 2013년 3월 29일
[3] 내 백과사전 2004년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 사고 2013년 3월 31일

2004년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 사고

마이클 코더스의 책에는 한국인 세 명이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하는 장면이 잠시 묘사되어 있는데, 책에는 이들이 누구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시기에 일어난 한국인 에베레스트 조난사고를 검색해보면 2004년 5월에 있었던 계명대학교 에베레스트 원정대원 세 명(박무택, 백준호, 장민)의 사망사고 밖에 없으므로, 책에서 묘사하는 장면은 아마 이 사고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사고는 검색해보면 아직도 많은 관련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이클 코더스 저/김훈 역, “에베레스트의 진실“, 민음인, 2010

p285-

우리의 캠프 동료들인 댄 로츠너와 댄 매기트는 망가진 산소 조절 장치를 교체한 뒤 코네티컷 팀보다 하루 먼저 정상에 올랐다. 로츠너는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정상 바로 아래 지점에서 쓰러져 고정로프에 매달려 있는 한국인 곁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 물을 좀 달라고 부탁했지만 로츠너 본인도 정신력과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달했고, 그의 세르파가 빨리 가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죽어가는 사람 곁을 그냥 지나쳤다.

수요일 밤 로츠너가 제 3캠프에 내려온 뒤, 전진캠프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는 두 셰르파가 그 한국인에게 산소와 침낭, 음식, 더운 물을 주려고 애썼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한국인은 설맹 상태가 되었으며, 두 손과 두 발이 동상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조지는 말했다.
“모든 팀이 다 달려든다 해도 그 친구한테 해 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아래에서는 한국 등반대의 또 다른 대원 하나가 제2스텝에 걸려 있는 사다리 밑으로 추락해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남아프리가 산악인인 안드레 브레덴캄프는 사고 직후 그 한국인을 발견했다.

남아프리카 스카우트협회 총재인 브렌덴캄프는 일간지인 《더 위트니스》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눈밭에 누워 있었고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도 그냥 놔두고 내처 발길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업고 가거나 끌고 갈 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든 지경이었으니까요. 일부 사람들은 여분의 겉옷을 꺼내 그 사람 몸을 덮어 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에게 가만히 쉬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그 사람을 재워서 평온하게 죽게 하려 애썼습니다.”

브레덴캄프는 남아프리카에 돌아와 《케이프타임스》 기자에게 “우리가 눈으로 그 사람 몸을 덮어주자 그 사람은 바로 잠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등반대의 세 번째 대원은 정상에서 하산한 뒤 자기 친구들을 돕기위해 다시 방향을 돌려 산 위로 올라갔다.

이틑날 아침, 그 한국 등반대 세 사람은 모두 사망했다. 코네티컷 팀이 댄 로츠너가 한국인 곁을 지나쳤던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 시신은 여전히 로프에 몸이 연결된 상태에서 경사면에 누워 있었다. 그는 장갑을 끼지 않은 양손을 마치 기도하듯 앞으로 한데 모으고 있었다. 두 눈을 뜨고 있는 으스스한 데스마스크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데이브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그 눈 피라미드의 제3스텝 위에서 아주 푸석푸석한 바위 위를 지나는 고정로프 부분을 그냥 통과해야 했어요. 장갑도 끼지 않은 한국 친구 하나가 거기 있었거든요…… 그 친구의 몸이 고정 로프에 매달려 있어서 로프를 사용할 수가 없었죠. 그래 우리는 제발 (그의 몸 위에)엎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그 친구 몸을 타 넘어가야 했어요.”

‘죽음의 지대’에서 다치면 구원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사람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넘고 지나가며 등산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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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서의 범죄

마이클 코더스 저/김훈 역, “에베레스트의 진실“, 민음인, 2010

p16-22

그 등반기간 동안 만 달러 이상에 해당하는 내 텐트들, 로프, 내 목숨이 달려 있는 산소통들이 사라졌고, 훗날 그 일부가 다른 팀 대원들의 장비 속에 숨겨져 있다가 나왔다. 우리 팀 대원들 중의 일부는 다른 팀들의 산소통과 장비를 슬쩍 빼내서 쓰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들은 다른 팀 대원들이 그 루트에 고정시켜 놓은 로프와 장비들은 마음대로 사용하면서도 그 등반로를 안전한 길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공적인 노력은 전혀 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가 고용한 세르파들은 우리와 함께 정상까지 동행해야 할 사람들이었고, 우리가 우리 일에 성공하고 생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하다 해서 몇천 달러나 되는 돈을 우리한테서 갈취해 냈으면서도 정작 자기네한테 돈을 지불한 우리 대원 몇 사람이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는 그들을 내버리고 가 버렸다.

일부 산악인들은 국경을 가로지르며 마약 밀수를 했고, 해발 6천미터가 넘는 곳에서 매일 대마초와 맥주, 위스키에 몽롱하게 취해서 지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창녀들과 뚜쟁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유혹했다. 고약한 짓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려는 대원들을 물리적으로 위협하거나 팀의 전력 공급 장치를 끊어버리고, 음식을 나눠 주기를 거부하고, 돌을 던졌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구타를 하기까지 했다.

(중략)

날로 숫자가 불어나는 세르파의 대군은 상업 등반대 고객들의 상당수를 정상으로 올려 보내는 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 모든 걸 제대로 갖춘 고객들과 등반대들의 장비와 물자, 조사자료 등을 이용해서 정상에 오르려 하는 얌체족들이나 무법자에 가까운 이들을.

저예산 에베레스트 원정을 추진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준비를 철저히 한 이들에게 부담을 안겨 주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적절한 약품들과 의료 장비도 갖추지 않고 에베레스트에 온 이들은 준비가 잘 된 팀들의 의사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 내가 속했던 한 팀에서는 다른 캠프들에서 환자들이 떼로 몰려오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원들에게 우리 팀에 의사 한 사람이 딸려 있다는 사실을 일절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떤 이들은 로프, 앵커, 고산 등반용 텐트도 없이 그곳에 온다. 이들은 상업 등반대 요원들이 언제 고정로프 등을 설치하나 애타게 기다리다가 설치가 되면 그런 등반대 가이드들과 돈을 낸 고객들이 사용할 생명선과 피난처들에 재빨리 밀려든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캠프들에서는 산소통과 난로 연료, 식품등이 사라지는 일이 매년 일어나곤 하는데 그런 도난 사건의 상당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 산에 온 서구 산악인들이 저질렀다. 데이비드 샤프처럼 대담하기는 하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단독 등반자들이 그 산 높은 곳에서 조난당할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범위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괴로운 딜레마에 봉착할 것이다.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온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네가 몇 달간의 시간과 몇천 달러를 들여가며 키워온 꿈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네가 품은 뜻에 집중하기 위해 그를 본인의 운명에 맏길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p222-224

일부 사람들에게 등반 장비들이 들어있는 텐트들은 뷔페나 다름없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험난한 조건 속에서 살아남는 데, 그리고 무사히 하산한 뒤 본인의 돈벌이 수준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온갖 물자가 저장된 곳이면서도, 얇은 나일론 천 한 꺼풀로 싸여있고 천과 천이 지퍼로 연결된 데 지나지 않는 곳이라 그저 간단히 손을 써서 집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고도에서는 사소한 좀도둑질도 치명적인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폴란드 출신의 산악인인 마르신 미오트크는 8천미터 급 고봉들 가운데 가장 험준한 안나푸르나 봉을 등정하려다 실패한 뒤 2005년 5월에 에베레스트 중국 쪽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는 세르파들을 대동하지 않고 단독으로, 그리고 보조 산소도 사용하지 않고 에베레스트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는 보조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하려는 최초의 폴란드인이었다. 5월 29일, 마르신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제 1캠프에는 텐트들을, 제 2캠프에는 장비들을 갖다놓았으나 강풍이 부는 탓에 부득이 전진캠프로 후퇴해야 했다. 그렇게 거센 바람이 불 때 보조 산소 없이 정상 등정을 시도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정상을 향해 내쳐 오른 오스트리아 친구들은 그 산에서 가장 높은 캠프인 제3캠프에 그가 쓸 슬리핑백을 하나 남겨두고 내려왔다.

이틀 뒤, 전례없이 늦은 시기에 날씨 창(weather window, 어떤 목적을 이루기에 알맞은 날씨가 계속되는 기간 – 옮긴이)이 열려 마르신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상당히 빠르게 올라 정오 무렵에 제 1캠프에 도착했는데, 나중에 일어난 일들에 비추어 볼 때 이때 그렇게 빨리 오른 것은 행운이었다. 텐트 문을 열어젖힌 순간 그는 누군가가 그 안에 침입했다는 걸 알았다. 그가 체온을 유지하는 데 쓰려고 거기 놔뒀던 고어텍스 옷들을 누군가가 훔쳐갔다. 그는 화가 났지만 그 옷들 없이도 그럭저럭 견뎌낼 수는 있었다. 아무튼 그는 그날 제2캠프로 내처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제2캠프에 도착하고 보니 거기 있는 텐트도 역시 약탈을 당했다. 이번에는 그가 살아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 곧 침낭, 장갑, 방풍ㆍ방습용 상의와 바지, 양말, 헤드램프를 도난당했다.

(중략)

마르신은 그날 오후 2시 30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것은 그 시즌의 마지막 정상 등정 기록이었다. 그는 일몰의 태양이 막 지평선에 침몰할 무렵인 7시에서 7시 반 사이 무렵 제3캠프로 되돌아왔다.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그저 바라는 것이라고는 어서 빨리 난로를 피우고 참낭속으로 기어들어가 자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텐트도 역시 약탈을 당했다. 마르신은 자신의 장비를 찾기 위해 난장판이 된 텐트 안을 더듬어봤지만 중요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침낭, 난로, 여분의 옷가지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약품들까지도 도난당했다. 막 해가 지고 있어서 서둘러 적당한 대체품들을 구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얼어 죽을 판이었다.

정상 등정 증거물을 훔치고, 물자를 약탈하며, 팀에 기생하는 극도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명성을 얻고, 가이드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고객을 버리고 하산하는 면면들을 보니 에베레스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상당히 사라지는 구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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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희박한 공기 속으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은이), 김훈 (옮긴이) | 황금가지 | 2007-06-12 | 원제 Into Thin Air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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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Into Thin Air‘인 이 책은 1996년 5월 10일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상업 등반팀에 합류하여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시간순서로 서술하는 기행문이다. 저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지만 안타깝게도 등반대의 상당수가 사망하는 참사를 겪는다.

일전에 메스너의 저서 ‘검은 고독, 흰 고독'[1]이나 엄홍길씨의 저서[2]를 읽어본 일이 있지만, 이는 전문 산악인으로서의 글이라 개인적 느낌과 감상적 내용이 대부분인데 비해,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저널리스트이고 글의 목적이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그런지 현장감의 박력이 대단하다. 역시 산악문학의 명저로 손꼽히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저자 Krakauer는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고산지대에서 비정상적인 저산소 상태의 기억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으므로 같이 등반한 많은 이들을 인터뷰한 모양인 듯 하다. 물론 이 책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진 몇몇 인물들의 항변을 쉽게 검색해볼 수 있지만, 여하간 어느 정도 객관성은 보증된 것 같다.

저자는 단지 기행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략한 에베레스트의 역사와 산악 등반의 역사를 함께 다룬다. 뭐 절반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약간씩 몰랐던 내용도 나온다. 이 부분도 꽤나 흥미롭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등장인물이 꽤 많은데, 등장인물이 많은 글에 취약한-_- 본인으로서는 상당히 읽기가 버거웠다. 게다가 저자는 동일 인물을 이름으로 불렀다가, 성으로도 불렀다가 왔다갔다 하므로 더더욱 혼란스럽다. 주요 인물은 형광펜으로 색칠하며 읽었다. ㅎㅎ

여하간 전반적으로 소설처럼 독자에게 긴장을 주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특히 현장감이 대단해서 현장에서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읽고나니 더더욱 에베레스트에 끌리는 것 같다. ㅎㅎ 검색해보니 이 책의 좋은 서평[3]이 많다.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참고해도 좋을 듯 하다.

 


[1] http://zariski.egloos.com/2214110
[2]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 14좌 완등 신화 엄홍길 (지은이) | 이레 | 2003-11-15
[3] [산/에세이] ★ 희박한 공기 속으로, 에베레스트 – 존 크라카우어 (naebido.com)

박영석과 안나푸르나

결국 박영석 대장,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의 영결식이 진행된 사실[1]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박영석 대장의 등반기록은 다음과 같다.[2]

◇박영석 대장 등반 기록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최단기간 등정 (8년 2개월)
○세계 최초 6개월간 최단등정 히말라야 8,000m급 5개봉 등정
○세계 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등정 (6개봉) 달성 (기네스북 등재)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1993년 달성)
○동계 랑탕리 세계초등 (1989년 등정)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 (2004.1.12.)
○북극점 도달 (2005.4.30.)
○인류최초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05.4.30.) (기네스북 등재)
○단일팀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성공 (2006.5.11.)
○2007 중국사천성 희조피크 세계초등
○2009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신루트 등정

박영석 대장의 14좌 최단기간 등정기록은 사실 폴란드 산악천재 예지 쿠쿠츠카[3]와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 예지 쿠쿠츠카가 산이 되었듯이 그도 산이 되었다.

안나푸르나는 eight thousander중의 하나인데, 네팔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주봉인 안나푸르나 1봉은 8000미터가 넘어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곳이고, 그 주변으로 2, 3, 4봉이 모두 7500미터가 넘는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8000미터 14좌 고봉중에서 인류에게 정상을 허용한 첫번째 산이기도 하다.

8000ers.com의 2008년 통계자료[4]에 따르면, 안나푸르나 1봉은 14좌 중에서 등반시도가 가장 적은 산에 속하면서 동시에 사망률이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이 통계 자료를 보고 조금 놀랐는데, 일명 ‘죽음을 부르는 산’인 K2 보다 안나푸르나가 더 사망율이 높다는 게 좀 의외다. 헉.

이번에 박영석 대장이 시도한 안나푸르나 남벽은 난이도가 높은 코스라고 하는데, 미디어 오늘 기사[5]에 따르면, 이미 크리스 보닝턴이 1970년에, 그리고 국내에서는 조형규 박정헌 원정대가 이미 성공한 바가 있다고 한다.

여하간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생명을 또 삼켰다. 죽는 것도 삶의 일부라고 했던가. 산사나이가 산으로 돌아갔으니 그의 운명이 그러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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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한겨레 히말라야 무산소 14좌 완등 김창호 대장, 히말라야에 잠들다 2018-10-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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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합뉴스 <“박영석 정신 살아있으리”영결식 눈물바다>(종합) 2011/11/03 12:09
[2] 뉴스1 박영석 대장 등반기록 2011-10-21 02:45
[3] 내 백과사전 예지 쿠쿠츠카(Jerzy Kukuczka, 1948.3.24 – 1989.10.24, 폴란드) 2011년 5월 24일
[4] ALL 8000ers – ASCENTS vs FATALITIES (8000ers.com)
[5] 미디어 오늘 “등산업체 마케팅 경쟁이 박영석 사망 불렀다” 2011년 11월 05일 토요일

낭가 파르바트 아래의 Fairy Meadows 도로

8000미터 고봉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인 낭가 파르바트의 북쪽능선에 Fairy Meadows 도로[1]가 있다고 하는데, 위키의 낭가 파르바트 항목의 사진은 이 도로에서 낭가파르바트의 정상을 올려다 본 사진이 등록되어 있다.

Foog님의 블로그[2]를 보니 이 도로에서 자동차로 주행하는 영상[3]이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것을 소개하고 있어 이 링크를 옮겨본다. 재생시간 1분 3초.

살떨리는 운전이다. ㅋ

 


[1] https://www.google.co.kr/maps/ ….
[2] http://foog.com/10559/
[3] https://www.youtube.com/watch?v=LzMnt1L_t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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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쿠쿠츠카(Jerzy Kukuczka, 1948.3.24 – 1989.10.24, 폴란드)

예지 쿠쿠츠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14좌를 완등한 폴란드의 천재 산악인이다. 메스너가 16년만에 한 일을 단 9년만에 해낸다. 3개의 동계 초등정, 10개의 신루트 개척을 거침없이 해내는 이 철인은 1989년 악명높은 로체 남벽 등반도중 정상 160미터를 남겨둔 지점에서 낙상사를 하고 만다.[1]

다음 글은 한국 산악회 대구지부 게시판[2]에 있는 글이다.

친구들이 유레크라고 부르는 예지 쿠쿠츠카는 라이홀드 메스너보다 일년이 늦은 1987년 시샤팡마를 끝으로 14좌를 완등했다. 그를 철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이 아무리 쉽게 올라도 어려운 히말라야 고봉을 어렵게 등반한데 있다. 그는 불과 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지상에서 가장 높은 14개 고봉을 모두 올랐으며 그 가운데서 두곳은 두번씩 올랐다. 또한 그는 새로운 루트를 열군데 개척하였고 산소없이 동계 초등정을 네번이나 했다. “좀더 어렵게, 좀 더 다양하게”라는 머메리즘을 좇아 그는 최소의 장비와 차림으로, 속공으로, 거의 새로운 루트로, 14좌를 계절을 가리지 않고 등반을 했다.

그는 [하켄 몇개,해머 하나,오래 입어서 색이 바래고 헤어졌으며 유행에 뒤진 윈드 자켓 등] 정말 초라한 장비로 지독한 등반을 했다. 그것은 그의 조국이 사회주의 국가여서 돈도 스폰서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그는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첨예한 어려운 등반을 계획하고 몸소 실천했다. 그는 가리지 않고 온 몸으로 무서운 등반을 했다. 초등이 많지 않고 야단 법석이고 좋은 장비 넉넉한 제정의 메스너와는 등반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에 그는 메스너에 연연하지 않았다. 메스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는 둘다 멋쟁이다.

그러나 말많은 주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을 “세기의 레이스”라며 비교를 했고 세상사람들이 주목을 하도록 떠들어 되었다. 14좌 완등후 쿠쿠츠카는 조국 폴란드에서 인기투표 1위를 기록했다. 그런 그가 로체 남벽 8350M에서 등반을 하다가 자일이 절단되어 1989.10.24 추락사했다.

쿠쿠츠카는 로체 남벽을 등반할 당시 한국의 허영호가 로체 서면 등반에 성공했는데 4켐프를 철수하지 않은 것을 초마롱마 쪽의 멕시코 산악인 카를로스 카르솔리오와 무전 통화로 알았고 날씨가 나빠지면 정상에서 서면으로 하산할 생각을 했다. 로체 남벽의 악명높은 고난도 벽등반을 끝내고 정상을 160M남겨둔 설능에서 날개도 없이 3000M아래의 빙하로 자유낙하를 했다. 쿠쿠츠카와 한국인과의 인연은 그가 허영호의 켐프를 사용할 뻔 하다가 추락사함으로 무산되기 전에도 세번이나 된다.

첫번째 인연은 1982년 세계 5위봉 마칼루 등반이다. 그는 혼자서 새로운 루트로 마칼루 정상에 올라 자기 아들의 장남감 무당벌레를 정상에 두고 하산했다. 그의 초인적인 등반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결정적인 인물은 네팔정부에서 파견된 연락관이었다. 등정여부를 확인하는 중요한 일에서 그는 등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셀파도 없이 단독등반을 했으니 증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정상 사진도 없으니 쿠쿠츠카의 등정시비는 그에게 불리했으며 미등으로 처리될 뻔 했다. 누가 목숨을 걸고 정상에 있다는 무당벌레를 확인할때까지 그 시비는 내내 그를 괴롭혔고 그의 도덕성까지 의심받을 처지에 이르렀는데 정말 목숨을 걸고 한국의 허영호가 무당벌레를 가지고 내려와서 쿠쿠츠카는 긴 악몽에서 헤어나게 되었다. 이 내용은 예지 쿠쿠츠카의 “14번째 하늘에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두번째 인연은 1986년 “죽음을 부르는 산”인 K2등반 때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많은 물량과 인원이 투입되고 등반력도 대단했지만 하늘이 도와서 무사히 장봉완,김창선,장병호를 정상에 올랐다. 그해 K2는 참으로 많은 인명을 요구한 진짜로 죽음의 산이었다. 그때 등반을 나선 쿠쿠츠카는 그의 동료 타데우스 피요트로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정상에 오르고 둘은 하산하면서 두번의 비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동료 타데우스는 쿠쿠츠카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추락사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한국원정대의 제2켐프에 도달 송영호대원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살아났다. 그 기록은 김병준의 “죽음을 부른 산” 180~187쪽에 보면 자세히 알 수가 있다. 나는 할일이 없어 그 책을 다섯번이나 읽었다. 어느 보고서와 다를것이 없는 그 책에는 대원들의 솔찍한 심정이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없었으며 돈이 얼마나 들었다는 내용이 없다. 당시 각국 원정대에서 18명이나 희생이 되었다고 하니 그의 생환은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세번째로 유레크는 1987년 안나푸르나 동계등반에 나서 2월 3일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유레크의 등정은 1984년도 한국의 은벽산악회 안창열 대장의 김영자가 어렵게 이룩한 등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레크에 의해 등정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이것은 커다란 파문을 몰고 왔다. 김영자의 초등이 확실한 것이라면 그는 두번째 등정자가 되는 셈이었다. 그는 한국팀의 동계등정은 조작된 것이고 자기가 안나푸르나의 동계 초등자라고 했다. 등정 의혹설에 접한 은벽산악회팀은 등정 진위 여부를 가려줄 분명한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었다. 정상 사진은 하산중 추락한 셀파의 배낭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등정을 둘러싼 각종 구설수가 난무하기만 했다. 명확한 해명이나 항의가 없이 시간을 넘김으로써 이 등정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폴란드대의 예지 쿠쿠츠카의 등정이 동계 초등정으로 기록됨으로써 공식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이나 한국산악계가 공식루트를 통해 보다 논리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서구 산악인들의 멋대로 해석 여부를 떠나서 같은 민족끼리의 물고 뜯는 반목과 질시로 이전투구한 한국산악계의 맹점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사랑했던 지금은 나이 오십줄 일 영자누나도 추락사한 예지 쿠쿠츠카도 둘중의 하나는 바보다. 그러고 보면 시시비를 가려줄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으며 그 잘난 인간들의 주둥아리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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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중 두번은 한국인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고 마지막 한번은 악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초등과 입은 은혜 그게 무슨 소용이랴. 내가 본적도 이야기 한적도 영자 누나도 산을 접었고 불사신 같은 쿠쿠츠카도 이미 죽고 말이 없는데…………..

이제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트위터를 하는 세상[3]이 되었다.

 


[1] 예지 쿠쿠츠카 by 마루금
[2] 예지 쿠쿠츠카 (cacdaegu.samju.net)
[3] 연합뉴스 에베레스트 정상서 첫 트위터 글 2011/05/07 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