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수학자가 정치가가 될 때도 있다 : Paul Painlevé

제목을 보고 얼마전에 국회의원에 당선된[1] 필즈상 수상자 Cédric Villani를 연상하시겠지만, 아쉽게도 이번 포스트는 수학자 Paul Painlevé에 대한 내용이다. ㅋㅋㅋ

사실 나도 누군지 몰랐는데, Mathpresso 블로그[2]를 보고 알게 된 수학자임. ㅎ 그는 프랑스 제 3공화국 당시 수상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고 한다. 수상까지 했다니 영향력이 적은 정치인이라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위키피디아를 대충보니-_- 그의 수학적 업적은 미분방정식을 푸는 테크닉 쪽으로 있는 듯 하다. 특히나 n체 문제에 관해서 그의 이름이 붙은 추측이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 Painlevé conjecture는 이러한 문제다. 중력장을 만드는 n개의 물체가 상호 중력 작용을 할 때, 유한한 시간내에 항상 두 물체가 충돌(collision singularity)하는지, 아니면 영원히 충돌하지 않는 초기 상태(noncollision singularities)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추측이다. 물론 n개의 물체는 크기가 없는 점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Painlevé는 n=3일 때 해결하였고, n이 5보다 큰 경우는 여러 수학자들에 의해 해결한 모양인데, n=4인 경우만 아직 미해결이라고 한다. n이 클 수록 더 어려운거 아닌가??? 초 신박하네-_- n=2일 때는 태양-지구 처럼 돌면되니까 자명한 듯 하다. ㅋ

위키를 보니 일반 상대성이론과 관련해서도 업적이 있는 듯 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좌표계가 있는데, 본인이 물리학에 까막눈이라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음. ㅋ

정치인으로서는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전쟁 장관으로 활약하고, 1917년에 수상을 한 번 역임한다. 이후 전간기인 1924년 대통령에도 출마해는데 낙선했다고 한다. 1925년 4월 프랑스 프랑의 금융위기 발발로 Édouard Herriot가 사퇴하고,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수상이 되었는데, 금융위기 수습을 잘 하지 못해서 11월에 사퇴한 모양이다. 프랑스 정치사는 잘 모르니 이쪽은 패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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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필즈상 수상자 Cédric Villani의 최근 행보 2018년 4월 9일
[2] Paul Painlevé, a french mathematician and politician (mathpresso.wordpress.com)

수학자 John Rainwater

간만에 futility closet 블로그[1]를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John Rainwater라는 수학자는 현재까지 10편의 논문을 쓰고, 가장 많이 인용된 것은 19회에 이르지만, 이 사람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2]

1952년 워싱턴 대학의 Nick Massey라는 수학과 대학원생 학생은 전산상의 실수로 빈 학생증을 받게 되었는데, 그 당시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어서 Rainwater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ㅋㅋㅋ 이 가상의 인물의 설정에 다른 학생들도 동참하여, 숙제도 꼬박꼬박 제출하였는데, 결국 그 학기 중간고사 시험을 칠 때 Arsove 교수에게 발각이 된 모양이다. Arsove 교수는 John Rainwater의 이름으로 발송한 폭발하는 만년필-_-을 받았어도, 대인배스럽게 그냥 넘어가준 모양이다. ㅋㅋ

수 년 후에 수학과 대학원생 그룹이 American Mathematical Monthly 문제들을 풀면서 John Rainwater의 이름으로 풀이를 송신한 모양인데, 이를 보고 MAA 측에서 MAA의 회원으로 가입하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다른 회원 두 명의 추천이 있어야 했는데, 가장 이상적인 추천인으로 당시 수학과 학장이자 MAA 회장인 Carl Allendoerfer의 추천을 받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Allendoerfer는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다. ㅋㅋㅋㅋ 그리하여 바쁘신 학장 대신에 학장의 비서를 설득하여 문서 위조-_-를 감행했다고 한다. ㅋㅋㅋ

보니까 한동안 John Rainwater의 이름으로 논문도 나오고, 그의 이름을 단 세미나도 개최되었던 모양인데, 일부 논문은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 모호한 채로 남아있는 듯 하다.

다른 학술 분야는 모르겠는데, 익명 수학자 집단이 가상의 인물로 논문이나 책을 쓰는 사례는 니콜라 부르바키와 같은 다른 사례도 있으니, 아주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ㅎㅎ 그러나 재미로 인물을 만들어서 그런 설정(?)에 집단적으로 동참하고, 또 그런 전통이 이어지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이 나름 유쾌한 사람들인 것 같긴 하다. ㅎㅎㅎ

 


[1] The Empty Set (futilitycloset.com)
[2] Biography of John Rainwater (at.yorku.ca)

기하(幾何)의 어원에 대해

‘국보’ 양주동 선생의 수필 중에 『몇 어찌』라는 수필[1]이 있다. 한학을 통달하여 세상 모르는 한문이 없던 그에게 ‘幾’자와 ‘何’자가 붙은 기괴한 단어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어, 수 일동안 고민을 하고 기하학의 논증과 체계를 익힌 이후에, 그가 서구의 학문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幾何가 여태 geometry의 음차로 알려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보니 이것이 아니라는 주장[2]이 있다고 한다. 원문이 일본어라서 번역을 시도해 봤는데, 일본어 실력도 딸리고-_- 음운론에 대해서는 일자 무식이고 IPA도 모르다보니 힘들어서 번역하다가 접었다-_-

써 놓은 부분은 아까워서 걍 올려본다. ㅋ 원문을 읽고 싶은 분들은 [2]에서 무료로 pdf를 받을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서는 DOI 대신에 국립정보학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CiNii라는 문헌 코드번호를 쓰는 것 같다. NII 코드 번호로 문서를 검색해 볼 수 있는 사이트[3]도 있다.

만주어 자료에서 본 「기하」의 어원에 대해

0 시작하며
「기하」는 geometria의 접두어인 geo-를 음차한 것이라는 설이 예로부터 널리 퍼져 있다. 이 속설은 발음으로 봐도, 의미로 봐도 착오가 있다. 이 논증은 중국학의 기본적인 훈련을 받아보면 어렵지 않다. 또, 그 시기의 기본적 논점은 이미 알려져 있어서, 예를 들면, 명말청초 당시에 Euclid 『원론』을 들여온 P. Engelfriet의 방대한 저서 중에도 보인다.(1) 그러나 이런 주장은 중국학 연구자 이외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과학사 연구자가 저술한 논증에는, 어원학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번잡하긴 하지만, 여기서는 속설이 잘못된 점에 대해 이유를 다시금 상세히 제시하고자 한다. 수학 교과서나 대중서를 쓰려는 사람들은 특히, 이하의 논설을 유의한 후에, 속설이 확대 재생산되는 일이 없기를, 필자는 희망하는 바이다.

이 글의 구성을 설명한다. 먼저 제1절에서 16~18세기의 중국어와 만주어의 음성에 관해서 과거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기하」가 geometria의 음역일 수 없음을 논증한다. 제2절에서, 명말청초 예수회에서 저술한 한문ㆍ만주문 문헌을 바탕으로 「기하」는 명말청초 당시에 geometria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한다. 제3절에서, 19세기 전반에서 중엽까지 프로테스탄트계 선교사가 저술한 대수의 영어-중국어 사전을 바탕으로 「기하」가 geometria를 의미한다는 말이라고 이해를 한 경위를 개괄한다. 이 절의 내용은 강연 이후에 추가된 내용이다. 그리고 결론으로 속설의 발생한 시기와 유포자에 대한 추측을 서술한다.

1. 음성
17세기 당시 「幾」자의 공식 발음 (말하자면 관화음(官話音))과, 예수회의 geometria의 발음 사이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서, 먼저 「幾」자의 발음을 고찰하고, 다음으로 geometria의 발음을 고찰한다.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중국어 음운에 대한 용어를 서술해 둔다. 중국어 1음절은 일반적으로 (CV)V(S) 인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서 V는 모음이고, C는 자음이고, S는 모음 또는 자음이다. 「()」으로 묶인 음은 생략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하나의 음절 (CV)V(S)를 (C)+(V)V(S)로 두 부분으로 분해하여, 앞부분 자음 (C)를 성모(声母)

(포기함 ㅋ)

한편, 수학용어의 function은 한국에서 함수(函數), 중국에서 函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유독 일본만은 関数로 쓰고 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세기에는 일본도 函數를 썼다고 한다. 20세기 국어 개혁과정에서 사용한자의 종류를 줄이는 노력을 하면서 발음이 같은 関으로 변경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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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26
https://www.facebook.com/groups/873505182704923/permalink/1867486359973462/

 


[1] http://zariski.egloos.com/1259922
[2] 渡辺 純成, “満洲語資料からみた「幾何」の語源について (数学史の研究)”, 数理解析研究所講究録, 1444, p34-42, NII Article ID : 110001374083
[3] https://ci.nii.ac.jp/

Bakhshali manuscript : 기호 0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서

archaeology 매거진의 기사[1]를 보니 Bakhshali manuscript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전에 내용상으로 추정한 것 보다 500년이나 과거인 3~4세기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문서의 내용이 은근 난이도가 있는 편인 모양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등비수열, 연립방정식, 2차방정식, 부정방정식 등의 내용이 있다고 한다. 대충 국내 교육과정에 중3~고1 수학 정도의 내용에 해당한다. 헐… 근데 연대 차이가 많이 나는 다른 페이지와 섞여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알 수가 없는 듯.

지금이야 미지수, 제곱 등의 편리한 수식기호가 많고 대수 공식들(곱셈/인수분해 공식)이 잘 발달되어 있어, 고대 문제들이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고대에는 그런 계산들을 문장형 (어떤 수와 그 수의 곱에 다시 처음 수의 두 배를 더하고…-_-)으로 방정식을 인식했기 때문에 간단한 방정식도 열라 풀기 빡세다. 본인은 산스크리트어를 모르긴 하지만, Bakhshali manuscript의 내용도 아마 그런 식일 듯 하다.

이 문서에는 영을 의미하는 기호인 중앙의 검은 점이 쓰이는 모양인데, 이번에 연대 추정이 바뀌면서 아라비아 숫자(다들 아시겠지만 인도에서 발명된 기호)로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가 최초로 사용된 문서가 되었다 한다. 그 전에는 9세기 Gwalior Fort의 사원 바닥에서 발견된 문자가 최초였다. 물론 여기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를 쓰는 것 자체는 이보다 오래된 고대 마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도 이미 있었는데,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 기호 ‘0’의 기원이 되는 기호로서 최초라는 말이다.

과거 수많은 핵실험[2]들 때문에 대기중의 방사성 원소의 농도가 급증하는 바람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고려해야 할 점이 여러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테크닉이 동원되는 모양인데, Sheridan Bowman의 책[3]을 번역한 책[4]을 일전에 읽어봤는데, 그 방법이 잘 설명 돼 있다. ㅋ 근데 이 책을 내가 어디 놔 뒀는지 보이질 않네…-_-

 


[1] archaeology 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Thursday, September 14, 2017
[2] 내 백과사전 역대 국가별 핵실험 회수 2013년 2월 13일
[3] Bowman, Sheridan (1995) [1990]. Radiocarbon Dating. London: British Museum Press. ISBN 0-7141-2047-2.
[4] 셰리든 보먼 저, 이선복 역,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원뿔 곡선 저항운동

일전에 엘렌버그 선생의 책[1]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엘렌버그 선생은 뭔가 잡다한 지식이 많은 사람 같다. ㅋ 엘렌버그 선생의 구글 플러스를 보니 흥미로운 위키피디아 항목 Conic Sections Rebellion이 소개[2]되어 있다. ㅋ 이 이야기에 대해 Mental Floss의 글[3]도 참고할만 하다.

1825~1830년의 예일 대학교에서는 기하학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안 그렸던 모양인데, 그냥 ‘교과서 어디의 무슨 그림’ 이런 식으로 레퍼런스 방식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심지어 시험에서조차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칠판이라는 새로운 첨단(?) 수업 방식이 도입되면서, 수학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칠판에 직접 기하학 그림을 그리도록 강제했던 모양인데, 특히 원뿔 곡선과 같은 수업에서 학생들의 반감이 심했던 모양이다.

예일 대학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집단으로 수학 기말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는데, 일부는 퇴학당하고 상당수가 정학을 먹는 꽤 반항적인 집단 운동이었던 같다. ㅋㅋ 위키피디아 항목을 보니 당시 정학 당한 사람들 중에 훗날 유명인사가 될 인물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뭐 예일이니까-_-) 원뿔곡선은 우리 고교과정에서도 다루는 내용인데, 현대 한국의 고교생들에게는 눈꼽만큼도 공감이 안 갈 학생운동일 것 같다. ㅋㅋㅋㅋ

 


[1] 내 백과사전 [서평]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2016년 8월 13일
[2] https://plus.google.com/107909926350520444591/posts/eKFkyGYBQ4A
[3] The Yale Chalkboard Rebellion of 1830 in Mental Floss

[서평] 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eBook] 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epub
마고 리 셰털리(저자) | 고정아(역자) | 동아엠앤비 | 2017-02-28 | 원제 Hidden Figures: The American Dream and the Untold Story of the Black Women Mathematicians Who Helped Win the Space Race

 


The Aperiodical 블로그[1]를 보니 흑인 여성 수학자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다는 글을 봤는데, 당연히 영화의 원본인 책이 있겠지 싶어 검색해보니 역시나 있었다-_- 고맙게도 ebook으로 나와 있어서 슥샥 구입해서 방금 완독했다. wolfram blog에서도 관련 글[2]이 올라와 있다.

‘computer’라는 단어가 사람을 의미하던 시절에서 무생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과도기에, NACA (NASA의 전신)의 흑인 여성 컴퓨터 그룹 West Area Computers 소속 사람들이 항공학의 발전을 선도하고 나아가 우주 경쟁에서 활약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항공역학의 발전을 토대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아폴로 계획을 성공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명성이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흥미롭다.

저자인 마고 리 셰털리도 위키피디아를 보니 역시나 흑인 여성인데, 저자가 과거 자료를 발굴하여 찾아낸 여성 수학자/엔지니어들은 수백명 규모로 상당히 많았던 모양인데, 지면의 한계상 저자가 가장 유명한 몇 명 정도의 이야기만 담고 있어서 (또 영화도 그러해서) 꽤 아쉬워 하는 것 같다. 주요 등장인물로 Katherine Johnson, Dorothy Vaughan, Mary Jackson 등이 있다.

책의 여러 측면에서 인종차별/성차별에 저항하여 사회를 변모하고자 했던 일화가 많다. 원래 버지니아 주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은 모양인데, 미국 랜드마크 판결중에 하나인 Loving v. Virginia 재판[3]도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같다. ㅋ NACA의 West Area Computing Unit도 버지니아 주에 위치했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2차대전 때 미국이 항공학과 비행술 발전에 어찌나 막대한 투자를 했던지, 계산하고 연구할 인력이 너무나 모자라는 바람에 계산만 할 줄 알면 아무나 데려가는 진풍경이 좀 묘사되는데, 전후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 기술적 선도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술/과학/수학의 최정점에 있는 작업이 바로 우주선 발사인데, rocket science 라는 표현이 원래의 의미를 넘어서 열라게 복잡하고 어려운 뭔가를 가리키는 상용구가 괜히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중간에 ‘레이놀즈 수’라는 단어가 나오던데 (위치가 기억 안남), Reynolds number를 번역한 말이었다. 뭔 말인가 했다. ㅋㅋ

근데 찾아 보니까 영화가 내일 국내 개봉하네-_- 책에서 캐서린, 도로시, 메리 이 사람들이 한 번에 모두 등장하는 일화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영화는 실화를 좀 각색한 것 같기도 하다.

Human Computer Project 라는 재단의 웹사이트[4]가 있던데, 아마 저자와 어느정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몇몇 사진자료가 이 사이트에도 있다. 추가적인 정보가 될 수 있을 듯.

수학적 재능을 갖춘 여자들이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활약을 못했다는 일화[5]를 보면서, 역시 똑똑한 사람도 사회적 인프라가 지지해 줘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일전에 광파리씨의 블로그에서 한국내 인종차별 때문에 베트남 인재가 한국을 떠났다는 일화[6]가 나오던데,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인재는 없을런지?

 


2017.4.11
중앙일보 “다문화센터에 실제로 다문화는 없어 김치·한국어 전수 한국문화센터 불과” 2017.04.0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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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7
https://www.facebook.com/story.php?story_fbid=2257781611109380&id=2016521365235407

 


[1] Review: Hidden Figures (aperiodical.com)
[2] Hidden Figures: Modern Approaches to Orbit and Reentry Calculations (blog.wolfram.com)
[3] 내 백과사전 Loving v. Virginia 2014년 2월 20일
[4] http://thehumancomputerproject.com/
[5] 내 백과사전 William Schieffelin Claytor 2017년 3월 21일
[6] ‘스타트업 코리아’ 인종차별에 발목 잡혀서야… (광파리의 IT이야기)

William Schieffelin Claytor

마고 리 셰털리 저/고정아 역, “히든 피겨스“, 동아엠엔비, 2017

캐서린은 1933년에 열다섯 살의 나이로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뛰어난 고등학교 성적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 대학의 강력한 총장 존 W. 데이비스John W. Davis 박사는 W.E.B. 듀보이스, 부커 T. 워싱턴과 함께 미국 흑인의 발전을 위한 논의를 이끈 흑인 지도자였다.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은 규모도 영향력도 햄프턴이나 하워드, 피스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학계의 평판은 견실했다. 데이비스는 흑인 학계의 스타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1920년대 초에는 듀보이스에 이어 17년 만에 하버드 대학 역사학 박사가 된 카터 G. 우드슨이 대학의 학생과장 자리를 맡았다. MIT 출신인 제임스 C. 에번스James C. Evans는 공학부를 이끌다가 1942년 국방부의 민간 참모로 갔다.

수학과 교수 가운데에는 윌리엄 월드런 시플린 클레이터William Waldron Shieffelin Claytor가 있었다. 갈색 피부에 큰 눈과 긴 속눈썹으로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클레이터는 27세의 나이에 라흐마니노프를 눈부시게 연주하고, 테니스 실력도 선수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는 스포츠카와 개인 비행기를 소유했는데, 한 번은 비행기를 몰고 존 W. 데이비스 박사가 사는 총장 공관 위를 너무 낮게 날다가 바퀴로 지붕을 긁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수학 전공자들은 노퍽 출신인 클레이터 박사가 “시골” 억양으로 복잡한 수학 문제들을 척척 증명해 내는 데 감탄했다.

클레이터의 거침없는 태도는 학생들을 겁먹게 했다. 그들은 한 손으로 칠판에 수식을 맹렬하게 적고, 다른 손으로는 그것을 역시 맹렬하게 지워 나가는 클레이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학생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바쁘게 넘나들었다. 하지만 진지한 얼굴에 안경을 쓴 곱슬머리 캐서린은 학과에 개설된 수학 과목들을 금방금방 해치웠고, 클레이터는 캐서린만을 위한 고급 과목들을 개설했다.

“자네에게는 연구 수학자로 대성할 자질이 있어.” 캐서린이 2학년을 마쳤을 때 클레이터 박사가 17세의 스타 학부생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

클레이터는 1929년에 하워드 대학 수학과를 우등 졸업했고, 도로시 본처럼 그 학교에 신설되는 수학 석사 과정에 등록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더들리 웰던 우다드 학장은 클레이터의 논문을 지도하고, 그에게 자신처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것을 추천했다. 점집합 위상학에 대한 클레이터의 논문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진을 기쁘게 했고, 수학계에서 그 분야의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석하고 야심찬 클레이터는 미국 최고 수학과들의 교직 초빙을 기다렸지만, 그를 초빙한 곳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이 유일했다. “과학 분야의 공부를 한 젊은 유색인이 갈 곳은 대부분 남부의 흑인대학들뿐이다”라고 W.E.B. 듀보이스는 1939년에 말했다. “남부의 (백인) 도서관, 박물관, 연구소, 과학관은 흑인 연구자들에게는 문이 완전히 닫혀 있거나 부분적으로, 그것도 굴욕적인 조건으로 살짝 열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흑인 대학의 사정이 대체로 그렇듯이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의 교수직 역시 “과중한 수업 부담, 학계의 고립, 과학 도서관 부재, 학술회의 참가 기회 박탈”이 내포된 자리였다.

학자로서의 실망을 자신의 높은 기준도 척척 따라오는 뛰어난 학생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듯, 클레이터는 캐서린이 불리한 여건을 딛고 수학 연구 분야에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흑인 여자의 전망이란 암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도로시 본이 하워드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그녀는 아마 클레이터의 유일한 여자 동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사 학위를 딴다 해도 졸업 후의 진로란 교직을 빼면 거의 없었다. 1930년에 직업적 수학자 가운데 여자는 1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고용주들은 수학 학위가 있는 아일랜드 여자나 유대인 여자를 대놓고 차별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 여자가 그 분야에서 일을 찾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러면 일자리는 어디서 구하나요?” 캐서린이 물었다.
“그게 자네의 문제가 될 거야.” 클레이터가 대답했다.

William Waldron Shieffelin Claytor가 누구인지 검색해봤는데, 위키피디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활약한 당대에는 흑인 수학자로서 꽤 이름을 날린 사람 같다. 업적을 짧게 설명하는 웹사이트[1]는 있는데, 전공은 토폴로지 쪽인 것 같다. Genealogy Project[2]에도 있다.

당대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은 못 남긴 듯한데, 위 일화를 보니 엄청 무책임한 사람인 듯 하다-_- 역시 문제는 일자리[3]인가-_-

 


[1] http://www.math.buffalo.edu/mad/PEEPS/claytor_wschieffelin.html
[2] https://www.genealogy.math.ndsu.nodak.edu/id.php?id=359
[3] 내 백과사전 수학의 쓸모: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017년 2월 17일

수학교육에 수학사가 포함되어야 하는가?

해커뉴스[1]에서 수학교육에 수학사가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흥미로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2003년 글[2]을 소개하고 있는데, 전문을 웹상으로 읽을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읽기 바란다. 대충 보니 이 글[2]에서는

  1. 모티베이션의 증진
  2. 현재의 문제해결을 과거의 해법에서 찾을 수 있다.
  3. 수학지식의 인문학적 면을 부각
  4. 역사가 교사의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

등의 장점을 꼽고 있는 듯. 해커뉴스에는 열렬하게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런 류의 논의가 늘 그렇듯이, 해커뉴스[1] 사람들의 논의도 대개 개인의 일화적 경험에 치중돼 있어 좀 아쉽다. 해커뉴스[1]의 댓글 중에 수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수학을 도구로서 활용하게 될 터인데, 선반(lathe)을 활용하기 위해 선반의 역사를 알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견해가 있던데, 듣고 보니 그럴 듯 하다-_-

본인 생각으로는 수학사를 필수적으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뛰어난 학생을 더 뛰어나게 만들기 위해서, 수학의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교사가 적절히 역사적 배경을 섞어 설명하는 것은 어느정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있다. 분명한 점은, 뛰어난 학생은 (수학사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뛰어난 선생을 찾아야 할 일이다. ㅋ

 


[1]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13251158
[2] Liu, P. H. (2003). “Do teachers need to incorporate the history of mathematics in their teaching?“, Connecting Research to Teaching, 96(6), 416-421

무한대를 본 남자(The Man Who Knew Infinit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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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라마누전을 주제로 영화가 제작중[1]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영화가 국내 개봉할 줄은 몰랐다. ㅋㅋ 오늘 개봉한 영화인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조조 상영으로 보게 되었다-_-

영화는 전반적으로 흥행을 감안해서인지 수학적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뭔가 있어 보이는 대사는 좀 나오긴 하는 듯. ㅋ

본인은 이 영화의 기본이 되었던 책의 번역본인 ‘수학이 나를 불렀다’를 이미 읽은 적[2]이 있으나, 하도 오래돼서-_-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번역서도 원서를 축약했다고 해서 좀 실망했던 기억만 난다. ㅋ

개인적으로 라마누전은 과대평가된 수학자라고 보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등식들이 신기하긴 해도 어떤 모티베이션인지, 왜 무수히 많은 다른 등식에 비해 그것이 더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 없다는 점에서, 라마누전의 결과들이 더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일전에 수식을 바라보는 수학자의 뇌 실험[3] 이야기를 했지만, 이 실험에서 가장 추한 등식으로 라마누전의 다음 등식이 선정된 바 있다. ㅋ

\displaystyle \frac{1}{\pi} = \frac{2\sqrt{2}}{9801} \sum^\infty_{k=0} \frac{(4k)!(1103+26390k)}{(k!)^4 396^{4k}}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은 등식에서 수학자들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본다.

뭐 여하간 지금부터는 일부 스포일러가 있으니 재미를 온전히 보전하고 싶은 사람은 더 이상 읽지 말기를 권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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