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hshali manuscript : 기호 0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서

archaeology 매거진의 기사[1]를 보니 Bakhshali manuscript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전에 내용상으로 추정한 것 보다 500년이나 과거인 3~4세기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문서의 내용이 은근 난이도가 있는 편인 모양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등비수열, 연립방정식, 2차방정식, 부정방정식 등의 내용이 있다고 한다. 대충 국내 교육과정에 중3~고1 수학 정도의 내용에 해당한다. 헐… 근데 연대 차이가 많이 나는 다른 페이지와 섞여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알 수가 없는 듯.

지금이야 미지수, 제곱 등의 편리한 수식기호가 많고 대수 공식들(곱셈/인수분해 공식)이 잘 발달되어 있어, 고대 문제들이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고대에는 그런 계산들을 문장형 (어떤 수와 그 수의 곱에 다시 처음 수의 두 배를 더하고…-_-)으로 방정식을 인식했기 때문에 간단한 방정식도 열라 풀기 빡세다. 본인은 산스크리트어를 모르긴 하지만, Bakhshali manuscript의 내용도 아마 그런 식일 듯 하다.

이 문서에는 영을 의미하는 기호인 중앙의 검은 점이 쓰이는 모양인데, 이번에 연대 추정이 바뀌면서 아라비아 숫자(다들 아시겠지만 인도에서 발명된 기호)로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가 최초로 사용된 문서가 되었다 한다. 그 전에는 9세기 Gwalior Fort의 사원 바닥에서 발견된 문자가 최초였다. 물론 여기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를 쓰는 것 자체는 이보다 오래된 고대 마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도 이미 있었는데,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 기호 ‘0’의 기원이 되는 기호로서 최초라는 말이다.

과거 수많은 핵실험[2]들 때문에 대기중의 방사성 원소의 농도가 급증하는 바람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고려해야 할 점이 여러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테크닉이 동원되는 모양인데, Sheridan Bowman의 책[3]을 번역한 책[4]을 일전에 읽어봤는데, 그 방법이 잘 설명 돼 있다. ㅋ 근데 이 책을 내가 어디 놔 뒀는지 보이질 않네…-_-

 


[1] archaeology 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Thursday, September 14, 2017
[2] 내 백과사전 역대 국가별 핵실험 회수 2013년 2월 13일
[3] Bowman, Sheridan (1995) [1990]. Radiocarbon Dating. London: British Museum Press. ISBN 0-7141-2047-2.
[4] 셰리든 보먼 저, 이선복 역,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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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뿔 곡선 저항운동

일전에 엘렌버그 선생의 책[1]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엘렌버그 선생은 뭔가 잡다한 지식이 많은 사람 같다. ㅋ 엘렌버그 선생의 구글 플러스를 보니 흥미로운 위키피디아 항목 Conic Sections Rebellion이 소개[2]되어 있다. ㅋ 이 이야기에 대해 Mental Floss의 글[3]도 참고할만 하다.

1825~1830년의 예일 대학교에서는 기하학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안 그렸던 모양인데, 그냥 ‘교과서 어디의 무슨 그림’ 이런 식으로 레퍼런스 방식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심지어 시험에서조차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칠판이라는 새로운 첨단(?) 수업 방식이 도입되면서, 수학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칠판에 직접 기하학 그림을 그리도록 강제했던 모양인데, 특히 원뿔 곡선과 같은 수업에서 학생들의 반감이 심했던 모양이다.

예일 대학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집단으로 수학 기말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는데, 일부는 퇴학당하고 상당수가 정학을 먹는 꽤 반항적인 집단 운동이었던 같다. ㅋㅋ 위키피디아 항목을 보니 당시 정학 당한 사람들 중에 훗날 유명인사가 될 인물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뭐 예일이니까-_-) 원뿔곡선은 우리 고교과정에서도 다루는 내용인데, 현대 한국의 고교생들에게는 눈꼽만큼도 공감이 안 갈 학생운동일 것 같다. ㅋㅋㅋㅋ

 


[1] 내 백과사전 [서평]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2016년 8월 13일
[2] https://plus.google.com/107909926350520444591/posts/eKFkyGYBQ4A
[3] The Yale Chalkboard Rebellion of 1830 in Mental Floss

[서평] 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히든 피겨스10점
마고 리 셰털리 지음, 고정아 옮김/동아엠앤비

The Aperiodical 블로그[1]를 보니 흑인 여성 수학자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다는 글을 봤는데, 당연히 영화의 원본인 책이 있겠지 싶어 검색해보니 역시나 있었다-_- 고맙게도 ebook으로 나와 있어서 슥샥 구입해서 방금 완독했다. wolfram blog에서도 관련 글[2]이 올라와 있다.

‘computer’라는 단어가 사람을 의미하던 시절에서 무생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과도기에, NACA (NASA의 전신)의 흑인 여성 컴퓨터 그룹 West Area Computers 소속 사람들이 항공학의 발전을 선도하고 나아가 우주 경쟁에서 활약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항공역학의 발전을 토대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아폴로 계획을 성공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명성이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흥미롭다.

저자인 마고 리 셰털리도 위키피디아를 보니 역시나 흑인 여성인데, 저자가 과거 자료를 발굴하여 찾아낸 여성 수학자/엔지니어들은 수백명 규모로 상당히 많았던 모양인데, 지면의 한계상 저자가 가장 유명한 몇 명 정도의 이야기만 담고 있어서 (또 영화도 그러해서) 꽤 아쉬워 하는 것 같다. 주요 등장인물로 Katherine Johnson, Dorothy Vaughan, Mary Jackson 등이 있다.

책의 여러 측면에서 인종차별/성차별에 저항하여 사회를 변모하고자 했던 일화가 많다. 원래 버지니아 주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은 모양인데, 미국 랜드마크 판결중에 하나인 Loving v. Virginia 재판[3]도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같다. ㅋ NACA의 West Area Computing Unit도 버지니아 주에 위치했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2차대전 때 미국이 항공학과 비행술 발전에 어찌나 막대한 투자를 했던지, 계산하고 연구할 인력이 너무나 모자라는 진풍경이 좀 묘사되는데, 전후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 기술적 선도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술/과학/수학의 최정점에 있는 작업이 바로 우주선 발사인데, rocket science 라는 표현이 원래의 의미를 넘어서 열라게 복잡하고 어려운 뭔가를 가리키는 상용구가 괜히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중간에 ‘레이놀즈 수’라는 단어가 나오던데 (위치가 기억 안남), Reynolds number를 번역한 말이었다. 뭔 말인가 했다. ㅋㅋ

근데 찾아 보니까 영화가 내일 국내 개봉하네-_- 책에서 캐서린, 도로시, 메리 이 사람들이 한 번에 모두 등장하는 일화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영화는 실화를 좀 각색한 것 같기도 하다.

Human Computer Project 라는 재단의 웹사이트[4]가 있던데, 아마 저자와 어느정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몇몇 사진자료가 이 사이트에도 있다. 추가적인 정보가 될 수 있을 듯.

수학적 재능을 갖춘 여자들이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활약을 못했다는 일화[5]를 보면서, 역시 똑똑한 사람도 사회적 인프라가 지지해 줘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일전에 광파리씨의 블로그에서 한국내 인종차별 때문에 베트남 인재가 한국을 떠났다는 일화[6]가 나오던데,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인재는 없을런지?

 


2017.4.11
중앙일보 “다문화센터에 실제로 다문화는 없어 김치·한국어 전수 한국문화센터 불과” 2017.04.09 01:17

 


[1] Review: Hidden Figures in The Aperiodical
[2] Hidden Figures: Modern Approaches to Orbit and Reentry Calculations in Wolfram Blog
[3] 내 백과사전 Loving v. Virginia 2014년 2월 20일
[4] http://thehumancomputerproject.com/
[5] 내 백과사전 William Schieffelin Claytor 2017년 3월 21일
[6] ‘스타트업 코리아’ 인종차별에 발목 잡혀서야… in 광파리의 IT이야기

William Schieffelin Claytor

마고 리 셰털리 저/고정아 역, “히든 피겨스“, 동아엠엔비, 2017

캐서린은 1933년에 열다섯 살의 나이로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뛰어난 고등학교 성적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 대학의 강력한 총장 존 W. 데이비스John W. Davis 박사는 W.E.B. 듀보이스, 부커 T. 워싱턴과 함께 미국 흑인의 발전을 위한 논의를 이끈 흑인 지도자였다.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은 규모도 영향력도 햄프턴이나 하워드, 피스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학계의 평판은 견실했다. 데이비스는 흑인 학계의 스타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1920년대 초에는 듀보이스에 이어 17년 만에 하버드 대학 역사학 박사가 된 카터 G. 우드슨이 대학의 학생과장 자리를 맡았다. MIT 출신인 제임스 C. 에번스James C. Evans는 공학부를 이끌다가 1942년 국방부의 민간 참모로 갔다.

수학과 교수 가운데에는 윌리엄 월드런 시플린 클레이터William Waldron Shieffelin Claytor가 있었다. 갈색 피부에 큰 눈과 긴 속눈썹으로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클레이터는 27세의 나이에 라흐마니노프를 눈부시게 연주하고, 테니스 실력도 선수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는 스포츠카와 개인 비행기를 소유했는데, 한 번은 비행기를 몰고 존 W. 데이비스 박사가 사는 총장 공관 위를 너무 낮게 날다가 바퀴로 지붕을 긁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수학 전공자들은 노퍽 출신인 클레이터 박사가 “시골” 억양으로 복잡한 수학 문제들을 척척 증명해 내는 데 감탄했다.

클레이터의 거침없는 태도는 학생들을 겁먹게 했다. 그들은 한 손으로 칠판에 수식을 맹렬하게 적고, 다른 손으로는 그것을 역시 맹렬하게 지워 나가는 클레이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학생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바쁘게 넘나들었다. 하지만 진지한 얼굴에 안경을 쓴 곱슬머리 캐서린은 학과에 개설된 수학 과목들을 금방금방 해치웠고, 클레이터는 캐서린만을 위한 고급 과목들을 개설했다.

“자네에게는 연구 수학자로 대성할 자질이 있어.” 캐서린이 2학년을 마쳤을 때 클레이터 박사가 17세의 스타 학부생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

클레이터는 1929년에 하워드 대학 수학과를 우등 졸업했고, 도로시 본처럼 그 학교에 신설되는 수학 석사 과정에 등록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더들리 웰던 우다드 학장은 클레이터의 논문을 지도하고, 그에게 자신처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것을 추천했다. 점집합 위상학에 대한 클레이터의 논문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진을 기쁘게 했고, 수학계에서 그 분야의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석하고 야심찬 클레이터는 미국 최고 수학과들의 교직 초빙을 기다렸지만, 그를 초빙한 곳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이 유일했다. “과학 분야의 공부를 한 젊은 유색인이 갈 곳은 대부분 남부의 흑인대학들뿐이다”라고 W.E.B. 듀보이스는 1939년에 말했다. “남부의 (백인) 도서관, 박물관, 연구소, 과학관은 흑인 연구자들에게는 문이 완전히 닫혀 있거나 부분적으로, 그것도 굴욕적인 조건으로 살짝 열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흑인 대학의 사정이 대체로 그렇듯이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의 교수직 역시 “과중한 수업 부담, 학계의 고립, 과학 도서관 부재, 학술회의 참가 기회 박탈”이 내포된 자리였다.

학자로서의 실망을 자신의 높은 기준도 척척 따라오는 뛰어난 학생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듯, 클레이터는 캐서린이 불리한 여건을 딛고 수학 연구 분야에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흑인 여자의 전망이란 암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도로시 본이 하워드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그녀는 아마 클레이터의 유일한 여자 동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사 학위를 딴다 해도 졸업 후의 진로란 교직을 빼면 거의 없었다. 1930년에 직업적 수학자 가운데 여자는 1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고용주들은 수학 학위가 있는 아일랜드 여자나 유대인 여자를 대놓고 차별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 여자가 그 분야에서 일을 찾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러면 일자리는 어디서 구하나요?” 캐서린이 물었다.
“그게 자네의 문제가 될 거야.” 클레이터가 대답했다.

William Waldron Shieffelin Claytor가 누구인지 검색해봤는데, 위키피디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활약한 당대에는 흑인 수학자로서 꽤 이름을 날린 사람 같다. 업적을 짧게 설명하는 웹사이트[1]는 있는데, 전공은 토폴로지 쪽인 것 같다. Genealogy Project[2]에도 있다.

당대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은 못 남긴 듯한데, 위 일화를 보니 엄청 무책임한 사람인 듯 하다-_- 역시 문제는 일자리[3]인가-_-

 


[1] http://www.math.buffalo.edu/mad/PEEPS/claytor_wschieffelin.html
[2] https://www.genealogy.math.ndsu.nodak.edu/id.php?id=359
[3] 내 백과사전 수학의 쓸모: 청년 수학자와의 대화 2017년 2월 17일

수학교육에 수학사가 포함되어야 하는가?

해커뉴스[1]에서 수학교육에 수학사가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흥미로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2003년 글[2]을 소개하고 있는데, 전문을 웹상으로 읽을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읽기 바란다. 대충 보니 이 글[2]에서는

  1. 모티베이션의 증진
  2. 현재의 문제해결을 과거의 해법에서 찾을 수 있다.
  3. 수학지식의 인문학적 면을 부각
  4. 역사가 교사의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

등의 장점을 꼽고 있는 듯. 해커뉴스에는 열렬하게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런 류의 논의가 늘 그렇듯이, 해커뉴스[1] 사람들의 논의도 대개 개인의 일화적 경험에 치중돼 있어 좀 아쉽다. 해커뉴스[1]의 댓글 중에 수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수학을 도구로서 활용하게 될 터인데, 선반(lathe)을 활용하기 위해 선반의 역사를 알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견해가 있던데, 듣고 보니 그럴 듯 하다-_-

본인 생각으로는 수학사를 필수적으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뛰어난 학생을 더 뛰어나게 만들기 위해서, 수학의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교사가 적절히 역사적 배경을 섞어 설명하는 것은 어느정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있다. 분명한 점은, 뛰어난 학생은 (수학사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뛰어난 선생을 찾아야 할 일이다. ㅋ

 


[1]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13251158
[2] Liu, P. H. (2003). “Do teachers need to incorporate the history of mathematics in their teaching?“, Connecting Research to Teaching, 96(6), 416-421

무한대를 본 남자(The Man Who Knew Infinit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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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라마누전을 주제로 영화가 제작중[1]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영화가 국내 개봉할 줄은 몰랐다. ㅋㅋ 오늘 개봉한 영화인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조조 상영으로 보게 되었다-_-

영화는 전반적으로 흥행을 감안해서인지 수학적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뭔가 있어 보이는 대사는 좀 나오긴 하는 듯. ㅋ

본인은 이 영화의 기본이 되었던 책의 번역본인 ‘수학이 나를 불렀다’를 이미 읽은 적[2]이 있으나, 하도 오래돼서-_-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번역서도 원서를 축약했다고 해서 좀 실망했던 기억만 난다. ㅋ

개인적으로 라마누전은 과대평가된 수학자라고 보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등식들이 신기하긴 해도 어떤 모티베이션인지, 왜 무수히 많은 다른 등식에 비해 그것이 더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 없다는 점에서, 라마누전의 결과들이 더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일전에 수식을 바라보는 수학자의 뇌 실험[3] 이야기를 했지만, 이 실험에서 가장 추한 등식으로 라마누전의 다음 등식이 선정된 바 있다. ㅋ

\displaystyle \frac{1}{\pi} = \frac{2\sqrt{2}}{9801} \sum^\infty_{k=0} \frac{(4k)!(1103+26390k)}{(k!)^4 396^{4k}}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은 등식에서 수학자들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본다.

뭐 여하간 지금부터는 일부 스포일러가 있으니 재미를 온전히 보전하고 싶은 사람은 더 이상 읽지 말기를 권고함.

계속 읽기

코시의 강의 스타일

조던 엘렌버그 저/김명남 역, “틀리지 않는 법“, 열린책들, 2006

코시가 내렸던 정의를 정확하게 쓰려면, 우리는 꽤 품을 들여야 한다. 코시 자신은 우리처럼 현대적이고 깔끔한 형식으로 그 개념을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랬다(수학에서는 어떤 개념을 발명한 사람이 그 개념을 가장 깔끔하게 기술하는 방법까지 알아낸 예가 거의 없다).[29] 코시는 굳건한 보수주의자이자 왕정주의자였지만, 수학에서만큼은 당당한 혁명가이자 학계 권위자들의 골칫거리였다. 위험천만한 무한소를 쓰지 않고도 미적분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는 자신의 새로운 개념들을 반영하게끔 에콜 폴리테크닉의 강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고쳐 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 조치에 화를 냈다. 최신 순수 수학 세미나를 신청한 게 아니라 신입생 미적분 수업을 신청한 것뿐이었던 학생들은 얼떨떨했고, 동료 교수들은 그 학교의 학생들이 엔지니어 지망생들이니 코시처럼 정밀 수학을 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으며, 관리자들은 코시가 공식 강의 개요를 준수하라는 명령을 깡그리 무시했기 때문에 화를 냈다. 대학은 전통적인 무한소 기법의 미적분을 가르치는 새 수업 요강을 짜서 내려보냈고, 코시가 그것을 잘 따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의 강의실에 강의 내용을 받아 적을 첩자를 들여보냈다. 그래도 코시는 따르지 않았다. 그는 엔지니어들의 요구에는 흥미가 없었다. 진실에만 흥미가 있었다.6

교육학적 관점에서는 코시의 태도를 옹호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그에게 공감한다. 수학의 굉장한 즐거움 중 하나는 무언가를 옳은 방식으로, 바닥까지 철저히 이해했다고 느끼는 단호한 감정이다. 나는 수학을 제외하고는 정신 활동의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일단 당신이 무언가를 옳은 방식으로 할 줄 알게 되면, 이후에는 그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좀 더 완고한 사람이라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29] 여러분이 엡실론이나 델타 같은 표기를 사용하는 수학 수업을 들었다면, 코시의 형식적 정의의 후예를 접한 것이다.
6 코시의 미적분 수업에 관한 일화는 19세기 초 수학과 문화의 상호 작용을 흥미롭게 추적한 역사적 연구인 아미르 알렉산더의 책 『새벽의 결투Duel at Dawn』에서 가져왔다. 다음도 참고하라. Michael J. Barany, “Stuck in the Middle: Cauchy’s Intermediate Value Theorem and the History of Analytic Rigor,” Notices of the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60, no. 10 (Nov. 2013): 1334~1338. 이 자료는 코시의 접근법의 현대성에 대해서 약간 상반된 시각을 갖고 있다.

첩자…-_- 와하하하 ㅋㅋㅋ

루이스 캐럴의 수학적 업적

오는 11월 26일은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도지슨의 유명한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출간된지 딱 150년째가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괜히 루이스 캐럴을 조명하는 기사[1,2]가 올라와 있다.

물론 영문법에 맞지 않는 ‘curiouser and curiouser’라는 유명한 문구는 앨리스의 키가 확 커질 때 외치는 소리다. 이코노미스트지를 읽다보면 종종 볼 수 있다-_- 이코노미스트지에는 좀 옛날에 작성되었지만 그의 수학적 업적에 대해 언급하는 기사[3]가 있다.

기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도 옥스포드에 소재한 Christ Church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그의 부계 혈통쪽 사람의 대부분은 성직자나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일전에 그의 사진 작품과 그에 따른 논란[4]을 소개한 적이 있지만, 그는 소설과 사진작가로 더 유명하다. 근데 실제 직업은 수학자라는 부분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ㅋㅋ

그는 네이쳐지에 세 개의 논문을 투고한 적이 있는 모양인데, 네이쳐지 기사에 소개되어 있다. 첫 번째 글[5]은 임의의 날짜의 요일을 알아내는 계산이라고 한다. 뭐 유료라서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위키피디아에 방법이 소개[6]되어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읽어보기 바란다. 두 번째 글[7]과 세 번째 글[8]은 나눗셈을 빨리 하는 트릭인 듯 하다. 뭐 컴퓨터 시대인 지금으로서는 의미없지만, 사소한 계산도 모두 손으로 해야 했던 과거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좀 더 수학적으로 의미있는 것으로 행렬의 determinant를 계산하는 방법에 관해서인데, 그의 이름이 붙어 Dodgson condensation이라고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위키피디아에 잘 설명이 돼 있다. ㅋ 이것 때문에 alternating sign matrix에 대한 추측이 나왔는데, 이는 1992년에 와서야 이스라엘 수학자 Doron Zeilberger에 의해 증명된다.[9]

사회학적 측면에서 그는 “A method of taking votes on more than two issues”이라는 비교적 중요한 글을 썼다고 한다. 적정 지지 비율로 대표를 선정할 수 있는 논리적 투표 시스템에 대해 제안한 글인데, Dodgson’s method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대충보니 콩도르세 방법을 개선한 모양이다. 당대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나, 1958년 영국 경제학자 Duncan Black이 주목하여 연구한 모양이다. 후에 완전한 투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정리인 Arrow’s impossibility theorem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논리학에도 업적이 있는 모양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symbolic logic에 대해 마틴 가드너 선생이 연구를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1] 이코노미스트 에스프레소 Curiouser and curiouser: “Alice” at 150 Nov 21st 2015
[2] 네이쳐 Mathematics: Logic and Lewis Carroll 18 November 2015
[3] 이코노미스트 Shoes and ships and sealing wax Jul 3rd 2008
[4] 내 백과사전 루이스 캐럴의 사진 작품 2011년 12월 3일
[5] Lewis Carroll, “To Find the Day of the Week for Any Given Date”, Nature 35, 517 (31 March 1887), doi:10.1038/035517a0
[6] Determination of the day of the week#Lewis Carroll’s method in Wikipedia
[7] Charles L. Dodgson, “Abridged Long Division”, Nature 57, 269-271 (20 January 1898), doi:10.1038/057269a0;
[8] Charles L. Dodgson, “Brief Method of Dividing a Given Number by 9 or 11”, Nature 56, 565-566 (14 October 1897), doi:10.1038/056565f0
[9] Zeilberger, “Proof of the alternating sign matrix conjecture”, Electronic Journal of Combinatorics 3 (1996), R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