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로봇

로봇 개발자 박은찬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로봇 관련 활동을 많이 하시는 듯.[1,2]

본인은 술 먹을 때 대부분 혼자 먹는데, 나한테 필요한 물건일지도?? ㅋ

 


2016.1.23
DRINKING WITH YOUR ROBOT in Hack a Day

 


2017.10.9

로봇 팔의 모션이 은근 부드럽다. 대단하군.

 


[1] 한국일보 자신만의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 2015.12.22 20:00
[2] 넥스트 데일리 나는 로봇이 그냥 좋다, 박은찬 09-01-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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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너’라고 부른 정승

정구선 저,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팬덤북스, 2014

임금을 ‘너’라고 부른 정승

세조의 즉위에 결정적인 공을 세워 정난공신 1등과 좌익공신 2등에 봉해지고,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영의정까지 오른 정인지는 술이 약하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정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치명적인 실수를 술로 인해 자주 저지르곤 했다. 특히 임금 앞에서 취중 실수를 하여 큰 물의를 일으키고 곤욕을 치른 적이 여러 번이었다. 비록 당시가 술에 관대한 시대였다 하더라도 임금에게 저지른 취중 실수는 바로 불경이요, 무례였다. 어떠한 처벌도 감수해야만 하는 일종의 범죄 행위였다.

첫 번째 실수는 세조 4년(1458)에 있었다. 당시 세조는 불교에 심취하여 《법화경法華經》, 《대장경大藏經》 등을 간행하는 등 불교 진흥을 꾀하고 있었다. 그해 2월 12일 임금이 대신들과 함께 가진 잔치에서 영의정 정인지가 술에 취하여 불경 간행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임금이 노하여 잔치를 끝내고 말았다. 다음 날 임금은 종친, 대신, 승지 들이 참석한 활쏘기 관람 자리에서 정인지에게 따졌다.

“내가 복세암福世庵을 세우고 불경을 베끼는 종이를 만들어도 경은 대신으로서 한마디 말도 없었다. 어제 취중에 나를 욕보인 까닭은 무엇인가?”

“취중의 일이라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제의 말은 경이 취해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은 취하지 않았으니 일일이 내게 고하라. 부처의 도리는 어떠하며, 유학의 도리는 어떠한가?”

정인지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왕이 묻는데 경이 대답하지 못한다. 이것은 불경함이다.”

정인지가 또 어제 너무 취하였다는 핑계를 대며 끝내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런 다음 정인지가 물러 나와서 탄식하였다.

“좌찬성 신숙주는 잘 마시면서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신숙주의 잘 마시면서도 마시지 않음만 같지 못하였는데도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날이 저물어 정인지가 돌아갔다. 임금은 정인지에게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대하여 물었으나 말귀마다 무례하게 대답하는 등 오만하여 왕을 능멸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인지를 의금부에 가두어 국문하라 명하고, 영의정에서 해임하고 직첩을 거두었다. 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다음 날 승지 등을 불러 논의하고 정인지를 석방토록 명하였다.

(중략)

유사는 임금만의 특권으로 죄인의 죄를 사면하거나 형을 줄여 주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실수는 이처럼 잘 넘어갔으나, 두 번째 실수는 정인지를 더욱 큰 곤경에 빠뜨렸다. 7개월 뒤인 9월 15일에는 급기야 술자리에서 세조를 ‘너’라고 부르는 크나큰 불경을 저지르고 말았다. 감히 임금에게 ‘너’라고 일컬었다. 왕조 시대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엄청난 망발이었다. 의정부와 육조,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충훈부忠勳府의 대신들과 관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엄히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으로서는 공신인 정인지를 처벌하기가 어려웠다.

“정인지는 실로 죄가 없다.”

여기서 물러설 신하들이 아니었다. 마땅히 정인지를 국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임금은 여전히 그를 감싸고돌았다.

“죄의 정상이 없는데 어찌 죄를 묻겠는가?”

임금이 쉽사리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신하들은 한 발 물러섰다.

“만약 정인지를 공신이라 하여 처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벼슬을 파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신들의 기대에 답하십시오.”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모르겠다.”

임금은 마찬가지로 윤허하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의정부와 육조, 충훈부의 관원들은 다시 정인지를 처벌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전교를 내려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였다. 임금이 뜻을 굽히지 않자 임금의 아우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가 나섰다.

“정인지가 한 말을 보면 진실로 역신逆臣입니다. 성삼문成三問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죄는 주벌誅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정인지가 성삼문 같은 역적이라며 목을 베어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임금은 일축하고 말았다.

“대신의 죄는 종친이 논할 바가 아니다.”

임금의 거부에도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이 임영대군을 거들고 나섰다.

“군신 간에는 남을 업신여기고 혼자 잘난 척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정인지는 성상께 ‘너’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를 베어 죽이십시오.”

임금은 판원사判院事 권남權擥과 의논하여 결정하겠다며 권남의 의견을 물었다.

“정인지의 말은 죽어도 그 죄를 속죄할 수 없습니다.”

권남 역시 그를 죽여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도리어 임금은 권남을 나무랐다.

“경의 말이 너무 심하다.”

권남이 한 발 물러서 아뢰었다.

“먼 지방에 안치하여 목숨을 보전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대간에서도 대신들의 청을 따르기를 주장하였으나, 임금은 윤허하지 않았다. 신하들의 태도가 강경해지자 정인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작위를 사임하겠다는 글을 올려야만 했다.

“얼마 전 성상의 물으심에 답할 적에 한마디 말로 조언을 드린 가운데, 신이 마침 술에 취하여 그 말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여러 신하들이 신의 처벌을 청하는 말과 같은 것은 몽매에도 생각할 수 없는 바이며, 절대로 그와 같은 뜻은 없었습니다. ……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신의 노년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두려워하는 정상을 살피셔서, 신의 작위를 해임하고 한가한 곳에 처해 있게 하여 타고난 수명을 마치게 하시면, 신은 이 생명을 다하도록 항상 종사의 만년萬年을 축원하겠습니다.”

정인지는 자기가 했다는 말은 술 취해 기억에 없지만, 신하들이 처벌을 원하므로 작위를 해임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정인지가 작위의 해임을 청하는 글을 올리자 의정부, 육조, 충훈부에서는 다시 상소를 올렸다. 임금이 훈구勳舊 대신이라 하여 매번 너그러이 용납해 주었기에 정인지가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번번이 나타낸다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정인지를 두둔하는 전교를 내렸다.

“정인지가 취중에 한 말은 모두 오래된 친구의 정을 잊지 못하고 한 말이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더구나 정인지는 나라 일을 맡아 보는 대신도 아니고, 노쇠한 일개 부유腐儒일 뿐이다. 어찌 족히 논하겠느냐?”

부유는 생각이 낡고 완고하여 쓸모없는 선비란 뜻이다. 마침내 정인지의 두 번째 취중 실수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후략)

헐… 서슬퍼런 조선왕조에서 임금보고 ‘너’라고 했다 하니, 너무 웃긴 에피소드라서 한 번 올려봤음. 이 뒤로 정인지의 네 번째 실수까지 나온다. 필름이 잘 끊기는 사람은 이래저래 고생. ㅋ

[서평] 파리의 심판- 프랑스의 패권에 맞선 마이너리티 와인 혁명

파리의 심판10점
조지 M. 태버 지음, 유영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1976년에 있었던 익명 와인 시음회를 가리키는 ‘파리의 심판‘ 사건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책으로 나온 줄은 몰랐다. 검색해보니 이미 절판된 책을 개정해서 내 놓은 듯.

사실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 단지 맛의 상대성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좋은 사례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바야흐로 요즘 세상은 맛의 세계라서, 쬐금이라도 더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사람들은 맛집이라는 데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그런 헛짓거리 같은 세간의 풍조에 썩소를 날리며 할 수 있는, 맛이 심리적 요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를 설명하는데 좋은 사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전에 똑같은 와인이라도 가격을 높게 부르고 시음하면 낮게 부른 쪽보다 평가가 좋아진다는 기사[1]도 본 적이 있다. ㅋ

근데 책을 읽어보니 맛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 이 책은 오히려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자들의 끊임없는 혁신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자들이 프랑스에서만이 위대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던 역사의 기록인 것이다.

미국 금주법으로 몰락한 와인 양조업계는 금주법 이후에 와인에 홀린 이들이 본업을 뒷전에 두고 캘리포니아에 모여들어 맨땅에서 연구와 혁신을 수십 년 거듭하여, 마침내 와인의 본거지인 프랑스에서 프랑스 와인을 꺾는 기적같은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 노력의 결과가 ‘파리의 심판’으로 나타난 것이지, 절대로 맛의 상대성에 의한 우연적 산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본인은 여태 이 사건을 오해하고 있었다.

기구한 운명 이야기들의 세부적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저자가 역시 기자인지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조사했음을 여실히 느낀다. 타임지 특파원이었던 저자 태버는 ‘파리의 심판’ 당시 그곳을 직접 보았던 유일한 기자였다고 한다. 책의 서두와 일부를 본 블로그에 인용[2,3,4]해 두었으니 독서 여부에 참고하기 바란다.

책의 뒷부분에는 이 사건이 어떻게 세간에 과장되어 퍼졌고, 또 이 사건으로 인해 와인업계에 미친 파장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다. 중간에 개별 포도원이나 빈티지에 대한 설명은 사실 별 관심이 없어서 본인은 넘어갔는데, 프랑스산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 봐둘만 할 지도 모르겠다.

 


[1] cnet Study: $90 wine tastes better than the same wine at $10 January 14, 2008 1:49 PM PST
[2] 내 백과사전 ‘파리의 심판’ 당시의 모습 2015년 3월 30일
[3] 내 백과사전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혁신 2015년 4월 6일
[4] 내 백과사전 로버트 파커의 영향력 2015년 4월 20일

투자 대상으로서의 와인

근래 ‘파리의 심판'[1]을 읽고 있는 중에, 때마침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지에 재미있는 기사[2]가 실려 있다.

파커 아저씨가 극찬을 했다는 샤토 라피트 로쉴드 1982년 빈티지는 판매 당시에 300파운드(오늘날의 1028파운드 정도)였는데, 이것이 현재는 28000 파운드의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이 정도 수익률을 내는 투자처는 흔치 않다.

근데 본인이 구글로 검색해보니 1000파운드 언저리에서 팔리는 물건이 있던데 이거랑 뭔가 다른 건가…-_- 흠. 뭐 여하간 이 가격은 파커 프라이스가 붙은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일전에 파커의 영향력 포스트[3]를 참고하시라.

과거에 본인이 칵테일용으로 꼬냑이나 여러 리큐르를 사먹을 때도, 2005~6년 언저리에서 가격이 급등하는게 확실히 느껴졌었다. 똑같은 그랑 마르니에나 꼬냑을 사는데 6개월후에 사니 가격이 전부 만원 넘게 올라 있었다. 젠장! 당시 주류 판매점 아저씨의 설명으로 중국, 러시아에서 수요가 상당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코노미스트지[2]에서의 설명에서도 중국의 졸부들의 영향으로 초고급 와인들의 가치가 급등했던 모양인데, 근래 중국 경제성장의 완화와 더불어 중국 정부의 부패 척결 운동의 영향으로 와인들의 가격이 최고점에서 절반정도로 떨어진 모양이다.

더군다나 와인은 사기가 판치고 유동성(유체인데!)이 낮아서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은 듯. 와인 매매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 시도를 몇몇 사이트에서 하는 모양이긴 한데, 아직까지는 와인으로 투자의 재미를 보기에는 어려울 듯 하다. ㅋ

 


[1] 내 백과사전 [서평] 파리의 심판- 프랑스의 패권에 맞선 마이너리티 와인 혁명 2015년 4월 24일
[2] 이코노미스트 Intoxicating Apr 18th 2015
[3] 내 백과사전 로버트 파커의 영향력 2015년 4월 20일

로버트 파커의 영향력

와인에 대해 찾다보면 로버트 파커의 이름을 꼭 듣게 되는데, 일전에 아셴펠터의 와인 예측 이야기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태 그가 왜 유명한지를 몰랐는데, 다음 글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428-430

와인의 세계화와 함께 세계적 와인평론가의 힘도 커졌다. 영국의 휴 존슨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제임스 할리데이 같은 와인 평론가는 와인업계의 발전상을 오랫동안 기록해왔다. 그들은 보통 좋은 말만 했다. 어떤 생산지를 안 좋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었다. 그러다 1978년에 새로운 유형의 와인 평론가가 나타났다. 로버트 M. 파커 주니어였다. 미국 메릴랜드 주 몽크턴의 변호사인 그는 〈와인 애드보케이트〉라는 와인 소식지를 만들었다.

파커는 좋은 말만 쓰지 않았다. 그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와인에 점수를 매겼다.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의 허심탄회한 평가에 많은 생산자가 격분했지만 소비자들은 좋아했다. 파커의 점수제는 미국 학교의 성적 평가 방식과 흡사해서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쉬웠다. 와인 초심자는 “파커가 이 와인에 98점을 줬어”라는 말 한 마디로 와인 한 병에 100달러를 지불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곧 다른 와인 전문지들, 이를테면 널리 읽히는 〈와인 스펙테이터〉도 이 100점제를 도입했다.

와인 분야에서 대다수 평론가와 잡지는 광고주를 의식해 부정적 의견을 똑바로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파커는 달랐다. 그의 소식지는 광고를 싣지 않는다. 와인 맛에 대한 파커의 개인적 평가 외에 어떤 다른 요소도 고려하지 않는다.

파커가 와인을 맛보고 점수를 매기고 기억하는 능력은 무척 놀랍다. 그는 열렬한 보르도 와인 애호가다. 물론 다른 생산지와 다른 나라의 와인도 평가는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파커의 평가를 받아들인다. 사실상 그의 말 한마디가 그 포도주 생산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와인업계에서는 파커가 한 와인에 80점 아래의 점수를 주면 아무리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90점 이상을 받은 와인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부담스럽게 느낄만큼 치솟는다고 한다.

파커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가 개인의 주관적 입맛에 따른 과정에 인공적인 통계 숫자를 부여해 등급을 매긴다고 비난한다. 또, 파커의 세계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파커의 와인 구매 가이드(Parker’s Wine Buyer’s Guide)〉는 1,6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프랑스의 중요한 와인 생산지역인 루아르 계곡은 주마간산으로 다룬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 전체에 할애된 분량은 단 두 단락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파커와 그의 100점제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1999년 파커에게 영예의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수여하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프랑스 와인 평론가”라고 칭했다. 내가 전 세계의 포도주 생산자들로부터 개인적으로 듣는 이야기는 이렇다. 그들은 평론가 한 명이 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며, 이런 영향력은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한다. 물론 새로운 세대의 와인 소비자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 자신의 입맛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면 특정 평론가의 말을 덜 맹신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수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의 숲에서 자신을 인도할 안내자를 찾는다. 로버트 파커는 다른 모든 와인 평론가보다 월등히 많은 추종자 무리를 이끌고 있을 뿐이다.

일부 와인 애호가는 와인의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내 맛도 네 맛도 아는 국제적인 ‘맥도널드 와인’들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불평한다. 이탈리아산 샤르도네가 캘리포니아나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와인의 국제적 규격화에 대해 파커 역시 큰 목소리로 힐책한다. 하지만 그 풍조를 부추긴 장본인이 다름 아닌 파커 자신이라는 비판도 많다. 파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와인을 만들어 비싼 값에 팔려는 양조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파커가 풍성하고 색깔이 진하며 향은 강렬하고 알코올 기운이 있는 와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역시 평론가는 칭찬보다 까야 유명해진다는 사실. ㅋ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혁신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145-146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양조자들은 프랑스와는 달리 어떤 전통이나 대물림된 지혜를 갖고 있지 않았다. 포도주 양조의 전승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기 때문에 따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실험가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찾고, 포도즙을 포도주로 바꾸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핸즐의 모범사례, 즉 온도 제어 스테인리스스틸 탱크 발효와 인공 유산발효, 비활성 기체를 사용한 산화 방지 기술, 작은 프랑스산 오크통 숙성 등은 일종의 ‘복음’이 되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방식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나파 마을의 드레프던 포도원 양조자들은 발포성 포도주를 만드는 피노 누아 포도의 색깔이 너무 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일 시원한 밤에 수확을 한다면 색소가 덜 나오는지 다른 재배자들을 통해 확인해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트레프던은 더 신선하고 생기있는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새내기 양조자들은 판매에 있어서도 색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그들은 양조장에서 소비자 직판을 했고, 우편 주문 판매를 시도했다. 그들의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실험은 와인 전문가나 애호가보다는 와인 초보 소비자들에게 더 호감을 샀다. 세인트 헬레나의 서터홈에서 발효중인 진판델 탱크 하나가 발표를 멈추었다. 포도즙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바뀌지 못했다. 이때 서터홈의 생산자들은 이 달콤한 분홍색 와인을 ‘화이트 진판델‘로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서터홈은 매년 화이트 진판델 수백만 상자를 팔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새내기 양조자들에게는 달성하고픈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위대한 프랑스 와인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양조 기술을 면밀히 공부하면서, 정확히 무엇이 프랑스 와인이 위대하게 만드는지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자신도 그 맛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자신의 와인과 함께 이른바 세계 최고의 와인들을 꾸준히 마시면서 서로를 비교하고 견주었다.

(중략)

새로 온 양조자들도 자신이 알아낸 지식을 나누고 서로를 돕는 캘리포니아의 전통을 존중했다. 그들 대부분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데이비스 캠퍼스프레즈노 캠퍼스에서 발전시킨 신기술과 기법을 성실히 따랐다. 프레즈노 캠퍼스는 1958년 독자적인 포도주 강좌를 개설했다. 다들 자신만의 양조방식을 찾고 솜씨를 갈고닦으려 애썼기 때문에 영업비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과 유서깊은 기술이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전통과 유서가 없기 때문에 혁신이 가능한 기술도 있다. 오래 내려온 지식을 꼭 절대시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파리의 심판’ 당시의 모습

조지 M. 태버 저/유영훈 역, “파리의 심판“, 알에이치코리아, 2014

p12-17

파리의 심판, 그 시작

1970년대 중반에 나는 〈타임〉특파원으로 일했다. 파리의 작은 사무실에 앉아 프랑스 정치에서 디자이너 맞춤복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써냈다. 때때로 우리가 관할하는 주변 나라들에서 큰 사건이 터지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는데, 에스파냐 수상의 암살을 취재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간 적도 있었고, 혁명 발발 보도를 위해 리스본으로,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이 관여된 뇌물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는 등 그야말로 유럽 각국을 종횡무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직업이었다.

1976년 5월 24일 나는 마침 파리에 있었다. 일주일 전 나는 뉴욕의 편집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하려는 한 와인 시음회에 대해 기사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시음회는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와인 몇 병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생 캘리포니아 와인들과 비교하고자 했다. 사실 하나 마나 한 행사 같아 보였다. 프랑스가 이길 게 뻔했다. 하지만 나 역시 캘리포니아 출신으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스위스, 독일, 벨기에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면서 와인에 대해 꾸준히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다.

매주 전 세계의 〈타임〉특파원들이 수백 건의 기삿거리를 제출한다. 그중에서도 일부만이 취재 승인을 받으며, 그걸 또 추려서 실제 지면에 싣는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생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잡지가 나오는 것이다. 시음회 건은 취재 승인이 났지만 나 역시 잡지에 실릴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프랑스 와인이 이긴다면 아예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게다가 와인 시음장에 가면 적어도 몇 종의 와인은 직접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가 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지루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호텔 안내인은 시음회장인 호텔의 테라스 바에 딸린 작고 우아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입장했을 때는 턱시도를 단정하게 입은 웨이터들이 식탁보를 깔고 잔을 놓으며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시음회 주최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영국인으로서 카브 드 라 마들렌이라는 와인 숍의 주인인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미국인 동료 퍼트리샤 갤러거가 이 시음회의 주최자였는데, 나는 카브 드 라 마들렌에서 운영하는 와인 학교인 아카데미 뒤 뱅(Académie du Vin)에서 갤러거가 가르치는 와인 입문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취재를 마음먹은 이유도 그녀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다. 시음회의 목적이 와인 숍과 와인 학교의 홍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퍼리어와 갤러거는 이번 행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언론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행사장에 나타난 기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갤러거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하고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갈색 수첩을 꺼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아홉 명의 심사위원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그들 중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프랑스 유수의 와인 전문가로서 흠잡을 데 없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기득권층 특유의 조용한 태도로 악수를 하고 서로를 반긴 다음, 긴 탁자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시음회는 익명 시음, 즉 와인의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음 중에는 자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고 있는지 모를 터였다. 다만 제공되는 와인이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산이라는 사실과, 적포도주는 보르도풍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이고 백포도주는 부르고뉴풍의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이라는 것만 알았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표식이 없는 병을 든 웨이터들이 긴 탁자를 따라 움직이며 심사 위원들 앞에 높인 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는 점수표와 와인 잔 두 개, 작은 빵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하드롤 빵은 시음하는 중간중간에 입맛을 정리하는 용도였다. 와인 시음은 관례에 따라 백포도주 부터 시작했다.

시음회는 매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시음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장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심사위원들도 여느 시음회 때보다 조금 더 수다스러웠다. 일반적인 시음회에서 와인 전문가들은 대개 입을 닫고 손에 든 잔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시음회는 그렇지 않았다.

출품된 백포도주의 대략 절반이 나온 무렵부터 나는 뭔가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갤러거가 준 시음 와인 목록과 순서가 적힌 종이를 갖고 있었기에 심사위원들의 혼란을 눈치챘다! 그들은 프랑스 와인을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판단하거나, 아니면 캘리포니아 와인을 프랑스 와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탁자 한쪽에서 어떤 와인이 프랑스 와인이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주장했다.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파리의 레스토랑 르 그랑 베푸르(Le Grand Véfour)의 오너 셰프 레몽 올리베르(Raymond Oliver)는 백포도주가 든 잔을 살살 돌리고 와인을 빛에 비추어 옅은 밀짚 색깔을 확인한 다음, 향을 맡고 맛을 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야, 다시 프랑스 와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중을 기하면서 와인 목록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 올리베르가 방금 맛본 와인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온 1972년산 프리마크 애비(Freemark Abbey) 샤르도네였다!

뒤이어 프랑스 요리와 와인에 관한 책과 잡지를 내는 고미요(Gault Millau) 출판사의 클로드 뒤부아미요(Claude Dubois-Millot)가 또 다른 백포도주를 시음하더니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건 캘리포니아 와인이 확실하네요. 좋은 향이 없어요.” 하지만 확인한 결과 그 와인은 라모네-프뤼동(Ramonet-Prudhon)이 만든 1973년산 바타르 몽라셰(Bâtard-Montrachet)였다.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 중 하나였다.

스퍼리어의 파리 시음회는 정말로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될 것 같았다.

와인 역사의 유명한 파리의 심판 사건이 책으로 나온 줄 이제사 알고 읽고 있다. 설명이 필요한지? ㅋ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 상승 이유

일전에 맥주 시장점유율에 대한 데이터를 소개[1]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오비맥주가 하이트를 제치고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결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나온다.

박동휘/좌동욱 저, “1조원의 승부사들“, 한국경제신문, 2015

2014년 전 세계 투자은행업계가 한국 시장의 오비맥주에 주목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비맥주가 아니었다. KKR과 어피너티가 오비맥주를 AB인베브에 재매각하여 무려 4조 원에 이르는 기록적인 수익을 남겼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월 가의 뱅커들이 놀란 것은 매각 차익뿐만이 아니었다. M&A 거래 배수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AB인베브가 인수한 가격(58억 달러)이 에비타의 11배에 달했다. 이는 AB인베브가 2009년 5월 KKR에 오비맥주를 매각할 때 회사를 되살 수 있는 콜옵션 가격 조건을 에비타의 11배로 사전에 정해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설마 이 가격에 사겠어’라며 내건 조건을 AB인베브가 받아들인 셈이다.

뱅커들을 실제로 놀라게 한 것은 하이트와 오비맥주로 양분된 한국 맥주 시장에서 약 5년 만에 에비타를 2,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성장시킨 비결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은 40%에서 60%(업계 추정)로 늘어나면서 하이트를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2009년엔 한국의 그 누구도 오비맥주 시장점유율이 60%로 상승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향후 5년간 이익이 두 배가 된다고 장담했다면 비웃음을 샀을 겁니다. 철저하게 기업의 내재가치를 끌어올린 결과였죠.”

2009년 KKR과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경쟁했던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가 KKR의 매각 성공 스토리를 지켜본 후 털어놓은 속내였다. 오비맥주 인수전은 당연히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는 본질에 대한 고민들이 더 깊어졌다. 사실 KKR과 어피너티는 인수 후 구조조정을 하지도 않았고, 추가로 M&A를 하지도 않았다. 비용 절감 대신 과감한 투자가 비결이었다. 마케팅 비용을 늘리고, 유통망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우수한 인력들을 끌어들였다. 2010년부터 시설 투자금으로 무려 2,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이런 노력들을 기울인 결과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중략)

KKR과 어피너티라는 환상의 조합

오비맥주를 접수한 직후, 어피너티 한국팀들은 부산 등 전국 도매상 20여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베브 치하 10년(2004~2014년)’의 공과를 철저히 검증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글로벌 그룹인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숫자로만 경영하려 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한국적인 기업 관행이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글로벌 기준에 오비맥주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인베브그룹의 거대한 매트릭스 조직에서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오비맥주 CFO는 국내 CEO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베브그룹 아시아태평양 지역 CFO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뿌리 깊었다.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원가 절감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오비맥주도 예외 없이 동참해야 했다. 원료 구매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때도 있었지만 이 같은 ‘숫자 경영’은 한국적 기업 관행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일례로 오비맥주 관계자는 “부산 지역 도매상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아태 본부에 보고하면 그쪽에선 사태의 심각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하이트진로와의 경쟁에서 마케팅과 영업력을 키우기 위해선 이른바 ‘접대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용인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임직원들도 위험을 굳이 감수하려 들지 않았다. 1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보고하면 윗선에선 ‘투자 후 예상되는 성과를 산출한 뒤 재보고하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

어피너티는 10년간 누적돼온 비효율을 파악한 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숫자 경영’을 ‘독립 경영’으로 바꾼다는 게 골자였다. 국내 대기업을 포함해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사모펀드는 오로지 투자기업 한 곳의 경영 성과만 내면 그만이었다. 예컨대 SK그룹의 계열사 사장은 무엇 하나 결정하려고 해도 다른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야 하고, 혹시나 겹치는 사업이 없는지 등을 포함해 경영 외 정무적인 사항들까지 고려해야 했지만 사모펀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어피너티는 진로 출신 영업의 달인인 장인수를 2010년 1월 CMO로 영입하는 등 경영기획 임원들을 소수만 바꾸는 것을 제외하고 이호림 사장 등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의 실책은 엄중히 따지되,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이에 관한 일화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 어피너티와 KKR이 오비맥주를 인수했을 무렵, 이호림 사장은 무려 16개의 직보 라인을 갖고 있었다. 모두 영업, 마케팅과 관련한 보고 조직으로 16군데에서 매일, 수시로 보고를 받다보니 사장의 하루 일과는 회의만 하다가 끝나기 일쑤였다. 문제점을 파악한 어피너티는 곧바로 사장 보고 조직을 3분의 1, 즉 사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하이트진로에 밀려 30%대로 떨어졌던 시장점유율이 뒤집히며 2011년엔 오비맥주가 1위를 탈환했다. 2009년 8,161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1년 1조 원을 돌파했다.

시장 1위 탈환의 결정적 한 방

어피너티와 KKR은 2012년 6월의 인사이동에서 신의 한 수를 선보였다. 시장 1위 탈환이라는 실적을 남긴 이호림 사장을 경질시키고, 장인수 사장을 신규 선임한 것이다. 오비맥주 측은 “새로운 리더십으로 더 큰 도약을 위해 변화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군기 잡기’에 능숙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이호림 사장은 위기의 오비맥주를 구해내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다면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고졸 신화’의 장인수 사장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장인수 사장의 선임은 하이트진로와 비교해봤을 때 꽤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하면서 두 조직 간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갈등의 배경은 주류 영업에서 최고로 일컬어지던 진로계가 뒤로 밀리고 하이트 출신들이 임원진을 차지하며 권력을 장악한 데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잘나가던 ‘맥스’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갑작스레 ‘드라이피니시 디’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출시하는 등 마케팅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었다. 급조된 새 브랜드들은 오비맥주의 고객을 빼앗아오기는커녕 기존 하이트맥주의 고객을 혼란하게 만들며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비맥주는 진로 출신 영업의 달인을 수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장 사장은 오비맥주에 영입될 때 진로 출신 핵심 영업맨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2009년 어피너티가 오비맥주를 인수할 당시 1.6억 달러 남짓이던 에비타는 2013년 말 5억 달러(5,290억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시장점유율도 60%로 도약했다. 어피너티, KKR이 인베브그룹에 오비맥주를 재매각하기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후략)

오비맥주의 매각으로 KKR과 어피너티는 국내 사모펀드 역사상 기록적인 수익률을 남기게 된다고 한다. 결국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장인수 사장의 영업력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KKR이 장인수씨를 영입한 부분이 신의 한수가 아닌가. ㅋ 참고할만한 기사가 몇 개[2,3] 있다.

 


[1] 내 백과사전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2011) 2011년 12월 16일
[2] 비지니스포스트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 ‘날개’를 달다 2014.01.21 16:29:11
[3] 서울경제 [CEO&Story] 장인수 오비맥주 대표 2014/10/09 18:05:39

감자 품종과 허니버터칩

본인은 감자 품종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페북에서 참고할만한 글을 봐서 포스팅해 봄.

참고할만한 다른 글

감자품종 대서 by 농사꾼 이관철
감자품종 두백 by 다락골사랑
Superior (potato)(수미) in Wikipedia
Atlantic potato(대서) in Wikipedia

 


2015.1.9
한겨레 ‘없어서 못사더니’…허니버터칩, 유사품에 밀렸다 2015.01.08 10:08

 


2015.2.13
식품음료신문 농심, 수미칩 열풍에 국산감자 6천톤 추가 구매 2015.02.12 10: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