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소말리아의 화폐유통

Fiat currency란 가치가 있는 어떤 실물과의 교환이 보증되어 있지 않는 화폐인데, 대부분의 현대적 화폐가 이에 해당된다. 과거 닉슨의 태환 정지 이전에는 달러화가 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Representative money였으나, 현재는 fiat money가 된다.

이러한 fiat money가 (즉,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물건이) 어째서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거시경제학 이론 중의 하나로 chartal theory라는 게 있다고 한다. 화폐의 가치는 정부가 세금 징수 등 국가의 직접적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가 권력에 의해 창출된다는 주장인데, 근래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 이 주장은 아무래도 망한 듯-_-

서론이 길었는데, 해커뉴스[1]에서 흥미로운 글[2]이 링크되어 있어 포스팅한다. 처음 보는 블로그지만,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참고로 중간에 tl;dr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뭔 말인가 했더니만 ‘너무 길어서 안 읽었음(too long; don’t read)‘ 의 약자라고 한다-_- 인터넷 슬랭 따라가기 힘들군-_-

소말리아 정부가 25년만에 처음으로 법정화폐를 유통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모양[3,4,5]인데, 정부가 기능을 정지한 이래로 지난 25년간 유통되어 온 소말리아 실링은 중앙은행이 없는 ‘Orphaned currency’였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유통되는 지폐의 95%는 위조지폐인데[5], 누구나 진짜인지 위폐인지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하지만, 진짜 지폐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왜 그런가 싶어서 글[2]을 자세히 보니 위조지폐를 발행하는데 드는 비용(잉크+종이값+인쇄비용)이 그 화폐로 살 수 있는 실물가격과 대충 비슷한 듯-_- 통화량이 위조지폐의 공급으로 조절되고 있다니, 경제학에서 이보다 더 기묘한 사례도 없을 것 같다.

과거에 소개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의 사례[6]처럼 이 소말리아 실링의 사례도 chartal theory에 대한 반론으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ㅋ 1000 소말리아 실링은 1991년에 대략 미국달러로 30센트에서 2008년에 3센트정도로 하락했으나, 그 이후로는 purchasing power가 거의 안정된 가치를 유지해왔다고 한다.[7]

뭐 여하간 중앙은행의 통제 없이 자생적으로 화폐경제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달 이코노미인사이트지에 대안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시행되고 있는 사례를 연속적으로 소개하는 기사[8,9,10]가 실려있던데, 아나키스트들이 꿈꾸는 중앙집권화된 권력에서 벗어나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각 지방 공동체간의 느슨한 연합세력화된 사회구조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공상이 든다.

 


[1]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14414272
[2] Bringing back the Somali shilling in Moneyness
[3] quartz Somalia is a leader in mobile money but still wants to print its first cash notes in 25 years February 22, 2017
[4] 블룸버그 Somalia Intends to Print Its Own Currency by Early Next Year 2016년 5월 27일 오후 10:19 GMT+9
[5] financial times Somalia to print first banknotes in 25 years MARCH 8, 2017
[6] 내 백과사전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 Maria Theresa thaler 2015년 5월 7일
[7] Luther, William J., The Monetary Mechanism of Stateless Somalia (April 28, 2012).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2047494 or http://dx.doi.org/10.2139/ssrn.2047494
[8] 이코노미인사이트 공존 자본주의 실험, 시간화폐 공동체 2017년 05월 01일 (월)
[9] 이코노미인사이트 전세계 20여 개국 다양한 형태로 시도 2017년 05월 01일 (월)
[10] 이코노미인사이트 병원에 ‘두루’ 내고 시장에선 ‘아리’ 쓴다 2017년 05월 01일 (월)

삼의사에 대한 단상

효창공원에는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가 있다고 한다. 세 의사에 대한 세간의 인지도나 평가에 대한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봉창 의사는 과대 평가를, 백정기 의사는 과소평가를, 윤봉길 의사는 제대로 평가 받고 있는 듯 하다.

1. 이봉창 의사의 경우는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1]에 따르면 그는 빅 플랜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전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 생각은 그리 없었는 듯 하다. 평범한 일본인들도 알고 있었던 당일 천황의 진로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폭탄을 던졌으니, 거사 직전에 술 마시고 놀던 거 좀 줄이고 계획에 대한 심사숙고만 좀 했어도 거사가 성공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 한국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은 일왕 생일인 천장절에 일본의 주요 장교들을 공격한 사건으로, 당대 신문에서도 1면에 큰 비중으로 기사가 나갔었다고 한다. 장제스는 이 사건에 크게 감복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크게 후원하였고, 그의 일기에 따르면 카이로 회담 당시 처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최종 선언문에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는 문구를 넣었다. 결국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 폭탄 한 개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근데 민족주의 계열의 김구 팀 의거와는 독립적으로 아나키즘 계열인 흑색공포단의 구파 백정기 의사 팀도 같은 날 비슷한 폭탄공격을 준비하였으나, 일본어에 능숙했던 윤봉길 의사와는 달리 인맥이 딸려서인지는 몰라도 당일 입장권을 구할 수 없어서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김구-윤봉길 팀이 실패하고 백정기 팀이 성공했다면, 오늘날의 아나키즘 독립운동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관점이 참으로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3. 구파 백정기 의사[2]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다음해에 육삼정에서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암살을 계획했으나, 누군가의 사전 밀고로 거사 직전에 전원 검거되고야 말았다. 별로 세간의 평가는 좋지 않은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인상깊게 본 영화 ‘아나키스트'[3]는 아마 이 육삼정 의거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인 것 같은데, 아나키스트 독립 운동가들의 이상이 녹아있는 몇몇 명대사가 나온다. 독립 운동 유적에 관한 KBS 방송[4]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육삼정이라는 요리점의 현재 위치조차 모르고 있다고 하니, 아무튼 성공한 거사만 기억되고 실패한 거사는 별로 기억되지 못하는 측면에서 많이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2011년 1월 1일
[2] http://zariski.egloos.com/2382981
[3] http://zariski.egloos.com/180319
[4] KBS [광복절 특집] 항일 유적이 사라진다 2011.08.15 (10:59)

[서평] 카탈로니아 찬가

카탈로니아 찬가10점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민음사

스페인 내전사에 대한 전반적 개괄은 일전에 소개한 앤터니 비버 선생의 저서[1]가 상당히 볼만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역사상 가장 아나키스트의 활동과 문화가 활발했던 장소인 스페인에서, 앤터니 선생의 아나키즘에 대한 빈약한 관점과 편협한 사관 덕분에 이에 관한 내용이 책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 꽤나 애석한 부분이 없지 않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인데, 오웰은 다들 알고 있는 바로 그 유명한 소설가이다. 당대 반 파시즘의 기치를 걸고 뭉친 지식인 집단이 스페인 내전을 위해 참전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반파시즘 연대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2]가 읽을만하니 참고하시라.

책 내용 자체는 전반적으로 현장감이 무척 느껴지는 생생한 수기라서 마음에 든다. 앤터니 선생의 책 처럼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역사서도 좋지만, 개인적 경험담을 통한 현장감으로 당대의 분위기와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특히 아나키스트 군대의 병영문화에 대한 묘사(p40)는 흥미롭다.

당대 스페인의 ‘마냐냐’문화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는데, 오웰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꼭 현대 중국인이나 인도인을 묘사하는 글 같다. 일전에 소개한 장하준 선생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3]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민족성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고정 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11장은 당대 선전물과 언론의 진위 공방에 대한 이야기라서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는 뒤쪽의 역자 설명이 있다. 실제로 그리 재미있지는 않고, 전체 내용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도 이 부분은 읽지 않고 넘어갔다.

스페인 내전이나 아나키즘 운동사에 관심이 있다면 미시사로서의 기록으로서도 읽을만할 것 같고, 오웰에 관심이 있어도 볼만할 것 같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2010년 12월 13일
[2] 한국일보 반파시즘 세계연대… 국제여단이 일깨운 것 2014.12.15 22:16
[3] http://zariski.egloos.com/2216542

비트코인 지상낙원 : Galt’s Gulch Chile

본인은 읽어본 적 없지만 유명한 모양인 대하소설 Atlas Shrugged에서 영감을 받은 Galt’s Gulch Chile라는 공동체가 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 슘페터 블로그[1]에 이 공동체가 소개되어 있다.

이 공동체는 자급자족과 독립 경제체제를 목표로 자유주의자의 낙원을 표방하는 아나키즘적 커뮤니티인가 본데, 대부분의 경제 시스템이 비트코인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임금이나 서비스가 비트코인으로 결제되는 듯. 하지만 독립 주권국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코노미스트지[1]에 따르면, 공동체 이름인 Galt’s Gulch Chile는 정작 그 동네 스페인어 사용자들은 발음하기가 꽤 어러운 모양이다. ㅋ

그들의 웹사이트[2]에 그들의 비전이 설명되어 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걸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다.

430개의 부지를 파는 모양인데, 지금까지 12% 정도 입주자가 있는 모양이다. 부지 매입은 비트코인으로도 할 수 있는 모양인데, 비트코인으로 매입하면 꽤 할인해 주는 듯.

여하간 얼마나 성공적으로 디자인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재미있는 이상주의 실험이다. 역사적으로 이상주의 실험이 꽤 여러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코노미스트 기사[3]로도 몇몇 소개되어 있다. 이번에는 비트코인 덕에 성공하려나? ㅋ

 


2015.3.13
사이언스타임즈 영국의 ‘비트코인 천국’ 프로젝트 2015.03.12

 


[1] 이코노미스트 Bitcoin paradise Dec 25th 2013, 22:20
[2] http://galtsgulchchile.com/about
[3] 이코노미스트 Honduras shrugged Dec 10th 2011

[서평]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10점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이미지프레임(길찾기)

일전에 알라딘 북펀딩에 소개[1]한 그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참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었다. 두시간여 동안 한숨도 쉬지않고 다 읽었다. ㅎㅎ

이 책은 스페인 내전 당시 아나키스트 전사로 활동하였고 말년에 자살을 선택한 저자의 아버지의 일생을 아버지의 시점에서 꼼꼼히 재현하여 이를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하였다. 왜 만화를 선택하였는지는 맨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설명해 준다.

우리 역사에서 한국 전쟁이 그러하듯이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두 전쟁 모두 이념에 의해 동족이 서로 죽이는 국가의 상처로 남은 전쟁이었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러한 비극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의 일부이다. 일전에 소개한 앤터니 비버 선생의 저서[2]가 비록 아나키스트에 대한 궁핍한 관점을 보이고는 있으나 상당히 볼만하다. 스페인 내전사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면 앤터니 비버의 저서를 권한다. 스페인 내전사에 대해 조금 지식이 있으면 이 책의 이해가 더 쉬울 듯 하다.

정말 짠하게 감동적인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다. 공화진영의 피난민이 프랑스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앤터니 비버의 저서에서 손목을 비틀어 조국 스페인에서 가져온 한줌 흙을 버리게 하는 그 애잔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두루티의 신발을 불태우는 장면, 마리아노 씨가 반지를 녹여 다시 총탄을 만든 이야기, 레스티투토의 작업실 폐쇄…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버지가 하늘을 나는 장면까지… 과연 알라딘의 어느 서평 대로 ‘만화와 문학의 최대치를 동시에 성취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필요 있나. 읽어보시라.

책의 맨 끝에 알라딘 북펀딩에 참여한 사람 목록에 내 이름이 아주 작게 나온다. 뭔가 더 애착이 가는구만. ㅎㅎ

 


2013.8.27
중앙일보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청소년 유해물이라고? 독자 모욕 아닐까요 2013.08.23 00:19
심의를 한다는 놈들의 머리 속에는 뭐가 든건지 이해가 안 되는 구만.

 


[1] 내 백과사전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2013년 4월 2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2010년 12월 13일

[서평] 사코와 반제티 :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미국의 마녀재판

사코와 반제티10점
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삼천리

보스턴은 미국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본인은 보스턴 차 사건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근래 있었던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80년도 더 전에 있었던 보스턴이 미국의 양심을 팔아넘긴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20세기 초 아나키즘 운동사에 있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이 사코와 반제티 사건인데,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미해결 케이스로 남아있지만, 편견에 가득찬 인간들이 행했던 사법살인이 주는 메세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전반적으로 그들에 대한 판결은 편견에 가득한 판사와 정의를 망각한 검사, 그리고 무능한 변호사의 합작품이다.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리지만, 드레퓌스는 결국 풀려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처형되고 만다.

이 책은 사코와 반제티 사건의 경과를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도 상세하게 소개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제화공장의 임금 지불일에 있었던 노상 무장강도의 살인사건 이후, 아무런 범행동기가 없는 아나키스트였던 사코와 반제티가 검거된다. 당시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고, 때마침 월스트리트 폭탄테러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의 간략한 부분은 일전에 소개한 ‘자동차 폭탄의 역사'[1]의 앞부분에도 소개가 되어 있다. 이후 이들의 부당한 재판과정에 반응한 전 세계의 아나키스트들이 항의하면서, 점차적으로 아나키스트는 아니지만 양심이 있는 지식인들까지 부당한 판결에 맞서 그들의 석방을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은 원래 강도사건을 떠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세력간의 대결로 격화되고, 결국 7년의 시간을 끈 끝에 그들은 전기의자에 처형된다.

재미있는 부분은 진범이 자백하고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서면도 아직까지 당시 유죄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면에서 보자면 인간은 참으로 터무니 없이 비논리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노상강도 사건 당시의 정황을 알려진데까지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한 후, 그 뒤에 펼쳐지는 법정공방에 관한 내용이 앞부분 절반정도에 해당하고,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석방을 위해 헌신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전세계에 울려퍼지는 함성을 그리고 있다.

몇 가지 코멘트할 부분이 있다.

p20에 미국 국가가 울릴 때 자리에 일어서지 않던 사람을 해병이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죽이자,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가 아나키스트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보여주는 단편이 아닐 수 없다.

(통상 공산주의자라고 불리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는 전통적으로 매우 관계가 좋지 못한데, 마르크스주의자는 혁명의 중간부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도기적 단계를 필수적으로 보았고, 아나키스트는 그 부분을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마르크스주의 독립운동가와 아나키즘 독립운동가들간의 투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부분은 일전[2]에 소개한 바도 있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코와 반제티 문제를 이용했던 부분(p390)에서는 치가 떨린다.

책 속의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약간 지루하다고도 생각될 수 있지만, 그만큼 사건의 상세한 부분을 알려주려는 저자의 노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부분은 약간 늘어지지만 조금 지나서 법정 공방 부분에 들어가면 법정 드라마를 연상시킬만큼 긴장되는 공방이 오고가므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세계를 울리는 함성이 있었건만 세월에 장사가 없는 것 같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알려주는 기념물이 거의 전무한 듯 싶다. 다행히도 이런 출판물이 국내에까지 번역된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고나 할까.

 


[1] 내 백과사전 [서평] 자동차 폭탄의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2012년 5월 4일
[2] http://zariski.egloos.com/2487324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알라딘에 북펀드라는 제도가 있다. 출간 예정인 책에 돈을 후원해서 그 책이 얼마 이상 팔리면 보상을 얻는 제도인데, 아무래도 킥스타터를 모방한 듯 하다. 일전에 했던 불온서적 이벤트도 그렇고, 이런걸 보면 알라딘이 참 똑똑하단 말이지.. ㅋ

http://www.aladin.co.kr/bookfund/bookfundmain.aspx

본인은 정말 보고싶은 책이 있다면 일이백만원 정도는 후원해 줄 생각이 충분히 있다. 아쉽게도 여태까지는 출간 예정인 책들이 보통 별로 흥미가 없는 책이라 여태 한 번도 후원해본 적이 없는데, 어제 처음으로 후원해보고 싶은 책이 올라왔다. 바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20세기 초 아나키즘 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이 책이 개인적인 관심에 얼마나 충족해 줄지는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1인당 5만원 이상 후원이 안 된다니 아쉽다…… 출간되면 바로 사서 읽어봐야겠다.

[서평]다시 그 경계에 서다 : 100년 전 그날, 만주벌판을 향해 떠났던 선조들의 숨겨진 역사

다시 그 경계에 서다10점
이종걸 지음/옥당(북커스베르겐)

국내 정치인 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 이종걸 국회의원의 저서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아나키즘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기도 해서 사 읽어봤다.

이 책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이 할아버지의 자취를 찾아 중국의 독립운동사 유적지를 방문한 일정을 묘사한 기행문이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난 광복절에 KBS에서 광복절 특집 ‘항일 유적이 사라진다‘편을 방영했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항일 기념 건물들이 급격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심지어 일부는 그 위치까지도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보았는데,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역사적 장소들이 위치를 정확히 동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을 정도라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았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 책에서도 이종걸 의원이 여러 항일 유적들을 방문하면서 원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을 한탄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뭐 대한민국에서조차 ‘한국현대사학회‘ 같은 파렴치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중국 사람에게 뭘 바라겠나만은… 큭.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나키즘 독립운동사의 역사적 개괄과 더불어 이종걸 의원의 감상적 의견으로 되어 있다. 초심자라면 꽤 읽을만하겠지만, 아나키즘 독립운동사에 관해 이런저런 지식을 접한 본인으로서는 거의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지식 습득의 차원에서는 거의 얻을 것은 없었다. 위 언급한 KBS 광복절 특집에도 나왔지만, 백정기 의사께서 의거했던 육삼정의 위치를 현재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책의 후반부에는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현장답사를 했던 기행문이 있는데, 본인이 일전에 방문했던 정읍의 구파 백정기 의사 기념관도 있다. 일전에 한 번 가 본 장소라 그런지, 이종걸 의원의 기행문이 좀 더 특별히 느껴진다.

이종걸 의원이 정치인이 된다고 그의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니, 그의 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즉시 정치를 그만둘 수 있느냐’는 대화가 꽤나 인상에 남는다.

독립운동사 또는 이종걸 의원에 관심이 있다면 읽을만할 것이다.

[서평]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10점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교양인

스페인 내전하면 개인적으로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전에 소개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1]인데, 뭐 조작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현장감 있는 스틸컷으로 유명하다. 이 ‘스페인 내전’을 읽고 일전에 소개한 알렉스 커쇼가 쓴 로버트 카파의 일대기인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2]의 앞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책에서 묘사한 각종 정치적 상황들이 매우 잘 이해되었다. 확실히 시대적 배경지식을 갖추고 나니 예전에 읽었을 때랑 느낌이 많이 다르군. 큭.

이 책은 스페인 내전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꼼꼼하게 소개하는 앤터니 비버 형님의 책이다. 앤터니 비버의 저작은 일전에 소개한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세계 역사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의 기록'[3]이라는 책에서 한 번 접한 바 있으므로, 책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군사사의 지존이신 periskop님은 앤터니 비버의 책에서 크게 실망[4]하셨다지만, 뭐 본인은 그 정도로 전문적이지는 않으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겠다. ㅎㅎ

부제의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 너무나 적절할 정도로 스페인 내전의 독특함은 유명하다. 파시즘, 공산주의, 공화주의, 아나키즘, 게다가 가톨릭교 까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책 속에서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좌파, 아나키스트와 같은 이념적 지형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난무하는데, 가끔은 문맥속에서 저자가 정확히 어떤 정의로 이런 단어들을 선택한 것인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좌파 팔랑헤당원’과 같은 기이한 조합의 단어(팔랑헤당은 내전 당시 극우파 정당임)도 책속에서 눈에 띈다. 문맥상 이해할 수 없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자는 ‘좌파’, ‘공화주의자’ 등과 같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쓴 것인지 좀 명백하게 설정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사실 이 책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중의 하나가 세계에서 유래없이 아나키즘이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한 스페인의 독특한 이념적 환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는데,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지적한 다른 어느 분의 리뷰[5]를 읽어볼 수 있었는데,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만하므로 일독을 권한다.

앤터니 형님이 우파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아나키즘의 실제적 활동과 현실적 적용에서의 한계가 스페인 내전사를 통해 곳곳에서 느껴져 좌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가지는 아나키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느낌이다. 스페인 내전사를 조망하는 다른 관점에서의 저서를 꼭 읽어보고 싶다.

카탈루냐 함락 이후 공화진영에서 프랑스로 피난을 온 난민이 가져온 한 줌의 스페인 흙을 억지로 비틀어 버리게 하는 장면(p663)은 무척 인상깊다.

책은 전황의 설명도 많지만 이념적 갈등, 세력 다툼 및 외교와 같은 배경 사건에도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텍스트의 양은 꽤 많고 등장 인물도 많아서 집중해서 읽어도 상당 기간 독서시간이 필요하다. 알라딘에서 반값 세일을 하길래 슥샥 샀는데, 완독의 보람이 있어 좋다. 일독을 권한다.

 


2014.12.16
한국일보 반파시즘 세계연대… 국제여단이 일깨운 것 2014.12.15 22:16

 


[1] http://zariski.egloos.com/2365810
[2] http://zariski.egloos.com/2369957
[3] http://zariski.egloos.com/2381537
[4] http://blog.periskop.info/192
[5] 앤터니 비버 –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교양인(2009) by 바람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