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man Rockwell –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Norman Rockwell,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1964, Oil on canvas, 91 cm × 150 cm

일전에 노먼 록웰의 작품이 소더비에 낙찰돼서 포스팅[1]한 적 있는데, 웹서핑하다가 다른 작품을 봐서 또 포스팅 함 ㅋㅋㅋ

노먼 록웰 하면 미국의 김홍도 같은 사람인데, 서민적 일상을 그림에 잘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한 화가라고 한다. ㅎ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랜드마크 판결 중의 하나인 Brown v. Board of Education에 의해, 흑인과 백인의 분리된 학교 교육이 위헌 판결된 것에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반발하여 뉴올리언즈 주의 위기가 일어났고, 그 때문에 과거 백인 학교였던 학교에 등교를 하는 6세 소녀 Ruby Bridges와 그녀를 경호하는 네 명의 경호원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일천해서, 록웰 화백이 삼중자화상[2] 같은 소프트한 그림만 그린 줄 알았더니만, 당대 꽤나 사회적인 문제를 담은 그림도 그린 줄은 몰랐다. ㅎㅎ 위키피디아를 보니 Ruby Bridges씨는 나중에 커서 사회운동을 한 모양이다.

참고로 랜드마크 판결이라고 하니까 그 중의 하나인 Loving v. Virginia 이야기[3]를 한 적이 있다. 걍 생각나서 그냥 써봄-_-

 


[1] 내 백과사전 Norman Rockwell – Saying Grace 2014년 1월 27일
[2] http://www.nrm.org/MT/text/TripleSelf.html
[3] 내 백과사전 Loving v. Virginia 2014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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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 원주민의 조상에 대한 상반된 생물학적 결과

부활절에 발견됐다고 섬 이름이 ‘이스터’가 된 망망 대해 한 가운데에 있는 요상한 섬 만큼 고고학계에서 마르지 않는 논쟁의 우물은 없는 것 같다. ㅋ

Archaelogy 매거진의 기사[1]를 보니 이스터 섬 원주민의 조상을 추적한 연구가 Current Biology에 발표[2]된 모양인데, 내용인 즉슨, 이스터 섬 원주민 5명의 상염색체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이랑은 별 관련 없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스터 섬이 서구에 알려지기 전에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일부가 접촉했다는 유전자 분석의 결과[3]를 일전에 본 적이 있는데, 이거랑은 정반대의 주장 아닌가!!!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구만-_-

이번 연구[2]는 아무래도 헤위에르달 선생에게는 불리한 결과 같은데, 어찌 될려나 모르겠다. 헤위에르달 선생은 학계에서 꽤 유사과학자 취급을 받는 듯한데-_-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몇몇 결과[4]가 나오면서 개인적으로는 꽤나 흥분했었다 ㅋㅋ 근데 또 반전이 일어나네 ㅋㅋㅋ 사이언스 매거진[4]을 보니 헤위에르달 선생은 중동에서 남아메리카를 거쳐 이스터 섬으로 왔다는 주장도 한 모양인데, 이건 좀 너무했다-_- 고고학계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사람인 듯 하다. ㅎㅎ

여하간 본인은 지식이 없어서 이런 유전적 분석들[2,3,4]이 왜 상반된 결과를 낳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전에 이스터 섬의 몰락 이유에 대한 이야기[5]를 했는데, 나무위키의 이스터 섬 항목[6]에도 꽤 다양한 주장들이 소개되어 있다. 자꾸 새로운 주장과 가능성은 제기되는데 결정적인 한 방은 없는 듯 하다. 여하간 이스터 섬은 고고학계의 영원한 떡밥인 듯 ㅎㅎ

 


2017.10.14
사이언스 Did early Easter Islanders sail to South America before Europeans? Oct. 12, 2017 , 12:30 PM

 


[1] Archaelogy Genetic Study Questions Idea of Early Easter Island Contacts Friday, October 13, 2017
[2] Lars Fehren-Schmitz, et al. “Genetic Ancestry of Rapanui before and after European Contact”, Current Biology, Published: October 12, 2017, DOI: http://dx.doi.org/10.1016/j.cub.2017.09.029
[3] J. Víctor Moreno-Mayar, et al. “Genome-wide Ancestry Patterns in Rapanui Suggest Pre-European Admixture with Native Americans”, Current Biology, Published Online: October 23, 2014, DOI: http://dx.doi.org/10.1016/j.cub.2014.09.057
[4] Andrew Lawler, “Beyond Kon-Tiki: Did Polynesians Sail to South America?” Science 11 June 2010: Vol. 328 no. 5984 pp. 1344-1347, DOI: 10.1126/science.328.5984.1344
[5] 내 백과사전 이스터 섬의 몰락 이유에 대한 새로운 견해 2015년 1월 8일
[6] 이스터 섬 in 나무위키

Bakhshali manuscript : 기호 0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서

archaeology 매거진의 기사[1]를 보니 Bakhshali manuscript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전에 내용상으로 추정한 것 보다 500년이나 과거인 3~4세기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문서의 내용이 은근 난이도가 있는 편인 모양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등비수열, 연립방정식, 2차방정식, 부정방정식 등의 내용이 있다고 한다. 대충 국내 교육과정에 중3~고1 수학 정도의 내용에 해당한다. 헐… 근데 연대 차이가 많이 나는 다른 페이지와 섞여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알 수가 없는 듯.

지금이야 미지수, 제곱 등의 편리한 수식기호가 많고 대수 공식들(곱셈/인수분해 공식)이 잘 발달되어 있어, 고대 문제들이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고대에는 그런 계산들을 문장형 (어떤 수와 그 수의 곱에 다시 처음 수의 두 배를 더하고…-_-)으로 방정식을 인식했기 때문에 간단한 방정식도 열라 풀기 빡세다. 본인은 산스크리트어를 모르긴 하지만, Bakhshali manuscript의 내용도 아마 그런 식일 듯 하다.

이 문서에는 영을 의미하는 기호인 중앙의 검은 점이 쓰이는 모양인데, 이번에 연대 추정이 바뀌면서 아라비아 숫자(다들 아시겠지만 인도에서 발명된 기호)로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가 최초로 사용된 문서가 되었다 한다. 그 전에는 9세기 Gwalior Fort의 사원 바닥에서 발견된 문자가 최초였다. 물론 여기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를 쓰는 것 자체는 이보다 오래된 고대 마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도 이미 있었는데,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 기호 ‘0’의 기원이 되는 기호로서 최초라는 말이다.

과거 수많은 핵실험[2]들 때문에 대기중의 방사성 원소의 농도가 급증하는 바람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고려해야 할 점이 여러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테크닉이 동원되는 모양인데, Sheridan Bowman의 책[3]을 번역한 책[4]을 일전에 읽어봤는데, 그 방법이 잘 설명 돼 있다. ㅋ 근데 이 책을 내가 어디 놔 뒀는지 보이질 않네…-_-

 


[1] archaeology 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Thursday, September 14, 2017
[2] 내 백과사전 역대 국가별 핵실험 회수 2013년 2월 13일
[3] Bowman, Sheridan (1995) [1990]. Radiocarbon Dating. London: British Museum Press. ISBN 0-7141-2047-2.
[4] 셰리든 보먼 저, 이선복 역,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게임 이론을 비스마르크 해전에 적용하기

앤터니 비버 선생의 책[1;p694]을 읽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비스마르크 해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용이 많이 간략하다. ㅋㅋ 이걸 보니 비스마르크 해전에 관해 본인이 아주 오래전에 게임 이론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교재를 만든 게 생각나서 온통 뒤져봤는데, 디지털 파일은 분실하고 인쇄물로만 남아 있었다. 이걸 그냥 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걍 블로그에 남겨본다.

이 글의 뼈대는 Haywood의 논문[2]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나, [2]에 나와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 부분은 모두 위키피디아의 Battle of the Bismarck Sea 항목, Skip bombing 항목, ビスマルク海海戦 항목이 출처이므로, 본 블로그는 역사적 내용의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문제 1

1943년 2월, 맥아더 장군의 남서 태평양해역군이 부나(Buna)를 함락하고 라에(Lae)에 주둔한 일본 기지를 위협하게 되자 일본군은 라에의 기지를 증원하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 이동을 실시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2월까지 제 20사단과 41사단이 일차적으로 후송되었고, 다음 18군 사령부와 제 51사단을 실은 8척의 수송선이 8대의 구축함과 100대의 폭격기의 호위를 받으며 라바울(Rabaul)에서 라에로의 수송 작전에 돌입하였다. 제 3함대를 지휘하는 기무라 마사토미(木村昌福) 제독은 라바울의 심슨항에 정박한 구축함 시라유키(白雪)에 승선하였다. 이 작전은 연합군의 세력이 상당히 강한 비티아즈 해협(Vitiaz Strait)을 통과해야하는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으므로 참모 측에서 전멸을 예감하고 중지를 건의하였으나 81호 작전계획 담당인 제 8함대 작전참모 카미 시게노리(神重徳) 대좌는 “명령이니까 전멸할 각오로 임하라”라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2;p366]

미군의 암호 해독팀은 일본군의 무전 통신 전파를 가로채어 해독하는데 성공하였고, 남서 태평양 공군 제독 소장 조지 케니(George Kenney)의 지휘하의 연합군 공군과 뉴기니에 있는 연합군 육군은 그러한 조우를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특별히 개조된 미공군 B-25 미첼 폭격기와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뷰파이터 폭격기의 조종사들은 대공 선박 폭격 연습을 준비해왔다. 미첼 조종사는 “물수제비 폭격(skip bomb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이 폭격 방식은 B-25같은 쌍발폭격기들이 고도 60~150m, 시속 420km의 속력으로 적함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하여 철갑폭탄을 투하하면 폭탄이 물수제비처럼 수면을 튀어 배의 측면에 타격을 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발사 후 명중까지 수 분이 걸리는 어뢰와 달리, 폭탄 투하 후 수 초 이내에 표적에 도달하므로 회피가 불가능하고 선박의 수선 부근에 타격을 주어 어뢰처럼 표적함정에 침수를 일으키므로 구축함 급 이하의 전투함이나 수송선 등 현측장갑이 없는 함정들에게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과시하였다.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의 선택은 두 가지로 크게 압축되는데 라바울에서 라에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북쪽 경로와 남쪽 경로가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정찰의 시계가 상당히 나쁜 시기였고 조지 케니 장군 역시 정찰의 집중도를 북쪽과 남쪽 두 군데 중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가상적으로 수치화 해 보자.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무라 마사토미가 어느 경로를 택하든 거리는 비슷하므로 (논문[2]에 첨부된 저 그림은 안 비슷해 보이는데, 구글맵으로 보면 비슷해 보임-_-), 양쪽 모두 약 3일 간의 항해가 예측된다. 실제로 솔로몬 해역 및 비스마르크 해역에서 2월 말부더 태풍이 불어와 시계가 상당히 나쁜 상태였다. 조지 케니 역시 정찰기의 태반을 뉴 브리튼 섬 북쪽 지역 아니면 남쪽 지역 중 어느 한 쪽을 따라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군이 남쪽으로 정찰하는데 일본군이 북쪽올 항해한다면 미군은 1일 간의 폭격을 할 수 있고, 일본군이 남쪽으로 항해를 하면 미군은 3일간의 폭격을 할 수 있다고 하자. 반면에 미군이 북쪽으로 정찰할 때 일본군이 남쪽으로 항해한다면 2일간의 폭격이 가능하고, 일본군이 북쪽으로 항해해도 2일간의 폭격이 가능하다고 하자. 이미지 출처 [2;p368]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은 표로도 만들 수 있다.

케니\기무라 북으로 항해 남으로 항해
북으로 정찰 2일 폭격 2일 폭격
남으로 정찰 1일 폭격 3일 폭격

이려한 상황은 게임이론에서 메우 전형적인 설정이다. 즉, 제로섬 게임이고, 단판으로 게임이 종결되고, 한번 선택온 돌이킬 수 없고, 게임 내의 제반 정보는 모두 쌍방에 공개되어 있으나 서로 상대방의 선택을 알 수는 없다. 각 게임 참가자 (케니와 기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급적 회피하려고 한다고 할 때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을까?

 


문제 1 풀이

케니의 관점에서 보자. 미군은 가능한 많은 날수를 폭격할 수 있는 선택을 원한다. 그래서 각 선택에 대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보자.

케니\기무라 북으로 항해 남으로 항해 각 행의 최소값
북으로 정찰 2일 폭격 2일 폭격 2
남으로 정찰 1일 폭격 3일 폭격 1

따라서 그 최소값들 중에서 최대가 되는 값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케니는 북으로 정찰하는 방향을 택하게 된다.

기무라의 관점에서 보자. 일본군은 가능한 적은 날 수를 폭격할 수 있는 선택을 원한다. 마찬가지로 각 선택에 대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보자.

케니\기무라 북으로 항해 남으로 항해
북으로 정찰 2일 폭격 2일 폭격
남으로 정찰 1일 폭격 3일 폭격
각 열의 최대값 2 3

따라서 그 최대값들 중 최소가 되는 값을 선택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따라서 기무라는 북으로 항해하는 방향을 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최대들 중에서 최소, 최소들 중에서 최대를 선택하는 전략을 미니맥스 전략이라고 한다.

실제로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은 북쪽 경로인 비스마르크 해를 통과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2월 28일까지 흐리던 날씨가 3월 1일부터 맑아지고, B-24폭격기 조종사의 순찰에 발각되면서 비스마르크 해전이 시작된다. 이미지 출처

3월 2일부터 이틀 사이에 미군과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의 대규모 폭격이 시작되었고, 물수제비 폭격술을 이용하여 57발 중 28발을 명중(이 숫자의 출처가 불명)하는 기염을 토해내는 놀라운 명중률을 보이며 일본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거의 살육에 가까운 이 비스마르크 해전으로 인해 미 공군과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은 겨우 13명의 조종사를 잃고 5대의 전투기가 파손되었지만, 일본군은 8척의 수송선([1;p694]에는 7척)과 4척의 구축함이 가라앉고 약 3000명의 지상군이 사망하는 재앙을 맞게 된다. 이 전투의 타격으로 인해 일본군은 파푸아 뉴기니에서의 장악력을 점차 잃게 되고 나아가 태평양에서의 세력을 잃게 된다.

 


[1] 앤터니 비버 저/김규태, 박리라 역, “2차 세계대전”, 글항아리, 2017
[2] O. G. Haywood, Jr. “Military Decision and Game Theory”, Journal of the Operations Research Society of America, Published Online: November 1, 1954 p365-385 https://doi.org/10.1287/opre.2.4.365

[서평]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10점
마르코 폴로 지음, 김호동 옮김/사계절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다보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소속의 김호동 교수를 언급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일전에 읽은 James A Millward 선생의 저서[1]에서도 김호동 교수의 연구가 몇 군데 언급된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연구를 이리저리 찾아보던 차에 읽어본 책인데, 역시나 김호동 교수의 꼼꼼한 역주가 자세하게 달려 있어 상당히 학술적으로도 뛰어난 책인 듯 하다. 뭐 본인은 문외한이라 가치를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사료를 인용하여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을 교차검증하는 부분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르코 폴로의 이 책은 다양한 사본이 존재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일전[2]에 인용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본문에는 중요한 세 개의 사본을 모두 참고하여 다른 사본에 없는 문장은 각각 표시가 되어 있다.

책 주석에서 김호동 선생이 폴 펠리오의 연구를 상당히 많이 언급한다. 예전에 읽은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 ‘실크로드의 악마들'[3]을 봤을 때는, 이 사람이 걍 유물 도둑놈인줄로만 알았는데, 동양사에 대해 이 정도로 식견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폴 펠리오 다시 봤음 ㅋㅋ

p42에 스기야마 마사아키 선생이 마르코 폴로는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본인은 스기야마 선생의 책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중앙아시아사에 대해 조사해 보면 자주 나오는 인물이라 꽤 영향력있는 사람 같은데 이런 극단적 주장을 한 줄은 몰랐네. ㅎㅎ

p143 (41장)에 이스마일파의 ‘산장의 노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오래 전에 읽은 버나드 루이스 선생의 저서[4]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다. 읽은지 하도 오래돼서 까먹고 있었는데-_-, 그 책에 마르코 폴로의 41장이 인용되어 있었다. 아사신파의 자세한 이야기는 루이스 선생의 저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p270 (96장)에 쿠빌라이 칸이 종이 지폐를 이용한다고 소개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려 13세기 당대에 종이 화폐 경제가 이정도까지 발달한 줄 처음 알았다. 일전에 읽은 ‘뉴턴과 화폐위조범'[5]에서는 17세기에 은화의 은 함유량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영국 정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까지도 서구에서는 돈의 가치가 금속으로만 판정되던 시대였으니, 과연 마르코 폴로가 시대를 앞서는 화폐 시스템을 ‘연금술’이라 부를만 하다. ㅎㅎ

p295에 Marco Polo Bridge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코 폴로가 이 다리를 묘사하면서 너무나 아름답다고 설명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중일전쟁의 기폭제가 된 노구교 사건이 여기서 일어난 줄 처음 알았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베이징 외곽 서남 방향에 위치하는 듯. 평균값의 다리[6]와 함께 한 번 보고 싶구만 ㅎㅎ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그 시점은 쿠빌라이 칸의 영향력과 몽골의 국력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고, 몽골 제국 하에서 풍요를 구가하던 13세기 중국 사람들의 생활상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p374(152장)부터 항저우 시 내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거리의 묘사가 너무 생생하여 도저히 13세기의 기록 같아 보이지 않는다. 역사기록은 보통 왕실이나 정치적 설명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을 묘사하는 생생한 풍경의 묘사가 흥미를 자아낸다.

p476에 형제의 싸움을 막기 위해 어머니가 유방을 잘라내겠다고 외치는 설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전에 본 무케르지 선생의 책[7;p256]에 무케르지 선생의 할머니가 아버지와 삼촌이 싸울 때, 자궁을 씼어내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랑 똑같다. 이거 뭔가 문화인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싶긴 한데, 뭐 본인은 문외한이라 모르겠음-_-

역자인 김호동 선생은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지명마다 일일이 현대의 지명을 비정하고 있는데(물론 불명확한 장소도 많다), 구글지도로 언급된 지명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마르코 폴로가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대략 감이 온다. 세계지도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부차적인 재미도 있다. ㅎㅎㅎ 13세기 당시 알려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환경/문화/구전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때로는 그 묘사가 당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일독을 권한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신장의 역사 : 유라시아의 교차로 2013년 5월 30일
[2] 내 백과사전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의 사본들 2017년 8월 24일
[3] http://zariski.egloos.com/2576823
[4] http://zariski.egloos.com/2496447
[5] 내 백과사전 [서평] 뉴턴과 화폐위조범 – 천재 과학자, 세기의 대범죄를 뒤쫓다 2016년 7월 7일
[6] 내 백과사전 평균값의 다리 2013년 12월 20일
[7] 내 백과사전 [서평]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2017년 8월 21일

이슬람 시아파 계보

이 내용은 [1;p57-81]의 내용을 정리한 것임. 걍 까먹을까봐 포스팅함-_-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 사망

1. 선출자를 지도자(칼리프)로 인정 ⇨ 수니파 (다수)
2. 무함마드의 혈통을 지도자(이맘)로 인정 ⇨ 시아파 (소수) ⇨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사촌 알리를 추종

796년 6대 이맘 자파르 알 사디크 사망

2-1. 장남 이스마일을 이맘으로 인정 ⇨ 이스마일파(Isma’ilism) (시아파 내 소수)
2-2. 동생이자 7대 이맘 무사 알 카짐 이래로 12명의 이맘을 이맘으로 인정 ⇨ 12이맘파(Twelver) (시아파 내 다수)

899년 동부아라비아 지방의 소수 이스마일파 강경세력이 무장봉기

2-1-1. 급진교리 채택 ⇨ 까라미타파(Qarmatians)

909년 시아파 기반의 파티마 왕조의 건국 이래로 세력확장되어 이맘이 칼리프가 됨. 수니파 세력 축소.

1021년 파티마 왕조 6대 칼리프 알 하킴 사망

2-1-2. 알 하킴의 죽음을 인정 안함 ⇨ 드루즈파(Druze)

1094년 파티마 왕조 8대 칼리프 알 무스탄시르 사망 후 총사령관 알 아프달이 장남 니자르를 축출 후 자신의 사위를 칼리프로 추대.

2-1-3. 장남 니자르를 칼리프로 인정 ⇨ 니자리파(Nizāri) (시아파 내에서 12이맘파 다음으로 많음)
2-1-4. 차남이자 9대 칼리프 알 무스탈리를 칼리프로 인정 ⇨ Bohra파

1096년(또는 1102년) 하산 이 사바흐의 무장봉기

2-1-5. 셀주크 투르크의 세력확장으로 이스마일파의 세력 결집 주장 ⇨ 아사신파(Assassins)

 


[1] 버나드 루이스 저/주민아 역, “암살단“, 살림, 2007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의 사본들

마르코 폴로 저/김호동 역,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p46-51

6. 사본과 역주

현존하는 사본의 숫자는 거의 120종에 가깝지만 그 어느 하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사본들의 특징과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베네데토(L.F.Benedetto) 교수의 상세한 연구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를 정리한 모울펠리오의 서술에 기초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34)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마르코 폴로가 제노아의 감옥에서 루스티켈로에게 구술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사본은 그 뒤 폴로 자신에 의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다시 구술하여 수정이 가해졌고 이렇게 해서 완성된 것을 ‘원본’ 이라고 할 때, 현존하는 여러 사본 가운데 원본의 ‘내용’ 에 가장 가까운 것은 1559년 라무지오가 인쇄본으로 출간한 이탈리아어 번역본(R본)과 1932년 스페인 톨레도의 대성당에 있는 ‘Chapter’ 도서관에서 발견된 사본(Z본)이지만, 원본의 원래 ‘언어’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사본(F본)이다. 이 F본 계열에 속하는 다른 중요한 사본으로는 궁정 프랑스어(Court French)본(FG), 투스카나(Tuscan)본(TA), 베네치아본(VA) 등이 있다. 따라서 여러 사본들 가운데에서도 ‘내용’과 ‘형식’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F본, R본, Z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하 이 세 사본의 특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F본은 14세기 전반 이탈리아에서 필사된 것이며, 292x205mm 크기의 양피지 112장으로 되어 있다. 이 사본은 1824년 프랑스 지리학회 (Société de Géographie)에 의해 처음으로 ‘문자 그대로’ 인쇄본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지리학회본’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1928년 베네데토 교수가 이 사본을 교감한 뒤에 다시 출판했다. 이 사본에 사용된 언어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가 혼합된 소위 ‘프랑코-이탈리아어’(Franco-Italian)인데, 마르코 폴로의 ‘원본’이 바로 이 언어로 씌어졌고 따라서 이것은 원본을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사본의 결점은 마르코 폴로가 후일 ‘추가’한 중요한 부분들이 빠져 있다는 점이고, 그것은 R본과 Z본에 의해 보충될 수밖에 없다.

R본은 라무지오의 인쇄본이다. 16세기 베니스의 관리이자 지리학자인 라무지오가 『항해와 여행』(Navigationi et Viaggi)이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서적을 출판했는데, 1550년에 제1권이 그리고 1556년에 제3권이 간행되었고 마르코 폴로의 글은 제2권으로 출판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2권의 출판을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내고 자신의 ‘서문’까지 완성한 상태에서 1557년 7월 사망하여 출판이 실현되지 못했는데, 그해 11월에 출판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일부 자료들이 소실되고 말았지만, 다행히 마르코 폴로의 글은 피해를 면하여 1558~59년에 인쇄 • 출판되었다. 베네데토 교수가 이 인쇄본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라무지오본은 피피노(Pipino)가 번역한 라틴어본을 기초로 하되 그 당시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또 다른 사본으로 보충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보충된 부분의 상당수는 후일 Z본에 있는 것과 일치하고 있으나, ‘아크마트의 피살사건’이나 ‘킨사이 궁전’에 관한 서술은 Z본에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라무지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사본을 참조했음이 분명하며 그 사본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Z본은 라틴어 번역본으로 ‘젤라다’(Zelada)본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존재는 베네데토 교수가 밀라노의 한 도서관에서 Z본에서 필사된 사본을 발견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본은 1795년 로마의 추기경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드 젤라다(Fracisco Xavier de Zelada)가 소장하던 Z본에서 필사한 것인데, 그 뒤 이 사본의 원본인 Z본의 소재가 묘연해졌다가 1932년 톨레도에서 퍼시벌 데이비드(Percival David)에 의해 발견되었고, 모울과 펠리오가 이를 인쇄본으로 출판했다. 이 사본은 전반부에서는 상당한 축약이 보이나 147장(신주에 관한 부분)부터는 축약 없이 F본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축약은 필사자 혹은 번역자가 실수로 범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Z본에는 F본에 보이지 않는 문단이 약 200개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3/5은 R본에서도 동시에 발견되는 것이다. 또한 Z본에만 보이는 부분들은 결코 번역자나 필사자가 자기 마음대로 상상해서 삽입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내용의 역사적 • 지리적인 신빙성으로 보아 모두 ‘원본’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유구리스탄’에 관한 부분(59장), ‘푸주의 기독교도’(156장), 러시아에 관한 긴 설명(218장)이 그러하다.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이외에 연구자들와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는 궁중 프랑스어본 一 그레고아르(Gregoire)본이라고도 불림 一 과 투스카나 방언본이 있다. 전자는 F본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서, 프랑스의 ‘미남왕’ 필립(Phillip Le Belle)의 지시에 따라 베니스를 방문한 티보 드 세푸아(Thibault de Cepoy)가 1307년 마르코 폴로로부터 직접 사본 하나를 받았다는 메모가 적혀 있어 유명하지만, 베네데토는 이 메모에 대해 신빙성을 두지 않았다. 후자는 14세기 초 제노아에서 만들어진 사본이 투스카나로 전해져 투스카나 방언으로 옮겨진 것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사본(약 80여 종)은 베네치아본 계열로서 마르코 폴로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피피노의 라틴어 번역본과 그것에 기초한 각종 서구어로 번역된 것들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해서 모두 120종이 넘는 사본들이 만들어졌고 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로는 280종에 이르는 활자본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마르코 폴로의 글이 지닌 중요성와 인기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글을 현대어로 번역하거나 혹은 글 속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들을 고증하려는 연구들도 수없이 출판되었다. 한 일본인 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1983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번역과 연구는 모두 2,337편에 이르고 있다.35)

이 가운데 현재 학술적으로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들을 소개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영어로는 1579년 프램튼(John Frampton)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고, 이 역본은 1929년 펜저(N.M.Penzer)가 수정 • 보충하고 서문과 주석을 달아 다시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베네치아본 계열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영어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원본’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편 라무지오의 인쇄본에 근거한 마르스덴(W.Marsden)의 영역본이 1818년에 출간되었는데, 1854년 라이트(T.Wright)에 의해 수정 • 출판되고, 후일 메이스필드(J.Masefield)가 서문을 쓰고 더 보충하여 ‘Everyman’s Library’ 시리즈에 포함되었다.

유울(H.Yule)과 코르디에(H.Cordier)에 의해 완성된 영역본은 궁중 프랑스어본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번역보다는 상세한 주석으로 높은 학술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베네데토의 교감본 텍스트를 근거로 한 리치(A.Ricci)의 영역본이 있는데, 이것 역시 학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 밖에도 콤로프(M.Komroff)나 라탐(R.Latham)의 영역본이 있는데, 일종의 ‘포켓북’으로 읽기는 간편하나 학술적인 중요성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영어 이외에 프랑스어 번역본으로는 포티에의 인쇄본(궁중 프랑스어본에 기초)을 샤리뇽이 현대 프랑스어로 옮기고 주석을 더 추가한 것이 있다. 한문사료를 널리 동원한 매우 상세한 주석이 아직도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마르코 폴로를 『원사』(元史)에 나오는 추밀부사 패라(孛羅)로 보는 등 엉뚱한 추측도 적지 않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어 로는 베네데토의 간본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학회본을 중심으로 다른 여러 사본에 나오는 중요한 부분들을 보충해서 만든 일종의 교감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본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의 구절들이 어느 사본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흠이다. 무엇보다도 장문의 서론을 통해 각 사본 • 판본의 특징과 계통을 분석한 것이 지금까지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치의 영역은 바로 그의 이탈리아어 간본을 옮긴 것이고,일본의 오타키 마츠오(愛宕松男)는 리치의 영역본을 일본어로 옮겼으며,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번역본 가운데 일부는 이 일역본을 다시 번역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1934년 출간된 모울과 펠리오의 영역본이 있다. 이것은 마르코 폴로의 ‘원본’의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지리학회본(F)을 저본으로 삼고, 라무지오본(R)과 젤라다본(Z)을 비롯하여 모두 18개의 중요한 사본들을 대조하여 F본에 없는 내용을 보충하되 그 출처를 표시하고 교감을 가한, 말하자면 ‘교감(校勘) • 집철(輯綴) 영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출간된 여러 번역본에 비해 ‘원본’의 형태와 언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본에 있는 중요한 내용까지 보충했기 때문에 ‘결정판’ (definitive edition)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이 판본을 우리말 번역의 텍스트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울과 펠리오는 이 영역본을 1938년 제1권으로 출간한 뒤, 1932년 톨레도에서 발견된 젤라다본의 원문을 활자화하여 제2권으로 냈고, 이어 펠리오가 상세한 주석을 준비함으로써 그가 죽은 뒤 Notes on Marco Polo라는 제목와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동서양의 각종 사료들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총동원된 이 주석서는 마르코 폴로 연구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1912년 우리유 하지메(瓜生寅)의 번역이 최초이고, 현재 통용되는 것으로는 유울과 코르디에의 영역본을 옮긴 아오키 토미타로(青木富太郞)의 번역본(1954)과 리치의 영역본을 옮긴 오타키 마츠오(愛宕松男)의 번역본(1970)이 있다. 이와무라 시노부(岩村忍)는 모울-펠리오 영역본을 옮기려고 시도했지만 일부분만 출간한 채 끝나고 말았다. 중국에서는 마르스덴의 영역본을 옮긴 위역(魏易)의 『元代客卿马哥博罗游记』(1913)가 최초이고, 이후 포티에-샤리뇽 불역본을 옮긴 풍승균(冯承钧)의 번역본, 리치의 영역본을 옮긴 장성랑(张星烺)의 번역본이 나왔다.36) 우리나라에도 몇 종의 번역본이 있으나 일역본을 다시 옮긴 것이거나, 콤로프와 같은 포켓판을 근거로 삼은 것, 혹은 저본이 무엇인지 불명확한 것들이다.

 


34) 여러 사본에 관해서는 베네데토가 쓴 Marco Polo, Il Milione(Firenze, 1928)의 221페이지에 달하는 긴 서문에서 상세하게 분석되어 있다. 이 책은 600부 한정판이고 입수하기가 매우 힘들어 본 역자도 직접 참고하지 못했고,Moule & Pelliot, Marco Polo, pp. 40~52를 참고했다. 이밖에 岩村忍의 『十三世紀東西交涉史序說』(東京,1939),pp. 285〜297의 요령있는 설명도 도움이 된다.
35) Watanabe Hiroshi comp., Marco Polo Bibliography, 1477~1983(Tokyo, 1986).
36) 중국에서의 번역본에 대해서는「『马可波罗游记』在中国的翻译与研究」, 『马可 • 波罗介绍与研究』,PP. 39~51 참고.

위 Fracisco는 Francisco의 오타가 아닐까 추정함.

[서평] 라스푸틴 – 그는 과연 세상을 뒤흔든 요승인가

라스푸틴10점
조지프 푸어만 지음, 양병찬 옮김/생각의힘

출판사 측의 책소개에 따르면, 사이비 종교를 매개로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공통점 때문에 최순실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소개하는 외신[1]이 많다고 한다. 본인은 라스푸틴에 대해서 그 정도의 상식만 가지고 있던 차에, 과학 기사 번역으로 이름을 날리시는 번역가 양병찬 선생이 책을 번역했다고 하니, 한 권 슥샥 사 보았다.

라스푸틴이 자기 마음대로 장관급 인사를 수시로 갈아치우는 국정농단을 부리면서 민심이 러시아 황실에 반발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러시아 황실이 붕괴되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러시아 혁명의 원인제공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출간 시기가 한창 최순실 게이트 직후라서 출판사 마케팅도 이쪽과 엮어서 진행 하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이후, 2000년대 들어서 러시아에서 오래 보관되어온 문서들이 조금씩 개방된 모양인데, 그 덕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발굴하여 러시아 관련 역사를 자세히 분석하거나 재조명하는 책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전에 본 리처드 오버리 선생의 저서[2]도 그러한 맥락에 있다. 이 책의 저자인 Joseph T. Fuhrmann도 과거 알려지지 않은 자료에 접근하여 나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여 책을 쓴 것 같다. 다만 저자가 서술하는 사실관계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저자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안 건지 좀 의문스러운 부분도 꽤 있다. (특히 어떤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다고 하는 부분.) 전반적으로 야사 비슷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읽어볼만한 책이라 본다.

러일전쟁의 시기부터 러시아 혁명 직전까지 러시아 황실 내부의 사정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당시 러시아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분명 러일전쟁 직후일 텐데, 러일전쟁의 영향이 러시아 황실에 별로 미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근대사에서 러일전쟁의 크기가 동/서양적 관점 사이에서 꽤 다른 것 같다.

책의 뒷부분에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과정이 짧게 묘사되어 있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거미줄처럼 복잡했던 유럽 국가들간의 외교관계와 초기 전황은 존 키건 선생의 ‘1차세계대전사'[3]가 대단히 참고할만 하다. 앞부분만 읽어봐도 이 책에서 서술한 유럽 정치/외교적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p85에 라스푸틴이 황제와 황후에게 vy 대신 ty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에도 짧은 설명이 있긴 하지만, 본인의 초 짧은 러시아어 실력-_-으로 보충설명을 해 두고 싶다. ㅋㅋㅋ 일전에 영어에 2인칭 존대말이 없다[4]는 이야기를 했는데, 영어를 제외한 상당히 많은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 언어들에서 2인칭 복수를 존대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2인칭 단수 ты(띄)는 일종의 반말, 2인칭 복수 вы(븨)는 존대와 비슷하게 된다. 그러나 나무위키의 설명[5]에 따르면 한국어의 반말/존대와는 조금 다른 상호 존중의 의미로 사용한다고 하니, 라스푸틴만 일방적으로 ты(띄)를 쓰지 않고, 황제도 라스푸틴에게 ты(띄)를 쓰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라스푸틴의 성기라고 주장되는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저자에 의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또한 본인은 어릴 적에 라스푸틴이 익사했다고 들었는데, 부검 당시의 결과보고서를 근거로 그 부분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뭐 여하간 국내 번역서 중에서는 라스푸틴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닐까 싶다. ㅋ

 


[1] 뉴스위크 DAUGHTER OF ‘SOUTH KOREA’S RASPUTIN’ CHOI SOON-SIL EXTRADITED OVER BRIBERY ALLEGATIONS 5/31/17 AT 5:00 AM
[2] 내 백과사전 [서평]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2010년 6월 28일
[3]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086652
[4] 내 백과사전 영어에서 you의 존대말 2014년 2월 11일
[5] T-V구분 in 나무위키

[서평] 중앙은행 별곡 – 혼돈의 시대

중앙은행 별곡10점
차현진 지음/인물과사상사

이 책은 부제 그대로 대한제국이 중앙은행을 설립하려고 시도했던 시기부터 1950년 한국은행 설립까지, 말 그대로 ‘혼돈의 시대’에 있었던 금융환경과 중앙은행 설립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하는 책이다. 국제 금융사를 다루는 베리 아이켄그린 선생의 훌륭한 저서들[1,2]이 이미 있지만, 유럽/미국 금융사에 관해서만 서술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약간 거리감이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초 동북아시아권의 금융사에 대해 참고할만한 신선한 책이라 생각한다.

흥미롭고도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의 조선은행의 지위와 역할을 간접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일전에 니시하라 차관에 대해 책의 일부를 인용[3]해 두었으므로 독서 여부에 참고 바란다.

재미있게도 chartal theory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듯한 저자의 관점(p45,p115)를 볼 수 있는데, ‘비트코인은 화폐를 흉내낸 것’이라고 단언한 부분에서 확실히 기술에 뒤쳐지는 사람의 고정관념은 견고하다는걸 느낀다. 일전에 snek에서 공매도 사냥꾼인 Andrew Left가 테슬라와 엔비디아를 공매도 했다는 이야기[4]를 봤는데, 테슬라는 그렇다 쳐도 엔비디아는 강력한 AI 트렌드가 명확[5]한데도, 이를 보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고들이 측은해진다.

p28에 영국의 화폐위조의 처벌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오는데, 위조지폐범에게 강한 처벌을 내리는 영국의 당시 사회적 배경은 일전에 읽은 ‘뉴턴과 화폐위조범'[6]에 잘 나와 있다.
p225에 스기 공작(杉工作)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이와 정확히 거울상처럼 똑같은 독일의 작전이 유명한 베른하르트 작전인데, 이에 관해서는 Cicero씨의 블로그[7]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으니 참고 바란다.

저자가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꽤 많았는데, 저자 나름대로는 가능한 출처를 표시했다지만 좀 불만족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혼란했던 19세기 초의 국제 정세를 금융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흥미로운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달러 제국의 몰락-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2015년 10월 14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글로벌라이징 캐피털 : 국제 통화 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2011년 10월 9일
[3] 내 백과사전 니시하라 차관 西原借款 2017년 6월 21일
[4] 월스트리트 현상금 사냥꾼, 앤드류 레프트 in snek
[5] 내 백과사전 AI 붐에 잘 나가는 Nvidia와 다가오는 Intel의 위기 2017년 3월 4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뉴턴과 화폐위조범 – 천재 과학자, 세기의 대범죄를 뒤쫓다 2016년 7월 7일
[7] 베른하르트작전-영국경제를 붕괴시켜라! by Cic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