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형제 당시의 미국 분위기

데이비드 매컬로 저/박중서 역, “라이트 형제“, 승산, 2017

p58-62

(전략)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넉넉한 자금 지원을 받은 그(Langley)의 최신 연구는 기묘한 외관에 증기 동력 무인 조종 방식의 (본인의 말마따나) “비행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앞뒤에 V자 모양의 날개가 달린 이 기계는 마치 거대한 잠자리 같은 모습이었다. 릴리엔탈이 사망한 바로 그해인 1896년에 포토맥 강에 띄워 놓은 집배 지붕에서 투석기로 발사한 이 물건은 800미터쯤 날아가다가 강물에 풍덩 빠져 버렸다.

릴리엔탈과 사누트와 랭글리 외에도 19세기의 가장 저명한 공학자, 과학자, 그리고 독창적인 사상가 가운데 상당수가 조종 비행의 문제에 뛰어들었다. 그중에는 조지 케일리 경, 기관총의 발명자 하이럼 맥심 경, 심지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토머스 에디슨까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하이럼 맥심은 거대한 증기 동력 무인 조종 비행 기계에 1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이 기계는 이륙 시도 과정에서 추락해서 망가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전자 공학자 클레망 아데르가 제작한다는 증기 동력 비행 기계에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비록 전체 프로젝트가 지극히 어설픈 결과만을 내놓으며 결국 좌초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아데르는 비행기를 뜻하는 단어 ‘아비옹(avion)’을 프랑스어에 추가하는 공적을 남겼다.

비행 실험에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고, 굴욕적인 실패와 부상과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지어) 사망의 위험도 있었으며, 자칫 괴짜니 정신병자니 하는 놀림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때까지 무려 50년 이상, 또는 라이트 형제가 이 분야에 뛰어들기 이전까지의 오랜 기간동안, (언론의 보도 내용대로) 자칭 “공중의 정복자들”과 이들의 기묘한, 또는 유치찬란한 비행 기계들은 계속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원천으로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1850년대에 한 프랑스 발명가가 내놓은 기발한 발상이란, 의자등받이에 날개 한쌍을 붙이고 커다란 우산 하나를 매단 것뿐이었다. (과연 이 우산이 “상승력”을 제공하기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단지 차양일 뿐인지 여부는 결코 설명되지 않았다). 1870년대에는 조지아주의 미케이어 클라크 다이어라는 사람이 오리 모양의 비행장치를 내놓았다. 1890년대에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내놓은 요약 보도에 따르면, “비행 기계 괴짜”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리석어져서 급기야 “우둔”의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미국 특허청에 승인을 바라고 쏟아져 들어온 갖가지 정교하고 새로운 아이디어 중에는, 알루미늄 판 기체와 부채꼴 꼬리가 달린 “체공기(滯空機)”라는 이름을 붙인 거대하고 마치 물고기처럼 생긴 기계도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 내용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체 아래에 달린 앞뒤 방향으로 이어진 한 쌍의 날개가 기체를 지탱하고 기울기는 조종간으로 조종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항공기는 원하는 만큼 상승 및 하강이 가능하다. 꽁무니에서 연이어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추진되며,작은 니트로글리세린 덩어리가 뒤쪽에 있는 컵 모양 구멍 속에 전자식으로 자동 주입 및 배출된다.

급기야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인간이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중략)

이런 부정적인 의견들이 팽배했지만 라이트 형제는 낙담하거나 연구를 단념하지 않았다. 대학 교육이나 정식 기술 훈련을 받은 적도, 서로를 제외한 다른 누구와 함께 일한 경험도 높은 자리에 있는 친구도, 경제적 후원자도, 정부 보조금도 전혀 없었고 모아놓은 돈조차도 별로 없었지만 라이트 형제는 개의치 않았다. 자칫하면 오토 릴리엔탈처럼 실험 중 어느 단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전적으로 현실적인 가능성도 있었지만, 라이트 형제는 개의치 않았다.

릴리엔탈이 사망하기 몇 해 전에 새뮤얼 랭글리는 비행을 시도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 역시 영웅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즉 뭔가 유용한 목표를 위해 생명의 위협조차도 무릅쓰려는 사람들이 받는 것과 같은 종류의 주목과 관심을 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한 글을 《코스모폴리탄》에 기고했다. 하지만 랭글리와 옥타브 사누트는 나이 때문에 이런 위험을 직접 감수하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역시나 중요하게도) 이 시대는 발명과 기술적 혁신과 온갖 종류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살아 넘치는 시대였다. 조지 이스트먼은 “코닥” 상자형 카메라를 내놓았다. 아이작 메리트 싱어는 세계 최초의 전기 재봉틀을 내놓았다. 오티스 사는 세계 최초의 엘리베이터를 뉴욕의 한 사무실 건물에 설치했다. 미국 최초의 안전면도기, 미국 최초의 쥐덫, 미국 최초의 자동차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 모두는 오빌이 인쇄소를 시작하고, 윌버가 일종의 긴 잠에서 깨어난 지 1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스스로 부과한 고립의 마법에서 깨어난 때로부터 대략 십여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뭔가를 발명하고 끊임없이 만드는 것을 생활양식의 핵심으로 삼는 분위기가 언제나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즈음, 그러니까 세기의 전환 바로 직전에 나온 미국 특허청의 통계에 따르면, 데이턴은 미국 내에서 인구 대비 특허 창안이 가장 높은 도시였다. 이 도시의 큰 공장들은 계속해서 더 커졌고, 철도 차량과 금전 등록기와 재봉틀과 총신을 제작했다(한 가지 예를 들자면, ‘데이비스 재봉틀 회사’는 길이만 1.5킬로미터에 달하는 공장에서 하루 400대의 재봉틀을 생산했다). 뿐만 아니라 마구(馬具)와 코르셋과 비누와 셔츠와 빗자루와 수레 바퀴와 갈퀴와 톱과 판지상자와 맥주통과 작업복을 생산하는 작은 상점과 작업장도 수백 개나 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생산하는 곳도 있었다.

“인간이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 것 같다. 현재 당연해 보이는 것들도 과거의 누군가가 극적인 노력으로 성취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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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해방의 비극, 마오의 대기근, 문화 대혁명

해방의 비극10점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열린책들
마오의 대기근10점
프랑크 디쾨터 지음, 최파일 옮김/열린책들
문화 대혁명10점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열린책들

얼마전에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국 근대사 논문을 삭제하는 ‘영혼을 팔아먹은'[1] 행위 때문에 욕을 먹은 사건이 있었다. 여론의 반발이 심해서인지 며칠 후에 다시 복구 결정되었지만[2], 중국정부가 해외 학술논문에 넣는 압력은 여전한 듯 하다.[3] 이 삭제된 논문들 중에 디쾨터 선생의 저작도 있었던 것 같은데, 디쾨터 선생이 나름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 꽤 영향력 있는 전문가로 대접받는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선정한 2010년 올해의 책[4]에 디쾨터 선생의 책이 나왔을 때 점찍어 두고 있었긴 했는데, 이게 역서가 나올 줄은 몰랐다. 드디어 번역서가 출간됐다길래 인제사 완독을 하게 됐다. ㅎㅎㅎ

세 권의 시기가 이어져 있고 전반적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 권 중 일부만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읽는다면 세 권을 모두 읽는 것을 추천한다. 세 권 중 Mao’s Great FamineThe Tragedy of Liberation은 위키피디아 항목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인민 3부작[5]이라 부르는 듯.

현대 문명에서 대량 인명학살의 정점으로 히틀러나 스탈린을 흔히 꼽고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그 자리는 마오쩌둥이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굶어 죽거나, 자살하거나, 살해 당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_- 진실로 잘못된 정치체제를 선택한 중국사람들의 불운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사소한 개별적 사건을 방대하게 수집하여 나열함과 동시에, 그런 개별적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 문화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도록 해주는 수법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역사적 서술에서 보이는 정치/외교적 관계나 중앙정부의 사건만에 집중하지 않고, 중국 인민들의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전에 본 짤방 중에, 마오쩌둥이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하면서 참새를 가리키는 짤방이 있었는데, 이 덕에 참새가 박멸되어 해충이 창궐하게 되어 기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6]가 있다. 좀 희화화 된 면이 있지만, 마오의 단순한 한 마디에 왜 그렇게 많은 인민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는지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진실로 마오의 시대는 중국 전체가 집단광기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다만 본인의 중국 근현대사의 배경지식이 너무 적어서 3권의 문화 대혁명에서 묘사한 정치적 사건들의 인과관계는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다른 책들을 좀 읽어보면서 메워야 할 듯 하다.

 


[1] 가디언 Cambridge University Press accused of ‘selling its soul’ over Chinese censorship Sat 19 Aug ‘17 04.52 BST
[2] 워싱턴 포스트 In reversal, Cambridge University Press restores articles after China censorship row August 21, 2017
[3] 연합뉴스 中, 美아시아학회지에도 논문삭제 압력…국제학술계 반발 확산 2017/08/23
[4] 내 백과사전 2010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 2010년 12월 16일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1896663
[6] 제사해 운동 in 나무위키

뮤온 단층 촬영법으로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내부 탐색하기

이집트 학자인 Kara Cooney 선생의 페이스북에서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이야기[1]가 나오길래 뭔가 싶었는데, 이코노미스트지[2]에서 조금 자세한 소식이 나오길래 검색을 좀 해 봤다. ㅋㅋ

이집트에 관련된 이야기로는 곽민수 선생께서 더퍼스트에서 연재[3]를 하고 있는데, 이거 읽어보면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ㅎㅎ 쿠푸왕이집트 제 4왕조의 파라오로서, 대피라미드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다. 재위기간은 기원전 2509년부터 2483년까지라고 한다.[7] 이코노미스트지[2]는 이 대피라미드가 고대에 이미 도굴당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곽민수 선생은 도굴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견해를 더 정론으로 인정하는 것 같다.[4]

여하간 최초 발견상태부터 비어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대피라미드 안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공간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한데, 나고야 대학의 기본입자연구실[5] 소속의 모리시마 쿠니히로(森島邦博) 선생이 뮤온 단층 촬영법을 이용하여, 거의 비행기 사이즈의 대형 공간이 있다는 결과를 얻은 듯[6]하다. 네이쳐에 실린 논문[6]은 유료라 볼 수 없지만 arxiv[7]에 올라온 것을 보면 된다.

그러나 이집트 학자 Zahi Hawass는 모리시마 선생의 발견을 꽤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듯[8] 하다. 이미 피라미드에는 여러 개의 빈 공간이 많이 있고, 이것이 의미있는 ‘방’인지 아닌지는 모른다는 이야기 같다. 이 결과 자체는 전혀 새로운 발견은 아니라는 이야기. 뭐 향후의 탐사가 더 중요할 것 같다.

Muon tomography가 뭔가 싶어서 위키피디아를 대충 봤는데-_- Muography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 같다. 일단 기본적인 원리는 병원의 CT 촬영과 동일한 것 같은데, 여러 각도에서 측정한 입자의 투과 강도를 종합하여 3차원 입체를 구성하는 방법인 듯 하다. 다만 뮤온 입자약한 핵력으로만 물질과 반응하기 때문에, 투과성이 x선이나 감마선보다 뛰어나므로 훨씬 거대한 물체를 측정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Muon tomography가 최초로 활용된 사례는 1950년대 호주에서 터널을 뚫는 공사에서 였다고 한다. Luis Alvarez라는 물리학자가 1960년대에 카프레의 피라미드에서 Muon tomography로 알려지지 않은 방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큰 수확은 없었는 듯 하다.[9]

이번 모리시마 선생의 논문[7;p4]의 Acknowledgements에 언급되어 있지만 ScanPyramid project라는 이름의 행사로 진행하는 것 같은데, 홈페이지[10]도 있다. NHK가 스폰서를 하는 듯. ㅎㅎ

 


2018.1.8
cairo scene ZAHI HAWASS: EGYPT’S GREATEST ANCIENT MYTHBUSTER OR LOUDEST OBSTRUCTIONIST? 26/12/2016 11:09

 


[1] https://www.facebook.com/karacooneyegyptologist/posts/10156016583617042
[2] 이코노미스트 A new chamber has been detected in the Great Pyramid of Giza Nov 4th 2017
[3] 내 백과사전 미디어더퍼스트의 이집트 이야기 2015년 9월 24일
[4] 더퍼스트 위대한 업적, 끝나지 않은 수수께끼 – 대피라미드 3월 24일 11:22 2016
[5] http://flab.phys.nagoya-u.ac.jp/2011/introduction/member/
[6] Kunihiro Morishima et al. “Discovery of a big void in Khufu’s Pyramid by observation of cosmic-ray muons”, Nature (2017) doi:10.1038/nature24647
[7] Kunihiro Morishima et al. “Discovery of a big void in Khufu’s Pyramid by observation of cosmic-ray muons”, arXiv:1711.01576 [physics.ins-det]
[8] the daily star Archaeologist criticises pyramid void ‘discovery’ Nov. 04, 2017 | 03:13 PM
[9] Alvarez, L.W. (1970). “Search for hidden chambers in the pyramids using cosmic rays”. Science. 167: 832–9. doi:10.1126/science.167.3919.832
[10] http://www.scanpyramids.org/

[서평] 1942 대기근 –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1942 대기근10점
멍레이 외 엮음, 고상희 옮김/글항아리

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의 걸작 논픽선 시리즈 중의 하나로, 중일전쟁이 한창인 1942~3년에 허난성에서 발생한 대기근 사건에 대한 기록이 빈약함을 탄식한 기자들이 당대 사람들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하는 이야기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일화적 증언의 수집을 나열한 것이므로 안타까운 사연들이긴 하나, 저자들이 역사가가 아니라서 진위 검증을 위한 노력이 전무하고, 저자들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는 글이 많으므로, 굳이 사서 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책의 중간에 “‘허난성 사람은 매국노’에 대한 논쟁”이라는 소문단이 있다.(p223) 이런 질문이 나온 배경이 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봤는데, 중국내 허난 지역에 대한 차별의식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미디어 더퍼스트의 글[1]에 설명이 잘 돼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앤터니 비버 선생의 책[2;p844]에도 이 허난 대기근에 대한 묘사가 짧게 있으니 한 번 인용해 보자.

대륙타통작전의 주목표는 장제스도 경고했던 바와 같이, 제14육군항공대의 비행장올 없애는 것이었다. 첫 번째 단계인 고호작전은 만주의 관동군을 대거 충원받은 동북쪽 일본 제1군이 시작했다. 일본군은 서쪽의 옌안을 기지로 하며 한동안 적국 협력자들을 살해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에는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오로지 국민당군을 물리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4월에 제1군은 황허 강 너머로 남쪽을 공격하여, 우한 방면에서 북쪽으로 진군하던 제11군 일부 병력과 조우했다. 이들은 베이징-우한 철도를 장악하여 회랑 첫 부분을 완성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허난 성의 국민당 군대는 정신없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장교들은 가족을 구하고 도시 및 시골에서 약탈한 전리품을 모두 지키려고 군용 트럭과 수레, 소 등을 강제로 빼앗아 달아났다. 그러자 식량과 얼마 안 되는 소유물올 강탈당해 분노한 농민들이 장교와 일반 사병들의 무기를 빼앗아 수많은 군인을 죽이고 산 채로 묻기까지 했다.

농민들은 지역 당국과 육군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2년에 심각한 가뭄이 들었던 데다, 국민당군이 식량을 세금으로 거두고 인정 없는 지역 관리들과 지주들이 착취를 일삼아 농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면서, 그해 겨을에는 끔찍한 기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근의 고통은 1943년 봄까지 계속되었고 그 지역 주민 3000만 명 중 300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비버 선생이 언급한 농민이 국민당군을 살해한 사건이 이런 지역차별의 시초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나무위키[3]에는 차별의 이유에 대한 다른 가설들도 소개되어 있다. 허난성 정부는 2001년에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지역차별이 심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당시 장제스의 군대가 얼마나 썩어 빠졌는지 짐작할만한 내용이 많다. 일본군 점령 지역에서 가뭄의 여파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유독 공산당 점령지역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당시 허난성에 공산당이 점령한 지역이 없었는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당대 사진으로 짐작되는 사진이 꽤 많이 첨부되어 있다. 책의 맨 앞 일러두기에 따르면 당시 미국 타임지 기자인 Theodore White와 영국 타임스지 기자인 Harrison Forman이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흑백이긴 하나 해상도가 높아서인지 현장감은 상당하다.

뭐 여하간 굳이 찾아 읽을만한 책은 아닌 듯 하지만, 중일전쟁에 관심이 있거나 중국의 허난 지역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 할 것 같다.

 


2018.1.4
[2;p941-942]

대륙타통작전이 실시되는 동안 중국 내 상황은 절박해져서 장제스는 살윈 전선에 있는 Y부대 사단들을 다시 불러들여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 데 힘을 보태고자 했다. 이때가 미얀마 전역에서는 아주 중대한 순간이었던 만큼 루스벨트와 마셜, 스틸웰 세 사람은 격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지에 몰려 절박한 국민당군의 상황에 대해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마셜은 최후통첩과 맞먹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 장제스에게 스틸웰을 즉시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살윈 전선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문서를 받아 읽은 스틸웰은 아주 기뻐했다. 그는 사실상 루스벨트의 새 특사인 패트릭 헐리 소장과 장제스와의 만남에 끼어들었다.8 스틸웰은 자신의 일기에 당당하게 기록했다 “이 붉은색 꾸러미를 그 시시한 녀석에게 전하자 한숨을 쉬며 자리에 풀썩 앉았다. 작살이 그 작고 성가신 놈의 명치를 치고 곧바로 관통한 것이다.” 반면에 헐리는 스틸웰의 어조와 그로 인해 장제스가 느낄 굴욕감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장제스는 화가 나는 것을 꾹 참고, 그저 “알겠소”라고 말한 뒤 회의를 끝냈다.

장제스는 나중에 헐리를 통해 루스벨트에게 스틸웰 소환을 요구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중국군 사령관으로 스틸웰만 아니라면 미국인 장군을 받아들일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다고 말했다.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는 대로 만주를 침공할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더 이상 중국을 대일전 종식에 필수적인 요소로 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루스벨트는 장제스의 스틸웰 소환 요구에 대한 대처가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입지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만 평가했다. 미국 언론은 이제 국민당 정권을 독재적이고 무능하며 부패한 족벌주의 정권으로 묘사하며 등을 돌렸다. 신문에서는 장제스의 태도가 일본과의 싸움을 거부하는 행태라며 비난했고, 특히 전해 허난 성에서 대기근이 발생 했을 때는 중국 사람들에게 무심했다며 장제스를 비난했다. 『뉴욕타임스』 에서는 중국 국민당에 협력함으로써 미국은 ‘교양 없고 냉정한 독재 정권에 동의하는 꼴’9이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시어도어 화이트와 같이 영향력 있는 언론인들은 장제스를 비방하고 공산당과 비교하여 부정적으로 평했다 당시와 같은 뉴딜 자유주의 시대에는 많은 국무부 관료가 이 같은 평가에 동의했다.10

 


8 스틸웰과 헐리와 장제스의 만남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Romanus and Sunderland, Stilwells Command Problems, pp. 379~384: Tuchman, Stilwell, pp. 493~194: Spector, Eagle against the Sun, pp. 368~69
9 Barbara W. Tuchman, Sti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 1911~1945, New York, 1971, p. 646에서 인용
10 van de Ven, War and Nationalism in China, p. 3: White and Jacoby, Thunder out of China, New York, 1946

앤터니 비버 선생은 시어도어 화이트를 부정적으로, 장제스를 긍정적으로 보는 듯.

 


[1] 미디어 더퍼스트 지역감정의 끝판왕, ‘허난성(河南省)’ 잔혹사 9월 2일 18:25 2016
[2] 앤터니 비버 저/ 김규태, 박리라 역, “제2차 세계대전”, 글항아리, 2017
[3] 허난 성 in 나무위키

Norman Rockwell –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Norman Rockwell,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1964, Oil on canvas, 91 cm × 150 cm

일전에 노먼 록웰의 작품이 소더비에 낙찰돼서 포스팅[1]한 적 있는데, 웹서핑하다가 다른 작품을 봐서 또 포스팅 함 ㅋㅋㅋ

노먼 록웰 하면 미국의 김홍도 같은 사람인데, 서민적 일상을 그림에 잘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한 화가라고 한다. ㅎ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랜드마크 판결 중의 하나인 Brown v. Board of Education에 의해, 흑인과 백인의 분리된 학교 교육이 위헌 판결된 것에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반발하여 뉴올리언즈 주의 위기가 일어났고, 그 때문에 과거 백인 학교였던 학교에 등교를 하는 6세 소녀 Ruby Bridges와 그녀를 경호하는 네 명의 경호원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일천해서, 록웰 화백이 삼중자화상[2] 같은 소프트한 그림만 그린 줄 알았더니만, 당대 꽤나 사회적인 문제를 담은 그림도 그린 줄은 몰랐다. ㅎㅎ 위키피디아를 보니 Ruby Bridges씨는 나중에 커서 사회운동을 한 모양이다.

참고로 랜드마크 판결이라고 하니까 그 중의 하나인 Loving v. Virginia 이야기[3]를 한 적이 있다. 걍 생각나서 그냥 써봄-_-

 


[1] 내 백과사전 Norman Rockwell – Saying Grace 2014년 1월 27일
[2] http://www.nrm.org/MT/text/TripleSelf.html
[3] 내 백과사전 Loving v. Virginia 2014년 2월 20일

이스터 섬 원주민의 조상에 대한 상반된 생물학적 결과

부활절에 발견됐다고 섬 이름이 ‘이스터’가 된 망망 대해 한 가운데에 있는 요상한 섬 만큼 고고학계에서 마르지 않는 논쟁의 우물은 없는 것 같다. ㅋ

Archaelogy 매거진의 기사[1]를 보니 이스터 섬 원주민의 조상을 추적한 연구가 Current Biology에 발표[2]된 모양인데, 내용인 즉슨, 이스터 섬 원주민 5명의 상염색체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이랑은 별 관련 없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스터 섬이 서구에 알려지기 전에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일부가 접촉했다는 유전자 분석의 결과[3]를 일전에 본 적이 있는데, 이거랑은 정반대의 주장 아닌가!!!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구만-_-

이번 연구[2]는 아무래도 헤위에르달 선생에게는 불리한 결과 같은데, 어찌 될려나 모르겠다. 헤위에르달 선생은 학계에서 꽤 유사과학자 취급을 받는 듯한데-_-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몇몇 결과[4]가 나오면서 개인적으로는 꽤나 흥분했었다 ㅋㅋ 근데 또 반전이 일어나네 ㅋㅋㅋ 사이언스 매거진[4]을 보니 헤위에르달 선생은 중동에서 남아메리카를 거쳐 이스터 섬으로 왔다는 주장도 한 모양인데, 이건 좀 너무했다-_- 고고학계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사람인 듯 하다. ㅎㅎ

여하간 본인은 지식이 없어서 이런 유전적 분석들[2,3,4]이 왜 상반된 결과를 낳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전에 이스터 섬의 몰락 이유에 대한 이야기[5]를 했는데, 나무위키의 이스터 섬 항목[6]에도 꽤 다양한 주장들이 소개되어 있다. 자꾸 새로운 주장과 가능성은 제기되는데 결정적인 한 방은 없는 듯 하다. 여하간 이스터 섬은 고고학계의 영원한 떡밥인 듯 ㅎㅎ

 


2017.10.14
사이언스 Did early Easter Islanders sail to South America before Europeans? Oct. 12, 2017 , 12:30 PM

 


[1] Archaelogy Genetic Study Questions Idea of Early Easter Island Contacts Friday, October 13, 2017
[2] Lars Fehren-Schmitz, et al. “Genetic Ancestry of Rapanui before and after European Contact”, Current Biology, Published: October 12, 2017, DOI: http://dx.doi.org/10.1016/j.cub.2017.09.029
[3] J. Víctor Moreno-Mayar, et al. “Genome-wide Ancestry Patterns in Rapanui Suggest Pre-European Admixture with Native Americans”, Current Biology, Published Online: October 23, 2014, DOI: http://dx.doi.org/10.1016/j.cub.2014.09.057
[4] Andrew Lawler, “Beyond Kon-Tiki: Did Polynesians Sail to South America?” Science 11 June 2010: Vol. 328 no. 5984 pp. 1344-1347, DOI: 10.1126/science.328.5984.1344 (pdf)
[5] 내 백과사전 이스터 섬의 몰락 이유에 대한 새로운 견해 2015년 1월 8일
[6] 이스터 섬 in 나무위키

Bakhshali manuscript : 기호 0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서

archaeology 매거진의 기사[1]를 보니 Bakhshali manuscript의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전에 내용상으로 추정한 것 보다 500년이나 과거인 3~4세기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문서의 내용이 은근 난이도가 있는 편인 모양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등비수열, 연립방정식, 2차방정식, 부정방정식 등의 내용이 있다고 한다. 대충 국내 교육과정에 중3~고1 수학 정도의 내용에 해당한다. 헐… 근데 연대 차이가 많이 나는 다른 페이지와 섞여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알 수가 없는 듯.

지금이야 미지수, 제곱 등의 편리한 수식기호가 많고 대수 공식들(곱셈/인수분해 공식)이 잘 발달되어 있어, 고대 문제들이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고대에는 그런 계산들을 문장형 (어떤 수와 그 수의 곱에 다시 처음 수의 두 배를 더하고…-_-)으로 방정식을 인식했기 때문에 간단한 방정식도 열라 풀기 빡세다. 본인은 산스크리트어를 모르긴 하지만, Bakhshali manuscript의 내용도 아마 그런 식일 듯 하다.

이 문서에는 영을 의미하는 기호인 중앙의 검은 점이 쓰이는 모양인데, 이번에 연대 추정이 바뀌면서 아라비아 숫자(다들 아시겠지만 인도에서 발명된 기호)로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가 최초로 사용된 문서가 되었다 한다. 그 전에는 9세기 Gwalior Fort의 사원 바닥에서 발견된 문자가 최초였다. 물론 여기서 영을 의미하는 기호를 쓰는 것 자체는 이보다 오래된 고대 마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도 이미 있었는데,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 기호 ‘0’의 기원이 되는 기호로서 최초라는 말이다.

과거 수많은 핵실험[2]들 때문에 대기중의 방사성 원소의 농도가 급증하는 바람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고려해야 할 점이 여러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테크닉이 동원되는 모양인데, Sheridan Bowman의 책[3]을 번역한 책[4]을 일전에 읽어봤는데, 그 방법이 잘 설명 돼 있다. ㅋ 근데 이 책을 내가 어디 놔 뒀는지 보이질 않네…-_-

 


[1] archaeology 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Thursday, September 14, 2017
[2] 내 백과사전 역대 국가별 핵실험 회수 2013년 2월 13일
[3] Bowman, Sheridan (1995) [1990]. Radiocarbon Dating. London: British Museum Press. ISBN 0-7141-2047-2.
[4] 셰리든 보먼 저, 이선복 역,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게임 이론을 비스마르크 해전에 적용하기

앤터니 비버 선생의 책[1;p694]을 읽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비스마르크 해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용이 많이 간략하다. ㅋㅋ 이걸 보니 비스마르크 해전에 관해 본인이 아주 오래전에 게임 이론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교재를 만든 게 생각나서 온통 뒤져봤는데, 디지털 파일은 분실하고 인쇄물로만 남아 있었다. 이걸 그냥 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걍 블로그에 남겨본다.

이 글의 뼈대는 Haywood의 논문[2]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나, [2]에 나와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 부분은 모두 위키피디아의 Battle of the Bismarck Sea 항목, Skip bombing 항목, ビスマルク海海戦 항목이 출처이므로, 본 블로그는 역사적 내용의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문제 1

1943년 2월, 맥아더 장군의 남서 태평양해역군이 부나(Buna)를 함락하고 라에(Lae)에 주둔한 일본 기지를 위협하게 되자 일본군은 라에의 기지를 증원하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 이동을 실시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2월까지 제 20사단과 41사단이 일차적으로 후송되었고, 다음 18군 사령부와 제 51사단을 실은 8척의 수송선이 8대의 구축함과 100대의 폭격기의 호위를 받으며 라바울(Rabaul)에서 라에로의 수송 작전에 돌입하였다. 제 3함대를 지휘하는 기무라 마사토미(木村昌福) 제독은 라바울의 심슨항에 정박한 구축함 시라유키(白雪)에 승선하였다. 이 작전은 연합군의 세력이 상당히 강한 비티아즈 해협(Vitiaz Strait)을 통과해야하는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으므로 참모 측에서 전멸을 예감하고 중지를 건의하였으나 81호 작전계획 담당인 제 8함대 작전참모 카미 시게노리(神重徳) 대좌는 “명령이니까 전멸할 각오로 임하라”라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2;p366]

미군의 암호 해독팀은 일본군의 무전 통신 전파를 가로채어 해독하는데 성공하였고, 남서 태평양 공군 제독 소장 조지 케니(George Kenney)의 지휘하의 연합군 공군과 뉴기니에 있는 연합군 육군은 그러한 조우를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특별히 개조된 미공군 B-25 미첼 폭격기와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뷰파이터 폭격기의 조종사들은 대공 선박 폭격 연습을 준비해왔다. 미첼 조종사는 “물수제비 폭격(skip bomb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이 폭격 방식은 B-25같은 쌍발폭격기들이 고도 60~150m, 시속 420km의 속력으로 적함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하여 철갑폭탄을 투하하면 폭탄이 물수제비처럼 수면을 튀어 배의 측면에 타격을 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발사 후 명중까지 수 분이 걸리는 어뢰와 달리, 폭탄 투하 후 수 초 이내에 표적에 도달하므로 회피가 불가능하고 선박의 수선 부근에 타격을 주어 어뢰처럼 표적함정에 침수를 일으키므로 구축함 급 이하의 전투함이나 수송선 등 현측장갑이 없는 함정들에게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과시하였다.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의 선택은 두 가지로 크게 압축되는데 라바울에서 라에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북쪽 경로와 남쪽 경로가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정찰의 시계가 상당히 나쁜 시기였고 조지 케니 장군 역시 정찰의 집중도를 북쪽과 남쪽 두 군데 중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가상적으로 수치화 해 보자.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무라 마사토미가 어느 경로를 택하든 거리는 비슷하므로 (논문[2]에 첨부된 저 그림은 안 비슷해 보이는데, 구글맵으로 보면 비슷해 보임-_-), 양쪽 모두 약 3일 간의 항해가 예측된다. 실제로 솔로몬 해역 및 비스마르크 해역에서 2월 말부더 태풍이 불어와 시계가 상당히 나쁜 상태였다. 조지 케니 역시 정찰기의 태반을 뉴 브리튼 섬 북쪽 지역 아니면 남쪽 지역 중 어느 한 쪽을 따라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군이 남쪽으로 정찰하는데 일본군이 북쪽올 항해한다면 미군은 1일 간의 폭격을 할 수 있고, 일본군이 남쪽으로 항해를 하면 미군은 3일간의 폭격을 할 수 있다고 하자. 반면에 미군이 북쪽으로 정찰할 때 일본군이 남쪽으로 항해한다면 2일간의 폭격이 가능하고, 일본군이 북쪽으로 항해해도 2일간의 폭격이 가능하다고 하자. 이미지 출처 [2;p368]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은 표로도 만들 수 있다.

케니\기무라 북으로 항해 남으로 항해
북으로 정찰 2일 폭격 2일 폭격
남으로 정찰 1일 폭격 3일 폭격

이려한 상황은 게임이론에서 메우 전형적인 설정이다. 즉, 제로섬 게임이고, 단판으로 게임이 종결되고, 한번 선택온 돌이킬 수 없고, 게임 내의 제반 정보는 모두 쌍방에 공개되어 있으나 서로 상대방의 선택을 알 수는 없다. 각 게임 참가자 (케니와 기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급적 회피하려고 한다고 할 때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을까?

 


문제 1 풀이

케니의 관점에서 보자. 미군은 가능한 많은 날수를 폭격할 수 있는 선택을 원한다. 그래서 각 선택에 대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보자.

케니\기무라 북으로 항해 남으로 항해 각 행의 최소값
북으로 정찰 2일 폭격 2일 폭격 2
남으로 정찰 1일 폭격 3일 폭격 1

따라서 그 최소값들 중에서 최대가 되는 값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케니는 북으로 정찰하는 방향을 택하게 된다.

기무라의 관점에서 보자. 일본군은 가능한 적은 날 수를 폭격할 수 있는 선택을 원한다. 마찬가지로 각 선택에 대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보자.

케니\기무라 북으로 항해 남으로 항해
북으로 정찰 2일 폭격 2일 폭격
남으로 정찰 1일 폭격 3일 폭격
각 열의 최대값 2 3

따라서 그 최대값들 중 최소가 되는 값을 선택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따라서 기무라는 북으로 항해하는 방향을 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최대들 중에서 최소, 최소들 중에서 최대를 선택하는 전략을 미니맥스 전략이라고 한다.

실제로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은 북쪽 경로인 비스마르크 해를 통과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2월 28일까지 흐리던 날씨가 3월 1일부터 맑아지고, B-24폭격기 조종사의 순찰에 발각되면서 비스마르크 해전이 시작된다. 이미지 출처

3월 2일부터 이틀 사이에 미군과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의 대규모 폭격이 시작되었고, 물수제비 폭격술을 이용하여 57발 중 28발을 명중(이 숫자의 출처가 불명)하는 기염을 토해내는 놀라운 명중률을 보이며 일본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거의 살육에 가까운 이 비스마르크 해전으로 인해 미 공군과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은 겨우 13명의 조종사를 잃고 5대의 전투기가 파손되었지만, 일본군은 8척의 수송선([1;p694]에는 7척)과 4척의 구축함이 가라앉고 약 3000명의 지상군이 사망하는 재앙을 맞게 된다. 이 전투의 타격으로 인해 일본군은 파푸아 뉴기니에서의 장악력을 점차 잃게 되고 나아가 태평양에서의 세력을 잃게 된다.

 


[1] 앤터니 비버 저/김규태, 박리라 역, “2차 세계대전”, 글항아리, 2017
[2] O. G. Haywood, Jr. “Military Decision and Game Theory”, Journal of the Operations Research Society of America, Published Online: November 1, 1954 p365-385 https://doi.org/10.1287/opre.2.4.365

[서평]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10점
마르코 폴로 지음, 김호동 옮김/사계절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다보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소속의 김호동 교수를 언급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일전에 읽은 James A Millward 선생의 저서[1]에서도 김호동 교수의 연구가 몇 군데 언급된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연구를 이리저리 찾아보던 차에 읽어본 책인데, 역시나 김호동 교수의 꼼꼼한 역주가 자세하게 달려 있어 상당히 학술적으로도 뛰어난 책인 듯 하다. 뭐 본인은 문외한이라 가치를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사료를 인용하여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을 교차검증하는 부분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르코 폴로의 이 책은 다양한 사본이 존재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일전[2]에 인용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본문에는 중요한 세 개의 사본을 모두 참고하여 다른 사본에 없는 문장은 각각 표시가 되어 있다.

책 주석에서 김호동 선생이 폴 펠리오의 연구를 상당히 많이 언급한다. 예전에 읽은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 ‘실크로드의 악마들'[3]을 봤을 때는, 이 사람이 걍 유물 도둑놈인줄로만 알았는데, 동양사에 대해 이 정도로 식견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폴 펠리오 다시 봤음 ㅋㅋ

p42에 스기야마 마사아키 선생이 마르코 폴로는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본인은 스기야마 선생의 책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중앙아시아사에 대해 조사해 보면 자주 나오는 인물이라 꽤 영향력있는 사람 같은데 이런 극단적 주장을 한 줄은 몰랐네. ㅎㅎ

p143 (41장)에 이스마일파의 ‘산장의 노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오래 전에 읽은 버나드 루이스 선생의 저서[4]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다. 읽은지 하도 오래돼서 까먹고 있었는데-_-, 그 책에 마르코 폴로의 41장이 인용되어 있었다. 아사신파의 자세한 이야기는 루이스 선생의 저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p270 (96장)에 쿠빌라이 칸이 종이 지폐를 이용한다고 소개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려 13세기 당대에 종이 화폐 경제가 이정도까지 발달한 줄 처음 알았다. 일전에 읽은 ‘뉴턴과 화폐위조범'[5]에서는 17세기에 은화의 은 함유량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영국 정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까지도 서구에서는 돈의 가치가 금속으로만 판정되던 시대였으니, 과연 마르코 폴로가 시대를 앞서는 화폐 시스템을 ‘연금술’이라 부를만 하다. ㅎㅎ

p295에 Marco Polo Bridge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코 폴로가 이 다리를 묘사하면서 너무나 아름답다고 설명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중일전쟁의 기폭제가 된 노구교 사건이 여기서 일어난 줄 처음 알았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베이징 외곽 서남 방향에 위치하는 듯. 평균값의 다리[6]와 함께 한 번 보고 싶구만 ㅎㅎ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그 시점은 쿠빌라이 칸의 영향력과 몽골의 국력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고, 몽골 제국 하에서 풍요를 구가하던 13세기 중국 사람들의 생활상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p374(152장)부터 항저우 시 내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거리의 묘사가 너무 생생하여 도저히 13세기의 기록 같아 보이지 않는다. 역사기록은 보통 왕실이나 정치적 설명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을 묘사하는 생생한 풍경의 묘사가 흥미를 자아낸다.

p476에 형제의 싸움을 막기 위해 어머니가 유방을 잘라내겠다고 외치는 설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전에 본 무케르지 선생의 책[7;p256]에 무케르지 선생의 할머니가 아버지와 삼촌이 싸울 때, 자궁을 씼어내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랑 똑같다. 이거 뭔가 문화인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싶긴 한데, 뭐 본인은 문외한이라 모르겠음-_-

역자인 김호동 선생은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지명마다 일일이 현대의 지명을 비정하고 있는데(물론 불명확한 장소도 많다), 구글지도로 언급된 지명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마르코 폴로가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대략 감이 온다. 세계지도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부차적인 재미도 있다. ㅎㅎㅎ 13세기 당시 알려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환경/문화/구전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때로는 그 묘사가 당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일독을 권한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신장의 역사 : 유라시아의 교차로 2013년 5월 30일
[2] 내 백과사전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의 사본들 2017년 8월 24일
[3] http://zariski.egloos.com/2576823
[4] http://zariski.egloos.com/2496447
[5] 내 백과사전 [서평] 뉴턴과 화폐위조범 – 천재 과학자, 세기의 대범죄를 뒤쫓다 2016년 7월 7일
[6] 내 백과사전 평균값의 다리 2013년 12월 20일
[7] 내 백과사전 [서평]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2017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