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라스푸틴 – 그는 과연 세상을 뒤흔든 요승인가

라스푸틴10점
조지프 푸어만 지음, 양병찬 옮김/생각의힘

출판사 측의 책소개에 따르면, 사이비 종교를 매개로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공통점 때문에 최순실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소개하는 외신[1]이 많다고 한다. 본인은 라스푸틴에 대해서 그 정도의 상식만 가지고 있던 차에, 과학 기사 번역으로 이름을 날리시는 번역가 양병찬 선생이 책을 번역했다고 하니, 한 권 슥샥 사 보았다.

라스푸틴이 자기 마음대로 장관급 인사를 수시로 갈아치우는 국정농단을 부리면서 민심이 러시아 황실에 반발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러시아 황실이 붕괴되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러시아 혁명의 원인제공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출간 시기가 한창 최순실 게이트 직후라서 출판사 마케팅도 이쪽과 엮어서 진행 하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이후, 2000년대 들어서 러시아에서 오래 보관되어온 문서들이 조금씩 개방된 모양인데, 그 덕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발굴하여 러시아 관련 역사를 자세히 분석하거나 재조명하는 책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전에 본 리처드 오버리 선생의 저서[2]도 그러한 맥락에 있다. 이 책의 저자인 Joseph T. Fuhrmann도 과거 알려지지 않은 자료에 접근하여 나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여 책을 쓴 것 같다. 다만 저자가 서술하는 사실관계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저자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안 건지 좀 의문스러운 부분도 꽤 있다. (특히 어떤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다고 하는 부분.) 전반적으로 야사 비슷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읽어볼만한 책이라 본다.

러일전쟁의 시기부터 러시아 혁명 직전까지 러시아 황실 내부의 사정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당시 러시아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분명 러일전쟁 직후일 텐데, 러일전쟁의 영향이 러시아 황실에 별로 미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근대사에서 러일전쟁의 크기가 동/서양적 관점 사이에서 꽤 다른 것 같다.

책의 뒷부분에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과정이 짧게 묘사되어 있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거미줄처럼 복잡했던 유럽 국가들간의 외교관계와 초기 전황은 존 키건 선생의 ‘1차세계대전사'[3]가 대단히 참고할만 하다. 앞부분만 읽어봐도 이 책에서 서술한 유럽 정치/외교적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p85에 라스푸틴이 황제와 황후에게 vy 대신 ty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에도 짧은 설명이 있긴 하지만, 본인의 초 짧은 러시아어 실력-_-으로 보충설명을 해 두고 싶다. ㅋㅋㅋ 일전에 영어에 2인칭 존대말이 없다[4]는 이야기를 했는데, 영어를 제외한 상당히 많은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 언어들에서 2인칭 복수를 존대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2인칭 단수 ты(띄)는 일종의 반말, 2인칭 복수 вы(븨)는 존대와 비슷하게 된다. 그러나 나무위키의 설명[5]에 따르면 한국어의 반말/존대와는 조금 다른 상호 존중의 의미로 사용한다고 하니, 라스푸틴만 일방적으로 ты(띄)를 쓰지 않고, 황제도 라스푸틴에게 ты(띄)를 쓰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라스푸틴의 성기라고 주장되는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저자에 의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또한 본인은 어릴 적에 라스푸틴이 익사했다고 들었는데, 부검 당시의 결과보고서를 근거로 그 부분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뭐 여하간 국내 번역서 중에서는 라스푸틴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닐까 싶다. ㅋ

 


[1] 뉴스위크 DAUGHTER OF ‘SOUTH KOREA’S RASPUTIN’ CHOI SOON-SIL EXTRADITED OVER BRIBERY ALLEGATIONS 5/31/17 AT 5:00 AM
[2] 내 백과사전 [서평]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2010년 6월 28일
[3]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086652
[4] 내 백과사전 영어에서 you의 존대말 2014년 2월 11일
[5] T-V구분 in 나무위키

[서평] 중앙은행 별곡 – 혼돈의 시대

중앙은행 별곡10점
차현진 지음/인물과사상사

이 책은 부제 그대로 대한제국이 중앙은행을 설립하려고 시도했던 시기부터 1950년 한국은행 설립까지, 말 그대로 ‘혼돈의 시대’에 있었던 금융환경과 중앙은행 설립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하는 책이다. 국제 금융사를 다루는 베리 아이켄그린 선생의 훌륭한 저서들[1,2]이 이미 있지만, 유럽/미국 금융사에 관해서만 서술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약간 거리감이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초 동북아시아권의 금융사에 대해 참고할만한 신선한 책이라 생각한다.

흥미롭고도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의 조선은행의 지위와 역할을 간접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일전에 니시하라 차관에 대해 책의 일부를 인용[3]해 두었으므로 독서 여부에 참고 바란다.

재미있게도 chartal theory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듯한 저자의 관점(p45,p115)를 볼 수 있는데, ‘비트코인은 화폐를 흉내낸 것’이라고 단언한 부분에서 확실히 기술에 뒤쳐지는 사람의 고정관념은 견고하다는걸 느낀다. 일전에 snek에서 공매도 사냥꾼인 Andrew Left가 테슬라와 엔비디아를 공매도 했다는 이야기[4]를 봤는데, 테슬라는 그렇다 쳐도 엔비디아는 강력한 AI 트렌드가 명확[5]한데도, 이를 보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고들이 측은해진다.

p28에 영국의 화폐위조의 처벌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오는데, 위조지폐범에게 강한 처벌을 내리는 영국의 당시 사회적 배경은 일전에 읽은 ‘뉴턴과 화폐위조범'[6]에 잘 나와 있다.
p225에 스기 공작(杉工作)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이와 정확히 거울상처럼 똑같은 독일의 작전이 유명한 베른하르트 작전인데, 이에 관해서는 Cicero씨의 블로그[7]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으니 참고 바란다.

저자가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꽤 많았는데, 저자 나름대로는 가능한 출처를 표시했다지만 좀 불만족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혼란했던 19세기 초의 국제 정세를 금융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흥미로운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달러 제국의 몰락-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2015년 10월 14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글로벌라이징 캐피털 : 국제 통화 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2011년 10월 9일
[3] 내 백과사전 니시하라 차관 西原借款 2017년 6월 21일
[4] 월스트리트 현상금 사냥꾼, 앤드류 레프트 in snek
[5] 내 백과사전 AI 붐에 잘 나가는 Nvidia와 다가오는 Intel의 위기 2017년 3월 4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뉴턴과 화폐위조범 – 천재 과학자, 세기의 대범죄를 뒤쫓다 2016년 7월 7일
[7] 베른하르트작전-영국경제를 붕괴시켜라! by Cicero

니시하라 차관 西原借款

차현진 저, “중앙은행 별곡“, 인물과사상사, 2016

p89-104

1910년대 만주는 화폐 무정부 상태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조선은행 영업의 전환점이 됐다. 서구 열강이 잠시 한눈을 파는 동안 만주와 시베리아로 세력을 넓힌 일본은 그 지역에서 조선은행이 일본 경제권의 확장을 지원하도록 주문했다. 당시 만주와 시베리아는 온갖 종류의 화폐가 무질서하게 유통되는, 화폐제도의 무정부 상태였다. 따라서 국제금융(환업무)을 알아야 했으나 그때까지 가계 대출 수준에 머물렀던 조선은행에는 전문가가 없었다. 결국 외부 수혈, 즉 미쓰이(三井)은행의 가타야마 시게오(片山繁雄)를 이사로 임명한 뒤 국제 영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최초의 외부 임원 가타야마는 몇 년 뒤 총재와의 견해 차이로 사임했다).

그 무렵 조선은행이 진출한 중국의 정세는 아주 복잡했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국민당을 진압하고 아슬아슬하게 북양(北洋) 정부를 이끌다가 1916년 죽었다. 그러자 그의 부하였던 돤치루이(段祺瑞)와 펑궈장(馮國璋) 등이 제각기 파벌을 만들어 권력 투쟁에 들어갔다(군벌전쟁). 반면 일본은 정치적 안정과 함께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그래서 복잡한 중국 문제에 개입하려는 여유를 부릴 정도였다.

여러 군벌이 한 치 앞을 모르고 각축할 때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것은 결국 외채를 제대로 갚는 정권이다. 따라서 일본이 통치자금을 지원해 외국 빚을 상환케 하면 그 친일 정권이 살아남게 된다(당시에는 ‘통치자금’을 ‘정치차관’이라 불렀다). 그것은 유럽을 제치고 일본이 미리 확보해 둔 각종 이권과 자원을 가장 확실하게 보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본은 위안스카이가 살아 있을 때도 2500만 파운드의 통치자금을 주고 만주와 산둥 반도 일대의 각종 이권과 개발독점권을 챙겼다(1915년 ‘21개조 요구’).

이것이 데라우치 조선총독의 생각인데, 이 구상의 핵심은 돈이다. 그래서 의회의 감시와 간섭을 받지 않는 발권력이 필요했다. 1916년 총리 자리에 오른 데라우치는 쇼다 가즈에 조선은행 총재를 대장상으로 임명했다.

데라우치에게 쇼다를 활용토록 조언한 사람은 니시하라 가메조(西原龜三)다. 오늘날 니시하라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정계와 재계를 떠돌던 낭인이라서 “허름한 시골 노인풍의 인상”이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그는 러일전쟁 직후 조선으로 흘러 들어와 포목상 박승직과 함께 종로4가에서 의류수입업체를 세웠다. 1907년 이들이 세운 ‘공익사’가 최초의 한·일 합자회사였다(이때의 인연으로 박승직은 니시하라의 도움을 얻어 오늘날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아들 박두병을 조선은행에 취직시켰다).

비선 라인이 주도한 일본의 자원외교

하지만 니시하라는 사업가라기보다는 정치 컨설턴트에 훨씬 가까웠다. 조선의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조종하고 한일병탄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던, 오늘날 극우파의 원조 우치다 료헤이(內田 良平)와 어울리면서 시베리아와 만주 침략 방안을 의논했다. 조선총독 데라우치에게 쇼다를 천거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데라우치 기획, 쇼다 감독, 니시하라 주연’의 대(對)중국 자원외교를 ‘니시하라 차관(西原借款)’이라고 한다. 쇼다는 후방에서 자금을 마련하고 니시하라는 전방에서 철도·석탄·철·식량 등 온갖 이권을 흥정했다.

자금책을 맡은 쇼다는 우선 조선은행과 대만은행을 불렀다. 당시 중국의 발권은행인 교통은행은 돤치루이가 장악하고 있었다(현재의 교통은행은 상업은행이다). 그런데 과도한 정부 대출로 발권 여력을 상실한 채 파산 지경이었다. 이 은행이 파산하면 조선과 대만의 화폐제도와 경제도 타격을 받는다. 따라서 교통은행을 돕는 것이 조선은행과 대만은행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 쇼다의 설명이었다. 이에 조선은행과 대만은행은 교통은행에 각각 500만 엔을 대출했다. 두 은행의 대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다른 대화(對華) 지원사업에도 계속 끌려들어 갔다.

1년8개월간 일본이 돤치루이 파에 지원한 금액이 2억4000만 엔이었고, 그중 1억4500만 엔은 조선은행을 비롯한 특수은행에서 나왔다. 이는 메이지유신 이후 50년간 해외에 투자한 1억 엔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니시하라 차관은 원대한 목표에 비해 법적 근거가 약했다. 그것은 특정 군벌을 옹립하려는 일본의 내정간섭이었다. 정부 안에서는 공식 외교 라인을 제치고 비선 조직을 통해 추진되는 차관사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재계와 금융계에서는 “조선은행이 탈선했다”고 맹비난했다.

(중략)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조선은행이 제공한 5800만 엔 중 회수된 것은 거의 없었다(1917년 말 현재 조선의 화폐발행액이 6700만 엔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 숫자다). 다른 차관들도 결과는 비슷했다. 중국에 제공한 총 2억4000만 엔 규모의 자금 중 회수한 것은 500만 엔에 불과했다. 그나마 ‘쌀 소동’ 으로 내각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더 큰 손해를 막을 수 있었다.

비선 한 명에 의해 중앙은행이 대규모 손실을 입은 한국경제사의 단면이다. ‘비선’에 의한 ‘자원외교’라…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어인 듯-_-

앤터니 비버가 양경종 이야기에 낚였나?

얼마전에 언급[1]한 앤터니 비버 선생의 ‘제2차 세계대전’을 읽고 있는데, 머리말에 한 페이지 정도 짧게 노르망디에서 미군에게 포로가 된 양경종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사 관련 블로거인 ‘길 잃은 어린양’씨의 블로그에 이와 관련하여 쓴 글[2]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아주아주 예전에 슐리펜 계획에 대해 검색하면서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여태 글을 쓰고 계시는 줄 몰랐네. ㅎㅎ

나무위키의 항목[3]도 그렇고, 이 이야기가 국내에서는 거의 구라 확정인 듯한 분위기인 듯 하다. 구라가 군사사학자 까지 낚은 사건일지도 모를 일이긴 하나, 책의 전체 내용상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거의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라서 저자 본인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듯한 느낌이 든다. 뭐 이런 사소하게 한국인이 엮인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나 관심있을 터이니, 아무래도 영원히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을 스토리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앤터니 선생의 책에서 이 이야기 부분은 확실히 출처가 미약한 것은 사실이니,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1] 내 백과사전 앤터니 비버 선생의 신간 ‘제2차 세계대전’ 2017년 3월 25일
[2] 앤터니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노르망디의 조선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네요? by 길 잃은 어린양
[3] 노르망디의 한국인 in 나무위키

[서평] 전격전, 프랑스 패망과 거짓 신화의 시작

전격전, 프랑스 패망과 거짓 신화의 시작10점
로버트 알란 다우티 지음/황금알

근대 및 현대 전쟁사는 크게 기동과 화력의 양면으로 분류가능하다고 본다. 나폴레옹이 주로 기동성을 중심으로 승리를 하였다면, 1차대전은 화력에 비중을 둔 벙커전이라 생각할 수 있다. 1차 대전의 경험에 매몰되어 화력 중심의 벙커전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시대에, 현대적 무기인 전차를 이용한 기동중심의 작전을 펼친 시기가 2차대전의 서부 전역이라 볼 수 있다.

1940년 독일의 서부전역 당시 독일군의 스당진격은 흔히 ‘전격전’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이 사실은 사전에 잘 계획된 작전이 아니었으며, 대부분의 독일 장군의 반대 및 수많은 실패 가능성을 넘어서 우연적인 결과에 가깝다는 주장은 칼 하인츠 프리저의 ‘전격전의 전설'[1]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책도 칼 하인츠의 책[1]과 관점은 거의 동일하지만 책의 분량이 적은 관계로 그 책과 비교하여 디테일한 설명이 훨씬 적고 축약되어 있다. 사단 및 군단의 지휘체계 편성 단대호도 칼 하인츠 쪽이 더 자세하다. 저자인 Robert A. Doughty의 위키피디아 항목을 확인해보니 이 책의 원저 ‘The breaking point. Sedan and the fall of France 1940’가 쓰여진 시기는 1990년이고 칼 하인츠의 책은 2005년이므로 아무래도 칼 하인츠 쪽이 후대에 발굴된 더 많은 자료를 참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칼 하인츠의 책을 읽은 사람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다만 몇몇 사건에서 미세한 관점의 차이는 있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 제2군의 반격작전을 지휘한 플라비니와 브로카르 장군의 책임론에서 칼 하인츠[1;p320]는 플라비니와 브로카르 장군이 무능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 책(p339)에서는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듯한 묘사를 하고 있다.

동일한 지명이 칼 하인츠의 책[1]과 이 책에서 약간 차이가 나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동일한 강을 프랑스에서 뫼즈 강(Meuse)이라 부르고, 네덜란드에서 마스 강(Maas)이라 부르기 때문에, 두 책에서 차이가 있다.

전반적으로 1940년 서부전역은 독일의 상식을 깬 도박적 전략+프랑스 지휘계통의 무능함의 복합적 결과라는 점에서, 두 책의 큰 관점의 차이는 없다.

 


[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31951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흔적?

고고학자이자 이집트 학자인 Kara Cooney 선생의 페이스북을 팔로우 하고 있는데, 샌디에고 카운티에 소재한 Cerutti Mastodon이라는 장소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흔적에 대한 워싱턴포스트 기사[1]를 공유[2]하는 걸 봤다. 마침 이코노미스트지[3]에서도 소개하는 기사가 났다.

13만년 전의 인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주장[4]인데, 마지막 빙하기 때 인류가 빙하를 통해 베링 해협을 건넌 시기가 2만 5천년이 안 되었다는게 정설이므로, 일러도 너무 이르다. out of africa이후 인류가 남아시아에 도달한 시기 보다도 훨씬 이르다. 이 때문에 꽤 많은 논란이 일어나는 듯 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메리카로 이주한 시기를 조정하거나, 사피엔스 이외의 더 오래된 다른 호미니드(호모 에렉투스?)가 어떤 방법으로 아메리카로 건너 왔다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그러나 13만년보다 더 오래된 다른 흔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신뢰하기 어렵다.

대충 논문[4]을 보니 마스토돈의 뼈를 토륨/우라늄 반감기 측정으로 연대를 추정한 것 같다. 인류의 뼈를 직접 찾은 것은 아니고 “spiral-fractured bone and molar fragments” 등의 흔적을 근거로 인류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흔하지는 않겠지만 자연적으로도 이런 흔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페북의 고생물학 페이지에서도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5]이 있는 듯. ㅎ

페북의 고인류학 페이지에서 누가 Hueyatlaco 이야기[6]를 하던데, 본인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위키를 대충보니 맥시코에서 25만년된 인류의 흔적이라 주장되는 장소가 발견된 모양인데, 1만년 전에 존재했다는 클로비스 문화 이전의 인류 흔적에 대한 주장은 이래저래 꽤 많은 회의적 비판을 받는 듯. 개인적으로도 이번 Nature의 논문의 주장은 너무 과거라서 꽤 회의적인데, 어찌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싶다. 매번 이런 결론인가-_- ㅋ

 


[1] 워싱턴포스트 Archaeology shocker: Study claims humans reached the Americas 130,000 years ago April 26
[2] https://www.facebook.com/karacooneyegyptologist/posts/10155385324987042?pnref=story
[3] 이코노미스트 The first humans in America may not have been Homo sapiens Apr 29th 2017
[4] Thomas Deméré, et al. “A 130,000-year-old archaeological site in southern California, USA”, Nature. 544 (7651): 479–483. doi:10.1038/nature22065
[5] https://www.facebook.com/groups/2417144643/permalink/10155364789314644/
[6] https://www.facebook.com/groups/paleoanthropology/permalink/738775042961619/

1939년 폴란드 포모르스카 기병의 전차 돌격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기병이 독일 전차대에 돌격했다는 이야기는 되게 많이 들어봤는데, 유튜브에 떠도는 최진기 선생의 강의[1]에도 짧게 언급된다. 칼 하인츠 프리저의 책 ‘전격전의 전설'[2;p59]에도 짧게 나오는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폴란드 육군은 독일과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베를린으로의 행군을 꿈꾸고 있던 폴란드 장교들은 뼈아픈 고통을 겪고 난 후, 전쟁은 오기로만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폴란드군은 구식 장비로 무장하고 교육훈련 수준도 시대에 뒤떨어 졌을 뿐만 아니라 부대지휘 방식도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구데리안의 기록에 따르면, 폴란드의 포모르스카Pomorska 기병 여단의 병사들이 번득이는 군도를 손에 들고 독일군 전차로 돌격했다고 한다.29 문제는 이 전차들이 수년 전 제국군 시절의 널빤지나 천으로 만든 모조 전차가 아니라 강력한 철판으로 제작된 장갑을 장착한 전차들이 었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착오의 비극을 상징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29 Guderian, Heinz, Erinnerungen eines Soldaten. Stuttgart: Motorbuch Verlag, 1986, p64

프리저 선생이 인용한 구데리안의 저서는 영문 번역판으로는 Panzer Leader이고, 국내에도 ‘구데리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3]되어 있다. 역자가 독문학과 출신인걸 보면 중역은 아닌 듯. ㅎㅎ

본인은 독일어는 전혀 모르지만 구글링으로-_- 구한 독일어 원본의 pdf파일과 번역본[3]의 목차 및 내용을 대충 대조해보니, 프리저 선생이 참고한 부분은 다음 부분[3;p101]인 것 같다.

9월 3일 그라프 브로크도르프 장군이 지휘하는 23보병사단이 바익셀 강까지 밀고 나간 3기갑사단과 20차량화 보병사단 사이에 투입되었다. 아군은 여러 위기와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군 전방의 폴란드 군을 슈베츠 북쪽과 그라우덴츠 서쪽 삼림 지대로 몰아넣어 완전히 포위했다. 폴란드 기병여단 포모르스카는 군 전차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 채 창과 검으로 공격해 왔다가 거의 궤멸되었다.

그런데 인터넷 전쟁사 블로거들 중에는 이 사건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꽤 많다.[4,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무엇을 보고 와전이라고 판단한 건지 출처를 제대로 쓰지 않아서, 한 번 잘못된 내용이 반복 카피되어 재생산된 것일 가능성도 있어 진위가 의심스럽다. 다만 오늘의유머[7]에 작성한 사람의 글은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비교적 중립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상당히 읽을만 하다.

어쨌건간에 정황상 작전 자체가 무모한 행위는 아니었다는 견해는 맞는 것 같다. ㅎ

 


[1] https://youtu.be/iKuTKOf6Vik?t=792
[2]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31951
[3]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0544500
[4] 최강 독일에 맞선, 위대한 폴란드 기병대여! in 열혈국방
[5] 가우디의 역사 이야기 #2 전차와 맞선 기병대의 신화
[6] 전차에 돌격해야 했던 영웅적인 기병대의 뒤바뀐 진실 by military costume
[7] 폴란드의 기병이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는 이야기에 관한 글입니다. in 오늘의유머

일간지 Le Moniteur의 1815년 3월 헤드라인

나폴레옹의 엘바섬 탈출 당시에, Le Moniteur Universel이라는 정부 일간지가 있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789년 11월 24일에 창간되었다고 하니, 7월에 있었던 바스티유 습격사건 직후가 된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오기까지 이 신문의 헤드라인이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한데, 언론사의 태세전환의 사례로 널리 회자된다. 지금 검색해보니 이코노미스트지[1]에서도 아랍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앞부분에 짧게 다룬다. 참고로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volte face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_-

다음은 회자[2]되는 1815년 3월 당시 Le Moniteur지의 헤드라인이라고 한다.

3월 9일 The Monster has escaped from his place of banishment.
3월 10일 The Corsican Orge has landed at Cape Juan
3월 11일 The Tiger has shown himself at Gap. The Troops are advancing on all sides to arrest his progress. He will conclude his miserable adventure by becoming a wanderer among the mountains.
3월 12일 The Monster has actually advanced as far as Grenoble
3월 13일 The Tyrant is now at Lyon. Fear and Terror seized all at his appeaance.
3월 18일 The Usurper has ventured to approach to within 60 hours’ march of the capital.
3월 19일 Bonaparte is advancing by forced marches, but it is impossible he can reach Paris.
3월 20일 Napoleon will arrive under the walls of Paris tomorrow.
3월 21일 The Emperor Napoleon is at Fountainbleau
3월 22일 Yesteday evening His Majesty the Emperor made his public entry and arrived at the Tuileries. Nothing can exceed the universal joy.

이거 원문이 뭔지 또 실제로 이런지 궁금해져서 이리저리 검색해봤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견해[3,4]가 좀 있다. [3]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데, 본인은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므로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읽어봤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영 횡설수설한 문장이 되지만, 영어로 번역[5]하면 엄청나게 그럴듯한 문장이 된다!!! 아니면 그냥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가-_-

[4]에 글쓴이는 자기가 확인해 봤다는데, 그런 건 없고 당시 신문에는 헤드라인 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당대 나폴레옹에 반발했던 풍자 신문인 Le Nain jaune가 프랑스 언론들의 기사를 취합하여 태세전환을 비꼬는 내용은 있었다고 한다.

진짠가 싶어서 구글 검색을 계속해봤는데, 아무래도 불어를 모르다보니 한계가 있다. 한편 놀랍게도 구글 북스에서 Le Moniteur의 1815년 4월 14일 금요일자 신문을 직접 볼 수 있다!!![6] 오오 역시 구글! 아쉽게도 3월자 신문을 찾지는 못했는데, 여하간 도시전설인 건 확실한 듯.

그러나 어쨌건간에 당대 나폴레옹이 언론탄압을 상당히 많이 했던 걸로 봐서[7], 정부 기관지의 태세전환은 자연스러운 행위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나 싶다. ㅋ

 


[1] 이코노미스트 Read all about it Mar 17th 2011
[2] http://www.thecaveonline.com/APEH/napoleon.html
[3] http://www.napoleonprisonnier.com/chronologie/vol-de-laigle.html
[4] http://www.napoleon-series.org/cgi-bin/forum/archive2008_config.pl?md=read;id=87541
[5] https://translate.google.co.kr/translate?sl=au ….
[6] https://books.google.co.kr/books?id=DTx ….
[7] 나폴레옹, 미개한 국민을 두려워하다 by Nasica

앤터니 비버 선생의 신간 ‘제2차 세계대전’

군사 사학자 Antony Beevor 선생의 신간[1]이 출간되었다. 무려 12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지만, 할 말이 차고 넘치는 2차 대전의 이야기이므로 1200페이지로도 부족할 듯 하다. ㅎㅎ 비버 선생의 전작으로 세 권[2,3,4]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이번 것도 귀납적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요새 게을러서… -_- 밀덕을 제외하면 비버 선생의 글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 사람은 나 뿐이 아닐까 ㅋㅋ

감수자의 블로그 글[5]을 봤는데,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역사 전공자가 아니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 보여도, 학술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보니, 정보의 출처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 따라서 글이 아무말 대잔치 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감수자의 블로그 글은 그러한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하는 걸로 보아, 웹 생태계와 블로그 문화에 대한 문제[6,7]의 이해도가 낮은 듯 하다.)

감수자에 대한 약간 아쉬움이 있으나, 일단 독서 예정이다. 책을 보관할 여력이 도저히 없어 ebook 구입을 선호하는데, 보통 출간 2~3개월 내에 ebook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일단 구매 대기…. ㅋ

 


[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4419109
[2] 내 백과사전 [서평]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2010년 12월 13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디데이 :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2013년 2월 17일
[4] http://zariski.egloos.com/2381537
[5] 앤터니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 by 대사
[6] 내 백과사전 네이버의 문제점 2011년 8월 17일
[7] 네이버 블로그, 너무나 많은 문제들 in ㅍㅍㅅ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