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어 처리로 Voynich manuscript를 해독하기

갑자기 미야자키 이치사다 선생의 말[1]이 생각나는데, 고문서 해독은 당대의 언어와 문화 전반에 걸쳐 두루 꿰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샹폴리옹이 고대 이집트 신성문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개고생-_-을 했는지, 일전에 읽은 Roy와 Lesley의 책[2]에 잘 나와 있다.

미해독된 고대 필사본들 가운데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이 Voynich manuscript인데, 많이들 들어보셨을 터이다. 현재까지 해독이 되지 않고 있는 문서인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양피지의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으로 대략 15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악명높은 고문서를 자연어 처리 기법으로 뚫어보려는 시도[3]가 있었는 듯 하다. 2016년 논문이라 좀 오래 됐는데, 나는 방금 봤으므로-_- 걍 포스팅 함. ㅋㅋㅋ

Alberta 대학 소속의 자연어 처리 연구자인 Greg Kondrak 선생이 Voynich manuscript를 해독하려고 시도한 모양인데, 무료로 논문을 볼 수 있다. 논문 앞쪽[3;p77]에는 암호해독의 정석 중의 정석인 frequency attack과 문자들 사이의 이산 거리 확률을 비교하는 시도를 한 듯 한데, 이렇게 오랫동안 해독되지 않은 문서에 그런 흔한 방법이 통할런지 의문이다. ㅎ

여하간 캐릭터 빈도 분석과 anagram 분석을 이용해서 통계적인 자연어 처리 방식으로 어느 언어인지 맞추기를 시도한 듯 한데, 세계 인권 선언에 들어 있는 380개 언어들과 비교한 결과 히브리 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린 듯 하다. 근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유대인 매거진인 Mosaic에서 그럴리 없다고 주장[4]하는 듯. ㅋ 논문의 몇몇 가정이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듯 한데, 뭐 본인은 히브리 어는 전혀 모르니 넘어갑시다. ㅋ

여하간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통계적 접근을 했다지만, 그 기반은 매우 잘 알려진 고전적 암호해독 기법인데, 히브리 어가 정말 정답이라면 과거 누군가는 히브리 어로 해독을 시도해 이미 풀렸을 가능성이 높을 듯 하다. 역시 고문서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문화와 배경을 연결해야 가능하지, 문자만으로는 곤란하다고 본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꽤나 회의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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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5
voynich manuscript 보이니치 필사본 (jayhoon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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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의 한마디(宮崎市定) (sonnet.egloos.com)
[2] 내 백과사전 [서평] 문자를 향한 열정 : 세계 최초로 로제타석을 해독한 샹폴리옹 이야기 2012년 7월 14일
[3] Hauer, B., & Kondrak, G. (2016). Decoding Anagrammed Texts Written in an Unknown Language and Script. Transactions Of The Association For Computational Linguistics, 4, 75-86. Retrieved from https://transacl.org/ojs/index.php/tacl/article/view/821
[4] Mosaic No, the Mysterious Voynich Manuscript Is Not Written in Hebrew FEB. 7 2018

데이터 분석으로 비교한 역사상 최고의 장군?

흥미로운 글[1]을 봐서 그냥 포스팅해 봄. ㅋ

농구에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 WAR)라는 시스템이 있는 듯 한데, 나는 스포츠에 문외한이라 처음 듣는 이야기다. ㅎ

WAR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듯 한데, 어떤 선수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선수로 대체된 것 보다 팀의 승리에 얼마나 더 기여를 했는지, 점수로 정량화하여 승리 기여도를 평가하는 시스템 같다. 농구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가???

뭐 여하간 이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역사상 각종 전투에 대해 장군들의 WAR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면, 누가 뛰어난 장군이었는지 비교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같다. ㅎㅎ 블로그 저자가 직접 만든 인터랙티브 페이지[2]가 있으니 직접 클릭해서 확인하기 바란다.


전쟁 데이터는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대부분 구했다고 한다. 카이사르 같은 고대 장군도 있고, 마마보이-_-[3] 맥아더 같은 현대의 장군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 같은 일본의 장수도 포함된 듯 한데, 영문 위키피디아가 부실한건지 몰라도 이순신은 없는 듯. ㅎㅎ 대부분 장군들의 WAR 점수가 하단부에 있는 반면에, 최우측 상단에 아웃라이어가 한 명있으니, 이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다. WAR 점수가 16.703으로서 2위의 두 배가 넘는다.

나폴레옹하면 Nasica 선생의 블로그[4]가 떠오르는데, 웬만한 책보다도 더 많은 나폴레옹 시대의 정보가 있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 나름 인기가 있는 사람인 듯 하다. 나폴레옹에 관심있으면 이 블로그[4]의 정독을 추천함. ㅎㅎ

글[1]의 뒷부분에 현대의 장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알렉산더 대왕한니발의 비교도 잠시 언급되어 있다. 근데 포위섬멸작전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캐니 전투의 위키피디아 내용이 엄청 자세하구만. ㅋ 우리로 치면 고조선 끝자락인데, 기원전 전투를 어째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지 신박하네. ㅋ 훨씬 후대인 을지문덕의 살수대첩만 하더라도 자세한 tactics는 거의 알려진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뭐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은 결과지만, 단 한 명이 유럽 전체를 뒤흔든 역사 무용담을 들어보면 나폴레옹이 진짜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 하긴 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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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apoleon was the Best General Ever, and the Math Proves it. (towardsdatascience.com)
[2] https://ethanarsht.github.io/military_rankings/
[3] 내 백과사전 더글라스 맥아더의 성격 2011년 3월 1일
[4] Nasica의 뜻은 ? (nasica1.tistory.com)

[서평] 메이지라는 시대 –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메이지라는 시대 1 –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l 메이지라는 시대 1
도널드 킨 (지은이), 김유동 (옮긴이)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7-10-31

메이지라는 시대 2 –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l 메이지라는 시대 2
도널드 킨 (지은이), 김유동 (옮긴이)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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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메이지 천황의 전기인데, 원제는 Emperor of Japan: Meiji and His World이다. 저자인 도널드 킨 선생은 일본 문학 연구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 안에 메이지가 읊은 와카의 인용이 꽤 많다. 일본인으로 국적까지 바꾼 듯 하다.[1]

책의 판형은 작지만 두께가 있고, 두 권이라서 텍스트의 분량이 상당하다. 완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이리저리 배경지식을 검색하다보니 완독하는데 엄청 걸렸다-_-

비교적 근거 중심의 사실나열을 하고 있지만, 저자의 의견을 반영할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메이지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더러 불편하기도 할 듯 하다. 예를 들어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2권 58장)에서 안중근이 메이지를 존경했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일전에 본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2]으로 짐작하건대, 안중근 의사는 메이지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존경이라는 것은 근거가 빈약한 주장 같다.

고메이 말기부터 메이지 치세 전반에 걸쳐 발생하였던 각종 일본 국내외적 사건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근대 일본사에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여타 역사서에서는 사건의 발생 경과만 나열되어 있어,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왜 이런 행동/판단을 했는지에 대한 공감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사건들을 세밀하게 설명하다보니 당대의 시대인식이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설명이 많은 듯 하다. 예를 들어 가즈노미아 강혼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는 이유를 전혀 이해를 못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비로소 이해가 된다.

다만 책의 성질이 ‘전기’다 보니까, 설명하는 사건들은 주로 천황의 개인적 신변과 주변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 사회사적으로 무게가 있는 아시오 광독 사건[3]이나 히비야 방화 사건과 같은 내용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저자가 문학연구자라서 그런지 경제사적인 관점 등을 놓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폐번치현을 그저 설명하기 힘든 일본 문화적 현상이라고만 판단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1권 22장)과는 달리, 일전에 읽은 이노우에 가츠오 선생의 저서[4]에 의하면 당대 대부분의 번들이 재정문제로 번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곤란함을 겪어서 폐번치현이 필연적인 결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전에 읽은 하라다 게이이치 선생의 책[5]은 이후 청일/러일 전쟁부분을 커버하고 있는데, 이 책들[4,5]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러일전쟁 부분과 관련해서는 일전에 본 야마무로 신이치 선생의 저서[6]도 참고할만 한데, 킨의 저서에 언급되지 않은, 서구권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여론경쟁이라든지 하는 부분도 서술되어 있어 참고할만 하다.

본 서는 메이지 전기다보니까 러일전쟁 당시의 일본 관점에서만 서술되어 있는데, Constantine Pleshakov의 저서[7]에는 완전히 러시아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으므로 비교해서 읽어볼만 하다. 예를 들어 킨의 책은 Dogger Bank incident를 단 한 줄 설명(p1245)으로 넘어가지만, Pleshakov의 저서[7]에서는 사건의 경과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다만 Pleshakov의 책[7]은 일본쪽 서술부분에는 디테일한 부분에서 오류가 많다. 예를 들어 사쓰에이 전쟁에서 영국이 완전 압도적으로 이긴 것 처럼 묘사[7;p57]하고 있지만, 실제로 영국쪽 피해도 어느정도 있었던 것 같다. 또한 Pleshakov는 오쓰 사건이 러일 전쟁의 원인중 하나라는 설명[7;p31]도 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운요호 사건에 대해, 이 책은 식수를 구하러 왔다는 일본측의 주장만 실려 있으나, 이노우에 선생의 저서[4;p246]에 근래 발견된 기록에서 고의로 침투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한일 관계사 관점이 조금 얄팍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어느정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일본이 서구권에게 문명국/주권국임을 인정받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소에지마 다네오미가 세치 혀 만으로 청나라로부터 실리를 챙기며, 메이지가 청에 의해 공식문서에서 ‘대황제’라는 표현을 듣게 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히 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일본이 쏟아부은 외교적 노력에 비해, 겨우 헤이그 밀사 정도로 독립국임을 인정 받으려고 생각했던 조선의 시도가 순진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p1130에 오자키 유키오공화정에 대해 언급을 하는 말실수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하라다 선생의 저서[5;p182]와 인용된 말이 조금 다르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아무래도 이 책이 맞는 것 같다.

텍스트 분량이 많다보니 언급할만한 부분은 많은데, 너무 서평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해야 할 듯… ㅋ 일부 흥미로운 부분은 인용[8,9]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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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합뉴스 日 사랑한 미국인, 국적 바꾸고 “日서 죽겠다” 2011/04/28 15:38
[2] 안중근 저, “안중근 의사 자서전“, 종합출판범우, 2014
[3] 내 백과사전 아시오 광독 사건 足尾鉱毒事件 2012년 11월 26일
[4] 내 백과사전 [서평] 막말 유신 2014년 1월 2일
[5] 내 백과사전 [서평] 청일 러일전쟁 2012년 11월 30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러일전쟁의 세기 : 연쇄시점으로 보는 일본과 세계 2012년 3월 3일
[7]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저/황의방, 표완수 역, “짜르의 마지막 함대“, 중심, 2003
[8] 내 백과사전 보불전쟁 당시 일본의 반응 2018년 7월 5일
[9] 내 백과사전 병인양요 당시 일본의 반응 2018년 6월 30일

보불전쟁 당시 일본의 반응

도널드 킨 저/김유동 역, “메이지 라는 시대1“,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2017
p396-398

그러는 사이 천황의 관심은 아득히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쏠려 있었다. 보불 전쟁(1870년 7월-1871년 5월)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본 정부는 전황 시찰을 위해 네 명의 무사를 유럽으로 파견했다. 이들이 현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프로이센은 연전연승을 거듭해 파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네 명은 파리로 가서 양군의 전황, 장병의 강약, 병기의 장단점, 승패의 원인, 유럽의 동정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프로이센군의 막강함과 전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때까지 일본은 근대 육군을 조직하는 데 프랑스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패배로 일본은 모범으로 심을 모델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때부터 독일식이 일본 육군의 모범이 되었다.450

천황은 이 전쟁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다음은 육군 사관이었던 다카시마 도모노스케(高島鞆之助)의 회상이다.

천황은 보불 전쟁의 전황 보고서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양군이 채택한 전략에 대해 자꾸만 신하들에게 질문하셨다. 이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독일 군함이 요코하마 항에 기항했을 때, 함장은 천황에 게 한 장의 사진을 바쳤다. 그것은 보불 전쟁 때 사진이었는데, 포연이 하늘을 뒤덮고 창공에 살기가 꽉 차 있는 피가 끓고 살이 떨리는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독일 함장이 사진 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다고 제의하자, 천황께서는 즉시 허락했다. 사진이 촬영된 날의 양군의 전략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천황은 깊은 관심을 갖고 설명에 귀를 기울이셨다. 용안을 빛내시며 경청하셨다.451

천황은 1S72년 4월 7일, 독일 변리공사로부터 보불 전쟁 개선 축제 사진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물론 천황이 외국인을 이러한 목적으로 어전에 부른 일은 전례가 없었다.452 그 다음 날 천황은 다시 전례를 깨고 다른 나라로 전임하는 영국 대리공사 F. O. 애덤스를 접견했다. 천황은 애덤스에게 “이번 영전은 귀국 황제가 귀하의 가치와 공적을 인정한 결과요, 기뻐할 일이다. 석별의 정은 있으나 차마 붙잡지는 않겠다. 원양만리 자중자애하라”는 칙어를 내렸다.

천황의 말 자체에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은 없으나 일본 궁중이 유럽 궁중의 관습에 대해 얼마나 급속도로 익숙해져 있던가를 보여준다.

프로이센 왕 빌헬름은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1871년 1월, 베르사유에서 독일연방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그 뜻을 전하는 국서가 메이지 천황에게 도착했다.453 천황은 빌헬름 황제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며 야마토 회화첩 두 질을 보냈다. 이것은 전년 가을, 빌헬름 황제가 보내온 전쟁 화집 세 권에 대한 답례였다.454 일본과 유럽의 거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천황이 ‘사촌’인 유럽 황제들의 새로운 소식을 항시 접하고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450메이지 천황기』 제2권 pp. 326-327, p. 333. 처음에는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네 명의 시찰단 대표격으로 선택되었으나 번(落)의 사정을 이유로 사퇴했다. 네 명 중에서 연장자에 해당하는 오야마 야스케(大山弥助=이와오巖)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촌으로서 후에 육군대신이 되었고 청일 전쟁 때는 제2군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시나가와 야지로(品川弥二郎)는 그대로 유럽에 6년간 머물렀으며 후에 내무대신이 되었다. 이 두 인물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451 다카시마 도모노스케 「진무(神武) 이래의 영주(英主)」(〈태양〉, 임시 중간호, 『메이지 성천자』 p. 34). 와타나베 이쿠지로는 『메이지 천황』상권 p. 129에(함장이 아니라) 공사가 사진을 가져와서 천황에게 보여주었다고 쓰고 있다. 와타나베는 이 사실을 오하라 시게미(大原重実)가 이와쿠라 도모미에게 쓴 1872년 4월 14일자 편지에서 인용하고 있다. 물론 보불 전쟁은 일찌감치 끝난 뒤였다. 다카시마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똑같은 일이 두 번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아스카이는, 『메이지 대제』 p. 149에서 다카시마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독일 공사가 개선 축제 사진을 바치며 설명했다고 한다. 『메이지 천황기』제2권 p. 665의 기술도 동시에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452 와타나베, 『메이지 천황』 상권 p. 129. 장소는 학문소로 되어 있다.

453 일본어 번역문은 『메이지 천황기』 제2권 p. 429에 있다. 메이지 천황의 답신은 동 P. 430에 있다.

454 황제는 메이지 천황에게 주기 위해 전쟁 사진을 독일 대리공사 폰 브란트에게 보냈다. 대리공사는 그것을 가지고 1870년 9월 12일 입궐했으나 천황은 몸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아키히토 친왕이 대신 받았다. 『메이지 천황기』 제2권 p. 336.

병인양요 당시 일본의 반응

도널드 킨 저/김유동 역, “메이지 라는 시대1“,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2017
p211-212

요시노부는 일본에 주재하는 외국 사절과의 친교를 두텁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오사카 성에서 공식 접견을 한 최초의 상대는 영국 특파 특명전권공사 해리 파크스였다. 요시노부는 큰 홀 앞뜰에서 영국 기병의 승마 묘기를 관람한 다음, 우호의 표시로 파크스에게 성대한 연회를 열어주었다. 요시노부는 또 다음 날부터 차례로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공사와 총영사 등을 접견했다. 모두가 최고의 접대를 받았으며 요시노부는 열강 제국과의 조약이 충실히 이행될 것이라는 언질을 주었다. 그 전해, 조선에서 프랑스인 선교사 아홉 명과 미국 상선의 수 병 몇 명一그 중에는 영국인 승무원도 있었다一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프랑스 함대가 출격하는 등 조선과 열강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졌다. 일본 내에서는 조선과 연맹을 맺어 구미에 대항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막부는 조선에 사절을 보내 구미열강과 전쟁을 하게 될 경우의 불리한 점을 설명하면서 이 분쟁의 중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또한 막부는 1867년 4월에 로주 세 명이 연서한 서한을 미국 공사에게 보내 만일 조선이 태도를 바꾸어 미국과의 강화께 동의한다면 미국은 조속히 이에 응하라고 종용했다. 2세기 반에 걸쳐 서양과의 접촉을 끊어 온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적절한 방법으로 다른 나라에 조언하는 입장에 서려 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일본은 만일 조선이 서구 열강에 공격당하는 일이 벌어지면 이웃나라인 일본에도 영향이 미치리라 우려했을 것이다. 11월, 미국 정부는 일본이 분쟁 조정에 나선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203 그러나 12월 9일, 중재 역할을 하기 위해 한반도로 건너갈 예정이었던 외교 사절 파견은 국내 정변으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203 10월 22일, 미국 변리공사 R. B. 반 발켄버그는 일본의 호의에 대한 존슨 미국 대통령이 사의를 표한 서한을 전했다. 『메이지 천황기』 제1권 p549 참조.

언급한 ‘국내 정변’은 아마 보신 전쟁을 가리키는 듯 하다. 훗날 일제의 지배를 생각하면 꽤 재미있는 일본의 반응인 것 같다. 외교사절이 파견되었다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지는 구만. ㅋ

참고로 검색해보니 ‘변리공사‘는 영어로 minister resident라고 하는 듯. 뭔 말인가 했다. ㅋ

1857년 해리스의 주장에 대한 간조부교의 반론

미일 수호 통상조약에 따른 재일 미국 총영사로 취임한 해리스가 일본 개항의 당위성에 대한 주장에 대해 당시 간조부교(번 소속의 행정관)들이 한 반박.

이노우에 가츠오 저/이원우 역, “막말 유신”, 어문학사, 2013
p57

두 가지의 의견

앞서 소개한 적극적 개국론과 소극적 개국론이 그것이다. 적극적 개국론은 메쓰케이와세 다다나리 등으로부터 제출되었다. 가나가와 • 요코하마를 자진해서 개항하고 오사카에 있는 천하의 이권을 에도로 가져오는 ‘중흥일신의 사업’ 으로 막부의 부국강병올 이룩하자는 의견이었다. 서양의 신기한 발명품을 간단히 배울 수가 있다고도 기대했다. 이 참신한 개명론은 종래부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것에 대하여 가와지 등 간조부교들은 거절하면 전쟁의 발단이 되므로 현재의 형세를 보아서는 온건한 조치 외에는 없다고 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네덜란드 별단풍설서번서조소에서 번각한 한역 서양서적, 집적된 ‘대화서’ 등을 근거로 하여 해리스의 대연설을 상세하게 점검한 것이다. 다른 곳에 영토를 획득하는 것은 금지한다며 미국은 비침략국이라고 해리스가 설명한 조항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별단 풍설서로 검토하고, 멕시코전쟁에서 미국이 캘리포니아를 약취한 것, 그 후, 배상금 대신에 뉴멕시코를 빼앗았다고 하는 기사를 근거로 사실이 아닌 것을 지적했다.

해리스가 영국의 중국에 대한 아편 판매를 수 개조에 걸쳐 비판하고, 미국 대통령은 일본을 위해서 아편을 전쟁보다도 위험하게 생각 한다는 미국우호론을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간조부교는 북경에서 한역된 『해국도지』 기사 속에서 미국이 터키 아편 천여 상자를 매년 중국으로 반입하고 있다는 기사를 찾아내 해리스의 거짓말을 입증했다. 미국 상인이 광둥 하류에 있는 영정도(伶汀島)부근에서 무장한 거룻배에 터키 아편을 저장해두고 대규모로 밀매한 사실은 『해국도지』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영사가 주둔하면 문제가 없다고 하는 해리스의 설명에도, 최근 7 • 80년 이래로 유럽은 편안할 날이 없었으며, 영사는 그다지 쓸모 있는 것이라고 듣지 못했다며 전란을 거듭하는 유럽 역사를 개관하면서 비판했다. 그 외에 해리스의 연설은 전체를 상세하게 검토하여 증거가 되는 ‘자료편’을 첨부하여 상신되었다. 간조부교는 작성한 장문의 발췌에 권수 등을 기재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 아편을 운반하고 있다는 기사 원문은 『해국도지』 120권본 제83권, ‘화사이언녹요(華事夷言錄要, 중국관계에 관한 서양인 논설의 발췌라는 의미)’의 20단락째, 영국인 데이비스의 저서『중국인』의 초록으로 간조부교의 발췌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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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벽화에서 나타나는 고대인의 자폐증?

popular archaeology 기사[1]를 보니 흥미로운 논문[2]이 소개되어 있다. 고고학과 미술과 정신의학에 모두 관심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흥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구만. ㅋㅋㅋㅋ

3만년 전후의 기간에 유럽 동굴벽화에는 갑작스러운 사실주의의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사진을 자주보는 현대인에게는 사실주의 화풍에 별다른 감흥이 없을 듯 하지만, 고대인에게는 꽤나 임팩트가 있는 그림일 것이라 생각한다. 일전에 Raphaella Spence의 작품[3]이나 Pedro Campos의 작품[4]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 현대인이 이런 작품을 보며 드는 느낌이 고대인이 사실주의 작품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ㅋㅋㅋ

여하간 3만년 전후의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 이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모양인데, 이것을 고대인의 자폐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는 모양이다. 일전에 올리버 색스 선생의 저서를 인용한 적[5]이 있었는데, 말미에 잠시 나디아 이야기가 나온다. 나디아는 서번트 신드롬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사례인데, 나디아가 5살에 그렸다는 그림과, 일반적으로 5세 어린이가 그린 그림과의 비교가 논문[2;p271]에 들어 있다.

서번트 신드롬은 분류에 따라서 고기능 자폐,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도 부르는데, 각각의 차이는 나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학술적인 논쟁이 좀 있는 듯… 여하간 이런 종류의 자폐아는 일전에 어느 자폐아가 쓴 시[6]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정분야에서 조숙하고, 디테일을 무척 신경쓰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여하간 논문[2]의 저자는 동굴벽화의 이런 화풍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자폐로 보는 듯 한데, 술먹고 읽어서 그런지 논거의 핵심이 잘 이해는 안 되네-_- 여하간 나디아의 사례를 꺼내는 건 좀 에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디아는 자주 언급되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구만.

추가로, 고대 증거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증거의 손실 때문에 실제로 갑작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고생물학의 유명한 경구를 여기서 들자면,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 실제로는 서서히 일어난 변화가 갑작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ㅎㅎ

몰랐는데, 검색해보니 나디아는 지난 2015년에 4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7]고 한다. 자폐증의 몰이해의 시기에 태어나 고생한 걸 생각하면 마음이 좀 짠하다.

 


[1] popular archaeology How our ancestors with autistic traits led a revolution in Ice Age art Tue, May 15, 2018
[2] Penny Spikins, Callum Scott, Barry Wright, “How Do We Explain ‛Autistic Traits’ in European Upper Palaeolithic Art?”, Open Archaeology, Volume 4, Issue 1, Published Online: 2018-05-12 DOI: https://doi.org/10.1515/opar-2018-0016
[3] 내 백과사전 Raphaella Spence의 작품 2014년 3월 5일
[4] 내 백과사전 Pedro Campos의 작품 2012년 5월 21일
[5] 내 백과사전 숫자가 보이는 사람 2012년 5월 17일
[6] 내 백과사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10살 어린이의 시 2016년 4월 17일
[7] the guardian Nadia Chomyn obituary Wed 9 Dec 2015 12.57 GMT

고고학의 두 문화(two cultures)

The Two Cultures라는 C. P. Snow 선생의 대단히 유명한 에세이가 있다. 뭐 대부분 아실 듯 싶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문과 지식인-_-과 이과 지식인-_-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몰이해 및 나아가 양 집단 사이의 반목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근데 제대로 요약한 거 맞나-_-?

여하간 네이쳐 기사에 고고학계에 존재하는 두 문화의 반목에 대한 기사[1]를 봤는데, 고고학과 생물학 양쪽에 관심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나름 흥미롭다. ㅋ 기사[1]가 무척 길지만 재미있으니 함 읽어볼만 하다.

고대 유전체(ancient genomics)의 분석이 늘어나면서, 고고학계의 오래된 정설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가 종종 발표되는 모양인데, 기사[1] 앞부분에서도 그런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고대 유전체 분석이 고고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Martin Jones의 저서인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2]라는 책을 읽은 적[3]이 있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기사[1]에 스톤헨지 근교의 신석기 유적에 대한 연구 이야기가 나오는데, 뭐 한국인으로서는 큰 감흥이 안 오지만, 모르긴해도 영국인들에게는 나름 임팩트 있는 결과인 듯 하다. 만약 DNA 분석으로 고조선에 대하여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결과가 도출된다면, 한국인에게도 나름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될 듯. ㅋ

뭐 여하간 고고학계에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모양인데, DNA 분석을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부류가 있고, 지나치게 단편적인 증거로 전체 스토리를 새로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학자도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견해도 수긍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사실 단편적인 증거나 가설만으로 이어붙이면 뭐든 못하는 게 없다. 재야 사학자들 중에는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이 중국 대륙에 있었다!! 라는 주장[4]부터, 영어는 사실 한국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는 해괴한 주장[5,6]을 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페이스북의 언어학 그룹에도 이런 사람들의 주기적 출몰로 골치가… -_-) 이런 사람들의 주장도 자기딴에는 근거가 없지는 않다. (그리고 절대 절대 설득되지 않는다-_-)

결국 단편적인 증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분야들에서 나온 증거들의 조합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해야 고고학적 사실이 확립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지나치게 DNA 증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고대 인류의 이동경로의 사례를 들자면, 하플로그룹의 추적으로 예상한 고대 인류의 이동경로[7]를 언어학이나 고고학으로 뒷받침 하면서 완성한 사례는 좋은 사례라 본다. 반면에 일전에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 흔적에 대한 이야기[8]를 했지만, 지나치게 단편적인 증거 때문에 일어나기 힘든 사실을 주장하는 일은 반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DNA 증거는 강력하지만, 다양한 경우의 수와 정황을 고려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근데 본인의 견해는 생물학이든 고고학이든 전공과 무관하므로 그냥 흘려듣기 바란다-_- 사실 이 글은 술먹고 쓰는 글이니 넘어갑시다. ㅋㅋ 요새 대부분의 포스팅은 술먹고 쓰는 글임-_-

 


[1] 네이쳐 뉴스 Divided by DNA: The uneasy relationship between archaeology and ancient genomics 28 MARCH 2018
[2] 마틴 존스 저/신지영 역,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 바다출판사, 2007
[3] http://zariski.egloos.com/2227703
[4] 정용석 저, “고구려 신라 백제가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 책이있는마을, 2004
[5] 강상순 저, “영어는 우리말입니다“, 홍일, 1997
[6] 허핑턴포스트 영어가 우리 말이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가? 2015년 10월 06일 11시 44분
[7] 내 백과사전 고인류의 유라시아 이동경로 추적 2012년 12월 5일
[8] 내 백과사전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흔적? 2017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