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석기 시대 집의 방향성과 pseudoneglect 현상

우연히 재미있는 논문[1]을 봤는데, 블로그에 개소리를 좀 써볼까 싶다. ㅋㅋ 본인은 고고학, 고인류학, 인지과학, 수학 등등 몽땅 문외한이므로 본 내용의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예전에 라마찬드란 선생의 [2]을 본 게 생각나는데, 그 책[2]에 Hemispatial neglect라는 신박한 현상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자신이 인지가 집중되는 곳을 중심으로 공간의 한 쪽(주로 왼쪽) 전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현상인데, 꽃을 그리거나 사람을 그릴 때, 절반만 중점적으로 그리게 된다. 여담이지만 라마찬드란 선생의 이 책[2]은 초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함. ㅎㅎㅎ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선분들을 나열해 놓고 선분의 중앙을 표시하는 테스트(Line Bisection test)를 하면 극도로 치우치는 표시를 하게 되는데, BGM이 좀 시끄러운 다음 영상이 참고가 된다. 재생시간 27초

근데 정상인들도 Line Bisection test를 하면, 왼손잡이/오른손잡이에 관계없이 미세하게 우측에 더 많은 양을 할당하는 (즉 중앙 표시를 왼쪽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Pseudoneglect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거 한국어로 뭐라 번역하는지 검색해보니 ‘가성무시’라고 부르는 듯 하다.[3]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일전에 수직선이 정말 직관적 개념인지에 대한 논의[4]가 생각나는데, 이런 것들과도 연관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음.

유럽 고고학에서 선형 줄무늬 토기 문화(Linear Pottery culture 또는 Linearbandkeramik)라 불리는 시기는 신석기 시기의 일부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대충 기원전 5500년에서 4500년 사이라고 한다. 슬로바키아 Vráble 이라는 마을 근교 Žitava Valley라는 곳에서 신석기 유적이 꽤 발굴이 많은 모양인데, 여기서 발굴된 집터흔적을 토대로 장기간(300년)에 걸쳐 집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추적한 결과, 장기에 걸쳐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1] 연대 측정으로 탄소연대 측정법을 Bayesian dating했다고 하던데,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검색해보니 뭐 데이터에 베이즈 정리를 썼겠지. ㅋ 용어 검색하느라 너무 힘들다-_-

여하간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이유로서 Pseudoneglect를 제시하는 듯. 아니 근데 정말 이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인가??? 일전에 피라미드의 방향이 미세하게 회전한다는 이야기[5]가 생각나는데, 고대 이집트 정도의 기간이라면 세차운동 같은 설명이 먹히겠지만, 대륙이동이나 세차운동으로 설명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이게 가장 그럴듯해 보이긴 하다. ㅎㅎ

여하간 인지과학적 현상이 고고학적 현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학문간의 크로스가 뭔가 흥미롭다고나 할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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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üller-Scheeßel N, Müller J, Cheben I, Mainusch W, Rassmann K, Rabbel W, et al. (2020) A new approach to the temporal significance of house orientations in European Early Neolithic settlements. PLoS ONE 15(1): e0226082.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26082
[2] 내 백과사전 [서평]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2011년 8월 18일
[3] 장성리, 구본대, 나덕렬, 이장한. (2009). 가성무시가 시지각과 운전수행에 미치는 영향 (dbpia.co.kr)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6 pages), 1233-1238.
[4] 내 백과사전 수직선은 직관적인 개념인가? 2012년 5월 10일
[5] 내 백과사전 피라미드의 방향 2010년 10월 7일

[서평]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에도의 몸을 열다, 난학의 세계사

[1]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이종각 (지은이) 서해문집 2013-10-25

[2] 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은이),박경희 (옮긴이) 그린비 2008-01-15

[3] 난학의 세계사 – 중화적 세계를 넘어 일본이 유럽과 열대에서 접속하다
이종찬 (지은이) 알마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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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학과 관련하여 세 권의 책을 읽어봤는데, 이하 세 권의 책을 각각 순서대로 [1], [2], [3]이라 칭하겠음.

[1]의 서문을 일전에 인용한 적[4]이 있다. 당시 오바마 번의 번의였던 스기타 겐파쿠가 사형수 해부를 참관하면서, 서양 의학서의 정확성에 감탄하여 해체신서를 발간했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서 찾아봤다. 사실 해체신서가 최초의 의학 번역서는 아니어서, 약간의 차이로 먼저 나온 번역서가 있었고, 원서의 뒤쪽 주석부분을 빠트렸기 때문에 분량상 절반 밖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가 서구권의 학술적 우위를 감지하고, 세계를 보다 넓게 보기 시작하는 촉매가 되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에는 전문역사가가 아닌 사람이 쓴 역사 저술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 그대로 있는데,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감정적 주장이 많아 주관적 판단인지 객관적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모호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1;p37]에 조선이 조총의 성능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임란 이후에 들어서 일본으로부터 조총을 수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은 임란 도중에 항왜의 도움으로 나름 무기 기술의 진보를 이루었는데, 역사스페셜[5]에 잘 나온다. 어쨌든 [1]도 참고정도는 할 만하다고 본다. [3]에서도 주석으로 [1]을 언급하고 있다.

[1;p187]에 17세기 일본 수학자 세키 다카카즈에 대한 언급이 한 줄 나오는데, 처음 알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원주율을 소수점이하 10자리까지 계산했고, 행렬식(!)을 사용했다고 나온다. 오! 진짠지 모르겠지만 진짜라면 놀랍구만.

스기타는 비교적 장수하여 말년에 자신이 번역을 하게 된 경위를 서술한 ‘난학사시’를 썼는데,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발굴하여 출판했다고 한다. [1]의 뒷부분과 [3]의 앞부분에 ‘난학사시’의 전문 번역이 있어서 두 권을 대조하며 읽어봤다. 두 저자의 참고한 저술이 달라서인지, 문장은 크게 차이나지만 대체로 내용은 일치한다. 그러나 [3]에 훨씬 더 자세한 설명과 주석이 있고, [1]에 가타카나 독음만 나와 있는 부분이 [3]에는 원 단어로 표기되는 등[6],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3]이 훨씬 정확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 [1;p205]에 ‘니시 젠자부로(西善三郎)’라고 언급하는 부분에 [3;p28]에는 ‘니시 키치베에(西吉兵衛)’라고 다르게 나오는데, 검색해보니 둘 다 실존인물인 듯 하다.[7] 다만, 난학사시 본문에 가문의 시조라고 했는데, 위키피디아에 니시 키치베에가 가문의 시조라고 나와 있다. 또한 ‘젠자부로’는 뒤쪽에 다시 언급되는데, 문맥상 동일인물이 아닌 듯 하므로 [3]이 정확한 듯 하다. 게다가 [1]에 없는 일부 문단[1;p206,p218]이 [3]에는 있다.[3;pp29-34,pp47-48]

[2]는 에도 시대의 해부를 통해 바라보는 사회상을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같은데, 너무 근거없는 억측이 많은 듯 하여 좀 재미없었다. 일본어의 이해하다(分かる)와 절개하다(分ける)는 중국에서 온 외래 관념이라는 주장[2;p16]이라든지, 언어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엉터리같은 민간어원설이 원체 많기 때문에, 이런 류의 근거없는 주장은 쉽게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또한,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작품[8]은 실제 해부 강의를 묘사했을 리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데[2;p25] 해부를 손부터 하는게 어딨냐는게 그 근거다-_- 근데 [2;p252]에는 인간의 손이 해부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자기 자신의 저술 내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고 있다-_- ‘서양의 해부 관넘에 따르면 신체의 절대적 내부에 다가가면 갈 수록 하느님에게 다가가게 된다'[2;p186]는 등등, 이런 밑도끝도 없는 주장이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니 황당한 책이다.

[3]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부분이 ‘난학사시’의 번역이고, 뒷부분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 난학과의 연관성이다. 유럽 정세와 난학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어서 이건 꽤 재미있었다. [3;p177]에 18세기에 러시아가 영국과 협력하여 일본을 공격한다는 소문에 프랑스가 긴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영국과 러시아가 아시아 패권을 두고 다투는 그레이트 게임 이전의 유럽정세라서, 그런 상상이 가능했던게 아닐까 싶다.

[3;p151]에 막부가 쇄국 정책을 했다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딱 이 대목에서 Ronald Toby 선생의 저술[9]이 떠오르는데, 아니나다를까 [3;p183]에 Toby 선생의 저술을 언급하고 있었다.

[3;p171]에 에도와 나가사키는 난학의 우위를 두고 경쟁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거 어느정도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궁금하다. 에도파와 나가사키파가 상호 폄하했다는 근거가 좀 불명확한 듯 하다.

[3]의 주석에는 상당히 많은 책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상당수가 이미 절판이었다. 아놔… 이런 걸 볼 때마다 절판 걱정이 없는 ebook이 빨리 확산돼야 함을 느낀다.

일본의 난학의 대척점으로 쉽게 떠오르는게 조선의 실학인데, [1]에 따르면 겐파쿠의 말년에는 난학을 배우려는 무리가 각지에 성행했다고 나온다. 실학이 개인적 몽상으로서 부각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학파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읽으면서 아무래도 이 차이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3]의 뒷부분에 실학과 난학의 차이점에 대한 비교가 상당히 상세히 실려 있다. 실학은 청각, 난학은 시각이라는 비유는 꽤 신선한 듯 하다.

[1], [2]도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으나, 세 권 중 [3]만 유익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찾아보니 절판이네-_- 책의 일부를 인용[10]했으니 독서 여부를 결정하는데 참고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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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백과사전 해체신서(解體新書)의 탄생 2019년 11월 18일
[5] 역사스페셜 6 – 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 베일을 벗다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은이) 효형출판 2003-09-10
[6] 내 백과사전 니시 젠자부로와 네덜란드어 학습 2019년 11월 22일
[7] 西善三郎 (kotobank.jp)
[8] 내 백과사전 렘브란트 –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De anatomische les van Dr. Nicolaes Tulp 2019년 11월 17일
[9]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 일본의 ‘쇄국’은 ‘쇄국’이 아니었다 로널드 토비 (지은이),허은주 (옮긴이) 창해 2013-02-22
[10] 내 백과사전 동인도 회사의 데지마 무역 이윤을 가늠하기 2019년 11월 27일

동인도 회사의 데지마 무역 이윤을 가늠하기

‘난학의 세계사'[1;p146]를 읽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강조해야 할 것은 VOC가 일본의 은에 주목하기 이전부터 일본이 생산했던 은은 해상 실크로드의 허브인 말라카에서 무역 통화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17세기에 일본보다도 더 많은 은을 생산했던 멕시코 포토시47와 마닐라를 연결하는 은 유통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스페인과 80년전쟁(1568-1648)을 치르던 네덜란드에게 일본산 은 확보는 절박한 국가 과제였다. VOC가 이 시장에 개입해 일본산 은을 유럽으로 수입하면서 일본은 전 지구적 경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주요한 행위자로 참여했다.48 사쓰마번에서 주로 산출되었던 장뇌도 네덜란드로 가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오른쪽에 나오는 도표는 VOC가 데지마 상관에 지출한 비용과 은, 구리, 장뇌 등의 수입을 통한 이윤을 비교하고 있는데49 17세기 중반 이후 VOC의 데지마 상관을 통한 일본산 광물의 수입이 아시아에서 네덜란드 세계 경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50

 


46 Kim Dong-Yeob, “The Impact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VOC) on the Evolution of South Hast Asian Company.”《東亞硏究》, 2012. pp367~401.
47 1600년 무렵 포토시에는 16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Kenneth Pomeranz and Steven Topik,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 Society, Culture and the World Economy, 1400 to the Present (2000) 박광식 옮김. 《설탕, 커피, 폭력》. 심산. 2003. 310~315쪽.
48 山口啓二, 《鎖国と開国》(1993). 야마구치 게이지.〈제1장 ‘쇄국’지구적 세계의 형성과 근세 일본의 대응〉.《일본근세의 쇄국과 개국》. 김현영 옮김. 혜안. 2001,23-58쪽. 특히 32~33쪽.
49 Suzuki Yasuko. “Six. Japanese Exports in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Japan-Netherlands Trade 1600~1800 :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and Beyond, Kyoto : Kyoto University Press, 2012, pp.l59-188, 특히 p.171.
50 Anthony Reid.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 1450-1680. Vol. Two: Expansion and Crisis. p288.

몇 만 길더(굴덴)이라는 돈이 어느정도의 구매력인지 감이 오지 않는데, 일전에 읽은 Mike Dash 선생의 저서[2;p199]에 당대 물가를 짐작할만한 정보가 들어 있다.

당대 살찐 황소 1마리가 120길더라고 하는데, 2016년 국내 한우가격이 매우 비쌀 때 천만원 정도인 듯[3]하다. 2008년 근방에서는 400만원 언저리였는 듯 하다.[4] 그래서 한우 한 마리를 600만원이라고 대충 치고-_- 120길더=600만원으로 대충 때려 맞춰 보자.

뭐 당연히 이런 단순한 비교는 문제가 많긴 하지만, ‘6만 길더’라는 돈이 적어도 어느 정도인지 아주 러프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당대 치즈 450킬로그램이 역시 120길더인데, 옥션에 대충 검색[5]해보니 치즈가 킬로당 1~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역시 대충 600만원 정도로 때려 맞춰 보면 일관성이 약간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무역이익이 6만 길더라면 대략 30억원 정도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뭐 현대 국가간 무역액에 비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지만, 동인도 회사가 데지마 한 곳에서만 무역이익을 연간 30억씩을 올렸다고 생각한다면 나름 나쁘지는 않은 수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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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학의 세계사 – 중학적 세계를 넘어 일본이 유럽과 열대에서 접속하다 이종찬 (지은이) 알마 2014-02-19
[2] 내 백과사전 [서평]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 2010년 11월 30일
[3] 조선일보 한우가격 고공행진…소 한마리에 1000만원 넘어 “경차 한 대 가격” 2016.05.19 11:13
[4] 국민일보 [식품] 요즘 소 한마리 값, 얼마나 하나요? 2009-04-02 11:21
[5] search result ‘치즈’ (browse.auction.co.kr)

니시 젠자부로와 네덜란드어 학습

스기타 겐파쿠의 회고록인 난학사시의 일부임.

난학의 세계사 – 중화적 세계를 넘어 일본이 유럽과 열대에서 접속하다
이종찬 (지은이) 알마 2014-02-19

pp41-43

나는 료타쿠가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메이와 초기 무렵이었다. 어느 해 봄에 연례적인 쇼군 예방을 위해 네덜란드인이 에도에 왔을 때 료타쿠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지금부터 어디에 가십니까?”라고 물으니 “오늘은 네덜란드인 숙소에 가서 통사(통역가)를 만나 네덜란드에 대해 듣고 상황을 봐서 네덜란드어에 대해서도 질문을 할 예정이네.”라고 대답했다.

이 무렵 나는 아직 젊고 혈기왕성 했던지라 뭐든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기에 “괜찮다면 데려가줄 수 있습니까? 함께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매우 간단한 일이지.”라고 말해 함께 나가사키야69로 갔다.

이때 왔던 대통사가 니시 젠자부로였다. 료타쿠의 소개로 나도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젠자부로는 다음과 같이 충고해 주었다.

“그것은 완전히 헛수고입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어를 배워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이나 술을 ‘마시다’를 네덜란드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물어보려면 처음에는 손짓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지요. ‘술을 마시다’를 물어볼 때 먼저 잔을 놓고 술을 따라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이것은?’이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drink’ 라고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마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조고70게코71의 경우 손짓만으로는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일단 많이 마시는 것과 적게 마시는 것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마셔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마셔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요. 이는 사람의 기분에 관련되므로 몸동작만으로는 보여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아해서 즐긴다’라는 뜻의 네덜란드어로 ‘aantrekke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사 집안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번역에 익숙해져 있는데도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는데, 쉰 살이 되어 이번 여행을 하는 도중에 이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ann’이란 것은 본래 ‘향하다’라는 뜻이며, ‘trekken’은 ‘끌어당기다’라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향해서 끌어당기다’라는 것은 ‘맞은편에 있는 것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다’라는 의미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조고라고 할 때도 맞은편에 있는 것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긴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것은 좋아한다는 뜻이 되지요. 고향을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또한 고향을 자기 앞으로 가까이 끌어당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어를 깊이 공부하려면 번거로워서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네덜란드인과 접하더라도 쉽게 배울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에도에서 공부하려 한다면 더더욱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노로와 아오키도 막부의 명령을 받아 매년 우리가 묵는 숙소를 찾아와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나 그렇게 순조롭지는 않습니다. 당신들에게도 쓸데없는 일이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69 나가사키야는 네덜란드인들이 에도 쇼군에게 참부 또는 배례를 했을 때 묵었던 숙소로 주로 여기에서 교류가 이루어졌다. 에도의 경제 중심지였던 니혼바시 근처에 있었다.
70 술을 좋아해서 많이 마시는 사람.
71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

18세기 일본에 네덜란드어 통역사(통사)의 실력은 현대 통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낮은 수준의 실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문명간에 정보가 얼마나 퍼지기 힘든지 짐작할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해체신서(解體新書)의 탄생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이종각 (지은이) 서해문집 2013-10-25

pp9-13

도쿄 우에노 역에서 전철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미나미센주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에코인이란 조그만 절이 나온다.

절터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1603—1868), 에도(지금의 도쿄)의 2대 형장 중 하나인 고쓰가하라 형장이 있던 곳이다. 1651년 형장이 개설된 이래 메이지유신(I868) 직후 폐지될 때까지 210여 년 간, 무려 20만 명 이상이 처형됐다. 한 해 1000명가량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셈이다. 참수, 화형, 능지처참, 효수 등 갖가지 형이 집행됐다. 사체는 흙으로 대충 덮어 형장에 방치해 들개들이 무리지어 사육死肉을 뜯어 먹어 악취가 진동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 형장에선 일반 죄인 이외에 국사범들도 처형됐는데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하급무사들을 가르친 막부 시대 말기의 저명한 사상가로 일본인들이 높게 평가하는 요시다 쇼인도 그중 하나다. 그는 당시 국법으로 금지한 밀항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1859년 처형당했다. 처형 직후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해 묻은 묘가 현재 절 안에 남아 있다.

형장을 개설할 때 처형당한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에코인 절이 세워졌고, 그 후 형장 터를 가로질러 철도를 부설하면서 엔메이지란 절도 세웠다. 엔메이지 마당엔 당시 처형된 사형수가 저세상에 서라도 연명하길 바라는 뜻으로 세운 약 4미터 높이의 지장보살 불상이 남아 있다. 사람 목을 치는 형장에 있던 불상이기 때문인가, ‘구비키리 지죠首切り地蔵(참수 지장보살)’란 섬뜩한 이름이 붙어 있다.

(중략)

1771년 초봄, 바로 이 형장에서 일본 근대 의학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일본의 근대를 바꾸는 하나의 단초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스기타 겐파쿠(이하 겐파쿠)를 비롯해 에도에서 근무하는 각 번의 시의侍醫(다이묘 등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이 형장에서 인체 해부를 처음 참관하고, 모종의 결의를 한 것이다.

이날 인체 내부를 처음 본 겐파쿠를 포함한 의사 셋은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옛 중국 의서에 실린 인체도는 실제와 다른 반면, 자신들이 갖고 간 네덜란드 인체 해부서에 실린 인체도는 실제 인체와 정확히 같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의사라면서 인체 구조도 제대로 모른 채 주군님을 모시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반성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해부서를 일본어로 변역하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그 결의는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시 겐파쿠는 알파벳조차 몰랐고, 나머지 두 사람의 네덜란드어 실력도 극히 초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번역 도구라고는 사전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잡한 필사본 네덜란드어-일본어 단어장 한 권 정도였다. 따라서 이들이 네덜란드어 의학 전문 서적을 해독하고, 번역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해냈다. 약 3년에 걸친 ‘고심참담苦心慘憺,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번역을 마치고 《해체신서》란 번역서를 출판한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해체신서》는 일본 역사상 첫 서양 의학서 번역이라는 불후의 업적이자 일본 근대 의학의 여명을 밝힌 쾌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체신서》 출간은 이후 네덜란드(화란和蘭)를 통해 들어온 서양 학문을 뜻하는 ‘란가쿠蘭學(이하 난학)’가 일본에 융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해체신서》 출간 이후 난학은 100년 가까이 일본 근대 의학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나아가 교육, 사고방식, 관습 등 일본인과 일본 사회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며 퍼져 나갔다. 난학은 근대 일본을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는 촉매 역할을 하면서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서양식 근대화를 이루는 하나의 토양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획기적 위업’으로 겐파쿠는 일본에서 ‘난학의 선구자’, ‘일본 근대 의학의 개척자’로 칭송되면서,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일본 사람 중에서 그의 이름과 《해체신서》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가히 위인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인 중에 겐파쿠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 일본인에 대한 호오好惡는 일단 접어 두고 200여 년 전 쇄국의 섬나라, 일본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들이 보여 준 ‘의사라면서 인체 구조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려는 자세는 프로페셔널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일에 도전해 악전고투 끝에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간 것은 창의, 개척 정신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자세는 오늘날의 한국인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것이 언뜻 보아 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겐파쿠의 행적을 더듬어 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이 아니라 거의 암호해독 수준의 노력이 들어간 듯 하다-_- 개인적으로는 조선과 일본의 국가적 운명이 난학에서 갈렸다고 보고 있다. 여러가지 볼 게 많은 아키하바라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데 ㅋㅋㅋㅋ 언제 한 번 절터에 방문해볼까 싶다.

[서평]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은이),정태영 (옮긴이) 글항아리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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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차 세계 대전 전후로 아랍 반란 당시, 아랍 지역에서 활약했던 네 명의 서구인들 T. E. Lawrence, Aaron Aaronsohn, Curt Prüfer, William Yale의 행적을 추적하는 책이다. 책의 원제 Lawrence in Arabia와 유사한 제목의 영화 Lawrence of Arabia는 로렌스의 일대기를 영화화하고 있어서 유명하다는데, 본인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명의 행적이 병렬로 번갈아가면서 마치 소설처럼 극적인 구성으로 등장하고 있는데다가, 등장인물도 엄청 많아서 초 헷갈린다-_- 전반적으로 네 명 중 로렌스의 행적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듯 하다. 많은 부분은 로렌스 자신의 자서전 Seven Pillars of Wisdom에서 참고하고 있으나, 저자는 자서전에서 의심스러운 부분들의 사실확인을 위해 사료를 추적하는 부분도 꽤 많다. 저자는 여러가지 증거를 재구성하여 로렌스의 저서에서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부분까지 추적한다. 저자의 품이 상당히 들어간 책임을 느낄 수 있다. 일전에 앨런 그린스펀의 전기[1]에서와 비슷한 생각이 드는데, 한 인물을 재구성할 때 그 인물의 자서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제국주의적 욕심 때문에 빚어진 복잡한 사기계약들(맥마흔-후세인 통신, 사이크스-피코 협정, 밸푸어 선언) 때문에 중동의 경계가 어떻게 그어져야 올바른지에 대한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고, 결국 이것이 현재 중동 내 이스라엘 분쟁/서구권과의 갈등 등의 출발이 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라고까지 볼 수도 있는 책인 듯하다.

pp78-94 근방에서 유럽 각국이 외교정책을 대하는 분위기와 발칸반도 문제가 설명되어 있는데, 이는 일전에 본 크리스토퍼 선생의 저서[2]에 매우 잘 설명되어 있다. 읽어보면 당대 국가간 관계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듯 하다.

p97 근방에서 스탠더드 오일사에 대한 역사는 Daniel Yergin을 참고라하고 주석에 나와 있는데, 이 책의 역서[3,4]가 출간되어 있다. 위키피다아 항목이 있는 걸 보면 나름 유명한 듯 한데, 게을러서 사 놓고 여태 안 읽고 있다-_-

p139 근방에서, 1차 대전 이전에는 유럽 사람들이 전쟁의 위험성과 참혹성을 간과해서, 1차 대전과 같은 재앙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슷한 주장이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의 맨 뒷부분[1;p857]에도 언급된다. 여러모로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2]을 참고할만 하다.

p195에 Mission creep이라는 군사 용어가 등장하는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원래 목표에서 초점을 잃고 점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목표가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같다. 근데 이 책에서는 한가지 오판으로 인해 전체 작전을 크게 변경한다는 의미로 쓴 듯 하여 미묘하게 다른 듯 하다. ㅎㅎ

p472부터 ‘연기처럼 떠도는 아랍군’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책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Asymmetric warfare와 일치하는 개념인 듯 하다. 일전에 번스타인 선생의 책[5]에서 본 일이 있다. 베트남전의 베트콩이나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과 같은 전술의 원류가 1차 대전때의 아랍 전쟁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p829에 주석으로 David Fromkin저서[6]에서 파로키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언급되어 있던데, 이 책[6]을 사 놓고 아직 안 읽어봐서 판단하기 어렵다. 비교하며 판단해야 할 것 같다.

1차 대전 직후인 1920년에 로렌스의 자서전 이전에 쓴 글을 어느 분께서 번역[7]하셨던데, 참고할만 하다.

전반적으로 극적 구성도 있어서 흥미롭지만, 본인의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좀 어려웠다. 텍스트가 많은 책이고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2]이 도움이 된 듯 하다. 1차 대전 당대의 중동정세를 파악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일부를 인용[8,9,10]해 두었으니 독서 결정여부에 참고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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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1
Lawrence of Arabia: Archeologist, Writer, Warrior, Spy (warhistory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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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2019년 5월 19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2019년 6월 27일
[3] 황금의 샘 1 –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최신증보판 | 황금의 샘 1 김태유,허은녕 (옮긴이) 라의눈 2017-08-01 원제 : The Prize (1991년)
[4] 황금의 샘 2 –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최신증보판 | 황금의 샘 2 김태유,허은녕 (옮긴이) 라의눈 2017-08-01 원제 : The Prize (1991년)
[5] 내 백과사전 [서평]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 G2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019년 8월 16일
[6]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은이),이순호 (옮긴이)갈라파고스 2015-01-12 원제 : A Peace To End All Peace (1989년)
[7] [스크랩] [번역] 반란의 진화, 1920 (The Evolution of a Revolt – by T. E. Lawrence) (blog.daum.net/m2799103)
[8] 내 백과사전 염소치기 딜레마 2019년 9월 22일
[9] 내 백과사전 분리부정사 Split infinitive 2019년 9월 6일
[10] 내 백과사전 오스만 투르크가 1차 대전에 참가한 이유 2019년 8월 26일

염소치기 딜레마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은이), 정태영 (옮긴이) 글항아리 2017-06-12

p541-542

석 달 전 로렌스와 반란군 동료들은 아바엘나암(Aba el Naam)에서 터키군 수비대를 기습하려고 매복하던 중 우연히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목동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목동을 그대로 돌려보냈다가는 터키군에게 반란군의 존재가 발각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목동은 양떼가 흩어질까봐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결국 매복 부대는 다소 코믹한 해법을 떠올렸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목동을 나무에 묶어두었다가 적군이 달아난 뒤에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암만의 주변을 치고 빠지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그런 배려를 베풀 틈은 없었다.

그때 마침 습격대는 시르카시아에서 온 떠돌이 상인과 맞닥뜨렸다. 그를 포로로 잡아둘 수도 없고 그냥 보내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시르카시아인은 대부분 터키 동조자였다) 일부 대원은 당장 죽이라고 외쳐댔다. 결국 찾아낸 절충안은 상인을 발가벗기고 단검으로 발가락을 모조리 자르는 것이었다. 로렌스는 담담하게 기록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그래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롭고 효과적인 방법처럼 보였다. 발가락이 잘린 그는 철로를 향해 손바닥과 무릎으로 기어서 한 시간 정도 가야 했는데, 벌거벗었기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는 바위 그늘에 몸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그 시르카시아인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태양이 이글이글하는 6월의 시리아 사막에 벌거벗겨진 채 불구가 된 사내를 내버려두고 떠나는 행동이 과연 자비였을까.

인문학 책으로 이례적인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1] 샌델 선생의 ‘정의란 무엇인가‘[2;p40]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대한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1명을 죽일지 5명을 죽일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Trolley problem의 실제 사례로서의 예시로 등장한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세 명이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37 정보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들이 찾는 인물은 140~150명의 중무장 세력을 지휘하면서 험한 산악지대의 어느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특수부대 팀이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직후, 아프가니스탄 농부 두 명이 약 100마리의 염소를 몰고 나타났다. 일행에는 열네 살가량의 남자아이도 끼어 있었다. 모두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미군은 이들에게 총을 겨누고, 땅에 앉으라는 시늉을 한 다음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했다. 염소치기들은 비무장 민간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들을 놓아주면 미군의 소재를 탈레반에게 알려줄 위험이 있었다.

미군은 몇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했는데, 밧줄이 없어서 이 염소치기들을 묶어놓고 다른 은신처를 찾을 수도 없었다. 유일한 선택은 이 들을 죽이든가 풀어주든가, 둘 중 하나였다.

한 사람은 염소치기들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상관의 지시로 적의 전선 후방에서 임무를 수행중입니다. 우리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군의 결정은 자명합니다. 저들을 놓아주는 것은 잘못입니다.’38 루트렐은 갈등했다. 그는 뒷날 이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마음속으로는 그가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분명 그들을 풀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속에 또다른 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였다. 그가 내게 달려들었다. 무언가 내 마음 저편에서 줄곧 속삭였다. 무장하지 않은 저들을 냉정하게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고.”39 루트렐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의미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양심상 염소치기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을 풀어주자는 쪽에 표를 던졌다(다른 한 명은 기권했다). 곧 후회할 결정이었다.

염소치기들을 풀어준 지 한 시간 반쯤 지나 미군 네 명은 AK-47과 휴대용 로켓발사기로 무장한 탈레반 80〜100명에게 포위되었다. 곧 이어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탈레반 무장 세력은 실 대원을 구출하려던 미군 헬리콤터 한 대까지 격추해, 그곳에 타고 있던 군인 열여섯 명을 모두 죽였다.

중상을 입은 루트렐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간신히 목숨을 건져. 11킬로미터를 기어서 파슈툰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 사람들은 구출될 때까지 그를 탈레반의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해주었다.

그때를 회상하던 루트렐은 염소치기를 죽이지 않는 쪽에 표를 던진 행동을 후회 했다. “내 평생 가장 어리석고. 가장 남부인스러운 덜 떨어진 결정이었다.” 그는 당시 경험을 책으로 썼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틀림없다. 사형집행을 승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쪽에 표를 던졌다. (……) 적어도 지금 그 순간을 돌아보면 그렇다. (……) 그 결정적인 표는 내가 던졌고, 그 일은 이스트텍 사스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40

 


37) Marcus Luttrell, with Patrick Robinson, Lone Survivor : The Eyewitness Account of Operation Redwing and the Lost Heroes of SEAL Team 10(New York: Little, Brown and Company, 2007).

38) Ibid, p. 205.

39) Ibid.

40) Ibid, pp. 206-207.

위 사건은 Operation Red Wings 도중에 일어난 일로서, 위에 언급된 책 Lone Survivor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역사는 반복되고, 전쟁은 언제나 비극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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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블룸버그 Tesla’s Autopilot Could Save the Lives of Millions, But It Will Kill Some People First 2019년 10월 9일 오후 6:00 GM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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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레 ‘정의란 무엇인가’ 100만부 돌파 2011-04-18 21:44
[2]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은이),이창신 (옮긴이) 김영사 2010-05-26 원제 :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오스만 투르크가 1차 대전에 참가한 이유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은이), 정태영 (옮긴이) 글항아리 2017-06-12

p151

1914년 여름, 유럽 전역에 전운이 짙게 깔리자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통합진보위원회CUP 소속 주요 멤버들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 CUP는 고참 위원들조차 나이가 30대에 불과한 젊은 위원회로, 그중 작은 정파를 형성한 세력은 연합국 세 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열렬히 주장했다. 반면 32세의 전쟁성 장관 엔베르 파샤가 이끄는 정파는 동맹국과 연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8월 2일 오후, 장관은 독일과 상호 방위협정을 체결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독일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전투를 개시했다. 절묘하게도 나쁜 타이밍이었다.

방위협정에 서명하는 순간까지 엔베르 파샤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서너 명을 제외한 다른 어떤 CUP 동지들과도 상의하지 않았다.14 더 놀라운 사실은 전쟁이 터지고 한 주가 지날 때까지 협정한 사실을 터키 정부 관계자 가운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 동맹국 측이 다급해하자 나이 어린 전쟁 주무장관은 자신의 동료 장관들이 놀랄 수 있으니 사전 작업을 할 시간을 달라고까지 했다. 결국 전쟁성 장관의 깜짝 이벤트로 인해 중립을 고수하기로 했던 국가 전체와 청년튀르크당 지도부의 입장은 일거에 뒤바뀌고 말았다.

중립국 벨기에가 최근에 깨달았듯이 깜짝 이벤트는 독일의 주특기로, 엔베르는 적당한 동반자를 만난 셈이었다. 터키 쪽의 숨은 조력자를 얻고 싶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막스 폰 오펜하임이 부르짖는 범 이슬람 반란보다 더 나은 방책을 찾을 수 없었다. 영국 치하의 수많은 무슬림 지역(특히 영국이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빼앗은 이집트)에서 이슬람 반란을 조장할 수 있다면 오스만 지도층과 대중에게 전쟁에 뛰어들 확실한 명분을 던져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14 터키-독일 동맹군은 양측 모두 비밀을 철저하게 지켰다. 독일이 엔베르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던 1914년 7월 29일, 터키 지역을 담당하던 리만 폰 잔더스 장군은 전쟁이 일어나면 독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빌헬름 황제는 잔더스 장군의 전보를 읽고 귀퉁이에 적었다. “거기에 머물며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면서 반란을 조장해야 한다. 동맹을 추진하는 것도 모르는 작자가 무슨 총사령관이라고?!”

헐-_- 국가간의 외교적 관계가 너무 소수의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그 여파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 미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외교를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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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30
아무거나 세계사 (7) – 오스만의 1차대전 참전 과정 (ladenijoa.egloos.com)

[서평]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 G2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 G2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리처드 번스타인 (지은이),이재황 (옮긴이) 책과함께 2016-03-16 원제 : CHINA, 1945: Mao’s Revolution and America’s Fateful Choice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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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45년을 전후로 미중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역사적 과정을 짚는 책이다. 주로 미국의 대중정책이 어떻게 흘러갔고, 공산주의자들의 기만술과 미국의 외교적 오판들, 상황파악의 실패 등의 역사적 흐름을 짚고 있다.

근래 악화되는 한일 관계[1]를 보면서도 느끼는데, 외교의 중요성은 매우 크지만, 그에 비해 매우 소수의 사람에 의해 외교적 관계가 정립되고, 국가의 대외 정책결정과 운명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비슷한 사례로 일전에 본 크리스토퍼 선생의 저서[2]에서도 나오지만, 혼란스럽고 적대적인 대외 정책으로 인해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파국적 결말(1차 대전)으로 치닫는 것과 비슷해보여서 흥미롭다.

마찬가지로 2차 대전을 전후하여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일관성이 없이 혼란스럽고, 끊임없는 오판들 때문에 혼선을 빚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결국 마오쩌둥이 승리하기까지 미국과 중국은 적대적 관계에 이르렀고, 이것은 근래 들어 발생한 미중 무역갈등의 기저에 깔린 역사적 흐름이기도 하다.

근데 과연 미국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마 저자는 그렇지는 않은 걸로 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어쨌든 마오쩌둥은 확고한 공산주의자였고, 스탈린식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과는 좀 다른 미중관계가 형성되었을 수는 있을 지도 모른다. 특히 루즈벨트가 일본을 과대평가했던 오판이 아니었으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여하간 중국의 공산 지배 결과, 한국 전쟁 때 중국이 참여하게 되었으니 우리들과도 아주 무관한 이야기는 아닐 듯 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1930년대 후반~194년대 후반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 미국의 대중 외교와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 일전에 본 디쾨터 선생의 인민 3부작[3]은 1948년 장춘 포위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 책과 겹치는 내용은 거의 없지만, 이 책과 같이 참고해서 보면 비교적 연속적으로 중국 현대사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이 될 듯하다.

p80에 마르코 폴로가 건넜다는 이유로 마르코 폴로의 이름이 붙은 다리가 언급되는데, 건넜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동방견문록에서 너무 아름답다고 칭송했기 때문이다. ㅎㅎㅎ 일전에 본 김호동 선생의 저술[4]을 참고 바람.

p90에 Bloody Saturday라는 보도 사진이 언급되는데, 책에 사진이 없어서 검색해보니 위키피디아 항목이 있었다. 유명한 전쟁보도 사진들이 많은데, 개중에 유명한 것들은 일전에 본 책[5]에 몇몇이 있으니 참고 바람.

p103에 1942년 허난성 대기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에 관해 다룬 책[6]을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p156에 작가 님 웨일스가 언급되는데,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으면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람이다. 독립운동가 김산의 생애를 쓴 이 국내에 번역출간[7]되어 있다. 근데 사놓고 아직 안 읽어봤음-_-

p319에 Alexander V. Pantsov와 Steven I. Levine이 저술한 마오의 전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 책이 번역출간[8] 돼 있다. 이 책이 알라딘 중고 매물로 여러 권 나온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내일 사야지~ 하고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순식간에 절판 되었던 기억이 있다-_- 나름 인기가 있는 책인 듯? ㅋ

p335에 독소 불가침 조약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그때까지 비난하던 히틀러에게 갑작스럽게 찬사를 보내는 장면을 보니, 유명한 명작소설 1984의 그 장면이 생각난다. 일전에 sonnet 선생의 글[9]에도 이 부분이 인용된 적이 있었는데, 진짜 오웰 선생의 엄청난 선견지명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ㅎㅎ

p496에 Asymmetric warfare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처음 듣는 말이었다. 미국의 대 아프카니스탄 공격에서 탈레반의 전술과 당시 중국 공산당의 전술 상황이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해진다.

텍스트의 분량은 상당하므로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현대 중국과 미국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역사를 짚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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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알 자지라 Niger fighting ‘asymmetric war’ against armed groups: Analysts 14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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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근래 한일 관계에 대한 단상 2019년 7월 15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2019년 6월 27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해방의 비극, 마오의 대기근, 문화 대혁명 2018년 1월 5일
[4] 내 백과사전 [서평]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2017년 9월 14일
[5] 내 백과사전 [서평]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 사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진 이야기2011년 12월 4일
[6] 내 백과사전 [서평] 1942 대기근 –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2017년 11월 2일
[7]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은이),송영인 (옮긴이) 동녘 2005-08-15 원제 : Song of Ariran (1941년)
[8] 마오쩌둥 평전 – 현대 중국의 마지막 절대 권력자 알렉산더 V. 판초프, 스티븐 L. 레빈 (지은이), 심규호 (옮긴이) 민음사 2017-03-24 원제 : MAO: The Real Story (2012년)
[9] 『1984』(2) (sonnet.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