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은이),정태영 (옮긴이) 글항아리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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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차 세계 대전 전후로 아랍 반란 당시, 아랍 지역에서 활약했던 네 명의 서구인들 T. E. Lawrence, Aaron Aaronsohn, Curt Prüfer, William Yale의 행적을 추적하는 책이다. 책의 원제 Lawrence in Arabia와 유사한 제목의 영화 Lawrence of Arabia는 로렌스의 일대기를 영화화하고 있어서 유명하다는데, 본인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명의 행적이 병렬로 번갈아가면서 마치 소설처럼 극적인 구성으로 등장하고 있는데다가, 등장인물도 엄청 많아서 초 헷갈린다-_- 전반적으로 네 명 중 로렌스의 행적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듯 하다. 많은 부분은 로렌스 자신의 자서전 Seven Pillars of Wisdom에서 참고하고 있으나, 저자는 자서전에서 의심스러운 부분들의 사실확인을 위해 사료를 추적하는 부분도 꽤 많다. 저자는 여러가지 증거를 재구성하여 로렌스의 저서에서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부분까지 추적한다. 저자의 품이 상당히 들어간 책임을 느낄 수 있다. 일전에 앨런 그린스펀의 전기[1]에서와 비슷한 생각이 드는데, 한 인물을 재구성할 때 그 인물의 자서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제국주의적 욕심 때문에 빚어진 복잡한 사기계약들(맥마흔-후세인 통신, 사이크스-피코 협정, 밸푸어 선언) 때문에 중동의 경계가 어떻게 그어져야 올바른지에 대한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고, 결국 이것이 현재 중동 내 이스라엘 분쟁/서구권과의 갈등 등의 출발이 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라고까지 볼 수도 있는 책인 듯하다.

pp78-94 근방에서 유럽 각국이 외교정책을 대하는 분위기와 발칸반도 문제가 설명되어 있는데, 이는 일전에 본 크리스토퍼 선생의 저서[2]에 매우 잘 설명되어 있다. 읽어보면 당대 국가간 관계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듯 하다.

p97 근방에서 스탠더드 오일사에 대한 역사는 Daniel Yergin을 참고라하고 주석에 나와 있는데, 이 책의 역서[3,4]가 출간되어 있다. 위키피다아 항목이 있는 걸 보면 나름 유명한 듯 한데, 게을러서 사 놓고 여태 안 읽고 있다-_-

p139 근방에서, 1차 대전 이전에는 유럽 사람들이 전쟁의 위험성과 참혹성을 간과해서, 1차 대전과 같은 재앙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슷한 주장이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의 맨 뒷부분[1;p857]에도 언급된다. 여러모로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2]을 참고할만 하다.

p195에 Mission creep이라는 군사 용어가 등장하는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원래 목표에서 초점을 잃고 점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목표가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같다. 근데 이 책에서는 한가지 오판으로 인해 전체 작전을 크게 변경한다는 의미로 쓴 듯 하여 미묘하게 다른 듯 하다. ㅎㅎ

p472부터 ‘연기처럼 떠도는 아랍군’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책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Asymmetric warfare와 일치하는 개념인 듯 하다. 일전에 번스타인 선생의 책[5]에서 본 일이 있다. 베트남전의 베트콩이나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과 같은 전술의 원류가 1차 대전때의 아랍 전쟁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p829에 주석으로 David Fromkin저서[6]에서 파로키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언급되어 있던데, 이 책[6]을 사 놓고 아직 안 읽어봐서 판단하기 어렵다. 비교하며 판단해야 할 것 같다.

1차 대전 직후인 1920년에 로렌스의 자서전 이전에 쓴 글을 어느 분께서 번역[7]하셨던데, 참고할만 하다.

전반적으로 극적 구성도 있어서 흥미롭지만, 본인의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좀 어려웠다. 텍스트가 많은 책이고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2]이 도움이 된 듯 하다. 1차 대전 당대의 중동정세를 파악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일부를 인용[8,9,10]해 두었으니 독서 결정여부에 참고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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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1
Lawrence of Arabia: Archeologist, Writer, Warrior, Spy (warhistory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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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서평]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2019년 5월 19일
[2] 내 백과사전 [서평]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2019년 6월 27일
[3] 황금의 샘 1 –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최신증보판 | 황금의 샘 1 김태유,허은녕 (옮긴이) 라의눈 2017-08-01 원제 : The Prize (1991년)
[4] 황금의 샘 2 –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최신증보판 | 황금의 샘 2 김태유,허은녕 (옮긴이) 라의눈 2017-08-01 원제 : The Prize (1991년)
[5] 내 백과사전 [서평]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 G2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019년 8월 16일
[6]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은이),이순호 (옮긴이)갈라파고스 2015-01-12 원제 : A Peace To End All Peace (1989년)
[7] [스크랩] [번역] 반란의 진화, 1920 (The Evolution of a Revolt – by T. E. Lawrence) (blog.daum.net/m2799103)
[8] 내 백과사전 염소치기 딜레마 2019년 9월 22일
[9] 내 백과사전 분리부정사 Split infinitive 2019년 9월 6일
[10] 내 백과사전 오스만 투르크가 1차 대전에 참가한 이유 2019년 8월 26일

염소치기 딜레마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은이), 정태영 (옮긴이) 글항아리 2017-06-12

p541-542

석 달 전 로렌스와 반란군 동료들은 아바엘나암(Aba el Naam)에서 터키군 수비대를 기습하려고 매복하던 중 우연히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목동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목동을 그대로 돌려보냈다가는 터키군에게 반란군의 존재가 발각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목동은 양떼가 흩어질까봐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결국 매복 부대는 다소 코믹한 해법을 떠올렸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목동을 나무에 묶어두었다가 적군이 달아난 뒤에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암만의 주변을 치고 빠지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그런 배려를 베풀 틈은 없었다.

그때 마침 습격대는 시르카시아에서 온 떠돌이 상인과 맞닥뜨렸다. 그를 포로로 잡아둘 수도 없고 그냥 보내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시르카시아인은 대부분 터키 동조자였다) 일부 대원은 당장 죽이라고 외쳐댔다. 결국 찾아낸 절충안은 상인을 발가벗기고 단검으로 발가락을 모조리 자르는 것이었다. 로렌스는 담담하게 기록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그래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롭고 효과적인 방법처럼 보였다. 발가락이 잘린 그는 철로를 향해 손바닥과 무릎으로 기어서 한 시간 정도 가야 했는데, 벌거벗었기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는 바위 그늘에 몸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그 시르카시아인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태양이 이글이글하는 6월의 시리아 사막에 벌거벗겨진 채 불구가 된 사내를 내버려두고 떠나는 행동이 과연 자비였을까.

인문학 책으로 이례적인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1] 샌델 선생의 ‘정의란 무엇인가‘[2;p40]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대한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1명을 죽일지 5명을 죽일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Trolley problem의 실제 사례로서의 예시로 등장한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세 명이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37 정보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들이 찾는 인물은 140~150명의 중무장 세력을 지휘하면서 험한 산악지대의 어느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특수부대 팀이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직후, 아프가니스탄 농부 두 명이 약 100마리의 염소를 몰고 나타났다. 일행에는 열네 살가량의 남자아이도 끼어 있었다. 모두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미군은 이들에게 총을 겨누고, 땅에 앉으라는 시늉을 한 다음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했다. 염소치기들은 비무장 민간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들을 놓아주면 미군의 소재를 탈레반에게 알려줄 위험이 있었다.

미군은 몇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했는데, 밧줄이 없어서 이 염소치기들을 묶어놓고 다른 은신처를 찾을 수도 없었다. 유일한 선택은 이 들을 죽이든가 풀어주든가, 둘 중 하나였다.

한 사람은 염소치기들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상관의 지시로 적의 전선 후방에서 임무를 수행중입니다. 우리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군의 결정은 자명합니다. 저들을 놓아주는 것은 잘못입니다.’38 루트렐은 갈등했다. 그는 뒷날 이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마음속으로는 그가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분명 그들을 풀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속에 또다른 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였다. 그가 내게 달려들었다. 무언가 내 마음 저편에서 줄곧 속삭였다. 무장하지 않은 저들을 냉정하게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고.”39 루트렐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의미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양심상 염소치기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을 풀어주자는 쪽에 표를 던졌다(다른 한 명은 기권했다). 곧 후회할 결정이었다.

염소치기들을 풀어준 지 한 시간 반쯤 지나 미군 네 명은 AK-47과 휴대용 로켓발사기로 무장한 탈레반 80〜100명에게 포위되었다. 곧 이어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탈레반 무장 세력은 실 대원을 구출하려던 미군 헬리콤터 한 대까지 격추해, 그곳에 타고 있던 군인 열여섯 명을 모두 죽였다.

중상을 입은 루트렐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간신히 목숨을 건져. 11킬로미터를 기어서 파슈툰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 사람들은 구출될 때까지 그를 탈레반의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해주었다.

그때를 회상하던 루트렐은 염소치기를 죽이지 않는 쪽에 표를 던진 행동을 후회 했다. “내 평생 가장 어리석고. 가장 남부인스러운 덜 떨어진 결정이었다.” 그는 당시 경험을 책으로 썼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틀림없다. 사형집행을 승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쪽에 표를 던졌다. (……) 적어도 지금 그 순간을 돌아보면 그렇다. (……) 그 결정적인 표는 내가 던졌고, 그 일은 이스트텍 사스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40

 


37) Marcus Luttrell, with Patrick Robinson, Lone Survivor : The Eyewitness Account of Operation Redwing and the Lost Heroes of SEAL Team 10(New York: Little, Brown and Company, 2007).

38) Ibid, p. 205.

39) Ibid.

40) Ibid, pp. 206-207.

역사는 반복되고, 전쟁은 언제나 비극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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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블룸버그 Tesla’s Autopilot Could Save the Lives of Millions, But It Will Kill Some People First 2019년 10월 9일 오후 6:00 GM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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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레 ‘정의란 무엇인가’ 100만부 돌파 2011-04-18 21:44
[2]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은이),이창신 (옮긴이) 김영사 2010-05-26 원제 :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오스만 투르크가 1차 대전에 참가한 이유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은이), 정태영 (옮긴이) 글항아리 2017-06-12

p151

1914년 여름, 유럽 전역에 전운이 짙게 깔리자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통합진보위원회CUP 소속 주요 멤버들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 CUP는 고참 위원들조차 나이가 30대에 불과한 젊은 위원회로, 그중 작은 정파를 형성한 세력은 연합국 세 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열렬히 주장했다. 반면 32세의 전쟁성 장관 엔베르 파샤가 이끄는 정파는 동맹국과 연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8월 2일 오후, 장관은 독일과 상호 방위협정을 체결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독일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전투를 개시했다. 절묘하게도 나쁜 타이밍이었다.

방위협정에 서명하는 순간까지 엔베르 파샤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서너 명을 제외한 다른 어떤 CUP 동지들과도 상의하지 않았다.14 더 놀라운 사실은 전쟁이 터지고 한 주가 지날 때까지 협정한 사실을 터키 정부 관계자 가운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 동맹국 측이 다급해하자 나이 어린 전쟁 주무장관은 자신의 동료 장관들이 놀랄 수 있으니 사전 작업을 할 시간을 달라고까지 했다. 결국 전쟁성 장관의 깜짝 이벤트로 인해 중립을 고수하기로 했던 국가 전체와 청년튀르크당 지도부의 입장은 일거에 뒤바뀌고 말았다.

중립국 벨기에가 최근에 깨달았듯이 깜짝 이벤트는 독일의 주특기로, 엔베르는 적당한 동반자를 만난 셈이었다. 터키 쪽의 숨은 조력자를 얻고 싶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막스 폰 오펜하임이 부르짖는 범 이슬람 반란보다 더 나은 방책을 찾을 수 없었다. 영국 치하의 수많은 무슬림 지역(특히 영국이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빼앗은 이집트)에서 이슬람 반란을 조장할 수 있다면 오스만 지도층과 대중에게 전쟁에 뛰어들 확실한 명분을 던져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14 터키-독일 동맹군은 양측 모두 비밀을 철저하게 지켰다. 독일이 엔베르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던 1914년 7월 29일, 터키 지역을 담당하던 리만 폰 잔더스 장군은 전쟁이 일어나면 독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빌헬름 황제는 잔더스 장군의 전보를 읽고 귀퉁이에 적었다. “거기에 머물며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면서 반란을 조장해야 한다. 동맹을 추진하는 것도 모르는 작자가 무슨 총사령관이라고?!”

헐-_- 국가간의 외교적 관계가 너무 소수의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그 여파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 미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외교를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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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30
아무거나 세계사 (7) – 오스만의 1차대전 참전 과정 (ladenijoa.egloos.com)

[서평]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은이),이재만 (옮긴이) 책과함께 2019-01-28 원제 :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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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알기로 1차 세계대전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따른다.

가브릴로 프린치프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 황태자 살해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세르비아의 보호국을 자처하는 러시아가 동원령 발동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도 동원령 발동
프랑스-러시아 연합에 의해 프랑스도 동원령 발동
독일의 중립국 벨기에 침공으로 인해 영국도 참전
주요 강대국들이 전부 전쟁에 돌입함에 따라, 전세계 식민지들이 본국의 전쟁에 참여

뭐 이런 수순인데, 각 단계별로 현대인의 관점에서 공감하기 어렵거나, 인과관계의 측면에서 의아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외교관계와 각 국가가 타국을 보는 관점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책은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주로 외교적 관점에서 추적하는 책이다.

1차 세계대전 관련 저술로 일전에 존 키건 선생의 저서[1]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은 반면에 순전히 군사적 관점의 저술이고, 1차 대전의 발생경과에 대한 설명은 수 페이지에 그친다. 근데 읽은지 하도 오래돼서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대충 다시 봤다. 키건 선생의 책에는 큰 프레임으로서 사건 진행의 서술은 간략하게 되어 있지만,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은 이를 확대하여, 국가들의 대외 정책과정에서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비협조적이고 불명확한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왔음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훌륭하다.

애초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타국의 황태자를 왜 살해했는지에 대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세르비아인의 민족주의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본 블로그에 일부 인용[2]을 해 두었으니 참고 바란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본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3]가 생각나는데, 전반적으로 진실과 상당히 동떨어진 면이 있지 않나 싶다. 그 때는 그 만화[3]를 추천했지만, 지금은 추천하지 않는다.

p235에 그레이트 게임이 언급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4]가 볼만하다. 다만 피터 선생의 책은 러일전쟁에서 끝나지만, 이 책을 보니 실제로 영국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에서의 긴장관계는 1차 대전까지도 유지되는 것 같다. 피터 선생의 책에서는 영국 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나빴는지에 대해 상세히 나오는데, 크리스토퍼 선생의 책을 보니 비단 영국 뿐아니라 외국을 대하는 주전론적 여론이 유럽 전체를 휩쓸고 있었던 것 같다.

p236에서 영국이 고립정책을 버리고 영일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영국의 국제관계를 약간 설명한다. 일전에 본 도널드 킨 선생의 저서[5]에서는 영국이 아쉬울 건 거의 없고, 일본이 근대화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일본쪽이 매달려서 동맹이 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영국도 나름 이해관계가 있는 동맹임을 알 수 있다.

p346에 슐리펜 계획이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연구를 짧게 언급하는데, 뒤쪽에 참고문헌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테렌스 주버 선생의 이름이 나온다. 이에 관해서는 길잃은어린양 선생의 블로그[6]에 상당히 상세히 쟁점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람.

p742부터 러시아가 왜 세르비아 문제에 개입했는지, 대외적으로 표명된 원인이 아닌 경제적 원인을 지목하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대외적으로 표명된 주장 뒤쪽에 숨은 플레이어들의 내면적 의도를 간파하는데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이 책의 탁월함이 아닐까 싶다.

각 국가들은 상호 적대감과 피해망상으로 인하여 상호 저신뢰 관계에 묶여있었고, 이로 인하여 최종적으로는 전체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론을 알고 있는 후대인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선택들이었으나, 당대의 당사자들이 가진 정보와 관점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경제학에서 개별 플레이어가 각자 자신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면 국부가 증대된다는 애덤 스미스류의 주장에 대한 생생한 반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반적으로 1차 대전의 발생원인을 외교관계를 통해 해석하고 있고, 당대 복잡했던 사안과 사회적 분위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추적하고 있다. 다체 문제보다도 복잡한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풀어내면서, 개별 플레이어들의 당대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책 겉면에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처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을 건네줬다고 나와 있던데, 검색해보니 2017년 12월에 북한을 방문했다[7]고 나온다. 그 때 준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호 저신뢰 관계 속에서 외교가 진행되면 궁극적으로 파국이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텍스트의 분량이 상당하고, 당대 복잡한 사안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아무래도 유럽사에 관심이 좀 있어야 읽을만할 듯 하다. 읽기 빡셌다-_-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책 같아 보이는데,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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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4

재생시간 8분 5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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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세계대전사 (보급판) 존 키건 (지은이),조행복 (옮긴이)청어람미디어 2016-04-15 원제 : The First World War
[2] 내 백과사전 범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기원 2019년 6월 4일
[3] 내 백과사전 [서평] 가브릴로 프린치프- 세기를 뒤흔든 청년 2014년 7월 18일
[4] 내 백과사전 [서평] 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2012년 12월 20일
[5] 내 백과사전 [서평] 메이지라는 시대 –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2018년 7월 26일
[6]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 S-2 (panzerbear.blogspot.com)
[7] 연합뉴스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 5일부터 나흘간 북한 방문 2017-12-05 02:37

Sweetheart grip의 진화

사진기의 발명 이래로, 군인들은 항상 곁에 두는 생활 물품에 애인이나 가족 사진을 넣는 일을 해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예외는 아니라, 많은 군인들이 피스톨 손잡이에 자신의 애인이나 가족 사진을 넣어두곤 했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는 [3]임.

이른바 Sweetheart grip이라는 건데, 일전에 1913년 비엔나 이야기[1]할 때 언급한 역사 트리비아 사이트인 vintage news[2]에 다양한 예시 사진들과 함께 설명이 잘 돼 있다.

여하간 이런 오래된 전통을 살려, 요즘에는 피스톨 손잡이에 최애캐-_-를 넣어놓는 친구들이 있는 듯 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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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1913년의 비엔나 2019년 1월 5일
[2] The Vintage News “Sweetheart Grips” – WWII soldiers would make clear grips for their pistols to display their sweethearts Sep 2, 2016
[3] the daily calender World War II Sweetheart Grips 5:39 PM 02/13/2015

음성기호 Phonetic Code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원래 해군을 지원했는데, 사관학교에서 수학성적이 좋은 바람에 포병을 추천받았다고 한다.[1] 이후 방데미에르 쿠테타에서 나폴레옹이 대포를 이용한 신속한 진압에 성공하여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후 승승가도를 달리며 승진하였다. 만일 역사상 최고의 장군[2]인 나폴레옹이 포병이 아니었다면, 진짜로 세계사는 상당히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ㅎㅎㅎㅎ 한 개인의 수학실력이 역사를 결정하는 몇 안되는 사례가 아닐까-_-

뭐 여하간 이는 국내사정도 비슷한데, 주변사람들을 관찰해보니 경험상 수학과 남학생들은 특별히 지원병과가 없으면 대체로 포병/박격포 주특기를 받게 되는 듯 하다. 본인도 측지반에서 복무했다. 무릇 포병과 수학은 (쓸데없지만) 나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ㅋㅋㅋㅋ

무전병이나 포병은 원거리에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나름의 Error detection and correction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수치를 주고받을 때 쓰는 숫자 읽기로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은 포병과 무전병에게 필수다. 포병은 모든 숫자 읽기에 이것을 적용하는데, 이것을 실수할 경우 선임이 신참을 갈구는 좋은 요소가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를 들어 세 번째 물건을 ‘셋’이라 세는 경우, 개갈굼을 당한다. ㅋㅋㅋ) 지나고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갈굼 당하는 것 자체는 부조리이긴 하나, 이것을 체화하지 않으면 작전을 원활히 진행할 수 없으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롱카운트’로 알파벳의 철차 하나하나를 일일이 원거리로 송신할 때,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알파벳을 일일이 분해하는 음성기호를 사용한다. 어릴 때는 이것을 왜 외우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았으므로 그냥 외웠지만, 지나고 보니 이것을 Phonetic Code라고 부르는 걸 알게 됐다. ㅎㅎㅎㅎ 좀 검색해봤는데, 역시나 나무위키에 밀덕이 많은건지 자세히 나와있다.[3] 쓸데없이 초 훌륭하네-_- 한국어의 음성기호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ㅎㅎ 내가 배운 영문 음성 기호는 NATO에서 쓰는 음성기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으면 이 코드를 공유하지 않으므로 러시아는 별도의 코드[4]를 쓰는 듯 하다. 사실 러시아어에 대해 찾아보다가 나온거다.

아 이걸 보니 어릴 때, 군대에서 숏카운트로 개갈굼당하던-_- 추억이 생각난다. ㅋㅋㅋ 수학과 학생들은 포병되기 전에 좀 외워 두는 게 좋을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총번, 군번등의 각종 숫자나열을 연습없이 숏카운트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영화 같은데서 무전신호로 알겠다는 의미로 roger라고 대답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1956년 이전 음성기호는 r이 roger(현재는 romeo)이다. received의 의미로 ‘r’을 말하려고 roger가 된 듯 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혹시 진위를 아시는 밀덕은 출처와 함께 댓글 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칭 밀덕이라는 사람들이 출처없는 정보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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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백과사전 나폴레옹이 포병이 된 이유 2012년 7월 12일
[2] 내 백과사전 데이터 분석으로 비교한 역사상 최고의 장군? 2018년 8월 19일
[3] 음성 기호 (나무위키)
[4] Russian phonetic alphabet (priyom.org)

[서평]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은이), 이순호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17-12-22 | 원제 Spain In Our Hearts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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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이념들의 도가니였고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기도 했던 스페인 내전사에 대해 관심이 있어 본 책이다. 내전 전체를 조망하는 책은 아니고, 내전 당시 참가했던 국제여단과 미국인 중심으로 몇몇 인물들의 행로를 추적하는 점에서, 전쟁 속 미시 사건에 더 주목을 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전황설명이나 당대의 분위기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 타국의 내전속에 휘말린 미국인들의 운명이나 행로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는 관련없지만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1]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스페인 내전의 전반적인 전황과 복잡한 정치적 흐름은 앤터니 비버 선생의 책[2]을 참고하는 편이 좋다. 국제여단에 대해서는 일전에 한국일보의 기사[3]에 대체적으로 잘 나와 있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전쟁의 흐름을 먼저 알고 읽는 편이 좋다고 본다.

서문[4]을 읽어봤을 때부터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이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세월의 흐름에 퇴역해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감상적이다. 독서 결정 여부에 도움이 되도록 서문의 일부를 별도로 인용을 해 두었다.

이 책 안에서 일전에 본 오웰카탈로니아 찬가[5]를 많이 인용하는데, 읽은지 오래 되다보니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일전에 빠트린 11장을 포함하여 다시 읽어봤다. 당시 POUM이 불법인 이유가 아나키즘 노선을 따랐기 때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다-_- 젠장. POUM은 트로츠키 노선을 따랐기 때문인 듯 하다. 뭐 아나키스트는 언제나 공산주의자와 사이가 안 좋았으니 언제나 탄압 대상이긴 하다. ㅎ

한편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흥미로운 아나키즘 병영문화에 대한 묘사[5;p40]는 무척 흥미로왔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이상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p195) ㅎㅎㅎ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바르셀로나 전화교환국에서의 총격전에 대한 묘사[5;10장]도, 전황에 대한 본서의 설명(p271)을 보니 좀 더 상황이 이해가 된다.

미국 석유기업인 Texaco가 프랑코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이야기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석유의 외상지원과 더불어 공화파 배편의 이동정보를 독일에게 넘겨주는 이야기 등, 여러모로 책의 본 목적인 미시사와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나름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다. 아무래도 미국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 듯 하다.

스페인의 운명은 이웃나라에서 결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의 내전과도 많이 겹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휩쓸려 가는 개인의 역사를 조망한다는 측면에서 현장감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 별도 항목이 있는 걸 보면 나름 인지도가 있는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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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은이), 정윤미 (옮긴이) | 살림 | 2009-05-20 | 원제 The Coldest Winter
[2] 내 백과사전 [서평]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2010년 12월 13일
[3] 한국일보 반파시즘 세계연대… 국제여단이 일깨운 것 2014.12.15 13:58
[4] 내 백과사전 ‘Spain In Our Hearts’ 서문 중에서 2018년 12월 5일
[5] 내 백과사전 [서평] 카탈로니아 찬가 2015년 2월 13일

‘Spain In Our Hearts’ 서문 중에서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은이), 이순호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17-12-22 | 원제 Spain In Our Hearts (2016년)

p11-19

(전략)

머나먼 타국의 강변에서 네 명의 미국인이 조우한 전쟁은 스페인의 역사를 바꿔놓은 주요 사건이었다. 급부상하는 파시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유럽에서는 이 전쟁이 도덕과 정치의 시금석, 다가올 세계대전의 서막으로도 인식되었다. 이 전쟁에 참가한 미국인도 대략 2,800명이었으며, 이 중 750여 명이 전사했다.5 20세기에 미군이 참전한 그 어느 전쟁들 보다 사망률이 높았다. 스페인 내전은 다수의 퇴역병과 일부 미국 특파원들에게도 그들 삶을 결정지은 주요한 경험이었다. 매슈스가 “이 세상 어디든, 남자든 여자든, 나는 스페인의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만난다. 동종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6라고 쓴 대로였다. 내전을 취재한 기자들은 미국 저널리즘의 관례마저 무너뜨리며, 참전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동지애를 느꼈다. 스페인 내전 앞에서는 일체의 허식을 떨쳐버린 것이다. 1938년 봄 공화파군이 프랑코군의 맹공을 피해 도망칠 때 《뉴욕 타임스》 특파원 매슈스와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특파원이, 기자이면서도 개인 자격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공화국에 무기를 지원해 주도록 간청하는 전문을 보낸 것도 그래서였다.7

스페인 내전은 그 뒤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에 묻혀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서는 대체로 사라졌다. 그러나 내전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미국인 수천만 명이 그 소식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뉴욕타임스》만 해도 1936년 중엽부터 1939년 초까지 계속된 내전 기간 동안 그와 관련된 기사를 1,000번 이상이나 1면 헤드라인으로 실었다.8 이는 루스벨트 대통령, 나치 독일의 부상, 대공황으로 초래된 재앙을 포함해 다른 모든 기사들을 실은 횟수보다 많은 것이었다.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 미국 정부와 달리, 일반 미국인들은 공화파와 국가주의자 양쪽 모두에 깊숙이 관여했다. 미국 의용병들에게 폭격을 가하고 기총소사를 퍼부은 나치 전투기와 폭격기에 연료를 대준 사람도 다름 아닌, 우익 독재자들을 좋아하고 허세가 심했던 텍사스의 오일맨이었다.

내가 스페인 내전을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중엽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수습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신문사의 선배 기자 두 명이 미국 지원병들을 비공식적으로 부르는 호칭이던 에이브러햄 링컨 연대의 퇴역병이었던 것이 내가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지금 기억하기로, 그때 나는 내전 때 구급차를 운전한 선배 기자에게 스페인 내전을 어떻게 회상하느냐고 물었다.9 그러자 수동 타자기와 전신기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 식자공에게 기사를 보낼 때 기송관에서 나는 휙 소리 너머로 그가 뉴스룸에서 흔히 오가는 농담과는 확연히 다른 진지한 어조로 “이겼으면 좋았겠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바람과 달리 공화국은 패했고, 그 후에도 내전에는 얼마 간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내전이 프랑코 반군의 승리로 끝난 이듬해에 발간되어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한 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만 해도,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내전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분위기로 충만하다. 스페인 내전은 당대에 일어난 그 어느 사건보다 “만일의 문제”를 많이 야기시키기도 했다. 만일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구매를 원했던 공화파에 무기를 팔았다면? 그랬다면 그 무기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보내준 비행기, 잠수함,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고, 끝내는 다른 십 수 개 나라들도 침략했을까? 만일 공화파에 무기를 팔았다면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한 2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다른 방식의 전쟁이 일어나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문제들 말이다.

미국 의용병들도 대부분 자신들이 세계대전의 전초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미국이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기 4년 전에 그들은 이미 스페인에서 나치 전투기의 폭격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스페인 내전을 그 시대의 시험대로 생각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도 많았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도 이런 글을 썼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가슴 속에 모두 스페인을 간직하고 있다. … 옳은데도 패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이길 수 있으며, 용기가 보상받지 못한 시대가 있다는 것을 체득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10

스페인의 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선명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파시즘이 급속히 확산되자 격렬한 저항이 일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여기서 저항하지 않으면 어디서 저항하겠느냐는 것과도 같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내전에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인권운동 시위, 1960년대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 1980년대의 중앙아메리카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에이브러햄 링컨 연대 퇴역병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내가 보게 된 것도 그래서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전에 참가한 의용병들도 여럿 만나고, 그중 두 사람과는 몇 년 간 친구로도 지냈다(그러고 보니 책에는 짧게 언급되었지만, 어릴 때 내가 사고를 당했을 때 상처를 꿰매준 외과의사 자크 그룬블랏 박사도 스페인 내전의 퇴역병이었다). 어느 날에는 이 책의 1장에 등장하는 부부의 남편이 버클리대학교의 대학원생이던 1930년대에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 고작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골백번도 더 지나쳤을 건물에 그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한층 용이해지는 느낌이었다. 사회적 정의에 관심을 가진 우리 모두는 정치적 조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 남녀들-여자 의용병들은 대개 간호사로 지원했는데 대략 75명 정도였다-이야말로 정치적 조상이 아니겠는가.

나는 1960년대 세대의 사람들 못지않게 그것을 강하게 느꼈다. 시공간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와 같은 물음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 역시 그 시대에 살았다면 스페인으로 갔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물론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알려진 것보다 어둡고 그리 낭만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세계의 주요 국가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소련만 공화파에 무기를 팔았으나, 나중에 스페인이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만 해도 그렇다. 실제로나 상상으로나 일부 스페인 사람들은 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의 특징이던, 적에 대한 잔혹함의 희생양이 되었다.

(중략 : 소련에서 희생된 스페인인들의 이야기)

스페인 내전의 이 두 얼굴을 우리는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의 군사반란에 저항한 스페인인들의 행위는 물론 옳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코 정부만큼이나 잔혹했던 소련과의 얽히고설킨 관계만으로 공화파가 패한 것이었을까? 공화국 수호자들은 가장 비열한 동맹국의 하나를 위해서도 싸웠지만 가장 훌륭한 대의 가운데 하나를 위해서도 싸웠기에 묻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점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기는 했을까? 아니 생존을 위한 절박한 전쟁이었던 만큼 피아를 구분할 여유조차 없지 않았을까? 이런 문제들도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 시대의 역사를 연구하게 만들었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들 대다수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여겼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공산주의가 왜 그처럼 강한 호소력을 가졌고, 소련이 왜 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비쳐졌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인터내서널가〉를 처음 들은 것은 에이브러햄 링컨 연대의 의용병 가운데 한 명의 장례식 때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연대가 스페인을 떠난 지 65년이 지나고 미국 공산당과 결별한 지는 45년이 지난 뒤에 치러진 장례식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찬가였던 〈인터내셔널가〉가 그 무렵에는 젊은 시절의 꿈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몇몇 노인들에 의해서만 불리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공산주의, 트로츠키주의, 무정부주의도 대개는 기반을 상실하고, 그 이념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옛 논거들도 중세의 종교 분쟁만큼이나 아득하고 멀게 느껴진다.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에 봉착해 더는 지속될 수 없다는 신념과 누구의 청사진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은 있을지언정, 미래의 청사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광범위한 신념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비록 그 신념은 낯설게 느껴질지라도, 1930년대의 스페인에 만연한 다른 양상들은 현재의 많은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전체주의적 독재정권과 토지, 교육,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오랫동안 공정한 분배를 거부당한 수백만 명의 힘없는 사람들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렇다. 1930년대의 스페인이 그 시대의 주요 전역이 되고, 우리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전역이 된 것도 그래서였다.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 밖에도 또 있었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전쟁, 특히 베트남,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이라크 혹은 여타 나라들에서 일어난 내전이나, 혹은 다른 나라 내정에 미국 정부가 간섭하는 것에 50년 가까이 맹렬하게 저항해왔다. 그런데 유독 스페인 내전에는 그때 미국이 관여했더라면 세계가 한층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온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스페인 내전에서 싸운 전 세대 미국인들도 영웅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다 보니 먼 타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때는 따로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난 것이다.

스페인 내전은 다수의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내전에 참여한 유일한 전쟁이었다. 그것도 미국 정부의 끈질긴 방해를 물리치고 행한 일이었다. 참여자들의 출신 성분도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온 빈자와 부자, 아이비리그 졸업생, 화물열차를 타고 일자리를 찾아다닌 사람들 등 다양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그곳에 감으로써 자신들, 전쟁, 자신들이 지켜주려고 한 나라, 자신들이 떠나온 나라에 대해 무엇을 배웠을까? 혹시 나중에 그 일을 후회한 사람은 있었을까?

이 시기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일부 미국인들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대가 행하는 전투에 이끌려 스페인에 간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전선 뒤에서 벌어진 사회혁명에 이끌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용병들이 스페인에 오기 몇 달 전에 이미 신혼여행차 스페인 땅을 밟은 정열적인 켄터키 여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무리의 사람들도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나 자신이 해외에서 자주 취재를 하고 때로는 분쟁 지역에서 취재 활동을 해온 저널리스트이다 보니, 이제는 다분히 신화적 존재가 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미국 기자들의 면면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매슈스, 헤밍웨이, 그들의 동료 기자들은 기사를 정직하게 썼을까? 열정-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장에서 취재하는 특파원이 백악관에 전문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기에 하는 말이다-이 지나쳐 기사를 왜곡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를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들의 삶을 조사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범위를 조금 넓히는 것이 좋겠다 싶어 영국인 세 명-미국인들 편에서 싸운 사람, 미국인들에 맞서 싸운 사람, 모든 미국 독자들이 알만한 사람-도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도 스페인 내전의 역사만은 아니며,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들만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격동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너 삶의 진로를 택한 일군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물론 역사는 말끔하게 포장된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당시 스페인에 간 남녀들 중에는 아무리 용기 있게 행동했다 해도 지금 시각으로는 환상과 같은 신념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이상주의와 용기가 지혜와 언제나 같을 수는 없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알아가고, 그들이 속한 시기와 장소에서 나라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 그들의 후손을 만나고,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를 찾아다니며, 벽장이나 서랍속에 오랫동안 쑤셔 박혀있던 문서들을 끄집어내고, 마지막에는 에브로 강가를 찾은 것도 그래서였다.

 


5. 이 수치에는 의료 지원병들도 포함돼 있다. 크리스토퍼 브룩스가 관리하는 ALBA 데이터베이스에는 미국인 의용병이 2,644명, 사망자가 734명으로 데이터가 정리돼 있다. 그러나 브룩스도 그렇고, 링컨 대대를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은 실제로는 의용병과 사망자 수가 그보다 많았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책의 본문 175쪽에도 언급되었듯, 링컨 대대와 관련된 일부 초기 기록물들이 트럭 두 대와 함께 사라진 것이 숫자의 정확성을 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1938년 3월과 4월의 혼란스러웠던 퇴각 때처럼, 다른 때에는 그보다 더 많은 기록물이 분실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6. Matthews, Herbert L. The Education of a Correspondent. New York: Harcourt Brace, 1946, p. 67.

7. 《뉴욕 해럴드 트리뷴》의 빈센트 쉬안 기자가 전문을 보낸 부분은 Voros, Sandor American Commissar. Philadelphia: Chilton, 1961, pp. 430-431을 참조할 것. 매슈스는 “전투기 200대를 즉시 보내지 않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고 말하는 전문을 여러 매개인을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James Roosevelt papers, Franklin D. Roosevelt Presidential Library, Hyde Park, NY. Box 62에 나타난 것처럼 《시카고 트리뷴》의 제이 앨런 기자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남 제임스 루스벨트에게 전문을 보냈다.

8. Chapman, Michael E. Arguing Americanism: Franco Lobbyists, Roosevelt’s Foreign Policy and the Spanish civil War, Kent, OH: Kent State University Press, 2011, pp. 226-227.

9. 교육부 기자 제임스 베넷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일한 또 다른 링컨 대대의 퇴역병이었다.

10. L’Espagne libre(Paris: Calmann-Lévy, 1946),p.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