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하디드씨 별세

지난 31일, 자하 하디드씨가 별세했다[1,2]고 한다.

이란 출신의 여성 건축가로, 그의 사무소가 근래에 동대문 플라자 디자인도 설계했다. 본 블로그에서도 일전에 MAXXI가 2010 스털링상을 받은 이야기[3]나 도쿄 올림픽 경기장 디자인 논란 이야기[4]를 한 적이 있다. 동대문 플라자는 좀 논란이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들의 지향성이 미래스러운 디자인이라 꽤 좋아한다. (언젠가는 직접 찾아가 보고 싶지만..ㅠㅠ)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고 하는데, 65세면 적지는 않지만 죽기에 많지도 않은 나이다. RIP

 


2016.4.3
아시아경제 [뉴스 그 후]자하 하디드의 유작, DDP는 명품인가 괴물인가? 2016.04.03 11:30

 


2016.4.13
이코노미스트 Outside the rectangle Apr 9th 2016

 


[1] BBC In Pictures: Zaha Hadid’s award-winning designs 31 March 2016
[2] arch daily Zaha Hadid Dies Aged 65 11:20 – 31 March, 2016
[3] 내 백과사전 2010 RIBA 스털링상 – 자하 하디드 2010년 10월 6일
[4] 내 백과사전 자하 하디드의 도쿄 올림픽 경기장 논란 2015년 8월 1일

IS가 시리아의 고고학자를 참수하다

처음에 이코노미스트에서 매일 발행하는 에스프레소 단신으로 읽었는데, 기사를 읽고 내용이 놀라워서 검색을 해 봤다.

내용[1]인 즉슨, IS의 유물파괴를 막고자 유물을 숨긴 시리아의 고고학자 Khaled al-Asaad선생 에게 IS가 유물을 숨긴 장소를 말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아 그를 참수하여 로마시대 기둥에 걸어 놓았다는 이야기 같다.

뭐 일면식도 없고 처음 이름을 들은 사람이긴 하지만 졸라 분노가 일어난다. 유물을 보호하는 학자를 죽이는 야만이 21세기에 일어나다니!!! 이 개쉐이들…. 위키피디아를 보니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는 사람인 듯. 근데 때마침 Timothy Gowers 선생이 구글 플러스에서 이 사건을 언급[2]한다. 고워스 선생이 수학관련 아니면 웬만하면 구글 플러스에서 언급을 잘 안하는 것 같던데, 이 사건이 그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는 듯.

진짜 영웅적 행동이라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뭐 본인의 블로그는 보는 사람도 몇 없는 인터넷의 변방이긴 하지만, 블로그로나마 그의 명복을 빈다.

 


[1] 가디언 Beheaded Syrian scholar refused to lead Isis to hidden Palmyra antiquities Wednesday 19 August 2015 14.47 BST
[2] https://plus.google.com/u/0/+TimothyGowers0/posts/WacvMYmZEAe

존 내쉬 별세

해커뉴스[1]를 보니 존 내쉬와 그의 부인이 교통사고로 별세했다[2]고 한다.

1쪽짜리 논문[3]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 사람이다. ㅎ 개인적으로 ‘뷰티풀 마인드’를 인상깊게 읽은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예전에 레딧에서 내쉬 서명이 화제[4]가 된 적이 있었는데, 헐 서명 간지난다 했던 생각만 나는 군-_-

여하간 고인의 명복을 빈다.

 


[1]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9596160
[2] abc news ‘A Beautiful Mind’ Mathematician John Nash and His Wife Killed in New Jersey Taxi Crash May 24, 2015, 9:57 AM ET
[3] 내 백과사전 분량비 중요도가 가장 높은 수학논문? 2010년 11월 7일
[4] Can anyone tell me what this means? John Nash signed this instead of a signature. in reddit

나무를 심은 사람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1987)

유명한 파스텔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의 감독인 Frédéric Back이 어제 24일에 별세했다[1]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53년 프랑스 작가 Jean Giono동명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비슷한 사례[2]는 있다.

애니메이션 자체는 너무 유명해서 뭐 다들 한 번씩은 봤으리라 생각하지만, 행여나 못 본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니 다시 소개해본다. 러닝타임은 30분 16초

화질과 음질이 그리 좋지는 않다. 원체 옛날 애니메이션이라 그런 듯. 그러나 감동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은 없다.

 


2014.1.21
알 자지라 India’s forest man 20 Jan 2014 11:26

 


[1] CartoonBrew Frédéric Back, Director of “The Man Who Planted Trees,” Dies at 89 Wednesday December 25, 2013 12:52 am
[2] 1360에이커 크기의 숲을 혼자서 창조해 낸 사나이 by isao

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

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 by 에스티마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문화와 자기 자신에 의해 결정되는 문화의 차이. 의외로 이러한 관점에서 많은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2014.2.27
페이스북에서

“출퇴근시간엔 주로 자기계발서를 읽는 회사원들이 압도적이다. 작년엔 힐링책이 유행하면서 지하철에도 법륜 스님 책이 물결쳤다. 지하철 독서 생태계에는 중간급이 없다. 서점에서 수십만권 팔리는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대부분이고 5000권 팔린 중간급 책이든, 한번 찍고 절판해버린 책이든 희소하긴 마찬가지”

-한국인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선택해 읽기보다는 남들이 많이 읽는다는 베스트셀러를 따라서 읽는 것 같다. 전에 아는 미국교포친구가 “한국인은 검색도 자기가 궁금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급등 검색어를 통해) 남들이 뭘 검색하는지를 검색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키워가야 하는데…

파하하 남들이 뭘보는가로 자신이 보는 것을 결정하는 사람들…

티벳 독립을 위한 분신자살

self-immolation올해들어 벌써 세 명의 분신자살자가 나오면서, 티벳 독립을 위해 분신자살을 한 사람이 2009년 3월 이래로 누적도합 99명이 되었다고 한다.

알 자지라 Tibet nears 100 self-immolations January 25, 2013

티벳인들의 이러한 저항방법을 보니 일전에 소개한 피터 홉커크 선생의 저서 ‘그레이트 게임’에서 1904년 영국이 티벳인을 제압하는 광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생각난다.

피터 홉커크 저/정영목 역, “그레이트 게임“, 사계절출판사, 2008, p642-644

러일전쟁 발발 소식은 갼체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 구루에 다가가던 영허즈번드 사절단에게도 전해졌다. 갼체는 이제 불과 60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다. 영허즈번드와 호위대는 그때까지 티베트인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주요한 장애물 세 개를 넘는데 성공했다.

(중략)

영허즈번드의 호위대장 제임스 맥도널드 준장은 얼은 구르카인과 시크교도 병사들을 움직여 티베트인을 완전히 포위했다. 이어 티베트어를 할 줄 아는 사절단 소속의 정보 장교 오코너(Frederick O’Conner)대위를 보내 무기를 내려 놓으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티베트 군 지휘관은 그 말을 무시하고,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맥도널드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하여 티베트군의 무장을 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임무를 수행하러 나선 세포이 병사들이 저항하는 티베트 병사들의 손에서 화승총을 빼앗았다. 티베트 군 지휘관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가운데 밑에서 리볼버를 꺼내더니 근처에 있던 세포이 병사의 턱을 날려버리면서 부하들에게 전투를 명령했다. 티베트군은 즉시 호위대에 달려들었으나,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받은 호위대의 총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 분이 안 되어 중세의 군대는 근대 살상무기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무기나 군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티베트인 700명이 평원에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중략)

맥도널드가 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즉시 사격 중지를 명령하지 않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티베트인들이 천천히 평원을 가로질러 줄을 지어 물러가는데도 사격은 계속되었다. 어쩌면 맥도널드는 사격을 멈추려 했지만, 기관총과 다른 시끄러운 소리들 때문에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기관총을 책임진 중위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걸어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티벳인들이 주는 이런 느낌이 일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애처롭고도 안타까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인터넷으로 어느 중국인과 티벳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달라이 라마를 강하게 비난하는 상당히 국수주의적 스탠스였다. 영어가 딸려서-_-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알 자지라의 페이스북에서는 중국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그 와중에도 강하게 티벳을 비난하고 있는데, 분신자살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살폭탄 테러와 같다고 말하는 듯. 왠지 그의 주장중에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슷한 주장도 보인다. 쯧쯧..

 


2013.3.10
알 자지라 Tibetan self-immolations spark China tension 10 Mar 2013 13:15
아직도 분신자살은 계속된다. 아, 삶이란 무엇일까.

배링턴 브라운의 왓슨과 크릭 사진

매트 리들리 저/김명남 역, “프랜시스 크릭”, 을유문화사, 2011

p105-106

(1953년) 5월 21일에는 기자를 지망하는 한 대학생이 프리랜서 사진가 앤서니 배링턴 브라운을 그들에게 보냈다. 두 청년 과학자와 금속 모형을 사진으로 찍어 기사와 함께 『타임』지에 투고할까 했던 것이다. 화학과 출신인 배링턴 브라운이 두 사람을 만나 보니 이렇게 명랑한 사람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형식적인 포즈를 취하게 할 수가 없었다. 모형 앞에 당당하게 서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서툴렀고, 사진사의 노력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그는 크릭에게 등받이 없는 의자에 서서 계산자로 모형을 가리키라고 지시했고, 촬영에 대비해 오딜이 골라준 새 재킷을 입은 왓슨에게는 맞은편에서 모형을 올려다보라고 지시했다. 사진들은 끝내 『타임』지에 게재되지 못했지만, 배링턴 브라운은 장당 10실링쯤 수고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 중 한 장은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책에 사진이 안 나와있어 검색해 봤는데, 이 사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진을 찍은 Antony Barrington Brown은 올해 초에 교통사고로 별세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미지 출처

 


2013.8.19
Antony Barrington-Brown (1927-2012) in Iconic Photos

닐 암스트롱 별세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에 닐 암스트롱의 부고 기사가 올라와 있다.

이코노미스트 Neil Armstrong Aug 25th 2012, 20:38

Armstrong offered the following self-portrait: “I am, and ever will be, a white-socks, pocket-protector, nerdy engineer, born under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steeped in steam tables, in love with free-body diagrams, transformed by Laplace and propelled by compressible flow.”

파하하 그러고보니 예전에 읽은 앤드루 스미스의 ‘문더스트’라는 책이 생각나는데, 이 책에 따르면 1969년 당시 원래는 달을 한 바퀴 선회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케네디의 우격다짐으로 달착륙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나 뭐라나. 이 책은 믿거나 말거나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앤드루 스미스 저/이명헌, 노태복 역, “문더스트”, 사이언스 북스, 2008
p202-208

실제로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기 전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전임자이자 디데이 작전의 전문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보다도 우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사실 ‘아이크’ 아이젠하워는 바로 그런 생각에 분개했는데 1957년에 소련이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함으로써 그의 두 번째 임기의 후반부를 망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련의 인공 위성이 심각한 군사적 위협은 못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한 역사가의 표현대로 소련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들 사이에 이루어진 “소위 ‘차가운 전쟁’을 ‘차가운 평화’로 간주하자는 무언의 동의”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는 스푸트니크가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항공 산업과 군산 복합체와 얽혀 있는 그의 정적들이 스푸트니크를 어떻게 이용할지 짐작도 못한 것이다. 냉전 시대 내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자기 방어적인 군소 정치인들과 정부 기관, 이를테면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나 전제 군주적인 FBI 국장 에드거 후버 측에서 촉발시켰는데, 별안간 존경할만한 대통령이 친히 국회를 발칵 뒤집을 거리를 들고 나서면서 사태는 복합적으로 진행되었다. 상원의 민주당 대표에서 곧이어 부통령이 되는 허풍이 심한 텍사스 출신의 린드 존슨은 이렇게 거들었다.
“로마 제국은 도로를 세워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대영 제국은 선박으로 바다를 재패했습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발명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세력을 떨쳤던 것입니다.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우주 공간에 발판을 마련하려는 지경입니다.”
존 매코믹 하원 의원은 어쩌다가 미국이 “국가적 소멸”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했을까? 왜 불쌍한 개 라이카를 태우고 궤도 비행을 한 스푸트니크 2호에 자극받아 급조된 린든 존슨의 미국 우주 기술 전문 위원회에서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우리가 전면전에 돌입하기 전에 그들을 따라 잡을 수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라는 발언을 했겠는가? 뭐에 돌입한다고? 그것만으로 모자랐는지 베르너 폰 스트레인지2는 인공 위성처럼 돌다가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궤도 폭탄에 전술적 이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푸트니크가 궤도 폭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열심히 강조했다.

(중략)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피그스 만 침공 3주 전만 해도 케네디는 로켓 개발을 지원하는 데 반대했다. 그러나 이제 우주 정복이야말로 20세기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유인 우주 센터 감독 로버트 길루스와 그의 나사 동료 조지 로를 불러들였다. 훗날 로버트 길루스는 케네디가 향후 계획에 대해 묻기에 머큐리 계획과 더불어 언젠가 달궤도를 비행하려는 기획 단계의 야심을 설명했다고 크리스 크래프트에게 말했다. 케네디는 소련을 납작하게 누르려면 왜 달에 착륙하지 않고 주변을 돌기만 하냐고 끼어들었다. 크리스 크래프트는 로버트 길루스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나는 부정적으로 비쳐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달 착륙이란 것은 궤도 비행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고난이도의 도전이라고 설명을 했지. 그런데 도대체 듣지를 않더라고.”

(중략)

물론 이에 대한 이견들도 있다. 은퇴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아폴로 계획을 “그냥 헛짓”이라고 불렀다. 다른 이들은 그런 광대한 정부 차원의 우주 계획은 정부 주도의 경제 체제로 이어져 정부 권한을 지나치게 키우고, 교육계와 학계에 있어야 할 인재를 빨아들이고, 사회 보장에 쓰일 돈까지 써 버리며, 지상의 안보에 대한 관심마저 흩뜨린다고 불평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놀라우리만큼 잠잠해졌다. 전무후무한 그 10년 동안 미국인들은 기꺼이, 심지어 열의를 갖고 거대 정부의 사제인 과학자의 헌금 접시에 신뢰와 세금을 갖다 바쳤다. 1961년 5월 25일 국회 연설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대담하지만 무모한 이 계획에 대하여 활발한 국가적 토론을 요청했다. 그는 누군가가 나서서 그에게 이 계획을 그만두라고 말해 주기를 원했던 것 같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상원에서의 그 ‘토론’은 1시간가량 지속되었지만 할 이야기가 있던 이는 상원의원 아흔여섯 명 중 겨우 다섯 명뿐이었다.

 


2. 스탠리 큐브릭의 1964년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의 등장인물. 공군기지와 각료 회의장, 핵폭탄을 싣고 가는 폭격기 B52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기계 팔을 달고 등장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기술의 신봉자이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바턴 빅스 별세

유명한 펀드 매니저 바턴 빅스가 지난 14일 별세했다고 한다. 그는 닷컴 버블을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예전에 그의 저서[1]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뭔가 승부사의 세계에 오래 몸담은 현자의 입담이랄까 그런게 느껴졌다. 펀드 매니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읽어볼만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1] 내 백과사전 [서평] 투자전쟁 : 헤지펀드 사람들의 영광과 좌절 2010년 12월 20일